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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바꾼 엔진

역사를 바꾼 엔진



쉐보레의 스포츠카 콜벳은 거의 모든 점이 ‘나를 가져줘(do me)’라고 외치는 듯했다. 수석 엔지니어부터 그랬다. 조라 아쿠스-둔토프는 여자를 좋아했다(was a lady’s man). 나치 시대 베를린에서 여자 꽁무니를 쫓아다녔다. 그리고 그중 하나와 결혼한 뒤에도 오랫동안 그 습관을 버리지 못했다. 중년의 나이에 맨해튼에 살 때도 그는 돈 많은 바람둥이였다. 엔지니어링 회사를 경영하며 취미로 자동차 레이싱을 했다. 그러던 중 원조 콜벳을 목격했다. 이 한정판 1953년 모델은 곡선이 두드러졌으며, 지붕의 탈착이 가능하고, 몸체가 순백색이며 내부는 빨간색으로 장식됐다. 그는 심장이 멎는 듯했다.

그러나 그 차는 빛 좋은 개살구(a tease)였다. 속도가 느리고 운전하는 재미가 없었다. 뉴욕에서 그 초기모델을 본 뒤 아쿠스-둔토프는 제조사를 설득해 엔지니어링 팀의 일원이 됐다(talked his way onto the engineering team). 그 뒤 수십 년 사이 콜벳을 그의 말마따나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완벽한 짝짓기 구애신호(nothing short of a mating call)”로 변모시켰다. 강력한 신형 8기통 엔진과 부드러운 수동 변속기를 장착했다. 그는 그 자동차를 개조차 문화의 총아로 만들었다(endeared the car to hot-rod culture). 노소를 막론하고 그 판타지에 매료되리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 판타지는 오늘날까지도 계속된다.

그 과정에서 아쿠스-둔토프가 만든 차가 미국을 바꿨다고 폴 인그라시아는 신저 ‘변화의 엔진(Engines of Change)’에서 주장한다. 머리가 아닌 가슴에 호소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섹스 어필은 말할 필요도 없다(not to mention points further south). “그 궁극적인 결과는 청년층 마케팅의 부상, 그리고 좋든 나쁘든 여드름 치료 크림, 맞춤 디자이너 청바지, MTV 광고의 연속이었다”고 그는 썼다.

거창한 명제이지만 그 거창함은 이른바 “15대의 자동차로 보는 미국 근대사” 책에서 인그라시아가 추구하는 목표다. 각 장은 특정한 판금(sheet metal)과 고무가 얼마나 “독특하게 시대정신을 반영하는지”를 미풍처럼 부드럽고 차창을 내린 듯 시원하며 볼륨을 키운 라디오처럼 평가했다(is a breezy, windows-down, radio-up review).

인그라시아는 주행기록계(odometer)를 자동차 도시 디트로이트의 전성기로 돌려 헨리 포드의 모델 T부터 더듬어간다. 그렇게 단순한 자동차가 통한 이유는 대다수 미국인이 단순히 호화스러운 사륜마차(a sumptuous traveling coach)가 아니라 더 좋은 말을 원했기 때문이라고 그는 주장했다. 당시 대다수 제조사가 판매하는 자동차가 고급 사륜마차나 다름 없었다. 1908~1927년 모델 T는 다른 어떤 자동차보다 많이 팔려나갔다.

그러나 현대 미국 문화는 “기본적으로 실용성과 과시욕 간의 큰 줄다리기(basically a big tug-of-war)”라고 그는 썼다. 그의 역사해설도 같은 식으로 전개된다. 인구가 도시 그리고 번쩍이는 밤문화를 향해 쏠리면서 “자동차는 개성 표현의 수단이 됐다”. 제너럴 모터스는 1927년형 라살 쿠페로 이런 변화에 편승했다. 프랑스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이 로드스터(roadster, 2~3인승 오픈카)는 한 평론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파리의 드레스처럼 참신했다(as refreshing as a Paris frock).” 모델 T는 라살이 탄생한 해 단종됐다.

매 10년마다 그 시대에 어울리는 자동차가 탄생한다고(every decade gets the car it deserves) 인그라시아는 주장한다. 1950년대 공황과 전쟁이 끝난 후 자동차 현시욕(automotive pretension)이 지배했다. 그것은 1959년식 캐딜락 엘도라도 비아리츠로 절정에 달했다. 몸체가 요트보다 길고 테일핀(tailfin, 자동차 트렁크의 양 끝을 꼬리지느러미처럼 올린 장식)이 거의 지붕 높이만큼 치솟았다. 1960년대에도 머스탱과 폰티악 GTO가 이런 경향을 물려받았다. 머스탱은 어느 포드 중역의 말마따나 “학교 사서”에서 “섹시걸(sexpot)”로 변신했다. 폰티악 GTO는 권태를 느끼는 아이젠하워 시대의 아버지와 드래그 레이스(drag-racing, 짧은 거리를 달리는 경주)를 즐기는 그 자녀들을 모두 겨냥한 머슬카(muscle car, 크고 고급스러우며 배기량이 큰 스포츠카)다.

자동차 제조사들이 문화를 창조하느냐 아니면 단순히 반영하느냐는 의문은 물론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문제(the chicken-and-egg question)와 같다. 자동차 제조사들은 미국인들이 원하는 것을 예측하기 위해 아낌없이 돈을 쓴다(spend lavishly to divine what Americans want). 하지만 인그라시아의 사례연구로 판단할 때 수요의 예측에 성공하는 경우는 드문 듯하다. 지프 체로키, 포드 F 시리즈 픽업, BMW 3 시리즈 모두 인그라시아의 연구사례에 포함된다. 이들은 수십 년간 꾸준히 소비자들에게 사랑을 받다가 문화의 시금석(cultural touchstone)이 됐다. “양쪽 모두라고 해두자(Let’s just say it’s both)”고 월스트리트저널의 자동차 업계 전문기자로 퓰리처상을 받은 인그라시아는 썼다.

자동차가 아닌 다른 요인으로 인그라시아의 조사대상에 꼽힌 경우도 있다. 1989년 혼다 어코드는 미국에서 미국산 자동차보다 많이 팔린 최초의 외제차가 됐다. 그 차도 인그라시아의 리스트에 포함됐다. 혼다가 오하이오주에서 자동차를 생산하기로 함에 따라 외제차와 국산차 간의 경계가 불분명해졌기 때문이다(그와 함께 중서부에 초밥이 전파됐다). 쉐보레 코베어의 영향은 훨씬 더 간접적이었다. 1959년 콤팩트카가 처음 판매됐다. 그것은 “조지 W 부시의 대통령 당선을 도왔다”고 인그라시아가 썼다. 어떤 관련성이 있었을까? 랠프 네이더는 자동차가 ‘어떤 속도에서도 안전하지 않다(Unsafe at Any Speed)’고 주장하는 책을 펴냈다. 그 책으로 그는 일약 유명인사가 됐다. 30년 뒤 그가 대통령에 출마해 민주당 표를 대거 빨아들이면서 공화당에 승리를 안겨줬다.

인그라시아가 선정한 ‘역사를 창조한 자동차’의 이면에는 운·배짱, 그리고 시장조사에 의존해 걸작을 탄생시킨 주역이 한 두 명은 꼭 있다. 그러나 디트로이트는 수익성 회복에도 불구하고 갈림길에 섰다. 자동차 업계는 인그라시아 같은 베이비부머로부터 뽑을 만큼 최대한 뽑아냈다(has made all it can from boomers). 인그라시아는 자녀들이 어렸을 때 미니밴 3대를 갈아치운 뒤(after running through three minivans) 지금은 빨간색 BMW를 타고 다닌다. 디트로이트의 숙제는 그 자녀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내는 일이다.

2025년까지 모든 차량이 갤런 당 54.5마일의 연비기준을 달성해야 함에 따라 전기 자동차가 유리해진 듯하다. 인그라시아 리스트의 마지막에 오른 도요타 프리우스는 신형 완전 전기자동차 닛산 리프, 세보레의 히트 모델 볼트 등 “자동차-추진 혁명(automotive-propulsion revolution)”의 기폭제 역할을 했다고 그는 주장한다.

그러나 자녀 세대는 전혀 원하는 게 없을지도 모른다. 인그라시아의 장성한 남자아이 셋은 미국 젊은 세대의 전형에 가깝다. 하나는 운전을 하지 않고 둘은 구형 닛산으로 만족한다. “그 녀석들은 차에 관심이 없다”고 그가 말했다.

번역 차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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