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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과 마음을 모두 맞춥니다

몸과 마음을 모두 맞춥니다



양복 한 벌에는 수천 개의 바늘땀이 촘촘히 박혀 있다. 양복 정장은 80~90개의 기본조각이 맞물려야 비로소 완성된다. 한국맞춤양복협동조합 이덕노(60) 이사장은 “오직 한 사람을 위한 옷인 만큼 치수를 재는 것부터 단추구멍까지 100% 모두 손으로 만든다”며 “맞춤양복은 신체 사이즈뿐 아니라 마음까지 충족시켜준다”고 말했다.

이 이사장은 서울 이태원에서 36년간 ‘힐튼 양복점’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우수한 품질과 섬세한 디자인으로 국내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양복 장인이다. 대체적으로 양복 상하의 주문에서 완성까지 걸리는 시간은 일러야 2주. 그만큼 그가 만든 옷에는 정성이 깃들여져 있다.그가 맞춤양복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건 고등학교 졸업 후인 1970년 초다. 미국 메릴랜드대학으로 유학 길에 오르면서다. 학비를 벌기 위해 미군 면세품점(PX) 북 스토어에서 일하게 됐다.

어릴 때부터 패션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그는 유명 패션 관련 책을 보기 시작하면서 ‘만들어보고 싶다’라는 호기심이 생겼다. 그는 고등학 시절부터 손재주가 좋아 직접 옷을 만들었다. 그 때 “지인들이 양복점을 운영하면 잘하겠다”는 한 마디에 대학 졸업 후 한국으로 돌아왔고

이태원에 있는 양복점에 무보수로 취직했다. 한 달 만에 양복 제작과 판매 기술의 경험을 쌓고 1976년 양복점을 열었다.

1970년대 후반 기능올림픽 붐과 함께 맞춤양복이 전성기를 이뤘다. 쉴 새 없이 주문이 밀려왔다. 3년 만에 부모님께 빌린 1000여만원을 모두 갚았다. 그러나 1980년대 들어서며 구입이 간편하고 가격도 싼 기성복에 밀려 사양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맞춤양복점이 하나 둘씩 문을 닫기 시작했다. 당시 전국 수 백 개였던 맞춤양복 조합원은 현재 120여명에 불과하다.

그는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36년 간 운영할 수 있었던 이유는 기성복에 맞서도 뒤지지않는다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이사장은 “기성복은 가슴과 신장을 중심으로 제작하기 때문에 다양한 사이즈의 제품을 내놔도 고객체형과 감성을 만족시킬 수없다”며 “신체 사이즈의 변화도 고려해서 옷을 제작할 때 여유분을 두어 언제든지 줄이고 늘려 입을 수 있도록 만든다”고 말했다.

이곳은 국내뿐 아니라 각국 나라 정상과 세계적인 영화배우, 음악가 등도 주요 단골고객이다. 이태원은 세계 각국의 대사관과 영사관을 포함해 많은 외국인이 모여 살고 있는 지역인 만큼 입소문을 타고 그를 찾고 있다. 스페인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이나 세계적인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 영화배우 스티븐 시갈 등도 이 곳을 찾았다.

그는 두터운 신뢰와 높은 품질은 물론 고객 취향도 함께 파악해 옷을 만든다. 이 이사장은 “각 국가별로 입는 취향이 다르다”며 “날씨가 무더운 아랍은 지역의 여건상 편안한 스타일을 좋아하고 미국인은 반대로 날씬한 스타일의 양복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는 가게를 찾은 고객의 정보를 하나도 빠짐없이 간직하고 있다. 체형은 물론 선호하는 스타일과 옷을 맞춰 입을 당시 사용했던 재단까지 모두 작성해놓고 있다. 해외에서 전자우편과 전화로도 주문 제작이 가능할 수 있는 이유다. 그는 여전히 맞춤 양복은 무조건 ‘비싸다’, ‘중·장년층만 입을 수 있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것은 아직도 안타까운 부분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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