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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 일신방직 회장
남 다른 심미안으로 ‘1등 방직’ 이끌어

김영호 일신방직 회장
남 다른 심미안으로 ‘1등 방직’ 이끌어

타고난 사람. 날 때부터 특정 능력을 가질 수 있다면 김영호(68) 일신방직 회장은 예술적 기질을 타고난 사람이다. 그 역시 스스로 “타고나기를 예술을 좋아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미술·음악·건축·디자인 등 여러 예술 분야에서 타고난 심미안과 전문가 못지 않은 지식을 보여주는 김 회장은 재계에서 첫 손에 꼽는 예술 애호가다. 일신문화재단 이사장으로 문화예술 활동을 지원하고 2003년부터 한국메세나협의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여의도·한남동·청담동에 있는 일신빌딩은 건축을 전공한 김 회장의 ‘입김’을 거쳐 탄생했다. 무엇보다 예술을 향한 그의 순수한 관심이 눈길을 끈다. 문화예술 경영을 강의하는 서용성 한양대 교수가 김 회장과 이야기를 나눴다.

서울 한남대교를 지나 남산 1호 터널로 가는 길에 눈에 띄는 건물이 있다. 빗살무늬 프레임으로 포장한 듯한 통유리 외벽이 빛을 머금고 주변경관을 고스란히 비춘다. 2009년 완공한 일신방직 한남동 사옥이다. 200석 규모의 공연장 일신홀이 있는 이곳은 이탈리아 조각가 스타치올리의 추상 조형물이 설치된 여의도 일신빌딩에 이어 명물이 됐다. 4월16일 김 회장이 인터뷰를 위해 이곳을 찾았다.

로비로 들어서기 전부터 김 회장의 눈빛이 매섭다. 건물 입구에 있는 조각품의 이름표 위치가 잘못된 듯했다. 2층으로 올라온 김 회장은 “한남동 빌딩에 오랜만에 온다”며 주변을 둘러봤다. 화장실 위생상태까지 꼼꼼히 챙겼다. 공연장은 90년대 말부터 생각한 것으로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지은 만큼 애정이 남다르다.

사무실에 들어가자 유명 건축가와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가구들이 한자리에 있었다. 김 회장은 디자이너 필립 스탁의 소파와 건축가 가에 아울렌티가 디자인한 테이블을 소개했다.



디자인 좋아 건축학과 진학


30년 넘게 방직업체를 경영해 온 김 회장은 건축학을 전공했다. 연세대 건축공학과에 다니다 미국 뉴욕의 프랫대학교로 유학했다. “선친이 프랫대학에서 화공학을 전공했어요. 화공학과에 가라고 하셨지만 공학에는 관심이 없었어요. 무조건 싫다고 할 수 없어 공대를 가는 대신 과는 제가 선택하기로 했습니다.” 디자인에 관심이 많았던 김 회장은 건축학을 택했다. 그는 “당시 한국에서 건축학은 디자인보다 엔지니어링에 치우친 경향이 있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김 회장은 숭전대(현 숭실대) 초대 총장을 지낸 고(故) 김형남 일신방직 회장의 차남이다. 예술을 전공한 식구는 없었지만 김 회장은 학생 때부터 미술과 음악에 관심이 많았다. “부모님은 예술을 잘 모르셨지만 외국 출장 때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 미술책자를 사오셨어요. 당시만 해도 그런 미술책이 국내에 없었어요. 오죽했으면 중학생 때 학년이 바뀌어도 미술책을 보관했다 그림을 오려서 화가별로 스크랩을 했을까. 중고등학교 6년을 통틀어 반 고흐의 삶에 대해 얘기한 미술 시간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분당 78회 돌아가는 레코드 플레이어로 음악을 즐겨 들었다. 용산 주한미군PX에서 앨비스 프레슬리, 비틀스의 앨범을 구해 들었다. 매년 12월이면 1년에 한 번 있는 오페라 공연을 보려고 명동 시공관(현 명동예술극장)을 찾았다. 이화여대 강당에서 하는 외국 연주자들의 공연도 빼놓지 않았다. “그때는 전력이 부족하고 방음벽이 허술해 공연 중에 웃지 못할 일이 많았어요. 연주 도중에 불이 꺼지고 근처 신촌역을 지나는 증기기차 소리가 ‘삐익~’ 하고 들리고, 어휴~.”

미국에서 유학할 때는 주말에 카네기홀과 미술관을 돌아다녔다. 자주 가던 곳이 뉴욕현대미술관(MoMA), 구겐하임, 휘트니 미술관 등이다. 미국에서 돌아와 74년 일신방직에 입사하면서 김 회장은 작품 수집을 시작했다. “돈이 있어야 컬렉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정말 관심이 있으면 돈이 없어도 됩니다. 저 역시 그때는 그저 월급쟁이였으니까요.”

그는 서울대·홍익대 미대 졸업 전시회에서 ‘작품’을 찾아냈다. “이름난 작가의 작품이 아니어도 됩니다. 보고 있으면 가슴에 와 닿는 작품이 있어요.” 작가가 누군지 모르고 산 작품도 많다. 작품을 구입하고 나서 작가가 유명해진 경우도 있다. 고영훈씨가 그렇다. 고씨는 2007년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한국 작품 최고가를 기록한 한국을 대표하는 화가다.

김 회장은 75년 홍대 졸업 전시회에서 고씨의 그림을 보고 그의 하숙집을 수소문했다. “한두 작품만 봐서는 작가의 성향을 알 수 없거든요.” 결국 그림을 서너 점 더 샀다. 91년 해외에서 작품을 구입할 수 있게 되면서 뉴욕 소더비 등 유명 경매에서 작품을 샀다. 직접 가지 못할 때는 카탈로그에서 작품을 고르고 대리인을 보냈다.



수집한 미술작품 수백 점

홍대 뒷골목에서든, 유명 경매장에서든 그가 작품을 선택할 때는 원칙이 있다. 제1원칙, 마음에 들어야 한다. 김 회장은 컨템포러리 아트(Contemporary Art)를 선호한다. 동시대 미술을 뜻하는 컨템포러리 아트는 해석하기에 따라 기준이 달라지지만 김 회장은 1960년대 이후 작품을 이 범주에 들인다. 수집품 가운데 추상적이고 미니멀한 작품이 많다. 이제까지 모은 작품이 수백 점이다. 정확한 작품 수는 알 수 없다고 했다. 한 인터뷰에서 200여 점이라고 공개한 것이 2007년이다.

“저 그림 좀 보세요.” 김 회장이 정면에 걸린 그림을 가리켰다. 하얀 캔버스에 파란색 붓 터치가 제멋대로 지나간 추상화다. “저게 뭐로 보입니까?” (고개를 갸웃하자) “여의도 본사에 걸린 그림이 대부분 추상화입니다. 직원들이 ‘저 그림은 무엇을 그린 것이냐’고 물으면 어떤 실물과 연결해 보지 말고 있는 그대로 감상하라고 말합니다. 작가는 무언가에 영감을 받아 그렸을지 모르지만 감상할 때는 그냥 봐서 좋으면 좋은 겁니다.” 눈으로 보고 가슴으로 느낀다는 거다. 이 그림 역시 작가가 누군지 모른 채 가슴에 와 닿아서 샀다.

“예술의 전당에 공연을 보러 갔어요. 기다리는 동안 다른 건물에서 전시회가 있다기에 가보니 입구에 ‘장영주’라고 써 있더군요. 바이올리니스트 사라 장이 그림을 그리나 싶어 들어갔지요. 전혀 다른 사람이었지만 그림이 마음에 들었어요.” 그 자리에서 작품을 세 점 구입했다.

김 회장은 크리스마스가 되면 한국 작가의 작품을 카드로 만들어 지인들에게 보낸다. 벌써 20년이 넘었다. 지난해 크리스마스 카드에는 장씨의 그림을 입혔다. 그에게 “그래도 피카소 같은 유명한 작가의 작품을 갖고 싶지 않느냐”고 묻자 “피카소 작품도 소장하고 싶겠지만 살아있는 작가의 작품을 구입하는 것이 예술발전에 기여하는 길”이라고 답했다.



살아 있는 작가의 작품을 산다

여기서 그의 작품 선택 제2원칙, 살아 있는 작가의 작품을 산다. “예술가가 죽은 뒤에 유명해지면 무슨 소용 있습니까. 반 고흐가 생전에 딱 한 작품을 팔았어요. 요즘 반 고흐 작품은 수천만 달러를 호가하지요. 자신의 작품을 인정받는 게 예술가에게 가장 보람된 일 아닙니까. 열심히 봐주고 들어줘야지요. 재능 있는 예술가의 작품을 사는 것이 그들을 지원하는 길이니까요.”

일신빌딩은 유명 작가의 작품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여의도 일신빌딩 9~11층은 아트리움으로 꾸며 누구나 와서 관람할 수 있게 개방했다. 이곳에는 도널드 저드, 솔 르윗, 이우환, 하종현 등 국내외 작가의 작품이 전시돼 있다. 한남동 일신빌딩은 1층을 전시장으로 꾸몄다. 이곳에서 역시 베르나르 브네, 토니 크랙 등 다양한 현대 작품을 볼 수 있다. 작품은 2~3개월에 한 번씩 교체하는데 김 회장이 손수 선별한다.

이곳은 가운데 계단과 엘리베이터를 제외하고 모두 작품을 전시하는 공간이다. 천장까지 탁 트여 시원함을 준다. “원래 한남동 로비에는 젊고 유능한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려고 했어요. 제가 직접 찾아나서야 하는데 요즘 게을러서 통 다니질 못했네요.” 말은 게을러서라고 했지만 김 회장은 작년에도 서울대·홍익대 졸업전시회를 찾았다. 하지만 가슴에 와 닿는 작품은 없었다고 한다.

개인 컬렉션은 자택에, 재단에서 구입한 컬렉션은 회사에 전시하지만 개인 컬렉션이 회사 전시관에 등장할 때도 있다. 한남동 빌딩 로비에 들어서면 보이는 자하 하디드의 ‘벤치’는 김 회장 자택 정원에 있던 작품이다. “박물관을 설립할 계획이 있느냐”고 묻자 잠시 망설이다 “현재는 그럴 계획이 없지만 언젠가 이 소장품들을 여러사람과 공유해야겠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일신홀은 규모는 작지만 세계적 첼리스트 요요마, 바이올리니스 재키브 등 유명 음악가들이 공연했다. 김 회장은 미술과 마찬가지로 현대음악을 선호한다. 일신홀에서 공연하려면 현대음악을 한 곡 이상 포함해야 한다.

“모든 예술은 시대를 앞서갑니다. 21세기 음악을 이해하려면 현대음악을 들어야 해요. 동시대의 예술을 듣고, 보지 않으면 예술에 접근하기 어렵습니다.대부분의 클래식 애호가들은 18, 19세기 고전·낭만주의 음악을 주로 듣는데 현대음악은 자주 접하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김 회장은 현대음악 작곡가들을 위한 일신작곡상을 제정했다. 선정된 곡은 매년 5월 서울스프링 실내악 축제에서 초연된다.

김 회장은 현대 음악 거장들과 오래 전부터 인연을 맺었다. 요요마는 이미 90년대 후반에 개관 기념 연주회를 약속했다. 리하르트 바그너의 손자인 볼프강 바그너가 생전에 한국을 찾았을 때도 김 회장을 만났다. 그는 93년 신갑순 삶과꿈 체임버오페라 싱어즈 대표, 김경원 전 주미대사 등과 함께 한국바그너협회를 창립했다. 그는 바그너에 대해 “복잡하고 어려워 즐겨 듣긴 힘들지만 깊이가 있어 좋다”고 말했다.



피아니스트 백건우와 인연피아니스트 백건우와는 각별하다. 김 회장은 “언제 어디서 처음 만났는지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오래 본 사이”라고 말했다. 연습 장소가 마땅치 않다는 백씨에게 김 회장은 기꺼이 집을 내줬다.

3년 전부터는 일신홀을 이용한다고 했다. 마침 인터뷰 날 백씨가 부인 영화배우 윤정희씨와 일신홀을 찾았다. 이틀 후 출국한다는 백씨는 김 회장을 가리켜 “만나기 어려운 분”이라며 웃었다. 이들은 이날 점심을 함께하며 회포를 풀었다.

김 회장은 예술적 기질을 타고난 ‘기업인’이다. 그는 모교인 프랫대학의 교훈인 ‘Be true to your work and your work will be true to you(당신의 일에 충실하면 그 일 역시 당신에게 충실할 것이다)’를 좌우명으로 삼고 30년 넘게 일신방직을 경영하며 한국의 면방직업을 이끌어왔다.

일신방직은 직접 소비자를 상대하는 기업은 아니다. 면화를 수입해 실을 뽑고 염색을 하는 섬유업체다. 규모와 생산성 면에서 업계 1위다. 일본인이 세운 전남방직이 모체로 김형남 선대회장은 51년 고(故) 김용주 대한해운공사 사장, 고(故) 이한원 동아상사 사장 등과 함께 회사를 인수했다. 일신방직으로 회사를 분리한 것이 61년이다.

일신방직의 일신은 사서의 하나인 대학에 나오는 ‘구일신 일일신 우일신(苟日新 日日新 又日新)’에서 따왔다. ‘날마다 잘못을 고쳐 덕을 닦음을 게을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동시에 일신은 고려시대 목화씨를 들여온 문익점의 다른 이름(字)이기도 하다.

김 회장은 74년 일신방직에 영업부 차장으로 입사했다. 그는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 기업가로서 면모를 보여줬다. 당시 봉제업을 하던 계열사 신동이 자금난으로 매각될 위기에 놓였다. 김 회장은 수익성이 나쁘지 않다고 판단해 75년 신동 대표로 취임했다. 적자였던 회사는 1년 만에 흑자로 돌아섰다.



방직산업 사양산업 아니다

73년과 79년 두 번의 오일쇼크를 겪고 82년 김 회장은 일신방직 사장에 취임했다. 취임하고 1년이 지나 광주 방적 제2공장에 불이 났다. 김 회장은 공장을 재건하기 위해 독일, 이탈리아, 일본 등 선진국을 방문해 자동화 시설을 둘러봤다. 가장 최신 자동화 설비를 들여와 새롭게 공장을 가동했다. 순차적으로 공장을 자동화 설비로 교체해 생산성을 높였다. 김 회장은 이때부터 ‘섬유산업이 사양산업 아니냐’는 얘기를 들었다고 한다.

“노동집약적인 봉제산업은 80년대 후반에 중국에 밀려 외국으로 터전을 옮겼지만 방적업은 자동화된 고성능 설비로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중국을 비롯한 개발도상국과 경쟁하기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고 했다.

“인구 13억 명의 중국에서 의류 수요가 늘고 있다는 것은 긍정적입니다. 특히 고급 의류를 찾는 수요가 늘어 위협인 동시에 기회라고 할 수 있지요. 앞으로 인도, 인도네시아 등 개발도상국의 국민소득이 늘어나면 섬유 소비량이 늘어날 것이라 기대합니다.”

일신방직은 90년대 들어 사업 영역을 확대했다. 계열사 신동이 와인 수입을 시작했다. 90년에는 투자회사 일신창업투자를 설립했다. 94년에는 캐주얼 의류업체 지오다노를 인수했다. 지오다노는 2000년대 초까지 젊은이들 사이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96년 영국 바디샵 제품을 수입하는 BSK를 설립해 현재 일신방직의 모습을 갖췄다.

김 회장에게 문화예술 활동이 기업에 미치는 영향을 물었다. “문화예술과 기업의 연결고리를 찾는다면 창의성 아닐까요. 기업은 잘하는 기업을 벤치마킹 해서 모방해도 되지만 예술은 모방하면 예술이 아닙니다. 기업을 벤치마킹 할 때도 창의성이 있어야 합니다. 예술은 독창성을 길러주고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게 해줍니다.”

김 회장은 우리나라에 윈드서핑 문화가 없던 80년대 독학으로 한강에서 바람을 갈랐다. 골프를 안 치는 대신 테니스, 스키 등을 즐긴다. 직원들도 함께할 수 있게 회사에 동호회를 만들었다. 주말이면 직원들과 자전거를 타러 간다. 공장에 노래방, 디스코텍을 만들기도 했다. 그를 보니 훌륭한 작품을 알아보는 심미안과 기업의 미래를 보는 혜안이 크게 다르지 않은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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