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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정부가 나서야 한다

이제 정부가 나서야 한다



“우리의 경쟁 상대는 항공사가 아니라 고속버스회사다.”1971년 세계 최초의 저비용항공사(LCC:Low Cost Carrier) 사우스웨스트 항공이 설립됐다. 100달러 안팎이던 댈러스-산안토니오 노선 항공권을 15달러에 판매하기 시작했다. 기내식을 없애고 회항 시간을 줄여 비용을 대폭 낮췄기 때문이다.

사우스웨스트 항공은 돈이 없어 먼 거리를 버스로 이동해야 했던 사람들을 고객으로 끌어들였다. 항공기 3대로 미국의 3개 도시에 취항하던 이 항공사는 지난해 항공기 701대로 97개 공항으로 승객을 실어 나른다. 아일랜드의 라이언 에어, 영국의 이지젯 등은 2011년 국제선 수송실적에서 각각 세계 1위와 3위를 차지했다.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시작된 저가항공산업은 2000년대 초반부터 아시아 지역에서도 날개를 펴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는 2006년 6월 제주항공이 처음 취항했다. 2011년 제주항공과 진에어 등 5개 LCC의 국내선 수송실적은 869만명이 됐다. 2006년 37만명에서 폭풍 성장해 24배로 늘었다.

국내선 수송분담률도 2006년 2%에서 2011년에는 41%가 됐다. 2011년 국제선 수송객수는 183만여명으로 2010년 92만4000여명보다 2배 이상 증가했다. 국내선뿐 아니라 국제선까지 LCC가 잠식해간다. 항공사별로는 제주항공이 지난해 국내선과 국제선을 합해 약 300만명을 수송했다. 2010년에 비해 38%가 더 늘었다.

저가항공산업이 우리나라에서도 빠르게 자리잡은 요인은 지속적인 마케팅 투자다. 국내선을 최저 1만원부터 판매하는 얼리버드 운임제는 알뜰 소비자들의 관심을 모았고 아직까지도 LCC를 상징하는 마케팅으로 인식된다. 또한 기존 항공사와들과 비슷한 수준의 정시율을 유지하고 국제안전평가의 인증을 받는 등의 노력으로 ‘싼게 비지떡’이라는 소비자들의 불안감을 해소시켰다.

또 고객 수송에만 초점을 맞춰 모든 서비스를 유료화한 유럽이나 일본의 LCC와는 달리 항공료의 일정 금액이 적립되는 포인트 제도, 기내 무료 사진촬영, 여행자 보험 가입 등 다양한 서비스도 무료로 제공된다.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소비자들이 LCC를 대안이 아닌 최선이라고 인식하는 경향이 늘었던 점도 LCC에 호재로 작용한다.

그러나 국내 LCC들이 가야 할 길은 아직 멀다. 지난해 국내선 수송실적 분담률은42% 수준으로 양호했다. 하지만 국제선은 약 7%로 전 세계 평균 26%, 동남아권의 51%에 한참 못 미친다. 지난달 서울-오사카 노선으로 우리나라에 첫 취항한 일본의 피치항공 등 올해 국내 진출을 앞둔 해외 LCC도 6~7곳으로 현재 국내 LCC 수보다 많다.

국제선에서 해외 항공사들에게 밀린다면 국내 5개 LCC는 살아남기 어렵다.해외 LCC들이 국제선 영업에서 선전하는 원동력은 정부 지원이다. EU는 1997년 4월 역내 항공자유화라는 활동 무대를 열어줬다. 자국의 도시가 아닌 해외의 두 도시를 왕복하는 노선의 개설도 가능하다. 라이언 에어가 런던의 스텐스테드 공항을 거점으로 삼는 이유도 항공자유화 덕분이다.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정부는 2006년 3월 LCC 전용터미널을 설립해 카운터와 사무실 임대료를 절반 수준으로 낮췄다. 우리나라보다 저가항공을 늦게 시작한 일본도 정부가 나서서 2007년 ‘아시아 게이트웨이(Asia Gateway)’ 계획을 공개하고 지방공항규제를 대폭 철폐했다. 벽지 공항에 들어오는 외국 항공사에도 해당 지자체에서 이・착륙료와 시설 사용료 등 감면 혜택을 준다.

또 일부 신축 터미널의 내장과 설비를 간소화시켜 공항 입주 항공사의 임대료와 이용료 등을 최대한 낮출 예정이다.동남아 국가들과 일본이 LCC 키우기에 적극적인 까닭은 아시아 항공시장의 높은 성장성이다. 이 같은 정책 덕분에 LCC의 핵심 경쟁력인 낮은 운임이 가능하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는 지원보다 규제가 먼저였다. 2006년 제주항공이 취항할 당시 ‘국내선 2년 2만회 무사고 운항’ 조건을 만족해야 국제선 취항이 가능하다는 내규를 만들며 LCC에 고삐를 조였다. 진에어와 에어부산이 취항하면서 ‘국내선 1년 1만회 무사고’로 완화됐다가 최근 완전 철폐됐다. ‘2년 2만회’ 조건을 충족하고 국제선 운항에 나선 LCC는 제주항공이 유일하다.

LCC업계에서 한국은 후발주자다. 라이언 에어는 1991년, 아시아 최고로 평가 받는 말레이시아의 에어아시아는 2001년, 최근 급성장하는 세부퍼시픽은 1996년에 설립됐다. 뒤늦게 이륙한 국내 LCC가 각종 지원을 등에 업고 한국에 진출하는 해외 LCC와 경쟁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제주항공은 지난해에 국내 LCC 최초로 베트남에 정기 노선을 개설했고, 진에어는 지난 3월부터 라오스 정기 노선을 운항한다. 올 하반기에도 각 업체들은 신규노선 취항과 기존노선 증편 등 공격적인 노선 확대를 계획한다.

한 LCC업계 관계자는 “국내 LCC의 비중 확대는 독과점 해소에 따른 소비자 선택권 확대와 운임 인하 등 긍정적인 효과를 낳았다”고 말했다. “상생과 경쟁을 유지시키려는 정부의 제도적 뒷받침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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