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속 있는 중견기업 노려라 - 월급·복지 대기업 부럽잖다
실속 있는 중견기업 노려라 - 월급·복지 대기업 부럽잖다
신규 구직자 5명 중 4명은 올해 상반기에 대기업에 주로 지원서를 낼 것이라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올 상반기 취업을 준비 중인 구직자 25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응답자의 82.6%가 대기업 공채 위주로 지원할 생각이라고 응답했다. 그 이유로 ‘대기업과 비대기업의 연봉, 복리후생 등의 차이가 워낙 크기 때문’(66.4%)이라는 답변이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 ‘중견, 중소기업은 딱 정해진 채용시기가 없기 때문에’(13.6%), ‘원래 목표가 대기업 입사이기 때문’(7.0%), ‘주위에서 처음부터 대기업에 입사하는 것이 좋다는 조언을 들어서(6.5%), ‘입사정보가 비교적 많고, 더 쉽게 눈에 띄기 때문’(5.6%) 등의 순이었다.
이처럼 대다수의 구직자는 중견·중소기업에 대한 막연한 편견과 정보 부족으로 대기업 취업을 선호한다. 하지만 알고 보면 ‘대기업 못지 않은’ 중견기업이 적지 않다. ‘대졸 초임 연봉 4300만원. 신입사원은 4주간 호주에서 어학연수. 일 잘하는 직원은 경영학석사(MBA) 해외 유학. 유치원에서 대학까지 자녀 학자금을 전액 지원하고 직원 생일과 결혼기념일에는 선물 지급….’
멀티플레이어로 활약할 기회 많아대기업 얘기가 아니다. 중견 화학업체인 한국엔지니어링플라스틱이 내건 조건이다. 자동차, 전기·전자, 산업자재 등의 소재로 활용되는 케피탈(메탄올을 원료로 생산되는 폴리아세탈 수지) 생산 업체인 한국엔지니어링플라스틱은 지난해 매출 2536억원에 영업이익 596억원을 기록했다. 국내시장 점유율 65%, 세계시장 점유율 12%를 차지하며 영업이익률이 23.5%에 달한다. 국내 제조업 평균(6.9%)보다 훨씬 높다. 이 회사 홍보팀 김문겸 부장은 “내실 있는 중견기업이지만 대기업에 비해 이름이 덜 알려졌다”면서 “인재를 모으기 위해 보수와 복리후생을 강화했다”고 설명했다.
신입사원들의 만족도도 높다. 지난해 입사한 채홍원(28)씨는 “학생 때도 가보지 못한 외국이었는데 신입사원 연수로 갈 수 있어 좋은 경험이 됐다”면서 “입사 1~2년차 사원을 위한 멘토링 제도를 비롯해 다양한 교육지원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채씨는 “구직시절에 전공을 살릴 수 있는 기업을 찾다가 회사를 알게 돼 채용설명회를 찾아 다니는 등 적극적으로 준비했다”면서 “신입사원의 의견이라도 적극 반영하는 분위기가 중견기업의 강점인 듯하다”고 덧붙였다.
한국중견기업연합회에 따르면 올해 중견기업 대졸 신입사원의 초임 연봉 평균은 3075만원인 것으로 집계됐다. 국내 중견기업 100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4000만원 이상의 고액 연봉을 지급하는 곳도 한국엔지니어링플라스틱을 포함해 마이스터, 한라산업개발 등 3개사로 나타났다.
취업포탈 잡코리아가 발표한 올해 대기업 신입사원의 초임 연봉 평균인 3481만원보다 높은 연봉을 주는 기업도 대원강업, 성신양회, 일동제약을 비롯해 14개사에 달했다. 전현철 한국중견기업연합회 상근부회장은 “취업 준비생들이 대기업 외에도 연봉을 비롯해 좋은 조건의 일자리가 많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는 점이 안타깝다”면서 “취업 전 입사를 원하는 회사에 대해 정확히 파악하라”고 조언했다.
일반적으로 중견기업은 중소기업이 아니면서 국내 계열사의 자산 총계가 5조원을 넘지 않는 기업을 말한다. 중소기업에서 벗어나 중견기업이 되려면 제조업은 상시근로자가 300명 이상이고 자본금이 80억원을 넘어야 한다. 이런 요건을 갖추지 않아도 직전 3개 사업연도의 평균 매출이 1500억원 이상이거나, 자산 총액이 5000억원을 넘으면 중견기업으로 분류한다. 현재 국내에는 약 1300개 중견기업이 있다. 전체 기업의 0.05%에 불과하다.
이정근 취업포탈 사람인 대표는 “영세한 기업과 달리 중견기업은 경기 침체에도 꾸준히 사람을 뽑는다”면서 “상황이 어렵다 해도 신규 인력을 계속 충원하는 곳이 많아 연중 채용 일정을 미리 살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다들 대기업에 가려고 하는데 대기업은 조직으로 돌아가는 곳”이라면서 “자신의 적성과 전공을 살리면서 멀티플레이어로 성장할 가능성이 큰 중견기업을 눈 여겨 보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화장품과 의약품, 의약외품을 개발·생산하는 한국콜마는 12월에 공채를 시작한다. 해마다 전체 인원의 평균 10% 이상을 신규 공채로 뽑는다. 올해 입사인원만 55명에 이른다. 대졸 초임은 인센티브를 제외하고 2800만원에서 시작한다. 사원으로 입사해 주임과 대리, 과장을 거쳐 차장으로 승진하는데 10년이 걸린다. 지난해 제약개발팀에 입사한 정다혜(31)씨는 제약업계에 취업하기 위해 일찌감치 약학대학원에 진학했다. 정씨는 “한국콜마의 우수한 연구개발능력에 끌려 입사를 결심했다”면서 “사내 프로그램인 북스쿨, CEO와 직원의 점심모임, 정기산행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성장하는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중견기업 인사담당자들은 “스펙만 좋은 사람보다 ‘오래 근무할 사람인지’를 가장 먼저 살핀다”고 입을 모았다. 매출이 1조5000억원에 이르는 한 중견기업 대표는 “스펙이 너무 좋으면 연봉이 마음에 안 들어 떠나고, 스펙이 나쁘면 업무에 적응하지 못해 나간다”면서 “학벌 좋은 ‘명문대생’보다는 우리 회사와 ‘딱 맞는 사람’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명문대생보다 ‘진득한’ 인재 원해대기업 부럽지 않은 중견기업의 입사경쟁률은 대기업 못지 않다. 지난해 채용을 시행한 1900여개 유가증권·코스닥시장 상장기업 중 408개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신입사원의 평균 입사 경쟁률은 55대 1이었다. 그 중 중견기업(68대 1)의 경쟁률이 가장 높았으며 대기업(52대 1), 중소기업(42대 1) 순이었다. 석유화학분야의 한 중견기업은 750대 1을 기록해 조사대상 업체 중 가장 경쟁률이 높았다. 채용과정은 대개 서류전형-실무면접-임원면접 등으로 대기업과 별반 차이가 없다. 다만 규모가 작은 만큼 각사 특징에 맞는 독특한 채용 방식을 치르는 곳도 있다.
올해 10월 중 신입사원 공채를 할 계획인 샘표식품은 2000년부터 채용과정에 요리면접을 포함시켰다. 식품회사 직원이 먼저 요리를 알아야 주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는 박진선 사장의 지론에서 비롯됐다. 샘표식품 인사 담당자는 “요리면접은 4~5명씩 이뤄진 조 별로 주어진 재료를 활용해 요리를 만든 후 프리젠테이션하는 과정”이라면서 “이를 통해 일반 면접으로는 잘 알 수 없는 인성이나 팀워크, 리더십, 창의력 등 다면 평가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요리면접을 거쳐 마케팅팀에 입사한 윤지철(31)씨는 “구직을 사람과의 관계로 바꿔 생각해보면 회사에 대한 짝사랑이라고 생각한다”면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 사람에 대해 알기 위해 노력과 정성을 쏟듯 가고 싶은 회사에 대해 연구하고, 준비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취업 준비생에게 “얼른 취업하려는 조바심 때문에 마구잡이 식으로 원서를 넣지 말고 회사의 비전과 발전 가능성, 기업문화를 복합적으로 고려해 회사를 선택하길 바란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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