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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lgerian Rose 알제리의 장미

The Algerian Rose 알제리의 장미



신곡 ‘엘 와탄 엘 아크바르(위대한 나라)’는 아랍 세계 전역에서 젊은이들의 가슴 속에 거칠게 소용돌이치던 감정을 표현한 듯했다(seemed to capture the sentiments that were running wildly through the hearts of young people across the Arab world). 해방을 요구하는 외침소리에 장기 통치자들이 하나 둘씩 권력을 잃었다(were falling victim to an outcry for liberation). 전설적인 이집트 작곡가 모하메드 압델 와하브가 쓴곡들은 이렇게 노래 불렀다.

“아랍인들, 내조국, 내 사랑의 승리뿐. 예멘, 다마스쿠스,제다에서, 너는 달콤하다, 오 승리여…. 마라케시와 바레인 사이에서,완벽한 단결을 위한 바로 그 노래. 오 당신의 땅은 내 눈의 원천(whose soil is the makeup of my eye), 내나라, 오 자유의 요새.”

1960년, 아랍 국가들에 해방의 기운이 휘몰아치고 있었다(An air of emancipation was sweeping through Arab nations). 국민들이 식민지의 삶에서 벗어나 민족주의 저항운동의 시대를 열려고 애쓰고 있었다. 가말 압델 나세르 이집트 대통령이 범아랍주의(Pan-Arabism) 구상을 주창했다.

그 이념은 아랍국가들의 정치 연설 속으로 스며들었다(it seeped into the political discourse of countries across the region). 압제에 맞서 단결하라고 아랍인들에게 촉구했다(urging Arabs to come together in the face of tyranny). ‘엘 와탄 엘 아크바르’는 알제리의 알제리의 장미 The Algerian Rose 와르다의 용감하고 애국적인 노래는 아랍인들에게 열정과 상상력의 불을 지폈다전설 와르다 알-자자이리아와 이집트의 인기스타 압델 할림 하페즈 등 아랍세계의 최고 유명 가수 몇몇의 합작품이다.

노래는 모로코로부터 바레인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의 열정과 상상력에 불을 지폈다(stirred the vehemence and imaginations of people).수십 년 뒤 아랍인들이 또 다시 폭정에 맞서 싸우고 있다. 이번에는 내부에 적이 있다.지도자들을 향한 국민의 불만이 쌓여갔다(leaders have become targets of discontent of their citizens).

그 사이 아랍인들에게 계속 영감을 불어넣고 단결하게 하는 건 와르다, 이집트의 오움 칼툼, 레바논의 파이루즈 등 많은 가수의 유산이다. 바로 그들의 용감하고 애국적인 가사다(their gallant, patriotic lyrics). 이는 많은 정치인이 갖추지 못한 능력이다.

이 가수들의 영향력은 그들이 눈을 감은 뒤에도 계속 될 듯하다. 와르다의 추도식에 몰려든 대규모의 애도 물결이 그 증거다(as evidenced by the massive outpouring of grief at the death of Warda). 그 알제리의 장미는 지난 5월 17일 카이로에서 72세를 일

기로 생애를 마쳤다.

오늘날 극과 극을 달리는 아랍인들을 연결시켜주는 가교는 음악과 미술 말고는 거의 없다(very little else links the highly contrasted Arab people beyond music and art). 특히 세 가지 아주 기본적인 정서인 사랑·신·국가를 소재로 삼을 때 가장 큰 효과를 발휘한다. 중동과 북아프리카 각지의 여러 나라가 다양한 지도자를 새로 맞이한다(usher in a new hodgepodge of leaders).그런 요즘도 ‘범아랍 각성’의 기운이 지배하던 시절에 대한 향수가 남아 있다(nostalgia remains for the triumphant era of pan-Arab awakening).

지난 5월 19일 알제. 와르다의 생애를 기리기 위해 문화궁전(Palace of Culture) 앞에 추도객들이 몰려들었다. 사람들이 세상을 떠난 디바의 포스터를 흔들며 그녀의 애국적인 노래들(곡조가 아름답고 애수를 불러일으킨다)을 부를(crooned her patriotic songs) 동안 많은 사람이 흐느껴 울었다. 정부는 공화국 수비대를 보내 그 행렬을 선도하도록 했다. 정치인들에게만 주어지는 특

별 예우다. 할리다 투미 문화장관은 와르다가 “귀를 먹먹하게 하는 정적과 깊은 슬픔(a deafening silence and a profound sadness)”을 남겼다고 말했다.

그녀의 죽음에 중동 전역이 슬픔에 빠졌다. 이집트의 국영 알 아흐람 신문은 “알제리 장미의 유산은 영원하다(The Algerian Rose’s legacy will live on)”는 제목의 머리기사를 실었다.와르다는 프랑스에서 태어났지만 1962년 알제리 전사들이 프랑스 식민주의자들을 물리치자 모국으로 돌아갔다.

그녀는 이미 애국자로 명성을 날렸다. 아랍인들의 자유와 해방을 촉구하는 곡을 다수 발표했다.“그녀의 곡들은 당시 중요한 메시지를 담았다. 그 의미는 오늘날에도 시사하는 바가,크다(Her songs had an important message,in those days, and still the meaning is strongtoday)”고 알제의 정부 청사 리셉셔니스트,셰린 사이드(27)가 말했다.

“와르다나 오움 칼툼의 음악은 나뿐 아니라 우리 어머니, 아버지도 즐겨 듣는다. 다른 아랍국가들과 뭔가 공통분모가 있다는 느낌을 준다(It makes us feel like we have something in common with the other Arab countries).”



와르다는 “대다수 아랍세계에서 범아랍 정체성의 일부를 이루는 알제리 민족주의 상징으로 여겨진다”고 아델 이스칸다르가 말했다. 이스칸다르는 조지타운대 현대 아랍학 연구소와 커뮤니케이션·문화·기술 프로그램의 강사다. “그녀는 아주 많은 사람이 동경하는 옛날의 범아랍주의 시대를 연상케 한다(She is publicly associated with the long-gone era of pan-Arabism that so many people are yearning for). 아랍의 봄으로 인해 사람들이 그 시절에 큰 향수를 느끼는 요즘 상황에서 특히 그렇다.”

아랍세계에서는 영감(inspiration)이 당연시되는 개념은 아니다. 이 광대하고 다양한 지역을 규합하려면 전설이 필요하기 때문에 특히 그렇다(particularly since it takes a legend to bring this vastly diverse region together). 아랍 민족주의는 대서양과 페르시아만 사이에서 사는 사람들이 언어·종교·문화적 유산을 통해 연결돼 있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한 이념이다.

1948년 아랍-이스라엘 전쟁에서 굴욕적인 패배를 당하면서 아랍인들 사이에 공동의 적에 맞서 단결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해졌다(strengthened the resolve of the Arabs to unite against a common enemy). 1958년 이집트와 시리아를 포함하는 아랍연합공화국(United Arab Republic)이 창설됐다.

그리고 이라크와 북예멘을 통합하려 시도했다. 하지만 오래 가지 못해 와해됐다(did not take and quickly crumbled). 각국이 범아랍의 꿈을 버리고 각자의 이익을 추구했다.실제로는 실패했지만 이 새로운 민족국가(nation-state) 개념은 아랍인들에게 어떤 권리의식(a sense of empowerment)을 불어 넣었다. 한편 그 이념은 시간이 흐르면서 현실에서 이상향으로 변형됐다.

와르다의 죽음은 당시 아랍 음악계의 최고봉(the biggest name in Arab music)이던 오움 칼툼이 학생 운동가 단체와 자유장교단운동(Free Officers Movement)을 위해 문제의 지하 공연을 개최해 논란을 낳았던 시절의 기억을 불러일으켰다. 자유장교단운동은 이집트의 왕정을 몰아낸 공로를 인정받은 단체다(the group credited with unseating Egypt’s monarchy). 이스칸다르는 “칼툼은 반식민주의 운동의 핵심이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대단히 유명한 가수였음에도(even though she was a very notable singer) 학생들의 행사에서 공연했다.

"그것이 큰 영향을 미쳤다.”칼툼은 중동 지역 전체에 대단히 큰 영향을 미쳤다. 1975년 그녀의 장례식에 어림잡아 400만 명의 추모객이 몰렸다. 아랍 역사상 최대규모의 군중이었다. 이집트 전 대통령 가말 압델 나세르의 장례식 인파보다 많았다. 나세르는 수에즈 운하를 국유화하고 이스라엘에 전쟁을 선포하기로 결정해 폭넓은 지지를 받은 지도자다.

오움 칼툼 앙상블의 바이올린 주자 사이드 헤칼은 2010년 프랑스 ‘쿠리에 덜라틀라’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오움 칼툼의 죽음은 모든 이집트인에게 큰 충격을 안겨줬다. 나세르가 그들의 아버지라면 그들의 어머니를 잃은 셈이었다(If they saw Nasser as their

father, they then lost their mother).”

그 장르에 뿌리를 둔 다른 가수들도 비슷한 영향을 미친다. 파이루즈의 노래들은 1969년 그녀의 조국 레바논에서 6개월 동안 금지됐다. 알제리 대통령에 오른 우아리 부메디엔을 위한 공연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부메디엔이 국민들로부터 지지를 받지못했음을 감안할 때 그런 반항적인 행동으로 오히려 파이루즈의 인기는 더 높아졌다(Her act of protest only further catapulted her career). 마찬가지로 알제리의 베르베르족 가수인 루네스 마툽은 조국의 내전 중 베르베르족의 권리를 선동적으로 지지해(for his provocative advocacy of Berber rights)큰 인기를 얻었다(soared to fame during).

그는 1988년 경찰관의 총격을 포함해 여러번 저격을 받았다. 그리고 10년 뒤 결국 총탄에 쓰러지고 말았다. 마툽의 죽음은 베르베르족의 대규모 시위를 촉발했다. 그들은 “정부, 암살자!”라는 구호를 외쳤다. 그는 지금도 베르베르인들의 순교자이자 그들의 평등을 얻기 위한 투쟁의 상징으로 존경 받는다(is still revered as a martyr of the Berber people and a symbol of their fight for equality).

세월이 흐르면서 냉소주의가 확대됐다.나세르,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 알제리의 아흐메드 벤 벨라 등 쿠데타와 반란을 통해 국민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은 혁명가들이 결국 차례차례 명망을 잃었다(would eventually fall from grace, one after the other). 하지만 그 지도자들의 빛바랜 명성으로 인해 아랍 근대사에서 그 시절에 대한 동경이 약화되지는 않았다(the tarnished reputations of those leaders never detracted from the longing for that era in modern Arab history).

그리고 그 시기의 애국적인 노래들은 여전히 극소수의 실체적인 기억으로 남아 있다.젊은이들이 아랍의 봄을 이끄는 견인차였듯이 젊은 운동가들은 아랍 세계 전반의 식민주의 종식에 주된 역할을 했다(young activists played a major role in bringing an end to colonialism across the Arab world).

그러나 이집트·리비아·예멘·튀니지 같은 나라가 안정을 되찾으면서(as the dust settles) 혁명이 고령의 지도자들 손으로 넘어간다는 우려가 커진다. 그 지도자들은 젊은층과 너무 단절돼 있어 그들을 움직이지 못한다(too disconnected to mobilize a young populace).

25세 이하 연령층이 국민의 65%를 차지한다. 알델라지즈 부테플리카 알제리 대통령은 75세, 다호 오울드 카빌라 내무장관은 77세다. 이집트 대선의 두 선두주자도 60세와 70세였다. 튀니지와 예멘의 임시 대통령 모두 66세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압둘라 국왕은 87세 안팎이며 그의 왕세제(Crown Prince)로 새로 지명된 나예프는 79세다.

“우리는 혁명기를 맞고 있다. 하지만 젊은이들은 영감을 느끼지 못한다. 정부가 2012년과 아무런 연관성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완전히 단절됐다(they are totally disconnected)”고 알제의 사회학자이자 평론가인 포딜 부말라가 말했다. “프랑스 내각은 40대와 50대가 다수다. 버락 오바마는 50세에 불과하다. 아랍 젊은이들은 자신들의 정부와 신세계 사이의 엄청난 간극을 본다(they see a big gap between their governments and the new world).”

“요즘 모로코, 튀니지, 알제리의 새로운 랩가수들은 일자리, 빈곤 그리고 정치·사회·문화·성 혁명을 노래한다”고 부말라가 덧붙였다. “그들에게는 거리의 팬들이 대단히 많다. 과거 또는 미래의 어떤 정치 지도자보다 많다(more than any of our leaders ever did or ever wi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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