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세 체납 고질병] 지자체만으론 징수율 92% 벽 못 깬다
[지방세 체납 고질병] 지자체만으론 징수율 92% 벽 못 깬다
전라북도 완주군청의 지방세 체납담당 공무원은 3명이다. 완주군청에 따르면 2010년에서 2011년도로 이월된 지방세 미정리 체납건수는 8만3946건. 체납담당 직원 한 명당 약 2만8000건에 이른다. 이들 공무원의 연간 근무시간을 2200시간(OECD·2010년 기준)으로 계산하면, 체납 1건당 투입할 수 있는 시간은 2분이 조금 넘는다. 완주군청은 2011년 지방세 징수율 95.3%를 기록했다. 한바탕 전쟁을 치른 결과였다. 완주군청 재정관리과 관계자는 “분기별로 특별 징수반을 꾸리고, 체납 차량 번호판을 영치하는 등 총력을 기울였다”고 말했다. 특별 징수반이 꾸려지면 체납 담당자뿐 아니라 다른 부서에서 인력이 파견됐고, 읍·면사무소 직원들도 동원됐다. 일부 고액체납자는 자산관리공사에 의탁하기도 했다.
사정은 다른 지자체도 비슷하다. 한국조세연구원에 따르면 2010년을 기준으로 지방세 체납담당자 한 명이 처리해야 하는 미정리 체납건수는 연간 평균 2만3000건이다. 1건당 투입할 수 있는 시간은 6분 미만이다. 경상남도의 경우 1인당 미정리 체납건수가 10만 건을 넘는다. 때문에 각 지자체는 회계 마감일인 2월 말일 전 한두 달을 ‘특별 정리기간’을 정하고 지방세 체납과의 전쟁을 치른다.
체납자 출국금지, 명단 공개, 폐차대금 압류, 부동산 압류·공매, 예금·급여 압류 등 온갖 방법을 동원하지만, 지방세 징수율은 거의 제자리 걸음이다. 그나마 완주군청은 징수율이 높은 편이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2006년 전국 지방세 징수율은 91.1%. 2008년은 91.5%, 2010년은 91.8%였다. 2010년 말 3조4059억원이던 체납액은 지난해 8월 기준 4조3513억원으로 늘었다. 1억원 이상 체납자는 9236명이다. 체납자가 재산이 없거나 행방불명되고, 소멸시효가 지나 결손 처리한 불납결손액은 2010년에만 9800억원이다. 이런 사정 때문에 여러 조세전문가들은 지방세 체납 문제를 개선할 특단의 조치로 체납징수를 민간에 위탁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해 왔지만, 반대하는 여론이 만만치 않아 논의가 제대로 공론화되지 못했다.
체납 징수인력 2분에 1건꼴 처리 해야지방세 체납액은 재정난에 시달리는 지자체 사정을 감안하면 결코 작은 액수가 아니다. 지난해 전국 244개 지자체의 평균 재정자립도는 51.9%다. 이 중 137곳은 지방세로 인건비도 충당하지 못한다. 빚도 빠르게 늘어 2008년 19조였던 지자체 부채는 2010년 28조5000억원으로 늘었다. 경상남도 김해시를 예로 보자. 김해시의 총지방세(2187억원)에서 체납액이 차지하는 비중은 15%다. 지방세 징수율은 90.5%, 결손처분액은 170억원이다. 이 시의 재정자립도는 2011년 기준 39%다. 경남발전연구원 곽태열 박사는 “도내 시·군의 지방세 체납이 심각해 재정을 압박하고 있다”며 “구체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할 시점”이라고 밝혔다.
그렇다고 체납 담당 인력을 대거 늘리기는 지자체 사정상 녹록하지 않다. 그래서 1~2년 전부터 제기된 대안이 채권추심 허가를 받은 민간 신용정보회사에 지방세 징수업무를 맡기는 방안이다. 관련 법안도 발의돼 있다. 2010년 5월 민주통합당 홍재형 의원은 지자체 단체장이 신용정보회사에 체납지방세 징수를 위탁할 수 있도록 하는 ‘지방세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은 국회에 22개월째 계류 중이다.
찬반 논리는 팽팽하다. 홍 의원이 낸 법안에 대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검토보고서는 크게 세 가지 문제를 지적한다. 우선 지방자치법과 충돌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방자치법 제104조 3항은 지자체의 민간위탁 대상 사무의 범위를 조사·검사·검정·관리업무 등 주민의 권리·의무와 직접 관련되지 않은 사무로 한정한다. 납세는 국민의 4대 의무다. 채권추심회사의 무리한 추심 활동으로 체납자의 권리가 침해될 우려도 있다. 또한 민간회사에 제공된 체납자 개인정보가 다른 용도로 사용될 가능성이 있다.
이 법안 추진을 반대해 온 한국납세자연맹도 비슷한 논리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한다. 납세자연맹은 인권침해, 실정법 위반, 개인정보 침해 우려, 민간위탁 생산성 의문의 네 가지를 반대 이유로 든다. 한국납세자연맹 측은 “세금 징수는 단순히 업무효율만 가지고 판단할 수 없는 국가의 기본적이고 중요한 공적 업무”라며 “민간 채권추심업체가 그 일을 할 수 있는가”라고 밝혔다. 연맹 측은 “특정 이익단체를 위한 것이 아닌지 묻고 싶다”고 했다.
여기서 말하는 특정이익단체는 한국신용정보협회를 말한다. 신용조회·평가와 채권추심업을 하는 30개 회원사를 두고 있는 비영리 법인이다. 이 중 채권추심 허가를 받고 실제 업무를 하고 있는 회사는 24곳이다. 신용정보업계는 “민간에 위탁하는 것을 반대하는 주장은 근거가 미흡하다”고 말한다. 신용정보협회 기경민 부장은 “신용정보회사는 대부분 금융기관이 50% 정도 출자를 했고, 금감원의 상시 감독을 받는다”며 “시민단체가 우려하는 불법 추심을 할 여지는 없다”고 말했다. 강압적인 추심이나 체납자 정보를 함부로 이용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선 “폭행이나 협박을 하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받고(공정추심법), 신용정보를 함부로 이용하면 3년 이하 징역에 3000만원 이하의 벌금 내야 한다(신용정보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며 “불법 추심으로 얻는 이익이 벌금보다 크지 않다”고 강조했다.
소액체납부터 민간위탁 검토해볼 만민간위탁을 하던 미국도 모두 중단했다는 시민단체의 주장도 반박했다. 홍재형 의원이 낸 법안에 대한 국회 행안위 검토보고서에는 ‘미국은 2009년 개인정보 유출 등의 문제로 민간위탁계약이 중단된 상태’라는 표현이 나온다. 이에 대해 기경민 부장은 “미국에서 국세 징수의 민간 위탁은 3년 정도 운영하다 중단됐지만, 지방세는 현재 40개가 넘는 주에서 민간이 위탁 받아 징수업무를 활발히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미국 국세청(IRS)이 국세 민간 위탁을 중단한 것도 복잡한 사유가 있고, IRS는 민간위탁 중단 후 2000명의 전문 인력을 채용했다”고 강조했다.
신용정보협회 측은 “지방세 징수 위탁을 받을 때 민간 회사는 체납자의 모든 신용정보를 지자체로부터 제공받는 것이 아니다”며 “민간 위탁 시 법으로 활동범위를 제한하고, 수탁기관에 대한 관리와 감독을 강화하면 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또한 “지자체가 체납 징수인력을 확충하기 어려운 마당에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근다는 식으로는 지방세 체납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지방세 체납 징수를 민간에 위탁할 경우 채권추심업체는 체납 종류에 따라 징수액의 10~25% 정도를 수수료로 받을 수 있다.
일각에서는 광역단체 별로 징수업무를 전담하는 통합 기구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제안한다. 이를 통해 국세청과의 정보·인적 교류를 원활하게 하고, 체납업무의 효율성과 담당인력 자질를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고액·소액 체납자를 구분해 지자체는 상습·고액 체납자 징수에 주력하고, 소액 체납은 민간에 맡기는 방식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 행안부 관계자는 “시민단체와 이익단체 간 극명한 의견 차이가 있어 이른 시일 내에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며 “정부에서도 신중히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태윤 이코노미스트 기자 pin2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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