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BES WOMEN] 이선희 박홍근홈패션 대표
[FORBES WOMEN] 이선희 박홍근홈패션 대표
서울 성수동 박홍근홈패션 본사에서 만난 이선희(54) 대표는 빨간 자켓을 입고 있었다. 검은 바지, 커트 머리에 큰 업무용 수첩을 들고 나타난 그녀는 악수 역시 힘차게 했다. 혼수·예단 침구업체 사장님이라 단아하고 고전적일 것이라는 예상은 빗나갔다. 그녀는 ‘알콰(려)서’ ‘눈살(썰)미’ 등 경상도 사투리를 섞어가며 이야기를 풀어놨다.
그녀가 회사를 맡은 건 1998년. 97년 18억원이던 매출은 매년 꾸준히 늘어 2010년 203억원이 됐다. 당시 18명이던 직원도 250명 정도로 불어났다. 그 사이 다른 브랜드도 만들어 회사를 분리했고, 판매법인 역시 따로 설립했다. 주요 백화점 침구부문 1위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12년 동안 어디에 초점을 맞춰 사업을 키워왔냐고 묻자 “특별한 비법은 없다”며 “그냥 직장 다니듯 꾸준히 해 왔다”고 답했다. 눈에 번쩍 띄는 전략은 없었지만 무리한 투자 하지 않고 매일 주어진 일을 꼼꼼하게 해 왔다는 설명이다.
그녀는 원래 ‘이브자리’에서 일했다. 81년 이브자리(당시 ‘꽃사슴 침구’)에 입사해서 책임자까지 승진했다. 박홍근 고문과는 94년 처음 만났다. 당시 박홍근홈패션 대표이던 박 고문이 이브자리에 정기적으로 강의를 오면서 알게 됐다. 박 고문은 해외에서 제대로 디자인을 공부하고 한국 침구시장에 디자인 개념을 도입한 알아주는 침구 디자이너였다. 박 고문은 이브자리 디자이너들에게 한 달에 한 번 강의를 했다. 디자이너가 아니어서 직접 강의를 듣진 않았지만 간부였던 그녀는 자연스럽게 박 고문과 인연을 이어갔다.
어느 날 박 고문은 이 대표에게 박홍근홈패션을 맡아서 해볼 생각은 없느냐고 제안했다. 박 고문은 더 나이가 들기 전에 회사를 물려줄 사람을 찾던 중이었다. 그녀는 10년 이상 한 눈 팔지 않고 이불만 해온 이 대표의 성실함이 마음에 들었다. 박 고문은 사업자 변경까지 직접 해서 이 대표에게 넘겼을 정도로 적극적이었다.
박홍근 고문이 회사 맡아달라고 요청
이 대표는 “본격적으로 취임하기 전까지 1년 동안은 이중생활을 했다”라고 털어놨다. 오전에는 이브자리에 출근해 일을 하고 오후 1시가 되면 박홍근홈패션으로 가서 일을 익혔다. 그녀는 “인수인계를 하면서 새로 맡을 회사 일도 익혔다”며 양 쪽 일을 할 수 있게 해 준 박 고문과 이브자리에 고마움을 표했다.
그녀는 박 고문의 제안이 있기 전까지 회사 경영에 대해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이 대표는 “내 회사를 할 마음이 있었으면 돈도 좀 악착같이 벌어놓고, 남편도 돈 많은 사람으로 골랐겠지요”라며 웃었다. 98년 정식으로 취임을 하고 보니 당장 회사 인수금이 문제였다. 외환위기 시절이라 모두들 쪼들릴 때였다. 큰 돈이 없던 그녀가 선택한 방법은 할부. 회사를 경영해 생긴 이익을 3개월에 한 번씩 상환했다. 그렇게 열 번 만에 인수금을 모두 갚았다.
회사를 맡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5톤 트럭에 집기와 이불이 잔뜩 실려왔다. 그녀가 “이게 다 뭐냐”고 했더니 직원이 “부산 백화점 매장에서 철수한 것들”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백화점 매장 철수라는 것도 잘 모를 때라 참 막막했다”고 말했다. 여기에 IMF 여파로 입점해 있던 백화점이 부도나 그 매장도 접어야 했다. 이렇게 해서 전국 백화점 매장은 5개도 남지 않았다.
그녀는 기본부터 다시 하기로 마음 먹었다. 회사에 쌓여있는 원단 재고와 디자인 패턴을 꼼꼼하게 챙겼다. 신제품을 만들 때 재고를 활용하는 방안을 디자이너들과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다. 샘플실과 디자인실을 회사 안에서 가장 볕이 잘 들고 드나들기 좋은 위치로 옮겼다. 이들이 잘 해야 최고의 제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반면 사장실은 지하 물류·생산창고 옆에 뒀다.
공장도 짓기로 했다. 원래 박홍근홈패션은 디자인만 하고 생산은 외부에 맡겼다. 하지만 이 대표는 직접 생산을 해야 원가를 절감하면서 품질도 높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경기도 포천에 땅을 빌렸다. 공장장을 포함해 네 명이 기계 한 대를 놓고 공장을 돌렸다. 2년 만에 4290㎡의 땅을 사 공장을 넓혔다. 현재 포천에는 6600㎡ 규모의 박홍근홈패션 공장이 있다. 제품의 절반 정도를 여기서 생산한다.
현재 박홍근홈패션은 국내에 35곳의 백화점 매장, 100여 개의 대리점을 두고 있다. 또 미국 뉴욕·애틀란타, 중국 베이징 등 3곳에 해외 지사를 두고 있다. 회사를 키운 비결에 대해 이 대표는 “직원들이 열심히 해준 덕분”이라며 공을 돌렸다.
그녀의 직원에 대한 사랑은 남다르다. 휴대전화에는 전 직원의 전화번호가 저장돼 있다. 현재 근무하는 250여 명의 직원은 물론 사정이 생겨 퇴사한 직원 전화번호까지 모두 휴대전화에 들어 있다. 그녀는 종종 생일인 직원에게 전화를 걸어 축하 메시지를 전한다. 직원이 못 보던 넥타이를 매고 오거나 새 신발을 신고 오면 단박에 알고 ‘선수’를 친다. 아침에 직원들 표정만 봐도 회사 ‘기상도’를 파악한다.
그녀는 “서울에서 잘 팔리는 제품이 다른 곳에서는 안 팔리기도 한다”며 “그래서 각 지역별로 선호하는 제품을 세분화해서 만들 생각”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9월 오픈 한 미국 쪽 반응도 좋다. 이 대표는 전시장에 놓여있는 이불을 가리키며 말했다. “미국에서는 커튼에 주로 사용하는 자가드 천으로 이불을 만드는 게 신선해 보였나 봐요. 품질에 자신 있는 만큼 차근차근 세계 시장으로 나갈 겁니다.”
이 대표는 군인들이 사용할 침낭도 개발했다. 이를 위해 직접 해외 유명 침낭을 뜯어서 분해도 해봤다. 텐트를 치고 자면서 침낭 안 온도를 재보기도 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기능성 군용 침낭은 특허를 받았고, 2004년 ‘지상군 페스티벌2004’에서 육군참모총장 상을 받기도 했다.
지난해 말 박홍근홈패션 공장에 불이 났다. 현재는 거의 복구된 상태. 이 대표는 “98년 물난리도 겪었다”며 “불도 나고 물 벼락도 맞았으니 이제 잘 될 일만 남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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