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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서 한글 수입? 말이 되나”…40년 전 탄생한 국내 첫 폰트 기업 ‘산돌’

[“100년 기업 꿈꾼다” 불혹 맞은 기업들]
40년 전 일본서 ‘한글 수입’ 탈피 위해 설립…플랫폼 기업 도약
MS ‘맑은 고딕’ 대표작…기업 성격 묻어난 고유 서체 다수 개발

석금호 산돌 이사회 의장. [사진 산돌]

[이코노미스트 정두용 기자] 석금호 산돌 이사회 의장(산돌커뮤니케이션 대표)은 ‘국민 서체’로 불리는 굴림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일본에서 수입해 사용하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1984년 4월 서울 대학로 한 골방에서 ‘산돌타이포그라픽스’(산돌 전신)를 설립했다. 국내 첫 폰트 회사의 탄생이다.

일본 사진식자 기업 ‘샤켄’(写研)과 ‘모리사와’(モリサワ)는 1980년대 한국에 신문 조판·도서 인쇄 등에 활용되는 사진 식자기·식자판 판매에 나섰다. 굴림체는 이 기기에 적용되기 위해 탄생한 글꼴이다. 서체 연구자 고(故) 최정호 선생이 만들었지만, 라이선스는 일본 기업이 가진 구조였다. 일본에 의존하지 않고서는 한글을 찍어내는 기계를 도입하기 어려웠던 시대도 있었다.

석 의장은 자체적인 폰트 개발이 이런 산업 구조 탈피의 핵심이 되리라고 봤다. ‘한글로 한국을 마케팅한다’를 기업 경영 철학으로 내세울 정도로 서체 개발에 매진했다. 그의 손끝에서 탄생한 한글 폰트만 720여 종에 달한다. 산돌을 통해선 650여 종의 주요 폰트가 개발됐다. 2002년 마이크로소프트(MS) 프로그램에 기본 탑재돼 일상에서도 익숙한 ‘맑은 고딕’이 석 의장 주도로 제작한 대표적 서체다.

산돌은 다양한 산업 지형의 변화에도 40년간 살아남았다. 산업이 다양해질수록 한글 폰트의 중요도 역시 높아졌기 때문이다. 로고가 기업의 얼굴이라면, 서체는 기업의 성격을 나타내는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이에 따라 산돌을 찾는 곳도 많아졌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그룹 ▲우아한형제들(배달의민족) ▲네이버 ▲카카오 ▲현대카드 등 굵직한 기업이 산돌을 통해 자사 고유의 문화를 서체에 녹여냈다.

국내 시장에 진출한 해외 기업 역시 고유 폰트를 통해 이미지 구축에 나섰다. 스마트폰 시대를 연 애플이 대표적이다. 특유의 디자인 철학을 제품에 담아온 애플은 산돌과 함께 시스템 한글 폰트를 개발했다. 구글 ‘본고딕’이나 IBM ‘플렉스 산스 CJK’(Plex Sans Chinese·Japanese·Korean) 등도 산돌이 디자인한 글꼴이다.
산돌 사옥 내부. [사진 산돌]

석 의장은 서체에 대한 중요도가 높아진 시장 수요에 따라 사업 외연을 순차 확장해 왔다. 특히 2018년 산돌커뮤니케이션을 부동산 임대 사업을 영위하는 동명의 존속 기업과, 폰트 개발을 전문으로 하는 신생법인 ‘산돌’로 물적분할하는 식으로 운영 효율성을 높였다.

산돌은 현재 3곳의 자회사(산돌티움·비비트리·산돌메타랩)를 거느린 회사로 성장했다. 2022년 10월엔 코스닥 시장에 상장하는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단순히 폰트를 개발하는 구조에서 벗어나 정보통신기술(ICT)을 사업에 적극 적용한 결과다. 특히 2014년 언제 어디서 원하는 폰트를 사용할 수 있는 구독형 클라우드 플랫폼 ‘산돌구름’을 출시하고, 2023년 웹 기반 폰트 플랫폼으로 사업을 전면 전환하는 등의 변화를 추진했다. 그 결과 영국 파이낸셜타임즈(FT)가 선정한 아시아태평양 고성장 기업에 2023년부터 2년 연속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산돌은 2023년 연결 기준 연간 매출 141억8668만원, 연간 영업이익 27억8112만원을 각각 써냈다. 영업이익률 19.60%를 기록할 정도로 높은 수익성을 지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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