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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리보 게이트’로 비화될 수도

한국판 ‘리보 게이트’로 비화될 수도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 담합 의혹이 불거지면서 금융가는 물론 금융당국까지 술렁이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의 조사 결과에 따라 이번 의혹이 ‘한국판 리보(Libor:런던 은행간 거래 금리) 게이트’로 비화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공정위는 7월 17일 시중은행(지방은행 포함) 9곳, 증권사 10곳을 조사했다. 공정위관계자는 “조사에 들어간다는 사실조차 공개하지 않는 게 일반적”이라며 “(이걸 공개했다는 것은) CD금리를 조작해 이득을 취한 쪽이 있다는 상당한 근거가 있기 때문”이라고 조사 배경을 밝혔다.

금리 담합 의혹을 받는 금융사 일부가 자진신고(리니언시)하기 시작했고, 공정위도 자체 조사를 통해 담합 물증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금융가에서는 이번 사태를 대출금리 인하를 요구하는 정부의 시그널로 보고 있다.정부가 공정위 조사권을 활용해 은행 대출금리를 떨어뜨리려는 기획조사라는 주장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7월 12일 정부가 CD금리를 지켜본다는 루머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날은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CD(Certificate of deposit)는 은행이 단기 운영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발행하는 무기명 예금증서다. CD금리는 7개 시중은행이 발행한 CD에 대해 10개 증권사가 하루에 두 번 수익률을 금융투자협회에 보고하는 형식으로 결정된다.

변동금리 주택담보·기업 대출의 기준 중 하나다.정부가 실제로 CD금리를 떨어뜨릴 의도였다면 효과는 있었다. 공정위 조사 루머가 돌기 시작한 12일 금융투자협회 고시 시중은행 CD금리는 3.54%에서 3.27%로 0.27%포인트 급락했다(7월 20일 현재 CD금리는 3.22%). CD금리는 4월 9일3.54%를 기록한 이후 3개월 넘도록 꿈쩍하지 않았다. 6개월간 변동폭도 0.02%포인트 내외에 불과했다.

국고채나 은행채 등 채권시장 금리가 하락하고 은행권 조달금리가 떨어지는 가운데서도 CD금리만은 움직이지 않았다.국민·우리·신한·하나·외환 등 5개 은행CD금리 연동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4월 9일~7월 19일(CD금리 3.54% 유지기간)동안 평균 0.314~0.336%포인트 하락에 그쳤다. 반면 정기예금 금리는 0.49%포인트 하락했다.

은행권 예대금리차가 평균 0.154~0.176%포인트 더 벌어진 것이다. 3월말 기준 CD 연동원화대출 잔액이 324조원인 것을 감안하면 CD금리가 떨어지지 않음으로써 은행들은 연간 5000억원 가량의 추가 수익을 올린 것으로 추산된다.

금리 담합 의혹이 불거지면서 금융당국도 분주해졌다. 금융위·금감원·한국은행·은행연합회 등은 ‘단기지표 개선방안’ 태스크포스 회의를 열고 시중은행에서 CD발행을 의무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CD발행을 늘려 거래를 활성화시켜야 금융권이 CD금리 조작 논란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그렇다면 CD금리 담합 의혹은 현실성이 있는 얘기일까. 금융전문가들은 금융권의 CD금리 담합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국내 금융산업 구조가 취약해 소수 금융사가 금리를 좌우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CD금리가 사실상 거래가 거의 없는 식‘ 물금리’여서 조작이 쉽다는 의견도 나온다. 증권사나 은행이 의도적으로 거래를 하지 않음으로써 CD금리를 높게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박덕배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이번 사태는 CD금리 시장을 움직이는 은행이 사실상 4개뿐인 과점체제이기 때문에 벌어질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조영무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CD금리는 몇 명의 담당자가 시장 안에서 다양한 조건으로 거래되는 금리를 고려해 ‘이 정도가 적당하

겠다’는 식으로 판단해 적어내는 방식”이라며 자의적인 CD금리 결정 방식의 위험성을 지적했다.

발행과 거래물량이 거의 없는 것도 CD금리 조작 가능성을 키운다. 은행은 CD나 은행채를 발행해 단기 자금을 조달한다. CD는 2010년 상반기까지 발행된 이후 현재까지 발행물량이 극히 줄었다. 올해 발행빈도도 1회, 금액은 100억원 수준에 불과했다.

반면 은행채 발행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전문가들은 CD거래가 없다 보니 증권사가 전날 냈던 금리를 또 다시 제출해 CD금리를 유지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은행이 CD 발행과 거래량을 조절하고 증권사가 여기에 공조해 CD금리를 사실상 고정시켰다는 것이다. 김영도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매일 증권사 10곳에서 CD 금리를 보고하는데 거래가 안 되다 보니 관계된 사람끼리 얼마로 보고했는지 서로 물어본다는 이야기도 나온다”며 “이를 담합으로 볼 수 있을지는 따져봐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공정위 조사를 받고 있는 금융회사들은“말도 안 되는 일”이라며 금리 담합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CD금리의 구조상 담합이나 조작이 불가능하다”며 “금리는 증권사에서 내고 우리는 그걸 쓸뿐”이라고 말했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2010년 하반기 이후 CD 자체를 발행하지 않아 거래가 거의 없었다”며 “거래가 없어도 보고를 해야하기 때문에 전날 금리를 그대로 보고한 것을 두고 담합이라고 하는 것은 문제”라고 말했다.

한 증권사 CD금리 담당자는“은행에서 발행하는 CD가 얼마에 유통되는 지 보고 금리를 제출할 뿐인데 증권사가 담합으로 얻을 게 뭐냐”며“담합할 이유가 전혀 없고 다른 회사의 담당자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담합을 하느냐”고 되물었다.그는 또 “은행들의 CD발행 물량이 없어서 금리가 정체된 것인데 공정위가 이를 짬짜미했다는 식으로 몰고있다”고 주장했다.

금융권 전반적으론 이번 사태를 일단 지켜보자는 분위기다. 공정위가 이제 막 조사를 시작했고 결론이 나려면 1년여 이상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CD금리가 문제가 있다고 당장 폐기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금융위관계자는 “CD금리에 문제가 있는 건 공감하지만 이와 연동된 파생상품이 많아 당장 없앨 수는 없다”면서 “CD금리를 대체할 지표금리를 만드는 것을 중장기적으로 추진할방침”이라고 말했다.

금융연구원 김우진 연구위원은 “국내에서 권위 있는 단기 기준금리가 없다보니 어쩔 수 없는 대안으로 CD금리를 사용해 왔는데, 지금에야 그 문제가 터진것”이라며 “공정위에서 담합 여부에 대한 최종 확인이 이뤄질 때까지 섣부른 예단을 자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 증권사채권분석가는 “은행권 자금 조달과 관계되는 어떤 지표금리라도 새로운 기준이 될 수는 있지만 어떤 것도 완전히 담합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없을 것”이라며 “이 시점에서는 정부나 금융소비자가 어떤 지표를 더 신뢰하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어떤 지표도 담합 가능성 배제 못해”은행과 증권사가 금리를 담합한 것으로 결론이 나면 한국 금융권은 초대형 소송에 휘말릴 것으로 보인다. 금융소비자연맹은 법원 판결에서 조작이 확인되면 금융사에 부당 이익금 반환요구 등 집단 소송에 나설 계획이다. 금소연에 따르면 CD금리가 0.5%포인트 떨어지면 은행권 이익이 연간 1조8000억원 줄어든다. 금소연 조연행 부회장은“CD금리가 수년 전부터 적용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손해배상 요구 범위가 수조원에 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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