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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tirement] 책에서 배우는 은퇴의 지혜 - 노년의 불행은 사랑의 빈곤 탓이 크다

[Retirement] 책에서 배우는 은퇴의 지혜 - 노년의 불행은 사랑의 빈곤 탓이 크다

행복하게 나이를 먹으려면 어떤 조건이 필요할까. 고령화 시대를 맞아 많은 사람이 ‘나이듦’에 대해 두려워하고 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영원히 젊게 살고 싶은 욕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은퇴 이후의 생활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기란 쉽지 않다. 행복을 연구하는 여러 학자의 연구결과를 보면, 사람은 나이를 먹을수록 행복해진다는 의견과 그에 반대되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먼저 나이 든 사람이 더 큰 행복감을 느낀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은 고령자일수록 긍정적인 이미지와 사건을 더 잘 기억한다고 주장한다. 황혼기에는 좋은 추억만을 기억하며 산다는 것이다. 2006년 ‘심리학과 노화(Psychology and Aging)’라는 저널에 실린 연구에 따르면 18~21세 사람들은 두려운 얼굴에 더 잘 주목하는 반면, 57~84세는 화난 얼굴 대신 행복한 얼굴에 더 관심을 보였다. 이처럼 나이가 들수록 스트레스를 적게 느끼며, 더 행복할 수 있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반대로 미국 남가주 대학의 리처드 이스터린 박사는 나이가 들수록 행복해진다는 연구결과들은 한계가 있다고 말한다. 비슷한 수입과 건강 상태, 가족관계를 가진 노인만을 대상으로 조사를 진행했다는 것이다. 그는 나이 들어 수입이 줄고, 덜 건강해지며, 혼자 살게 되면 노년을 행복하다고 느끼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악화되는 건강과 축소되는 인간관계로 인해 결국 노년은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고도 했다.

하버드 의대의 정신과 전문의 조지 베일런트는 『행복의 조건』이라는 책에서 하버드 법대 졸업생들의 인생을 분석했다. 이 중 어떤 사람들이 노년에 행복할 것인지를 알아본 것이다. 또 IQ가 높은 천재 여성들로 이루어진 터먼집단, 저소득층 고등학교 출신으로 자수성가한 집단 등을 추가로 분석했다. 그렇게 70년간 814명을 추적해 ‘인간이 나이 들어가는 것’에 대한 연구를 수행했다. 2년마다 설문조사를 하고 5년마다 건강검진표를 제출 받았다. 법대 졸업생들이 47세와 80세가 되었을 때는 면담조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나이들수록 행복 vs 불행 주장 팽팽이런 과정을 거쳐 마침내 베일런트 교수는 건강하게 나이 든 사람들이 갖춘 조건을 7가지로 정리했다. 바로 비흡연 또는 젊은 시절에 담배를 끊는 것, 불쾌한 상황을 긍정적으로 전환시키는 성숙한 자기통제, 알코올 중독에 빠지지 않는 것, 알맞은 체중을 유지하는 것, 안정적인 결혼생활, 규칙적인 운동, 학교생활에서 다져진 자기관리와 인내심 등이다.

조사대상자들이 50세가 되었을 때 다시 분석해보니, 하버드 법대생 268명중 106명이 7가지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었다. 이들 대부분은 행복하고 건강한 삶을 누렸으며, 불행하고 병약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은 단 8명뿐이었다. 하지만 말년을 불행하게 보낸 66명 중에서는 4가지 이상의 조건을 갖춘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베일런트 교수는 이 7가지 조건 중에서 특히 체중, 운동, 담배, 알코올의 4가지는 50세 이전에 자신의 노력에 의해서 조절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활기차고 건강한 노년은 뜻밖의 행운이나 유전자 덕에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라 바로 우리 스스로가 결정하는 것이란 주장이다.

그는 조사 대상자들과의 면담을 통해 연구결과를 도출했다. 이 연구의 장점은 이처럼 통계적인 분석보다는 일생을 추적 조사하면서 감동적인 사례를 제시하는데 있다. 그중에서 가장 눈 여겨 볼만한 사례는 터먼 여성 집단의 아이리스 조이라는 여성이다. 조이는 태어날 때부터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내내 빈곤선 이하의 생활을 했지만, 전체 조사 대상자 중 ‘품위 있는 노화’라는 평가항목에서 15점 만점을 받았다. 그녀는 비록 가난했지만 숙제를 잘 하는 모범생이었고 담배를 피우지 않았으며 알코올 중독에 걸린 적도 없었다.

지하실을 개조해서 만든 거실 겸 식당을 마치 최고의 정원인 것처럼 가꾸기도 했다. 집 주위에서 모아온 벽돌과 가구로 거실을 멋진 선물가게처럼 꾸미고, 한 면 가득히 다양한 장르의 책을 진열했다. 조이는 글을 모르는 남편에게 책을 읽게 했으며, 지적인 어법을 구사하지는 못했지만 삶을 소박하게 꾸려가는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문제가 생길 때마다 조이를 찾아왔으며, 그녀는 성심성의껏 이웃을 도와 누구보다 마을에서 필요한 존재가 됐다. 45년간 매우 행복한 결혼생활을 했으며, 남편 사별 후 홀로 15년을 살면서 여러 차례의 심장발작을 겪었다. 하지만 꾸준한 노력으로 지성을 갖춰나갔고, 열린 마음으로 주위와 교류했다. 무엇보다 아이들을 키우는 데 가장 큰 즐거움을 느꼈다. 그녀는 삶의 즐거움을 음미하고 고통의 순간을 현명하게 극복할 줄 알았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까지 다른 사람을 위해 봉사활동을 하면서 사랑을 받았다. 그래서 비록 가난했고 학력도 낮았지만 조사 대상자 중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평가됐다.

베일런트 교수의 연구결과에서 몇 가지 성공적인 은퇴생활을 위한 조언을 얻을 수 있다. 첫째, 죽기 직전까지 계속해서 성장하는 게 ‘노화’라는 것이다. 단순하게 육체의 쇠퇴를 노화로 보기보다는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성숙한 인간관계(사회적 성숙)를 달성하며 평온함과 조화로움을 추구(정서적 성숙)하는 것을 노화로 봐야 한다.



비재무적 은퇴준비도 많이 해야 둘째 긍정적인 노후생활이란 기쁨과 사랑, 그리고 이제까지 알지 못했던 무언가를 배우는 것이다. 세계보건기구의 창립자들도 ‘건강이란 신체적, 정신, 사회적으로 행복한 상태를 말하며, 단순하게 질병에 걸리지 않은 상태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베일런트 교수는 인생의 말년을 불행하게 보내는 것은 경제적 빈곤이 아닌 사랑의 빈곤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셋째 사회적 유대관계를 확보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이다. 75세의 신체 건강한 남성들을 조사해보니 공통된 특징이 있었다. 바로 좋은 습관을 가지고 있으며 사회적 유대가 강하다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고립된 상태에 있는 사람들은 건강을 잃고 불행한 삶을 살아간다. 따라서 50대에 있는 힘을 다해 풍부한 사회관계를 만들어야 남은 삶을 풍요롭게 보낼 수 있다.

고령사회로 접어들면서 우리나라에서도 노년의 행복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대부분 노후생활비를 충분하게 마련하는데 초점을 두고 있지만, 서서히 비재무적인 준비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항상 자신을 지지해주는 가족과의 관계, 만성적인 질병 여부와 관계없이 꾸준한 운동과 관리로 유지하는 건강, 영혼을 자극하고 고양시켜 주는 취미·여가 활동과 자원봉사와 기부를 통해 쌓아나가는 사회관계 등이 비재무적 은퇴준비의 대표적인 주제다. 마치 월급처럼 지급되는 평생소득을 다양한 연금으로 확보하고, 적정한 수준의 의료비와 간병자금까지 확보한다면 누구보다 행복한 은퇴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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