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유상호 한국투자증권 사장
[CEO] 유상호 한국투자증권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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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기업이란 최고의 인재가 모여 최고의 성과를 내고 그래서 최고의 보상을 받는 회사입니다. 이게 선순환이 돼야 하는데 한국투자증권이 그 궤도에 들어섰다고 봅니다.”
유상호(52) 한국투자증권 사장은 “한투증권은 급여도 증권업계 1등, 구성원의 생산성도 1등, 지난해를 기준으로 하면 실적도 종합순위 1위”라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한투증권은 3월 말일 마감한 2011회계연도의 순이익이 업계 1위다. 또 오프라인의 주식 위탁매매, 주식형 펀드 판매, 법인 영업에서 기업공개(IPO) 주간업무, 회사채 인수 및 프로젝트 파이낸싱 등의 투자은행(IB) 부문에 이르기까지 주요 부문 실적이 고르게 1~3위다. 경쟁사들은 이들 실적이 1~8위로 들쭉날쭉이다.
이런 성과를 계속 이어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경쟁사인 삼성증권·대우증권·우리투자증권은 각각 삼성그룹·산업은행·우리금융그룹이 뒤에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독립 증권사인 한투증권으로서는 앞으로도 고군분투하는 길밖에 없다.
4월10일 오후 여의도 한투증권 접견실에서 유 사장을 만났다. 그는 한투증권이 일부 언론사가 실시한 증권사 리서치센터 평가에서 지난해 1위를 한 것에 대해 각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꾸준히 업그레이드한 결과 리서치 쪽도 자타가 공인하는 1등이 됐습니다. 리서치센터는 증권사의 연구·개발(R&D) 부문입니다. 정보기술(IT) 부문과 더불어 영업의 기본적인 인프라라고 할 수 있죠. 한마디로 우리 회사가 영업에 필요한 무기가 가장 뛰어나다고 평가 받은 거죠.”
그는 한투증권의 핵심 역량은 사람이라고 했다. “기댈 언덕 없는 우리가 몸으로 부딪치며 최고의 실적을 낸 건 구성원들의 인당 생산성이 업계 최고 수준인 덕입니다. 비즈니스 포트폴리오가 가장 잘 짜여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CEO 등극 ‘30년 로드맵’ 그려한투는 전체 수익에서 주식 위탁매매, 투자은행, 자산관리가 차지하는 비중이 4 대 3 대 3이다. 반면 다른 회사들은 위탁매매가 절반이 넘는다. 한투의 수익구조가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라는 얘기다.
이런 구조는 시장이 출렁거리더라도 변동성이 작게 마련이다. 한투증권은 2005년 동원증권과 합병했다. 대우증권 출신인 그는 메리츠증권, 동원증권을 거쳐 한투에 합류해 2007년 사장 자리에 올랐다. 그의 나이 47세, 증권업계에 투신한 지 18년여 만이었다.
미국 오하이오주립대에서 MBA를 마치고 돌아온 그가 입사했을 때 대우증권은 업계 1위였다. 2위 증권사보다 규모가 두 배 이상 컸다. 평판도 좋아 ‘증권 사관학교’로 통했다. 그는 대우증권을 세계 어느 금융시장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는 회사로 만드는 데 일익을 담당하겠다는 원대한 목표를 세웠다. 대우증권의 CEO가 되겠다는 장기 계획도 세웠다. 특진도, 성과급도 없던 시절 최단 코스로 로드맵을 그려 보니 29년이 걸렸다. 그래서 30년 계획을 세웠다. 그대로 지켜지지는 않겠지만 이 인생 설계에 충실하면 꿈에 다가설 수 있을 것 같았다. 대우그룹 붕괴로 대우증권의 주인이 바뀌면서 꿈은 무산됐지만 그는 30년을 11년여 단축해 증권업계 최연소 CEO가 됐다.
“운이 좋았죠. 나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하는 마음에 대리 시절엔 우리 과, 차장 땐 우리 부서, 런던 현지법인에 근무하던 시절엔 런던 법인, 임원이 되고 나서는 우리 본부 이렇게 내가 속한 단위 조직의 구성원들이 편안하고 즐겁게 일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그러면 실적도 좋아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까지 잘 맞아떨어졌어요. 항상 제가 맡은 조직의 실적이 가장 뛰어났습니다. 사장이 된 후로도 한투가 지속적으로 성장해 업계 1위를 했죠.”
CEO 6년차인 그는 재임 중 주요 실적으로 안정적인 수익 구조 구축이나 순이익 1위보다 구성원을 가장 뛰어난 금융 전문가 집단으로 만든 것을 첫손에 꼽았다.
“동원증권 지점 출신은 주식 위탁매매 쪽 일이 많았고, 한투 출신은 펀드 판매 같은 자산관리가 주 업무였습니다. 오른손잡이와 왼손잡이처럼 서로 장기가 달랐던 셈이죠. 여러 시스템을 만들어내고 교육을 실시해 이들을 양쪽 영업을 커버할 수 있는 양손잡이로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업무 역량이 커지니까 생산성이 높아졌습니다.”
그의 멘토는 메리츠증권 사장을 지낸 황건호 전 금융투자협회장과 강창희 미래에셋 부회장이다. 황 전 회장은 대우증권 뉴욕사무소장으로 있을 때 미국 유학 중이던 그에게 공부를 마치면 대우증권으로 오라고 권했고, 입사 때 추천서를 써줬다. 대우증권을 떠난 후 유 사장은 황 전 회장과 함께 메리츠증권에 몸담았다. 강 부회장 역시 대우증권 출신으로 대우의 리서치센터 센터장을 지냈다. 그는 서로 다른 확실한 장기를 지닌 두 사람에게서 그 장점을 흡수하려고 노력했다고 했다.
1990년대 그는 7년 남짓 대우증권 런던법인에서 일했다. 영국인들에게 한국의 주식을 파는 게 일이었다. 영업은 처음이었다. 영국은 그때까지도 신분사회였다. 전화가 거의 유일한 소통 수단이던 시절 영국인들은 모르는 세일즈맨에게 걸려온 전화는 받지도 않았다. 그는 영국인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입력하기 위해 제임스라는 영어 이름을 쓰고 사무실 전화번호도 8007을 골랐다. 그들에게 친숙한 ‘007 제임스 본드’의 지명도를 활용한 것이다. 그가 독립 증권사 CEO로서 지금도 하고 있는 ‘맨땅에 헤딩’은 그렇게 시작됐다. 영국 투자자들은 신흥국인 한국에 대한 투자를 불안해 했다. 그는 한국의 기업회계, 법제 등에 대해 설명하는 자리를 만들어 신뢰를 쌓아갔다. 각고의 노력 끝에 실적이 쌓이기 시작했다. 대우증권을 통해 이루어진 외국인 투자의 60% 이상을 그가 해 낸 적도 있다. 사람들은 그를 ‘레전드리 제임스’(Legendary James·전설의 제임스)라고 불렀다. 그 시절 쌓은 경험이 오늘의 자신을 만들었다고 그는 털어놓았다.
금융은 신뢰를 파는 것“그 무렵 옛 소련이 해체됐는데 모스크바 한복판에 떨어져도 살아남을 수 있겠더라고요. 도전과 실패의 경험을 쌓는 한편 세계 금융시장에 대한 나름의 시각도, 폭넓은 시야도 얻었습니다. 한국이 어떤 변화를 겪을지 한발 앞서 내다보는 훈련도 받았죠.”
레전드리의 ‘영업비밀’은 무엇일까. “금융은 무형의 상품을 파는 일입니다. 애플 아이폰과 삼성전자 갤럭시2 를 보여주면서 설명하고 어느 하나를 사게 만드는 것과 애플 주식과 삼성전자 주식의 향후 전망에 대해 설명하고 한 종목을 추천하는 것, 어느 쪽이 더 어렵겠어요? 금융 영업은 그래서 신뢰를 쌓는 게 중요합니다. ‘저 사람은 나의 이익을 위해 일한다’는 믿음을 심어줘야 돼요. 그러자면 정말 고객 입장에서 고민하고 노력하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줘야 합니다. 한 번 입 밖에 낸 말은 반드시 지켜야 하고요.”
런던에 근무하던 시절 그는 아내와 딸을 위해 주말이면 간단한 요리를 했다고 한다. 그는 당시 식구들 반응이 좋았다고 말했다. 그러다 보니 요리가 취미가 됐다. 귀국 후엔 그러나 집에서 밥 먹는 일조차 드물다. 그는 은퇴하고 나서 이 취미생활을 즐길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탈리아 요리부터 차근차근 배워 보려고 합니다. 지인들을 여러 명 초대해 가장 간편하게 만들어 먹이기엔 이탈리아 음식이 좋을 듯싶습니다. 파스타부터 시작하려고요.”
송호근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얼마 전 유 사장에 대해 신문에 에세이를 썼다. 송 교수는 이 글에서 “증권인으로 받을 수 있는 상 중 최고로 영예로운 상을 재임 5년 간 세 번 받은 그에게 부럽다고 했더니 ‘아 뭘요, 제가 죄송하죠’하더라며 그 내공이 얄밉기까지 하다”고 썼다. 그는 한 신문사가 주는 증권인상을 세 번 탔는데 2010~2011년엔 2년 연속 수상했다. 송 교수 말마따나 탁월함과 겸손함을 겸비한 내공은 어떻게 쌓이는 걸까. 그에게 좌절의 경험이 있느냐고 물었다.
“은행에 다니다 유학을 떠났고 죽을 만큼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그 후로 두 번 더 이직했고 해외근무도 했습니다. 이렇게 계속 도전을 하다 보니 작은 실패는 숱하게 겪었는데 큰 좌절은 없었어요. 작은 실패가 쌓이면서 생긴 내성이 큰 좌절을 막아준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를 발탁한 사람은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의 장남인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부회장이다. 메리츠증권 전략영업사업본부장 겸 기획·재경본부장으로 있던 유 사장의 후배와 김 부회장이 가까운 사이였다. 후배의 소개로 만난 김 부회장에게서 몇 달 후 식사를 같이하자는 연락이 왔다. 김 부회장이 그에게 “증권사나 증권업계가 앞으로 어느 방향으로 나가는 게 좋으냐”고 물었다. 그의 의견을 경청한 김 부회장이 “그러면 동원증권에 와서 그렇게 해 보시죠”라고 제안했다. 이렇게 해서 그는 동원증권 부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유 사장은 “지금 한투증권이 그때 겨눴던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밝혔다.
“초년병 시절부터 현재의 직위보다 상급자 입장에서 사고하고 행동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임원일 땐 사장의 시야를 보려고 노력했죠. 그러다 보니 무슨 갈등이 생겨도 양보하고 돕게 되더군요.”
그는 겨울이면 주말에 산행을 한다. 올라갈 때는 힘들지만 정상에 다다르면 기분이 좋고 내려올 때도 뿌듯하다. 그때마다 그는 인생이란 등반의 하산 길에 대해 생각해 본다. 이렇게 자기경계를 하고 평상심으로 퇴장에 대한 마음의 준비도 한다.
해마다 세밑이면 그는 이런 생각들을 업데이트한다. 현업을 떠나면 국민경제와 산업을 위해 봉사도 하고 대학에서 강의도 할 생각이다. 재능 기부 차원에서 젊은 세대에게 자신이 축적한 경험을 전수하고 싶어서다.
“조직생활을 하면서 남한테 한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 제가 가장 큰 혜택을 받았습니다. 제가 속한 하부조직이 늘 실적이 가장 뛰어났는데 그렇다 보니 그 혜택이 저에게 돌아왔죠. 그 덕에 제가 가장 잘 나갔고요.”
한투증권의 비전은 2020년 아시아의 리딩 IB가 되는 것이다. 경제 규모는 작고 리스크는 커 글로벌 IB가 안 들어간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에 진출하면 ‘호랑이 없는 골의 토끼’ 노릇은 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의 꿈대로라면 30년 후 베트남에 한투증권의 ‘아바타’가 출현할지도 모른다.
한국의 증권사가 세계적인 IB가 될 수 있을까. 그는 불가능하다며 고개를 저었다. 금융기관의 경쟁력은 모국 경제력의 총화에 비례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자산관리 부문은 잘하면 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뛰어난 사람들이 자산 운용을 잘해 높은 수익을 올리면 전 세계 투자가들이 돈을 맡길 수도 있죠. 한국의 젊은이들이 얼마나 똑똑합니까. 실제로 전 세계 헤지펀드에 한국 사람들이 많이 근무합니다. 그래서 저는 젊은 세대에게 특강을 할 때면 해당 분야에서 제일 뛰어난 조직에 들어가 치열하게 경쟁하라고 말합니다. 그래야 눈높이가 높아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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