[2012년 경제전망으로 본 서민들 삶] 마른수건 쥐어짜는 ‘고난의 해’될 듯
[2012년 경제전망으로 본 서민들 삶] 마른수건 쥐어짜는 ‘고난의 해’될 듯
2011년 말 대리로 승진한 직장인 공수연(32)씨는 월급이 별로 늘어났다는 느낌을 못 받았다. 공씨는 “통장에 찍힌 숫자만 보면 오르긴 했지만 물가를 생각하면 거기서 거기”라고 푸념했다. 고용노동부는 물가상승률을 감안한 실질임금인상률이 2011년 11월 말까지 1%대 초반에 그쳤고, 경기둔화가 예상되는 2012년에는 사정이 더 나빠질 것으로 예상했다. 각 사업장별 임금교섭을 통해 정해진 협약임금 인상율은 평균 5.2% 수준. 2010년 4.8%보다 높은 수준이지만 4%에 이르는 소비자물가상승률 등을 감안할 때 실질임금상승률은 1.2% 정도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마저도 100인 이상 사업장을 대상으로 한 것이어서 100인 미만 중소사업장의 실질임금은 인상률이 ‘0’에 가깝거나 마이너스일 가능성이 크다.
모든 업종의 2012년 전망이 어두운 것은 아니다. 제조업 전반에 걸쳐 성장세가 둔화되는 가운데서도 석유화학·무선통신·자동차 업종의 사정은 좋을 것으로 보인다. 반면 반도체·디스플레이·해운 쪽 전망은 다소 어둡다. 자동차 회사에 다니는 최추생(38)씨는 “2011년에 이어 2012년에도 괜찮은 실적이 기대된다”며 “2012년 말에도 보너스를 기대할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을 내비쳤다. 반면 디스플레이 회사에 다니는 김명환(37)씨는 “2012년 하반기 들어 국제 경기가 되살아나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될 것”이라며 애써 불안감을 감췄다.
자동차 회사 직원은 2012년도 보너스 기대얇은 월급봉투를 쥔 직장인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물가다. 직장인 조동현(32)씨는 2012년 나올 2세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오른 물가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다. 조씨는 아이가 태어나는 4월부터 물가와 전쟁에 돌입한다. 출산 비용부터 각종 양육 비용까지 예상보다 10% 정도 더 들어갈 것으로 계산하고 있다. 한국은행은 2012년 소비자물가가 3.3%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연 4%가 오른 2011년보다는 낮은 수준이지만 소비자들이 피부로 느끼는 체감물가를 감안하면 만만치 않은 상승률이다.
주부 이은정(39)씨는 한 달에 30만원 정도 드는 기름값을 아끼기 위해 남편에게 가급적 대중교통으로 출퇴근 하라고 권했다. 이씨는 “남편이 새해에 담배 끊기 외에 운전 끊기도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씨 남편은 2012년에는 국제 유가가 2011년보다 안정세를 보일 것이란 여러 기관의 전망을 들며 버티고 있다. 국내외 기관은 석유수요 감소, 공급 확대, 미 달러화 강세 등의 이유로 2012년 유가가 완만하게 하락할 것으로 예상했다. 다만 이란이 미국과 대립하며 긴장을 높이고 있고, 미군이 철수한 이라크에 분쟁이 이어지면서 석유 공급 차질이 우려돼 유가는 여전히 불안하다.
이렇게 되면 이은정씨의 압박이 먹힐 가능성이 크다. 기름값이 오르면 공공요금도 들썩일 가능성이 있다. 각 지방자치단체는 대중교통요금, 도시가스료, 전기료 등을 2012년 상반기에 줄줄이 올릴 예정이다. 이은정씨는 “먹는 것만 유지하고 무조건 덜 쓸 계획”이라며 “이제까지 작성한 가계부 중 최고의 엥겔지수를 기록할 것 같다”고 말했다.
직장인 하만윤(41)씨는 살고 있는 아파트 가격이 더 떨어지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큰 딸아이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딸아이 방이 필요해 지금보다 넓은 집으로 이사할 생각이다. 집을 팔고 전세로 옮길 생각이지만 아파트값은 내리고 전셋값은 여전히 강세여서 내심 불안하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은 2012년 주택매매가격이 수도권은 1%(지방 7%) 상승에 그칠 것으로 예상했다.
수도권 전세값은 5%대 상승으로 내다봤다. 아파트 입주 물량이 5만 가구 정도 줄어들면서 수급불안에 따른 전세난이 2012년에도 이어진다는 예상이다.
집값은 제자리 걸음인데 금리는 오를 전망이다. 많은 사람이 변동금리로 받은 주택담보대출의 이자 부담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금융시장에서는 대체로 2012년 1분기 말에 기준금리 인상을 예상하고 있다. 유럽 재정위기가 최악의 고비를 넘기면 한국은행이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를 올릴 것이란 분석에서다. 2011년 말까지 한국의 총 가계대출 잔액은 900조원에 이른다. 대출금리가 1%포인트만 올라도 전체 이자부담은 9조원이 는다. 가계 대출의 대부분은 주택담보대출이다. 현재 4.75% 수준의 변동금리에 2억원을 빌린 사람은 매달 80만원 정도를 이자로 내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베이비 스텝’이라고 할 수 있는 0.25%포인트만 올려도 최소 3만원을 이자로 더 내야 한다.
금리와 더불어 원화 가치도 일상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해마다 휴가 때 해외여행을 다녀온 김주현(41)씨는 2012년에는 계획한 일본 여행을 포기할 생각이다. 원화 가치가 계속 떨어져 비용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100엔당 원화 가치가 1400원 수준만 해도 다녀올까 했지만 1500원 수준에 가까워지자 여행 자체를 포기했다. 이에 더해 유가가 올라 유류할증료까지 김씨의 발목을 잡았다. 김씨는 “지금도 부담되는 상황인데 원화 가치가 더 떨어지면 해외여행을 꿈도 못 꿀 것”이라고 말했다. UBS, 모건스탠리, BoA메릴린치 등 20개 외국계 투자은행이 전망한 2012년 1분기 달러당 원화 가치는 평균 1167원이다. 현재(1153원)보다 원화가치가 떨어진다는 예상이다.
중소기업 일자리도 줄어 취업난 더욱 심화아내와 아이를 미국에 둔 기러기 아빠 김성렬(52)씨는 2011년 12월에 송금액을 10% 정도 늘렸다. 원화 가치가 더 떨어지기 전에 한 푼이라도 더 보내기 위해서다. 김씨는 “가족 얼굴을 보고 싶지만 2012년 여름 휴가 때도 사정이 여의치 않을 듯하다”고 걱정했다.
2012년에도 일자리는 여전히 모자랄 전망이다. 비정규직으로 일하다 재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이하니(24)씨는 최근 중소기업으로 타깃을 조정했다. 대기업보다는 우량 중소기업에 취직하는 게 쉬울 것으로 보고 이력서를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경쟁이 치열한 대기업에 매달리지 말고 건실한 중소기업에서 경력을 쌓으라는 정부의 권고도 2012년에는 옛말이 될 듯하다.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국내 기업 377개를 대상으로 2012년 고용동향을 조사한 결과 2011년보다 고용규모를 줄일 계획을 가진 기업이 더 많았다. 2011년과 같은 수준으로 고용을 유지하는 걸 100으로 봤을 때, 대기업은 86.7, 중소기업은 72.8로 나타났다. 중소기업 일자리가 더 큰 폭으로 줄어든다는 뜻이다.
기획재정부는 2012년 경제전망에서 취업자가 28만명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실업률은 3.5%가 유지될 것으로 봤다. 신규 구직자 규모 정도로만 취업자 수가 는다는 의미다. 기획재정부는 취업자 증가 폭이 2012년 줄어 2011년보다 고용사정이 나빠질 것으로 예상했다. 특히 보건복지나 전문과학기술 등 고학력 전문직의 취업전망은 그런대로 밝지만 일반 구직자가 몰리는 제조업 사정은 나쁠 것으로 봤다. 사정이 이렇자 이하니씨는 취업 타깃을 제대로 잡았는지 혼란스럽다. 그나마 정부와 여러 기관의 전망대로 2012년 하반기에라도 경제 사정이 좀 나아졌으면 하고 바랄 뿐이다.
박상주 이코노미스트 기자 sangjoo@joongang.co.kr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97조원 잭팟' 터진 국민연금, 국내 아닌 '이곳'에서 벌었다
2 대통령실, 감사원장 탄핵 추진에 "헌법 질서 근간 훼손"
3씨드비, 2024 SBS 트롯대전과 협업… “초대권 증정 이벤트 진행”
4"코인 입출금도 불가" 케이뱅크, 12월 8일 새벽 서비스 '일시 중단'
5하이브 방시혁, IPO로 4000억 ‘잭폿’ 논란.. 뉴진스 “할 말 없다”
6iM뱅크-지엔터프라이즈, 사업자 세금 환급 서비스 협업
7‘패스 오브 엑자일2’ 선보이는 카카오게임즈, 향후 전망은?
8'외국인·기관' 팔고 '엔캐리' 우려까지"...코스피 2400선 복귀
9토스뱅크, 3분기 순익 345억원…연간 흑자 성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