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 붐 어떻게 볼 것인가 - 준비 없는 낭만적 귀농은 ‘백전백패’
귀농 붐 어떻게 볼 것인가 - 준비 없는 낭만적 귀농은 ‘백전백패’
귀농이 화두다. 2010년 이후 직장에서 은퇴한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 758만명)를 비롯해, 젊은 30~40대까지 귀농행렬에 가세하면서 외환위기 직후 일었던 귀농 붐이 재현되고 있다. 농림수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해 도시에서 농촌으로 이주한 귀농·귀촌 가구 수는 1만503가구(2만3415명)로 전년 대비 158%나 증가했다.
요즘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실시하는 귀농설명회나 교육장은 도시인들로 넘쳐난다. 최근에는 ‘연소득 1억 원이 넘는 부농이 크게 늘었다’는 정부의 발표에 이어 ‘대기업 임원도 안 부러워’ ‘농촌이 금광’ ‘억대연봉 부농 되는 법’ 등의 솔깃한 언론 보도가 쏟아지면서 도시인들의 귀농에 대한 관심은 더욱 뜨겁다.
하지만 귀농의 길은 여전히 멀고 험난하기만 하다. ‘부농 시대’를 얘기하지만 농촌의 빈부격차와 고령화는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농림수산식품부에 따르면 2000년 농촌 상위 20% 가구의 평균 소득은 하위 20% 평균 소득의 7.6배였는데, 2010년에는 11.7배로 격차가 크게 확대됐다. 도시근로자 가구의 같은 기간 4.1배→4.8배와 비교하면 농촌의 양극화 현상은 더욱 두드러진다.
멀고 먼 부농의 꿈정부가 최근 발표한 ‘전국의 부농 현황’ 자료 또한 자세히 뜯어보면 사실 부농시대와는 거리가 멀다.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연간 1억 이상 소득을 올린 전국의 부농은 총 1만6722명(농업인 1만5959명, 농업법인 763개)으로 2009년 대비 14% 늘었다. 하지만 이는 전체 농가(2010년 말 기준 117만7000가구)의 1.42%에 불과하다. 농가 100가구에 겨우 1가구 꼴이다. 이마저도 부부와 자식 등 3인 가족이 함께 일군 것이라면 1인당 소득은 연 3300만 원선으로 내려간다.
고령화 또한 갈수록 경쟁력을 상실해가는 농촌의 한 단면이다. 농촌의 젊은 층이 계속 도시로 빠져나가면서 농어촌 인구 중 65세 이상 비중은 2000년 14.7%에서 2010년 20.6%로 크게 늘었다.
귀농인들이 ‘엘도라도’를 꿈꾸며 인생 2막의 귀착지로 정한 농촌은 이처럼 어려운 현실에 처해 있다. 이를 극복하고 성공적으로 안착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정부와 지자체마다 각종 귀농정책과 성공사례에 대한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지만, 정작 농촌 현장에서 지속가능한 귀농 성공사례를 찾아보기란 어렵다.
농촌의 최일선 현장에서 귀농인들과 직접 접촉하며 그들을 교육하는 전문가일수록 이런 현실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기에 오히려 귀농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다. 강원도의 한 농업지도사는 “지난 십 수년 동안 귀농인들이 성공적으로 소득기반을 확보해 시골에 안착한 사례를 거의 본적이 없다”며 “농사를 전혀 모르는 도시인들이 얼마 안 되는 땅을 가지고 판매기반도 없는 상태에서 농사로 승부를 걸면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하다”고 지적했다.
전라도의 한 농업지도사도 “한·미 FTA와 값싼 중국산 농산물의 공세로 국내 농업분야가 더욱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소농 수준의 귀농은 자칫 도시민의 빈농 전락 등 악순환을 불러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공식적인 통계는 없지만 귀농인들이 소유한 농지는 대개 1만㎡(3025평) 이하로, 심지어 3300㎡(1000평) 이하도 상당수다. 농지 3.3㎡(1평) 당 연간 수입은 지역별, 농가별, 작목별로 천차만별이지만 대략 일반작물의 경우 2000~5000원 수준이다. 1만㎡의 농지라면 연간 605만~1512만 원선이다. 한 달 100만원 벌기도 쉽지 않은 셈이다. 물론 프로 농사꾼의 경우 고부가 작물을 선택하고 운도 따라주면 3.3㎡당 1만~2만원 소득도 가능하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말 그대로 농사로 잔뼈가 굵은 베테랑 농사꾼에게 적용되는 것이지, 초보 귀농인에게는 어림없는 얘기다.
지자체 인구 늘리기 ‘미끼’로 활용하기도그렇다고 정부와 각 지자체들이 내놓는 각종 귀농지원책이 귀농의 성공 가능성을 높여주는 것도 아니다. 사실 지자체의 각종 귀농지원책은 도시인 유치를 위한 유인책 성격이 강하다. 재정형편이 열악한 군 단위 지자체에서는 인구가 늘면 그만큼 정부로부터 지방재정교부금을 더 많이 받을 수 있다. 전라도의 한 군청 관계자는 “지자체마다 귀농지원조례를 제정해 각종 지원에 나서고 있지만 조금 심하게 말하면 귀농인 유치를 위한 미끼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가짓수에 비해 먹을 게 없다’는 불만도 나온다. 정부의 농어업 창업 지원자금과 주택구입·신축 지원자금은 각각 세대당 2억원, 4000만원까지 가능하지만, 먼저 까다로운 요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또한 담보 대출인 데다 매년 각 지자체별로 지원가능금액이 할당되기 때문에 항목별 한도까지 다 받기는 어렵다. 지자체에서 자체적으로 지원하는 빈집수리비, 영농실습비, 이사비 등의 보조금 역시 마찬가지다.
현실과 동떨어진 잘못된 귀농지원제도로 인한 귀농인 피해 사례도 속속 나타나고 있다. 22년간 전문직에 종사하다가 2010년 10월 강원도 H군으로 귀농한 박 모(49)씨는 이듬해 6월 하순 정부의 귀농인 농지매입자금을 지원받아 소규모 밭을 추가로 매입했다. 명백하게 귀농인 지원자금을 받아 매입한 농지이건만, 박씨는 ‘귀농인 취득세 50% 감면’ 혜택은 받지 못했다.
이유는 이렇다. 현재 농림수산식품부의 귀농지원 지침과 행정안전부의 취득세 감면 법령(지방세 특례 제한법)에는 귀농인 요건에 대해 ‘귀농 직전 농어촌 이외의 지역에서 1년 이상 거주한 자’로 규정하고 있다. 이때 농어촌은 농어업기본법상 전국의 모든 읍·면 지역이 해당된다.
귀농 당시 파주시 교하신도시에 살았던 박 씨의 주소지 또한 파주시 교하읍이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 수도권의 읍·면 중심지나, 읍·면 내 크고 작은 신도시(택지개발지구)에 거주하던 직장인이 퇴사를 한 뒤 강원도 산골로 내려가도 그는 귀농인이 아니다. 귀농 직전 주소지가 농어업기본법상 농어촌이므로 농업인으로 간주돼 각종 지원에서 배제되는 것이다.
주소지가 읍·면에 속하는 수도권 택지개발지구는 한둘이 아니다. 봉담지구(화성시 봉담읍), 진접지구(남양주시 진접읍)가 그렇다. 지금은 주소지가 ‘동’으로 바뀐 남양주시 별내신도시, 화성시 동탄신도시 등도 농어촌(읍·면)에서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는다. 박 씨와 같은 피해사례가 많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유다.
그나마 농림수산식품부는 현실과 동떨어진 귀농인의 요건과 농어촌 규정에 대해 소극적인 ‘질의-회신 방법’을 통해서라도 피해사례를 구제해주고 있지만, 행정안전부는 요지부동이다. 강원도의 한 관계자는 “현실에 맞지 않는 농업인 요건과 농어촌 규정이 귀농인 피해뿐 아니라 각종 지원을 받아 귀농하려는 예비 귀농인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며 “중앙정부 차원에서 제도개선 및 피해사례 구제가 시급해 이를 건의했지만 아직 해결되지 않고 있다”고 아쉬워했다.
이처럼 귀농으로 가는 길은 척박한 농촌의 현실에 더해 수많은 걸림돌이 가로막고 있다. 장밋빛 환상에 싸인 낭만적 귀농은 위험천만하다. 외환위기 당시에는 어려운 경제상황 속에서 단지 먹고 살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귀농을 택했다. 하지만 대부분은 현지 적응 실패, 농사 기술 부족, 판로 확보난 등으로 어려움을 겪다 다시 도시로 ‘U턴’했다. 일부 지역에서는 귀농 정착률이 10%에도 못 미쳤다는 통계도 있다.
물론 요즘의 귀농은 외환위기 당시와는 사뭇 달라졌다. 각종 귀농 관련 정보와 교육, 정책이 넘쳐난다. 나름 철저하게 계획하고 준비해서 귀농을 결행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른바 ‘기획형 귀농’이다. 그럼에도 귀농은 여전히 넘기 어려운 벽이다. 소득이 기대에 못 미치고 자녀교육, 주민융화 등의 현실적인 벽에 부딪혀 2~3년을 못 버티고 다시 도시로 돌아가는 행태가 지금 이 순간에도 반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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