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MODERN BLUE BLOOD] ‘버진 제국’ 만든 영국 브랜슨 가문

[MODERN BLUE BLOOD] ‘버진 제국’ 만든 영국 브랜슨 가문

리처드 브랜슨(62) 영국 버진 그룹 회장은 2012년 포브스 세계 억만장자 순위에서 재산 42억 달러로 255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그는 재산이나 사업 규모로만 따질 수 없는 인물이다. 그는 미디어를 잘 활용할 줄 알고 미디어에 자주 등장하는 사람이다. 브랜슨은 사업을 벌일 때나 사생활에서 화제를 몰고 다닌다.

그는 도전하는 삶을 살고 있다. 요즘 기준으로 보면 그의 사업은 대부분 벤처다. 대중의 관심을 끌어야 성장할 수 있는 업종이 많다. 다시 말해 대중을 직접 상대하는 업종이다.

대중이 원하는 상품을 아무도 하지 않았던 방식으로 제공하는 것이 브랜슨 회장의 모토다. 소비자의 욕구를 충족시켜 그들의 삶을 충만하게 해주기 위해서란다. 그래서 그의 사업은 일관성이 있다. 대중은 음반을 사서 음악을 듣고 클럽에 가서 춤을 추며, 휴가 때 비행기나 기차를 타고 여행을 떠나길 원한다. 휴가지에서는 음료수를 마시며 음악을 듣고 춤을 춘다. 버진의 사업은 이 모든 일의 길목을 지키고 있다. 그것이 버진 제국이다.



경영과 인생 모두 도전의 연속버진 제국이 세워진 과정은 브랜슨의 인생과 비슷하다. 그의 삶은 극적이다. 그의 삶은 그 자체로 하나의 일화가 돼 버진 그룹을 더 유명하게 만들었다. 브랜슨 회장은 1950년 런던의 중산층 가정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할아버지는 대법관, 아버지는 변호사였다. 부모의 뜻에 따라 사립학교에 다녔지만 난독증이 있어 성적이 좋지 않았다. 그는 고등학교 졸업을 끝으로 학업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그는 대입 예비학교에 진학하는 대신 사업을 하기로 결심했다. 어머니 이브는 “네가 좋아하고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라”고 조언했다. 이런 어머니의 가르침은 훗날 브랜슨 회장의 경영철학이 됐다.

브랜슨은 모두 좋아하지만 아무도 사업화하지 않은 분야를 찾았다. 66년 첫 사업으로 크리스마스 트리를 심고 잉꼬를 길러 팔려고 했으나 실패했다. 그 다음 시작한 것이 오늘날 브랜슨 회장을 있게 한 음반 판매업이다.

그는 교회 지하실을 빌려 음반을 우편으로 판매하는 사업을 했다. ‘스튜던트’라는 이름의 잡지도 발행했다. ‘버진’이라는 브랜드를 사용한 게 이때부터다. 당시 한 직원이 “사장이나 직원이나 일하는 사람 모두 사업에 초보니 브랜드 이름을 버진이라고 하는 게 어떠냐”고 제안한 것이 계기였다.

브랜슨은 비용을 줄여 가격을 낮추는 전략을 썼다. 고객이 원하는 상품을 싼값에 사면 만족한다는 그의 경영철학은 사업 초기부터 굳어졌다. 잡지를 이용한 파격 광고 전략이 빛을 발해 우편 판매로 시작한 음반사업은 곧 매장 개설로 이어졌다. 71년 21세의 브랜슨은 런던의 번화가 옥스퍼드 스트리트에 음반 매장을 열었다. 하지만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개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밀수한 음반을 팔았다는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 그는 위기에 정면으로 맞섰다. 세금과 벌금을 모두 부담하기로 하고 기소를 면했지만 재정적으로 큰 손실을 입었다.

이브는 대대로 살아온 집을 담보로 잡혀 아들의 사업을 도왔다. 자금이 필요하면 가장 소중한 것을 팔아서라도 변통하는 브랜슨의 경영 방식은 어머니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음반사업은 초기 시련을 극복하고 순식간에 날개를 달았다. 그는 그 동안 번 돈으로 음반제작사인 버진 레코드를 세웠다. 한 사업으로 번 돈을 몽땅 다음 사업에 과감하게 투자하는 ‘브랜슨식 연쇄 비즈니스’의 시작이었다. 비용을 아끼기 위해 런던을 떠나 시골에 스튜디오를 열었다. 그는 아직 데뷔하지 못한 풋내기 음악가들에게 스튜디오를 빌려주고 연습과 작곡을 하게 했다. 기존 음반사에서 거들떠보지 않는 기괴하고 기상천외한 음악가들에게 기회를 줬다. 섹스피스톨 같은 그룹을 발굴해 인기를 얻었다. 지금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파우스트나 캔, 컬처클럽 같은 새로운 뮤지션을 발탁했다. 대중에게 익숙한 음악 분야를 다른 사람이 시도하지 않은 방식으로 사업화한 것이 주효했다. 80년대 브랜슨은 헤븐이라는 이름의 게이 나이트 클럽 사업도 벌였다.

버진 레코드는 버진 제국의 문을 여는 공신이었다. 하지만 92년 브랜슨은 잘 나가던 버진 레코드사를 5억 파운드에 팔았다. 버진 항공(현 버진 애틀란틱 항공)을 살리기 위해서였다. 대대로 살아온 집을 저당 잡혀 버진 레코드 가게의 회생을 도왔던 어머니에게 배운 방식 그대로였다. 계약서에 서명한 그날 브랜슨은 울었다. 자신의 오늘을 있게 한 회사를 판 데서 느낀 회한이었다. 음반사업에 미련이 남아서인지 브랜슨은 나중에 V2레코드를 창업한다.

그는 해외여행 붐을 예상하고 84년에 버진항공을 설립했다. 2000년에는 호주에 버진 블루(현 버진 호주) 항공사를 세웠다. 96년에는 유럽의 단거리 항공 노선을 노려 벨기에의 유로벨지언 에어라인을 매입, 버진 익스프레스 항공으로 바꿨다. 자회사로 버진 익스프레스 프랑스도 뒀다. 버진 익스프레스는 2006년 SN브뤼셀 항공과 통합해 브뤼셀 항공이 됐다. 이후 나이지리아의 국적 항공인 버진 나이지리아, 샌프란시스코를 기반으로 운항하는 버진 아메리카도 세웠다.

93년에는 철도 민영화가 한창이던 영국에서 버진 트레인을 설립해 철도사업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94년엔 버진 콜라와 버진 보드카도 세웠다. 레저를 중요시하는 현대인의 삶에 맞는 비즈니스 제국은 점점 모습을 갖춰갔다.

글로벌 휴대전화 사업도 발 빠르게 시작했다. 99년 버진 모바일을 세워 세계시장을 무대로 휴대전화 사업을 시작했다. 캐나다, 인도, 미국, 호주, 남아프리카 공화국, 프랑스, 칠레, 카타르, 싱가포르에서 휴대전화 사업을 벌였다. 휴대전화 사업은 2006년에 10억 파운드를 받고 영국 케이블TV업체인 NTL에 사업권을 넘겼다.



업한 회사 400개 넘어여기까지는 특유의 사업 감각으로 이룬 성공이다. 놀라운 일은 2004년에 시작됐다. 바로 우주 관광 사업이다. 브랜슨은 버진 갤럭틱을 세워 우주관광 분야를 개척하고 이를 사업화하겠다고 발표했다. 같은 꿈을 꾼 마이크로소프트 공동 창립자 폴 앨런의 투자를 받아 스페이스 원이라는 우주선을 만들고, 지구 궤도 끝까지 무중력을 마음껏 경험하고 돌아오는 관광 코스를 개발했다. 티켓 가격이 무려 20만 달러인 개인 우주관광은 전 세계 수많은 부호를 끌어들이는 VVIP 관광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우주관광 사업 이후 브랜슨은 친환경 사업을 시작했다. 그는 창의력, 사업 감각과 함께 개념을 갖춘 기업인이라고 불렸다. 2007년 영국과 미국에 버진 그린 펀드를 세우고 친환경 에너지 개발과 이용을 위한 비영리 사업을 시작했다. 이를 위해 버진 항공과 버진 트레인에서 나오는 모든 수익금을 버진 그린 펀드에 투자하겠다고 선언했다. 또 두 회사에서 쓰는 연료를 친환경 연료로 바꾸겠다고 공언했다. 그의 친환경 사업은 바이오 연료, 태양광 발전, 에너지 효율 개선 장치, 효율적 에너지 보관법, 쓰레기 관리법, 수질 관리법, 수송 효율 개선법 등을 포함한다. 브랜슨은 이 사업에 30억 파운드를 투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의 전 재산을 쏟아 붓는 ‘올인’에 가까운 투자다.

브랜슨은 2000년 기업활동에 대한 공로로 기사 작위를 받았다. 그는 버진 그룹을 운영하며 400개가 넘는 회사를 창업했다. 성공 비결은 ‘사람들이 원하지만 아직 없는 것을 개발해 공급한다’ ‘사람들이 돈을 쓸 수밖에 없는 곳에서 돈을 번다’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그의 경영 수완 가운데 하나가 자신을 브랜드화 하는 것이다. 그는 언론에 오르내릴 이벤트를 자주 벌인다. 그만큼 화제의 인물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부호도 드물 것이다.



바다 횡단, 세계일주로 유명대표적인 게 모험과 신기록 도전이다. 시작은 85년 대서양 요트 횡단을 시도한 것이었다. 버진 애틀랜틱 챌린저라는 이름의 요트를 몰고 바다로 나간 그는 경험 부족으로 영국 영해를 벗어나기 전에 배가 파선돼 구조를 요청하는 신세가 됐다. 그 뒤 3년 동안 준비한 끝에 85년 버진 애틀랜틱 챌린저 2호를 타고 대서양을 횡단해 세계 기록을 2시간 단축했다. 이번에는 항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았다. 이후 그의 모험에는 반드시 다른 사람의 지원이 뒤따랐다.

다음해에는 버진 애틀랜틱 플라이어라는 이름의 대형 열기구를 타고 대서양을 횡단했다. 91년에는 태평양 횡단에 성공했다. 일본에서 캐나다 북부 북극 지역까지 1만800km를 열기구를 타고 비행했다. 평균 시속 394km로 날아 비행 속도에서 세계 기록을 세웠다. 여세를 몰아 95~98년 열기구를 이용한 지구 일주를 네 차례나 시도했으나 부분 세계 기록만 세웠을 뿐 첫 지구 일주의 영광은 시계회사 브라이틀링의 지원을 받은 팀에 뺏겼다. 하지만 2004년에 수륙양용 차량을 이용해 1시간 40분 6초 만에 도버 해협을 횡단하는 기록을 세웠다.

브랜슨은 이처럼 삶 자체를 화제로 만들어 사업을 홍보했다. 자신의 이름과 자신이 경영하는 버진 그룹을 동시에 대중에게 각인하는 전략이다. 그는 98년에 자서전을 냈는데 책 이름이 『처녀성을 잃으며(Losing My Virginity)』였다. 괴팍한 책 이름 덕분인지 자서전은 베스트셀러가 됐다.

브랜슨은 2남 2녀의 장남이다. 여동생 안드레아는 주부고, 바네사는 북아프리카 모로코에서 문화축제를 기획하고 런던에서 갤러리를 운영하는 문화인사다. 남동생 톰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변호사가 됐다. 브랜슨은 72년 크리스틴 토마시와 결혼해 79년 이혼했다. 이후 조앤 템플맨과 결혼해 1남2녀를 뒀다. 큰 딸 클레어 새러는 태어난 지 나흘 만에 세상을 떠났다. 이후 둘째 딸 홀리(30)와 아들 샘(26)을 얻었다. 홀리는 최근 브랜슨 소유의 버진군도 네커 섬에서 결혼식을 올리며 영국 언론에 등장했다. 그는 버진 제국을 이어받을 인물로 주목 받고 있다.



의사 출신 딸 영입해 2세 경영 준비홀리는 16세 때 여성 잡지 코스모폴리탄에 아버지가 운영하는 버진 청바지의 모델로 등장했다. 그 뒤 왕실 파티에 모습을 드러냈지만 파파라치의 주목을 받지는 않았다. 대신 학업에 열중해 런던대 유니버시티 칼리지 의대를 졸업하고 신경과 전문의가 됐다. 전문의는 반드시 종합병원에 근무해야 하는 체제에 따라 홀리는 런던 시내에 있는 첼시 앤 웨스터민스터 병원에서 근무했다. 그는 브랜슨이 의료 벤처사업인 버진 헬스케어를 세우면서 버진 제국에 입성했다. 홀리는 이곳에서 후계자 수업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남동생 샘과 함께 현대 명문가를 이을 후보 1순위로 꼽힌다.

샘은 옥스퍼드에 있는 명문 사립학교 세인트 에드워드 스쿨을 마치고 대학에 진학했으나 한 달 만에 그만두고 요리, 음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진로를 모색했다. 최근에는 지구 온난화를 주제로 다큐멘터리를 만들 계획을 세웠다. 수줍은 성격이 사업에 적합하지 않다는 얘기도 들린다.

브랜슨은 2008년 빌 게이츠가 재산을 자식에게 남기지 말고 사회에 기부하는 게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했을 때 이렇게 말했다. “버진 그룹은 이익의 상당 부분을 질병을 퇴치하고 지구 온난화를 해결하는 일에 쓴다. 내 아이들이 이 일을 하겠다면 재산을 기부하기보다 자식들에게 물려줘 계속하게 하겠다. 그것이 버진 그룹이 버는 돈으로 세상을 바꾸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1인 가구 월평균 소득 315만원…생활비로 40% 쓴다

2‘원화 약세’에 거주자 외화예금 5개월 만에 줄어

3서울 아파트 실거래가 지수 9개월 만에 하락

4국제 금값 3년 만에 최대 하락…트럼프 복귀에 골드랠리 끝?

5봉화군, 임대형 스마트팜 조성… "청년 농업인 유입 기대"

6영주시, 고향사랑기부 1+1 이벤트..."연말정산 혜택까지 잡으세요"

7영천시 "스마트팜으로 농업 패러다임 전환한다"

8달라진 20대 결혼·출산관…5명 중 2명 ‘비혼 출산 가능’

9김승연 회장 “미래 방위사업, AI·무인화 기술이 핵심”

실시간 뉴스

11인 가구 월평균 소득 315만원…생활비로 40% 쓴다

2‘원화 약세’에 거주자 외화예금 5개월 만에 줄어

3서울 아파트 실거래가 지수 9개월 만에 하락

4국제 금값 3년 만에 최대 하락…트럼프 복귀에 골드랠리 끝?

5봉화군, 임대형 스마트팜 조성… "청년 농업인 유입 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