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EXUALITY] 성적 복종을 탐닉하다
KATIE ROIPHE 기자각 시대마다 그에 적합한 가학 성애자(sadist)가 있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현시대에 와서 크리스천 그레이가 그런 인물로 낙점받을지 모른다는 사실은 그리 놀랍지 않다. 순식간에 베스트셀러가 된 소설 ‘회색의 심연(가제·Fifty Shades of Grey)’의 주인공이다. 그레이는 뒤틀렸다거나 무시무시하다거나 음험한 마음을 갖고 있지 않다. 다만 그는 어린 시절 학대를 당했다. 저자 E L 제임스는 “크리스천 그레이는 슬픈 면을 가졌다(Christian Grey has a sad side)”고 표현했다. 또 가학 성애자치고는 상대를 지극하고 세심하게 배려하며 미안해하기까지 한다(extremely solicitous and apologetic). 여주인공 아나스타시아 스틸에게 매순간 감정의 변화를 묻고 채찍으로 볼기를 때린 뒤(spanking) 그녀를 달래려고 온갖 크림과 로션을 챙겨준다. 한마디로 그는 변태치고 어느 누구보다 너그럽다(the easiest difficult man of all time).
이 물 탄 저지방 바닐라 라테 같은 특이한 가학피학성 성애(sadomasochism, S&M) 소설이 왜 지금 같은 시기에 위력을 떨칠까? 왜 수많은 여성이 이 책을 서점에 깔리기도 전에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맨 꼭대기에 올려다 놓았을까(은밀하게 구입하기 좋은 전자책으로 출판됐다)? 피상적인 일탈과 편안하게 느껴지는 전형(典型)의 행복한 결합이기 때문이리라. 얼굴을 붉히는 처녀와 벗긴 볼기를 치는 채찍 말이다(the blushing virgin and the whips). 특정 그룹(내 생각엔 상당히 많다)은 이 소설에서 준(準)포르노적인 매력(semipornographic glamour)을 느낀다. 허용되는 한계를 살짝 넘는데서 느끼는 위험한 전율(frisson) 말이다. 그러나 동시에 안전하게 느껴지고 구태의연한 로맨스도 제공한다. ‘회색의 심연’은 예를 들어 고급 소매점에서 파는 검정색 부츠나 예술적 냄새를 풍기는 비대칭 드레스(arty asymmetrical dress)에 해당한다. 그런 물건을 고른다고 해서 그리 외설적이거나 반항적이거나 불안감을 주지는 않는다는 뜻이다(no more risqué or rebellious or disturbing).
순화된 표현으로 ‘엄마들을 위한 포르노(mommy porn)’로 일컬어지는 이 소설을 누가 읽을까? 흔히 젊은 여성보다는 나이가 좀 있고, 교외의 부자 동네, 특히 미국 중서부(공화당 지지 기반)에 사는 여성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그런 고정관념이 반드시 정확하진 않다. 페이스북, 구글 검색, 팬 사이트에서 취합한 출판사의 통계 자료에 따르면 이 소설을 읽는 여성의 절반 이상은 20~30대이며, 일반적인 생각보다 훨씬 대도시적이고 진보적인 민주당 지지주(blue states)에 산다.
요즘 성적인 지배(domination) 현상의 유행은 은밀한 전자책 독서에 국한되지 않는다. 뉴욕시의 방황하는 20대들을 그린 HBO의 새 드라마 ‘걸스(Girls)’에서 레나 던햄(감독 겸 주연)은 그와 비슷한 성적인 복종 욕구를 주제로 다룬다. 이 드라마에서 여주인공의 창백하고 유행을 좇는 남자친구는 이렇게 농담한다. “현대 직장 여성들이여, 난 그대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지(You modern career women, I know what you like) ...” 비록 어색한 표현이긴 하지만 여성들이 성적인 지배를 받고 싶어한다는 뜻이다. 그는 곧잘 “자기는 나 외에 다른 누구의 노예가 돼선 안 돼(You should never be anyone’s ... slave, except mine)”라고 말한다. 또 창문 아래를 내려다 보며 이렇게 소리친다. “내 방에 올라오면 자기를 묶어 사흘 동안 감금해 둘 거야. 그냥 그런 기분이란 말이야(I’m just in that kind of mood).” 여주인공은 그를 만난 뒤 멍이 든 채 돌아와 술집에서 대학시절 남자친구인 동성애자에게 멋쩍어하며 이렇게 털어놓는다. “요즘 이 남자를 만나는데 가끔 그에게 나를 때려도 좋다고 하거든.”
한편 그녀의 가까운 친구이자 룸메이트는 상냥하고 민감하고 상대를 존중하는 남자친구를 사귄다. 그 남자친구는 그녀에게 침대에서 어떻게 해주길 원하는지 묻는다. 그녀는 그런 남자친구가 너무도 따분하고 짜증 난다(she is bored out of her mind and irritated by him)고 느낀다. 대신 그녀는 자신이 일하는 화랑에서 만난 한 오만한 예술가를 두고 공상의 나래를 편다. 그 예술가는 그녀에게 침대에서 겁먹게 해주겠다(I will scare you in bed)고 말한다. 이처럼 요즘의 야심만만한 고학력 여성들도 상냥하고 친절한 남자들을 원치 않는다. 그들 역시 절묘하게 모순적이고 혼란스러운 방식으로 어느 정도 창의적인 성적 복종을 원한다.
성적 지배에 관한 문화적 관심이 높다는 징후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최근 개봉된 영화 ‘데인저러스 메소드(A Dangerous Method)’는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칼 융의 정신분석학 역사를 탐구하는 시대극(period piece)에 가학 성애를 슬쩍 끼워 넣었다. 여주인공 사비나 슈필라인 역을 맡은 배우 키이라 나이틀리는 침대 기둥에 묶여 채찍으로 맞는 장면이 너무도 걱정이 된 나머지 촬영 직전에 보드카를 들이마셨다고 말했다.
요즘이 어떤 시대인가? 직장에서 여성이 우세하다(women are ascendant in the workplace). 대학생의 거의 60%가 여학생이다.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breadwinner)으로 여성이 남성을 능가하기 일보 직전이다(직장을 가진 여성 10명 중 4명이 남편보다 소득이 높다). 또 30세 미만의 여성 중 다수가 혼자서 자녀를 갖고 부양한다. 딱딱한 경제학 용어로 말하자면 여성이 과거 어느 때보다 덜 의존적이거나 덜 예속적인(less dependent or subjugated than before)이다. 그런 시대인데도 성적 복종의 다양한 판타지에 탐닉하는 여성이 그토록 많다는 사실이 매우 흥미롭다.
리자 먼디의 ‘남자보다 더 잘 버는 여성(The Richer Sex)’이나 한나 로진의 ‘남성의 종말(The End of Men)’ 같은 책들이 쏟아져 나오는 상황에서 그 반작용으로 여성의 무력함(powerlessness)을 다루는 소설이나 영화에 대중의 관심이 새롭게 높아진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닌 듯하다. 결혼하지 않기로 결심했다거나 미혼모의 길을 선택하는 젊은 여성이 크게 많아졌다는 보도가 빈번하다는 사실은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남성의 지배가 어느 때보다 불안정한 이런 역사적 순간에 여성이 성적 복종이라는 낭만적이고 준포르노적인 발상에 더욱 이끌리는지 모른다.
사적인 판타지의 영역에서는 성적 복종(심지어 극단적인 형태까지도)의 매력이 놀라울 정도로 널리 퍼져 있다. 심리학 전문지 사이콜로지 투데이에 실린 논문 20편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여성의 31~57%는 강압적으로 섹스를 당하는 공상을 즐기는 것으로 추정된다. “성폭행 공상은 정치와 에로스가 거북하게 만나는 지점(Rape fantasies are a place where politics and Eros meet, uneasily)”이라고 여성의 욕구를 주제로 한 책을 집필 중인 대니얼 버그너가 말했다. “우리가 말하는 내용과 현실이 어울리지 않게 나란히 서 있는 곳이다(It is where what we say and what is stand next to each other, mismatched).”
버그너가 2009년 뉴욕타임스 기고문 ‘여성은 무엇을 원하는가(What Do Women Want)?’를 쓰려고 취재한 연구자들과 심리학자들은 대개 ‘성폭행 공상(rape fantasy)’이라는 표현에 거부감을 보였다. 논문에서도 이런 판타지를 기록하는 저자들은 ‘성폭행 공상’이라는 개념을 다룰 때 상당히 조심스러워 하거나 미안해하는 마음을 담는다. 의미상으로 판타지란 자신이 제어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fantasies are something that, by definition, one can’t control) 거의 모두가 실제 언급되기를 원치 않는 현대 여성에 관한 그 무엇을 가리킨다. 버그너가 취재한 연구자 중 한 명은 “복종의 판타지(fantasies of submission)”라는 표현을 선호했고, 다른 한 명은 “의지와 사고를 초월하려는 소망(It’s the wish to be beyond will, beyond thought)”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특히 여성의 경우 자유 의지를 왜 부담으로 생각할까(But why, for women especially, would free will be a burden)? 왜 수동적으로 벌어지는 일을 상상하는 것에 매력을 느낄까(Why is it appealing to think of what happens in the passive tense)? 복종이나 복종을 연기하는 행위가 왜 그토록 흥미로울까(Why is it so interesting to surrender, or to play at surrendering)? 어쩌면 힘이 반드시 편한 건 아니기 때문일지 모른다(It may be that power is not always that comfortable). 평등은 가끔씩, 또는 특정 장소나 특정 무대에서만 여성이 원하는 것이기 때문일지 모른다. 힘과 그에 따르는 모든 일이 쉽게 따분해질 수 있기 때문일지 모른다.
드라마 ‘걸스’에서 레나 던햄이 연기하는 인물은 부인과 진찰실에 누워 이렇게 생각한다. 에이즈에 걸린다면 야망에서, 책임에서, 성공해야 한다는 그 벅찬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실제처럼 기이하게 느껴지는 이 인상적인 장면은 이런 의문을 제기한다. 현대 여성의 삶에 지워진 무거운 책임, 경제적 참여의 압력, 힘과 독립성과 욕구와 출세… 바로 거기에 여성의 진을 빼는 무엇이 있지 않을까(is there something exhausting about these)? 어떤 여성은 성적 복종의 극적인 판타지를 통해 평등의 따분함과 고역에서 잠시나마 벗어나는 해방감을 갖는 듯하다.
그렇다고 성적 복종이라는 기이한 이야기가 새롭다는 뜻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가학피학성 성애(S&M)를 “늘 다시 돋아나는 원기왕성한 다년생 식물(a hearty perennial)”에 견주었다. S&M은 언제나 여성의 ‘비밀 호주머니(secret pockets)’ 속에 들어 있으며, 때때로 그 작은 꼬투리가 주류 문화에 침입해 여성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러나 과거의 전형적인 S&M은 평범한 일상과 타협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사랑처럼 ‘지극히 평범한’ 것과는 뒤섞이지 않는다(they don’t traffic in things as banal or ordinary as love)는 뜻이다.
폴린 레아주(필명)가 쓴 유명한 프랑스 에로 소설 ‘O양의 이야기(Story of O, 영화는 ‘르네의 사생활’이라는 제목으로 국내에 비디오로 출시됐다)’에서 여주인공은 어느 고성으로 납치된 뒤 가면 쓴 남자들에게 채찍으로 맞고 성적으로 학대당한 후 노예 수업을 받는다. O양의 피학대성 성애(masochism)는 애인에 대한 강렬한 헌신으로 시작되지만 곧 다른 무엇으로 변한다. O양은 자신을 완전히 비우기 시작한다(O begins to vacate herself). 순수한 고통 속에서 자신의 개성까지 말살시켜 버린다(she loses her personality in the pure discipline of pain). 우아하면서도 잔혹한 이 소설은 O양이 올빼미 가면을 쓰고 알몸으로 쇠사슬에 묶여 파티에 인도되는 장면에서 절정을 이룬다. 파티 손님 누구에게도 그녀가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it occurs to none of the guests that she is human). 유명한 에세이 작가이자 소설가였던 수전 손택은 O양을 두고 “자기 의식의 소멸을 향한 관능적인 갈망(the voluptuous yearning toward the extinction of one’s consciousness)”을 이야기했다. ‘회색의 심연’에서 크리스천 그레이가 아나스타시아에게 e-메일로 “내일 봐, 자기야(Laters, baby)”라고 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a far cry).
성폭행이나 현란한 성적 복종의 에로틱한 장면으로 우리를 푹 빠지게 하는 책이 심심찮게 나오면서 속박과 힘에 관한 논쟁를 불러 일으킨다. ‘룰루(The Ages of Lulu)’와 ‘캐서린 M의 성생활(The Sexual Life of Catherine M)’ 같은 책이 대표적이다. 흥미로운 점은 물릴 정도로 포르노가 포화상태인 지금 같은 시대에도(in our jaded porn-saturated age) 이런 소재가 여전히 사람들을 흥분시키거나 논쟁을 불러 일으키거나 뉴스거리가 된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여전히 극단적인 성적 복종의 장면들을 두고 논쟁을 벌이거나 따지거나 관음증적으로 빠져들기를 원한다. 우리가 S&M을 익히 잘 아는 현 시점에서도 그것이 우리 문화에서 새롭고, 충격적이고, 특정 가치를 뒤집는 현상으로 인식된다. 그 무엇이 여전히 잘못됐고 수치스럽게 느껴지기 때문이다(something in it still feels wrong or shameful). 성혁명 이후 성적으로 매우 관대해진 우리 세계에서 너무도 많은 사람이 그렇게 느낀다.
‘회색의 심연’에서 아나스타시아 스틸에 관한 두드러진 사실 중 하나는 그녀가 S&M에 탐닉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녀는 단지 크리스천 그레이를 사랑할 뿐이다(“더 많은 애정을 받고 싶고, 더 장난기 많은 크리스천을 원하고, 더 많은 사랑을 진심으로 받고 싶다”). 그래서 그녀는 채찍을 맞는데 성심을 다하고 싶어 한다(so she is willing to give beatings and leather crops the old college try). ‘주류’ 여주인공이 ‘주류’ 독자들에게 호소력을 갖도록 하는데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그녀가 정상에서 빗나간 욕정(off-kilter desires)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고 채찍질과 굴욕의 약간 기이한 판타지를 즐긴다는 사실 말이다.
그녀는 스스로 원했다거나 선택했다고 밝히지 않고 그의 체벌과 가죽채찍과 가벼운 굴욕(mild humiliation)을 즐길 수 있다. 그녀는 실제로 채찍질당하고 싶은 게 아니다. 다만 잘 생긴 남자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에서, 어쩌면 그를 구하려는 마음에서 그런 행위를 기꺼이 감수할 뿐이다(It’s not that she wants to be whipped, it’s that she willingly endures it out of love for, and maybe in an effort to save, a handsome man). 물론 이런 착각이 성적 복종의 핵심 중 하나다. 책임을 지지 않고, 실제로 원했다고 밝히지 않고, 복종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배우 매기 질렌할은 2002년 인디 코믹 영화 ‘세크리터리(Secretary)’에 출연했을 때 성적 지배의 노골적인 묘사가 여성운동의 반발을 사지 않을까 우려했다. 보스가 비서를 체벌하는 내용을 말한다. 그러나 나중에 그녀는 “여성, 특히 내 세대의 여성은 정치를 초월해서 이 영화를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여성운동가 케이사 폴릿은 성적 복종의 판타지가 왜 그토록 생명력이 끈질긴지 설명하면서 이렇게 지적했다. “지금의 여성은 우리 역사에서 어느 때보다 더 많은 성적 자유와 더 많은 힘을 갖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그 양쪽을 충분히 갖는다는 뜻은 아니다(that does not mean they have a lot of either). 또 그들이 죄책감, 수치, 스스로 하찮다는 복잡한 느낌을 갖지 않는다는 뜻도 아니다.” 지난 수 년 동안 연구자들과 심리학자들은 여성이 성적 복종에 관한 정교한 판타지에 집착하는 것은 죄책감이 들거나 자신의 욕정을 인정하기가 두렵기 때문이라는 이론을 제시했다. 여성은 스스로 원하기보다는 원함을 당하는 데 더 편안하게 느낀다는 뜻이다(they are more comfortable being wanted than wanting).
그러나 더 최근의 연구는 섹스를 강요당하는 상상을 하는 여성이 그렇지 않은 여성보다 죄책감을 덜 갖는다(less prone to guilt)는 점을 보여준다. 아무튼 앞서 말한 이론은 현대 여성에게 어울리지 않게 너무 단순하거나 적어도 지나치게 19세기적인 설명인 듯하다. 섹스의 죄책감보다는 제압당하는 데서 근본적인 해방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it is not as much guilt over sex but rather something more basically liberating about being overcome or overpowered). 거기서 느끼는 흥분은 비이성적이며, 자신의 정체성과도 상관 없고, 비판적이거나 분별 있는 목소리나 좋은 교육 또는 훌륭한 직업에도 구애 받지 않는다.
여성운동가들은 오랫동안 이런 판타지가 지속적인 관심의 대상이라는 사실에 당혹스러워했다. 로맨틱한 영역에서 통제를 당하거나 지배를 당하고 싶어하는 끈질긴 욕구를 말한다. 강하고 성공했고 독립적인 여성 다수가 성적 순종의 정교한 판타지에 빠진다는 사실에 그들은 공식적으로 경악한다(물론 판타지만이 아니라 실제로도 그런 행위를 즐기는 여성이 있지만 그건 다른 문제다). 세계적인 여성운동가 글로리아 스타이넘은 “이런 여성들은 성장하면서 섹스와 힘의 지배가 동의어라고 배웠다(these women “have been raised to believe that sex and domination are synonymous)”고 말한 적이 있다. “따라서 우리는 섹스와 공격성을 서로 떼어놓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그러나 어쩌면 섹스와 공격성은 서로 떼어 놓아서도 안 되고, 더 정확히 말하자면 떼려고 해도 뗄 수가 없을지 모른다(But maybe sex and aggression should not, and probably more to the point, cannot be untangled).
최근 여러 토크쇼에서 ‘회색의 심연’을 두고 여러 강직한 여성이 시대에 역행하는 준포르노적 여성 착취를 개탄했다. “여권운동의 목적이 이것이었나?”라고 냉소적으로 따진 진보적인 논객도 적지 않다. 그러나 여권운동은 언제나 사생활과는 이상하게도 무관했다. 뛰어난 사상가이자 여성운동가였던 시몬 드 보부아르는 개인적 삶에서 장폴 사르트르에게 예속되는 상황(‘계약 결혼’을 뜻한다)이 그녀가 말한 여성자유 이론과 상충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변했다. “개인적으로 전혀 개의치 않는다(Well, I just don’t give a damn). ... 여성운동가들을 실망시켜 미안하지만 그들 중 너무도 많은 여성이 실제 삶보다 이론 속에서만 살아간다는 게 안타깝다(I’m sorry to disappoint all the feminists, but you can say it’s too bad so many of them live only in theory instead of in real life.).”
문학가 대프니 머킨은 뉴요커지 기고문에서 피학대 성애에 대한 자신의 집착을 밝혀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그녀는 자신에게 ‘막강한(formidable)’ 여성으로서의 정체성과 성애화된 어린 시절의 체벌에 대한 갈망 사이에 긴장이 있는 듯하다고 설명했다. “남성과 여성의 평등, 또는 그 명분을 확보하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하며, 그런 평등은 성적 흥분을 느낄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이 결코 아닌 듯하다(Equality between men and women, or even the pretext of it, takes a lot of work and may not in any case be the surest route to sexual excitement).”
에로틱한 상상이 정치나 심지어 변하는 성별적 현실에 따르지 않는다는 것은 여성운동가들에게는 불편한 진실일지 모른다. 성적 복종의 판타지는 ‘남성의 종말’에 신경을 쓰지 않으며, 여가 시간에 페미니스트 블로그를 숙독하지도 않고, 여성 참정권 운동가들의 고역과 헌신을 기억하지도 않는다. 남성에게 지배당하거나 제압당하는 열정적인 공상은 성차별 없는 ‘동일 노동 동일 임금(equal pay for equal work)’이 이뤄져도 사라질 기미가 없다. 어쩌면 오히려 더 강해지고 새롭고 창의적인(‘회색의 심연’처럼 그렇게 창의적이진 않을지 모른다) 형태를 띠는지 모른다.
사실 내가 만약 기독교 우파로 집앞 현관에 앉아 미국 직장여성들의 퇴폐적인 도덕성을 개탄한다고 해도 ‘회색의 심연’에서 가장 놀라운 점, 또 그 작품에 자포자기적인 느낌과 종말론적 분위기를 띄우는 요인은 머리 좋은 여성 수백만 명이 이 정도 수준의 소설을 기꺼이 참고 읽으려 한다는 사실이다. “통렬한 슬픔 속에서도 나는 웃었다”거나 “내 세계가 잿더미로 무너져 내리고 내 모든 꿈과 희망이 잔인하게 내동댕이쳐졌다”는 지루한 문장들을 참고 읽다 보면 차라리 굴종적인 섹스 장면이 나오기를 고대할 수밖에 없다.
번역 이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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