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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 700일 맞은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 - 좌회전 깜빡이 켜고 우회전 하다

취임 700일 맞은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 - 좌회전 깜빡이 켜고 우회전 하다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가 2월 28일 취임 700일을 맞았다. 다양한 분야에서 김 총재에 대한 평가가 나온다. 국제기구에 한은 인재를 파견하고 중앙은행 간 공조를 강화하는 등 한은의 대외 위상을 높였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물가관리는 실패했다는 평가가 많은데, 그에게만 책임을 묻기는 어렵다. 한은 독립성을 훼손했다는 주장이 있지만 논란의 여지가 많다. 무엇보다 치명적인 것은 중앙은행과 한은 총재가 시장의 신뢰를 잃은 것이다. 중앙은행이 시장에 보내는 ‘정책 시그널(신호)’ 기능이 망가졌다는 지적도 많다. 2010년 9월 9일 오전 9시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가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 시작을 알리는 의사봉을 두드렸다. 이때까지만 해도 시장은 기준금리 인상에 무게를 뒀다. 대부분 언론도 금통위가 금리를 올릴 것으로 전망했다. 그럴만했다.

8월 금통위가 금리를 동결한 후, 김중수 총재는 여러 차례 시장에 금리인상 시그널(신호)를 보냈다. 김 총재는 8월 12일 금통위 직후 “물가안정은 앞으로 매우 중요한 정치적 과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준금리를 올릴 경우 시그널을 주겠다”는 말도 했다. 같은 달 17일 그는 한 강연에서 “과도한 저금리 의존도를 경계해야 한다”고 밝혔다. 26일에는 미국 뉴욕에서 “국내외 경제금융상황에 비춰볼 때 현 통화정책기조는 여전히 완화적”이라고 말했다. 9월 1일에는 “내년에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를 넘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관련 시장에서는 “(물가안정을 중시하는) 매파적 발언”이라며 금리인상의 시그널로 받아들였다.



한은-시장 사이 소통의 벽 높아본회의가 끝나고 오전 10시 속보가 나왔다.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금통위는 기준금리를 2.25%에서 동결했다. 인상에 베팅했던 시장은 패닉에 빠졌다. 금통위 발표에 즉각 영향을 받는 채권시장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금통위 발표 직후 채권 금리는 폭락하기 시작했다. 이날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전날보다 0.26%포인트 빠진 3.35%로 떨어졌다. 5년짜리 국고채 금리는 0.2%포인트 하락해 20개월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한은 쇼크’ 여진은 9월 내내 이어졌다.

금융시장에서는 “한은 총재에게 뒤통수를 맞았다”는 얘기가 나왔다. 기준금리 발표 당일 한 증권사는 ‘혼자서 하는 의사 소통’이라는 보고서를 냈다. 내용은 격했다. “한은의 신호를 신뢰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내용이었다. 한 증권사 채권딜러는 당시를 회상하며 “김중수 총재에 대한 시장의 신뢰가 완전히 무너진 날”이라고 말했다.

2012년 2월 28일 김중수 총재가 취임 700일을 맞았다. 그에 대한 시장의 평가는 인색하다. 한은 내부도 마찬가지다. 상당수 한은맨들은 김 총재가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훼손했다고 생각한다. 지난해 1월 한은 노조가 3급 이하 노조원 1442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전체의 90%가 김 총재의 업무 수행에 대해 ‘부정적’이라고 답했다. 92%는 ‘한은 독립성에 부정적’이라고 응답했다.



시장 예상 벗어나는 금리 결정 많아시장에서는 “한은 총재가 물가관리를 포기했다”는 얘기가 끊이지 않았다. 김 총재는 취임 이후 치른 두 차례의 국회 국정감사에서 “물가관리에 실패했다” “정부 눈치 보느라 금리 인상 타이밍을 실기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김 총재는 자신에 대한 이런 평가에 적극적으로 반박했다. 한은 독립성 훼손 논란에 대해서는 “한은도 정부다”는 말로, 기준금리 논란에 대해선 “아직 평가 받을 단계가 아니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밝혔다.

김중수 총재가 피해갈 수 없는 아킬레스건은 따로 있다. 한은 총재에 대한 시장의 불신이다. 익명을 원한 한은 고위 관계자는 “총재가 시장과 소통에 실패하면서 시장이 총재의 시그널을 무시하고, 한은의 통화신용정책이 시장에 제대로 먹히지 않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지난해 4월 한 언론이 김중수 총재 취임 1주년을 맞아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84%는 김중수 총재가 시장과 소통을 못한다고 평가했다. 또한 80%는 정책예측이 어려웠다고 답했다.

취임 초기부터 김중수 총재는 시장에 혼란스러운 시그널을 보냈다. 2010년 4월 1일 취임한 김 총재는 내정자 시절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우리나라는 현재 인플레이션 압력이 그렇게 강한 것으로 보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당시 기준금리는 2009년 2월 이후 2.0%를 유지하고 있었다. 앞서 ‘시그널링의 달인’으로 불리던 전임 이성태 총재는 3월 금통위가 끝난 후 기자간담회에서 “당분간 금융완화 기조를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금융시장 관계자들은 김 총재 역시 이 기조를 유지할 것으로 봤다. 그런데 취임 이틀 전 김 총재는 “대외변화를 고려해 때가 되면 금리인상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발언이 전해지면서 채권시장은 출렁거렸다. 다음날 김 총재는 “원론적인 수준의 발언”이라며 진화에 나섰다.

4월 9일 김 총재가 취임 후 첫 주재한 금통위는 금리동결을 발표했다. 시장의 예상대로였다. 금융시장이 혼란에 빠진 것은 그 이후였다. 4월 14일 김 총재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적절한 속도와 폭으로 기준금리를 조정(인상)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후 그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미리 시그널을 주는 게 좋지 않겠느냐는 얘기가 있지만, 마치 내가 (인상)하고 싶은데 못하는 식으로 말하고 싶진 않다”고 말했다. 이후 5월 금통위 통화정책방향 결정문에는 기존 ‘당분간 금융완화 기조를 유지한다’는 문구에서 ‘당분간’이 빠졌다. 한은 관계자에 따르면 ‘당분간’은 일반적으로 3~4개월을 의미한다. 김 총재는 5월 12일 금통위 직후 “상당히 많은 경제변수가 회복추세에 있다”고 말했다. 기준금리가 오를 것이라는 메시지나 다름없었다. 이날 채권시장에서 국고채 금리는 급등했다. 6월 21일에는 한 강연에서 “현재의 금융완화(저금리) 기조가 장기화될 경우 인플레이션이나 자산가격 급등이 초래될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시장 종사자들의 생각은 달랐다. 7월 9일 금통위가 열리기 전 금융투자협회가 채권시장 종사자 17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 한 결과 71%가 금리 동결을 전망했다. 물가상승 압력은 높지 않고 해외 여건은 여전히 불확실하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7월 9일 금통위는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했다. 이때부터 김중수 총재와 시장, 특히 채권시장과의 불협화음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한 증권사 채권딜러는 “김 총재의 발언과 시그널이 더욱 모호해지기 시작한 것이 그때부터인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한은 통화정책과 따로 가는 금융시장2010년 8월 12일 기준금리는 동결됐다. 금통위 직후 김 총재는 “물가안정은 앞으로 매우 중요한 정치적 과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닷새 후에는 한 강연에서 “7월 기준금리를 인상했음에도 현재 통화정책기조는 매우 완화적인 수준”이라고 말했다. 8월 26일에도 같은 얘기를 했다. 그런데 다음 날 김 총재는 기자들과 만난 이런 말을 했다. “한은이 물가안정을 책임지는 기관이지만 성장을 무시하고 갈 수는 없는 일이다. 물가안정도 중요하지만 균형을 유지할 생각이다”. 채권시장에서는 “어떤 시그널인지 갈피를 못 잡겠다”는 말이 쏟아져 나왔다. 그럼에도 시장은 금리인상을 점쳤다. “시장에 신호를 주겠다”는 김 총재의 말을 감안할 때 기준금리 인상에 무게가 실렸다. 하지만 9월 금통위는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앞서 밝힌 대로 당시 채권금리는 급락(채권값 상승)했다. 언론에는 김 총재를 ‘양치기 소년’에 빗댄 표현이 등장했다.

다음 달도 비슷한 양상이었다. 시장은 10월 금리 인상을 점쳤다. 원-달러 환율이 빠르게 내려가면서(원화 강세) 금리를 올리는 데 부담이 있었지만, 배추파동 영향으로 소비자 물가가 3%대에 진입하면서 한은의 물가안정 중심목표치(3.0%)를 넘어섰다. 환율이냐, 물가냐의 딜레마 속에 시장은 김 총재가 물가 안정을 더 강조할 것으로 봤다. 당시 금투협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61%가 기준금리 인상을 전망했다. 결과는 동결. 김중수 총재는 10월 14일 금통위 직후 “금리는 기본적으로 물가를 본다. 그러나 그 외에 아주 중요한 변수가 생기면 보지 않을 수 없다”는 원론적인 말을 남겼다.

나흘 후 열린 한은 국정감사에서 김 총재는 난타를 당했다. “한은이 물가안정이라는 본연의 임무를 포기하고 환율 방어에 매달리는 바람에 서민들만 물가상승의 희생양이 됐다(한나라당 이혜훈 의원)” “김 총재가 기준금리 인상 신호를 보낸 것과 달리 금통위에서 금리를 동결하면서 시장의 신뢰를 얻지 못하는 양치기 소년이 됐다는 지적이 있다(한나라당 김성식 의원)”. 10월 말 공개된 9월 금통위 의사록에서 두 명의 금통위원은 기준금리 유지에 반대의사를 표시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 총재는 국감장에서 “제어할 수 없는 대외여건이 생기지 않으면 기준금리 정상화(인상)로 가야 한다”고 답했다. 10월 소비자물가는 3.7%였다. 결국 11월 금통위는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렸다. G20 정상회의 때문에 일주일 연기된 11월 16일 열린 금통위 결정문에는 ‘금융완화 기조’라는 문구가 20개월 만에 삭제됐다. 금리 인상이 이어질 것으로 볼 수 있는 근거였다. 하지만 김 총재는 다른 말을 했다. 그는 “(금융완화 기조) 문구 삭제가 계속 금리인상을 시사한다고 해석할 필요는 없다”며 “모든 것을 급하게 움직일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시장엔 기현상이 나타났다. 기준금리가 올랐는데 채권금리는 폭락했다.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린 11월 16일 국고채 3년물 금리는 전날보다 0.15% 포인트 하락했다. 이에 대해 한 자산운용사 대표는 “해외 투자자가 한국 채권을 사들인 영향이 크지만, 김중수 총재가 단기간 내에 추가 인상을 일축한 듯한 발언이 영향을 미친 것”이고 설명했다. 이런 현상은 이후 줄곧 반복됐다.

시장의 비명은 2011년 1월에도 재현됐다. 유럽 재정위기가 확산하고, 환율이 빠르게 하락하면서 시장 관계자들은 기준금리 인상은 어렵다고 봤다. 금투협이 120개 채권시장 관계사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90%가 기준금리 동결을 예상했다. 하지만 금통위는 또다시 예상을 깨고 기준금리를 2.5%에서 2.75%로 올렸다. 1월에 금리가 오른 것은 1999년 이후 처음이었다. 금통위 결정문에는 ‘물가안정기조를 확고히 유지하겠다’는 문구가 추가됐다. 앞서 정부는 물가안정종합대책을 발표한 바 있다.

이후에도 김총재의 모호한 발언은 계속됐다. 1월 19일 한 강연에서는 “중앙은행 입장에서 성장보다 더 큰 관심은 인플레이션 압력에 있다”고 말하고, 2월 기준금리 동결 발표 직후에는 “결코 빠르게도 느리게도 (금리정상화를)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당시 소비자 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1월 3.9%, 2월 4.1% 올랐다. 금통위는 3월 기준금리를 한 번 더 올렸다. 이때도 채권시장은 기준금리가 오르면 채권금리도 따라 오르는 상식과 달리 거꾸로 움직였다. 김 총재 취임 이후 이때까지 네 차례 기준금리를 올렸는데, 국고채 3년물 금리는 오히려 2010년 3월 말 3.89%에서 2011년 3월 3.73%로 내려갔다. 채권시장에서는 “한은의 통화정책에 시장이 전혀 긴장하지 않은 결과”라는 말이 돌았다. 당시 한 증권사는 “한은은 채권시장의 관심사가 아니다”는 내용의 리포트를 내기도 했다.

김 총재는 2011년 3월 이후 ‘인플레 파이터’로 변하는 모습을 보였다. 물가 안정을 여러 차례 강조하고, “물가 잡기가 제1 정책목표”라고 밝힌 정부와 공조하는 모습을 보였다. 시장 관계자들은 3월에 금리를 올렸기 때문에 두 달 연속 인상은 부담스럽다는 이유로 5월 인상에 베팅했다. 금투협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74%가 인상을 점쳤다. 전망은 어긋났다. 5월 13일 금통위는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김 총재는 시장의 반발을 의식한 듯 “좌회전 깜빡이 켜고 우회전한 적이 없다”며 “시장에서 금통위가 기계적으로 금리를 인상할 것으로 기대하는 것 자체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날 한 증권사는 ‘다시 느낀 소통의 벽’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시장 판단이 전적으로 옳은 것은 아니지만, 금리결정 기준이 뭔지 가늠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금융시장 관계자들은 2011년 6월도 잊지 못한다. 6월 금통위가 열리기 전 김중수 총재는 한국개발원(KDI)이 기준금리를 4% 이상으로 올려야 한다고 권고한 보고서와 관련 “어떤 속도로 어떻게 가느냐가 중요하다”며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 과정에 있기 때문에 선진국과 신흥경제국을 다 보면서 가야 한다”고 밝혔다. 금리정상화 속도를 늦추는 것을 시사하는 발언으로 읽히기에 충분하다. 그런데 6월 10일 금통위는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렸다. 인상 배경에 대해 김 총재는 “높은 물가상승률이 지속될 전망이기 때문에 선제로 대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때도 채권시장이 받은 충격은 약했다. 분명 ‘기습 인상’이었지만, 금통위가 열리기 직전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이 “물가 여건이 어느 때보다 어려워 모든 수단을 동원할 것”이라고 말했고, 기획재정부가 발간하는 ‘그린북(최근 경제동향)’에 인플레이션 기대심리 차단 필요성이 언급되면서 채권 시장이 금리인상 가능성에 무게를 뒀기 때문이다. 한은 총재 입보다는 기재부 장관이나 정부 발간물을 더 신뢰했다는 얘기다.

20011년 7월 이후 올 2월까지 기준금리는 8개월 동안 동결됐다. 그 사이 김 총재가 운전대를 잡은 ‘금통위 차량’은 계속 직진했지만 수없이 우회전(금리 인상)과 좌회전(금리 동결 또는 인하) 깜빡이를 켰다. “9월 이후에는 기저효과로 물가상승률이 낮아지겠지만 물가상승 압력이 낮아지는 것은 아니다(8월 1일 기자회견)” “글로벌 금융시장이 급변하는 만큼 대내외 금융시장 상황을 고려해 기준금리를 적절하게 결정할 것(8월 9일 국회 기획재정위)” “원칙적으로 금리정상화를 해야 된다는 방향에는 변함이 없다(8월 11일 금통위)”.

유럽 재정위기 여파로 금리인하 주장이 여러 곳에서 제기된 9월 이후에는 더 심해졌다. “물가가 안정돼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조금의 의지의 변화가 없다. 다만, 해외가 계속 불안하다면 (기준금리가) 움직이기 어려운 것이다(9월 8일 금통위)” “무조건 국내 물가를 안정시켜려 하면 다른 부분에 굉장한 타격을 줄 수 있다. 그렇다고 물가를 포기하겠다는 것은 아니다(9월 22일)” “기준금리를 점진적으로 인상하겠다(9월 27일 국회 국정감사)” “한은은 물가괸리청이 아니다. 장기적인 기대 인플레이션을 낮추는 게 한은의 목표가 돼야 한다(10월 21일 한은 출입기자 워크숍)”. 지난해 12월 8일에는 금통위가 끝난 직후 “장기 추세에서 성장세가 둔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올 상반기 금리 인하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는 시점에 나온 발언이라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김 총재는 곧바로 “금리 정상화 의지는 변함이 없다”고 했다.

김 총재는 자신의 화법에 대해 시장의 불만이 크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바꿀 생각은 없어 보인다. 그는 최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런 말을 했다. “내가 그 사람들(트레이더) 맞다 틀리다 말할 필요 없다. (총재) 임기가 정해져 있으니까, 그 비명 소리에 귀 기울이거나 (금통위 회견 안 듣고) 밥 먹으러 가든 말든 나는 신경 안 쓴다”. 답답함도 토로했다. “모호하게 이야기하는 것보다 정보를 많이 주는 게 낫다고 봤지만, 말 많이 해서 실수하는 부담이나 모호하게 말해서 이해 못하는 부담이나 같았다”.

이 점에서 김 총재는 이성태 전 총재와 비교된다. 정통 한은맨인 이성태 전 총재는 재임시절 ‘인플레 파이터’로 불렸다. 그는 2006년 4월 취임 후 다섯차례 기준금리를 올렸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치면서 금리인하를 단행했고, 2009년 2월 이후에는 기준금리를 2.0%에서 동결했다. 하지만 시장에는 일관되게 출구전략(금리 인상) 필요성을 밝혔다. 실제로 채권시장은 기준금리가 고정돼 있음에도 이 전 총재가 이끄는 방향으로 움직이곤 했다.



시장에 확고한 시그널 줘야이 전 총재의 발언이나 금통위 의사록을 살피면 금리 흐름과 통화정책 방향을 읽을 수 있었다. 이런 기능이 김 총재 취임 후 약해졌다는 게 금융시장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얘기다. KDI의 한 연구위원은 “지금은 금리를 올릴 수도 낮출 수도 없는 난국”이라며 “이럴 땐 한은 총재가 확고한 시그널로 시장을 이끌어야 하는 데 그 기능이 상당부분 훼손된 상태”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그가 한은 총재가 아닌 기획재정부 장관 또는 거시경제학 교수처럼 생각하고 말한다는 불만을 내놓는다. 물가만 생각해도 벅찬데, 성장과 고용까지 챙기다 보니 너무 많은 말을 두서없이 한다는 얘기다. 지난해 9월 말 열린 한국은행 국정감사에서 새누리당 김성식 의원은 이런 말을 했다. “총재님은 경제수석이 아닙니다. 한국은행총재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김태윤 이코노미스트 기자 pin2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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