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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민족주의가 유물을 훼손시킨다

[ART] 민족주의가 유물을 훼손시킨다



OWEN MATTHEWS 기자1878년 여름 독일의 도로 토목기사 칼 후만은 술탄의 발굴 허가(excavation permit)를 얻어 터키 베르가마 지방(현재의 이즈미르 근처)의 산비탈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발굴팀 인부들의 임금은 베를린의 부유한 후원자들이 지원했다. 이곳에서 고대에 제작된 제우스의 제단과 신과 거인들의 전투를 묘사한 프리즈(frieze, 건물 상단의 띠 모양 장식)를 발굴했다. 이 유물들은 고전고고학(classical archeology) 역사상 가장 아름답고 중요한 발견물로 입증됐다. 제단은 술탄의 허가를 받고 베를린에 특별히 지어진 박물관으로 옮겼다. 하지만 독일의 고고학 발굴팀은 현장에 남았다. 그리고 지난 130년 동안 고대 도시 페르가몬의 발굴에 힘을 쏟았다. 페르가몬 유적지는 세계 고고학 발굴현장 중 기록이 가장 잘돼 있고(best-chronicled), (그리스의 올림피아에 이어) 두 번째로 오래됐다.

하지만 여러 세대에 걸쳐 진행돼 온 이 과학적 노력이 최근 위기에 처했다. 터키 정부는 민족주의자들의 지지를 얻으려고 외국 박물관에 소장 중인 고대 아나톨리아(옛 소아시아) 유물의 반환 운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지난 한해 동안 터키 문화관광부는 전에 없이 공격적인 태도를 취했다. 터키에서 작업 중인 외국 고고학 발굴팀의 허가를 취소하겠다고 위협하는가 하면 외국 박물관이나 미술관의 전시회에 대여하기로 했던 유물의 반출을 금지했다. 일례로 지난달 터키 문화관광부는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Met)과 런던의 대영박물관,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V&A)에서 전시될 예정이던 유물 수십 점의 반출을 허가하지 않겠다(would not issue export licenses)고 발표했다. 그 결과 Met의 ‘비잔티움과 이슬람(Byzantium and Islam) 전’, 대영박물관의 ‘하지:이슬람의 심장으로 향하는 여행(The Hajj: Journey to the Heart of Islam) 전’, V&A의 ‘오스만 제국(The Ottomans) 전’ 등 중요한 전시회가 터키 유물의 빈 자리를 다른 전시품으로 대체하거나 일정을 연기해야 했다.

서방의 한 미술관 큐레이터는 “(터키 정부의 이런 행동은) 협박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큐레이터는 장차 터키의 협조가 향상되리라 기대하는 마음에서 익명을 요구했다. “소유권 논란이 이는 유물(disputed artifacts)의 반환을 강요하기 위해 국제적인 고고학 발굴 노력(international archeological efforts)을 위협하는 것은 비윤리적이다(unethical). 국제적인 문화 이해 증진을 위해 마련된 전시회를 방해하는 행동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터키인들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unabashed). 에르투룰 귀나이 문화관광부 장관은 “중동과 발칸 지역에서뿐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큰 박물관 건설이 우리의 꿈”이라고 말했다. 2023년 터키 공화국 건국 100주년을 맞아 앙카라에 완공할 계획인 새 대형 박물관을 두고 하는 말이다. “최근 터키에서 불법적으로 밀반출된(illegally smuggled) 예술품 중 일부를 반환 받는 데 성공해 매우 기쁘다.”

사실 고고학계는 터키가 도굴꾼들이 불법적으로 발굴해 밀반출시킨 유물의 반환을 요구할 법적 권리가 있다(has a legitimate claim to recover)고 생각한다. 지난해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총리가 워싱턴 DC를 방문한 뒤 반환된 ‘지친 헤라클라스’ 동상(1800년 전 제작됐다)의 윗부분이 그런 유물 중 하나다. 이 동상은 40년 전 터키에서 밀반출됐고, 밀수품이라는 사실을 모른 채(unwittingly) 그것을 사들인 보스턴 미술관 측이 자진해서(voluntarily) 터키에 반환했다. Met 역시 도난당한 리키아 왕국의 황금을 터키에, 고대 항아리 한 점을 이탈리아에, 투탕카멘 왕의 무덤에서 불법 유출된 19점의 유물을 이집트에 반환했다. 터키는 1998년 이후 총 4519점의 도난당한 유물을 돌려 받았다.

하지만 소유권이 불분명한 유물의 경우에는(with less clear-cut cases) 정치적 문제가 발생한다. 주로 오스만 제국의 쇠퇴기에 반출된 유물이 여기 해당된다. 일례로 터키는 1920년대 프랑스의 위임통치를 받던 터키 영토에서 반출된 돌 조각상의 반환을 대영박물관에 요구했다. 그리고 고대 히타이트 왕국의 도시 보아즈쾨이에서 독일 고고학자들에 의해 발견된 뒤 1917년(독일과 터키가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하기 1년 전) 복원 작업을 위해(for restoration) 베를린으로 옮겨진 3500년 된 스핑크스상 두 점의 반환도 요구했다. 그중 한 점은 1924년 반환됐다. 독일 박물관 측은 오스만 제국 당국이 나머지 한 점을 독일에 남겨두는 데 동의했다고 확신했다. 그래서 그 화강암(granite) 조각상을 베를린 페르가몬 박물관 건물의 일부(아치형 입구의 받침대)로 만들었다.

터키는 약 10년 전 나머지 스핑크스상 한 점의 반환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양국 중 어느 쪽도 자국의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to prove its case) 서류를 갖고 있지 않았다. 지난해 터키 당국은 스핑크스상을 반환하지 않으면 터키에서 작업 중인 독일 고고학연구소(DAI)의 발굴 허가를 중단하겠다고 위협했다. 이 위협을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인 독일 정부는 지난해 11월 결국 두 번째 스핑크스상을 반환했다.

만일 터키 정부가 DAI의 터키 발굴 현장을 폐쇄했다면 충격적인 문화적 반달리즘(파괴행위)의 한 사례가 됐을 수도 있다. 1829년 설립된 DAI는 단연코(by far) 세계 최대의 국제 고고학연구소다. 1900년 페르가몬 유적지에 세워진 DAI의 현장사무소(field headquarters)는 그 자체가 고고학 역사의 유물이 됐다. 이 건물 벽에는 역대 소장의 사진과 아나톨리아의 작렬하는(scorching) 태양 아래 포즈를 취한 (이미 그곳을 떠난지 오래된) 젊은 고고학자들의 사진이 걸려 있다. 요즘 페르가몬 발굴 현장에서는 세계 각국에서 온 젊은 고고학자 30명이 작업하고 있다. 이들은 이 고대도시의 새로운 부분들을 발굴해 내면서 세심하게 기록하고(meticulously recording), 사진을 찍고, 스케치를 하고, 발견된 유물들을 소제한다(cleaning the uncovered artifacts). 페르가몬 발굴 작업은 세계에서 가장 섬세하다는 평을 듣는다.

고고학적 자료를 실시간으로 입력하는(inputting real-time archeological data) 최첨단 iDAI.field 컴퓨터 시스템이 이곳에서 시작됐다. 현재 사진과 유물보존(preserving), 지도제작(mapping) 부문에서 세계적 기준으로 인정받는 많은 기술 역시 여기서 시작됐다. 2004년 새로 발견된 손상되기 쉬운 모자이크 유물은 수상 경력이 있는 독일 건축가들이 설계한 건물 안에 보존됐다. 나무와 돌, 강철로 된 이 아름다운 건물의 건축 비용은 전적으로 독일 정부가 부담했다. 발견된 유물을 독일로 운반하는 작업은 중단된 지 1세기가 넘었다. 그후론 모든 발견물을 터키에 남겨둔다.

독일은 100년이 넘도록 페르가몬 유적 발굴과 지역 발전에 투자해 왔지만 터키 당국은 여전히 독일인들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본다. 최근 베르가마의 시장을 지낸 한 정치인은 독일 정부로부터 제우스의 제단을 반환 받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ran on a ticket of returning the Altar of Zeus from Berlin). (터키 문화관광부는 이런 요구를 한 적이 없으며 제우스의 제단은 합법적으로 반출됐다는 사실이 서류상으로도 입증됐다.) 또 DAI는 터키 관광 당국으로부터 유적지 내에 있는 허물어진 신전들을 재건축하는 데 더 많은 자원을 투입하라는 압력을 받았다. 고대의 하수관과 무덤들을 조심스럽게 발굴해서(trowelling through ancient sewers and tombs) 원상태에 가깝게 보존하는 일보다 관광객들이 사진 찍기 좋게 신전을 재건축하는 데 더 신경을 쓰라는 말이다.

터키 당국은 도굴꾼(treasure hunters)과 개발업자들로부터 유적을 지키는 일에는 그다지 열의를 보이지 않는다. DAI의 터키 프로젝트를 감독하는 펠릭스 피르존 박사는 현지 경찰의 호출을 심심찮게 받는다. 도굴꾼들이 마구 파헤친 베르가마 주변의 고분들에 대한 ‘구조 발굴(rescue digs)’ 요청이다. 피르존의 말을 들어보자. “도굴꾼들은 굴착기(mechanical diggers)를 사용해 고분을 파헤친다. 이들은 1960년대에 고분 속에 숨겨진 금을 찾겠다는 헛된 꿈을 지닌 약탈꾼들이 대형 망치(sledgehammers)로 훼손시킨 무덤 벽을 완전히 파괴한다. 도굴꾼들이 이렇게 기승을 부리니 훼손되지 않은(untouched) 고대 그리스 시대의 무덤을 발굴할 기회는 없을 듯하다.” 도굴꾼들은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움직인다. 게다가 현지 주민들 사이에 섞여 있어(well-integrated into the local community) 찾아내기가 어렵기 때문에 체포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

터키 정부는 또 고고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닌 지역에 거리낌 없이 수백만 달러 규모의 댐 공사를 허가했다. 세계에서 가장 잘 보존된 고대 로마 시대의 목욕탕과 온천 유적지 알리아노이(페르가몬 근처)와 터키 남동부의 고대 도시 하산케이프가 대표적이다. ‘지친 헤라클레스’ 동상의 반환 요구에 그렇게 열을 올리던 에르도안 총리는 지난해 이스탄불 예니카프에 있는 비잔틴 시대 항구의 고고학적 발굴 작업을 마무리 지으라고(to wind up) 명령했다. 보스포러스 해협의 해저 터널 공사를 서둘러 진행하기 위해서다.

독일 정부의 하투샤 스핑크스 반환을 계기로 터키 당국은 다른 나라들에도 유물 반환 요구를 강경하게 밀어붙일(play hardball) 전망이다. 터키에서 작업 중인 영국과 프랑스, 이탈리아, 오스트리아의 고고학 발굴팀에는 좋지 않은 소식이다. 영국 앙카라고고학연구소(BIAA)의 루트하르데 판데푸트 소장은 이렇게 말했다. “터키인들은 스핑크스의 반환을 매우 성공적인 사례로 여긴다. 앞으로 기회만 있으면 그 이야기를 들먹일 듯하다.” BIAA는 차탈회위크(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인류 거주지 중 하나)의 신석기 시대 유적지를 비롯해 터키 내 여섯 곳에서 발굴 작업을 하고 있다. BIAA는 아직 터키 정부의 위협을 받지 않았지만 고대 도시 크산토스에서 작업을 진행 중인 프랑스 발굴팀은 허가가 취소된 후 터키 발굴팀에 작업을 인계했다(터키는 그동안 루브르 박물관에 16세기 타일의 반환을 요구해 왔다). “귀나이 장관은 대학을 졸업한 신세대 터키 고고학자들이 발굴 작업을 맡을(take over) 때가 됐다고 누차 이야기했다”고 판데푸트는 말했다. “그는 터키 학자들이 단독적으로 이 일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피르존은 국제 차원의 과학적인 사업에서 이런 민족주의를 내세워선 안 된다고 믿는다. “일각에서는 고고학적 발굴을 식민주의의 잔재로(as part of colonial heritage) 여긴다”고 피르존은 말했다. “고고학은 개념상 국제적인 성격을 지녔다. 터키는 자국 영토 안에서 꽃 피웠던 풍성한 문화 덕분에 고고학적 신기술의 국제적 실험실이 된다는 사실을 큰 행운으로 여겨야 한다. 내가 터키 문화관광부 장관이라면 이런 작업을 장려하겠다.” 아이로니컬하게도 현재 유물 반환을 부르짖는 터키가 19세기 말 고고학 박물관을 세울 때 오스만 제국 곳곳에서 대량의 유물을 발굴해 자국으로 들여왔다. 레바논에서 가져온 알렉산더 대제의 석관(sarcophagus)과 이집트에서 가져온 수많은 조각상이 그 예다. 게다가 대영박물관의 ‘하지 전’에 전시하기로 예정됐던 유물 중 터키 정부가 반출을 금지한 품목들은 사실상 터키의 유물이 아니라 오스만 제국 시절 메카(현재 사우디아라비아의 일부)에서 가져왔다.

익명을 요구한 유럽의 한 고위 문화 관료는 “유물을 원래의 위치로 반환하라는 요구는 모순된 결론을 동반한다” 말했다. “그렇다면 모나리자는 이탈리아에, [이스탄불 히포드롬(고대 로마 시대 전차 경기장 터) 한가운데 서 있는] 오벨리스크는 이집트에 돌려줘야 할까? 그러다 보면 세계의 훌륭한 박물관들은 텅텅 비게 된다.” 터키에는 세계 수준의 고고학적 유산이 풍부하다. 하지만 그 대다수가 방치된(neglected) 채 훼손돼 간다. 부끄러운 일이다. 터키 당국은 이미 자국을 떠난지 오래된 유물을 돌려받으려 하기보다 현재 지니고 있는 유물을 지키고 보존하는(guarding and preserving) 데 에너지를 쏟는 편이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번역 정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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