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아버지에게 실패 겁내지 않는법 배웠다
할아버지·아버지에게 실패 겁내지 않는법 배웠다
홍콩의 10월은 더위가 채 가시지 않았다. 홍콩국제공항에서 차로 1시간 가까이 달리자 번화가에 들어섰다. 전 세계 명품 브랜드 숍이 자리한 곳. 홍콩 명품쇼핑의 메카라 불리는 침사추이 캔톤 로드다. 각국에서 온 관광객들이 명품 매장 앞에 줄을 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버 시티, 홍콩 DFS 갤러리아 같은 대형 쇼핑센터도 눈에 띈다.
롱샴이 10월17일 캔톤 로드에 새로운 플래그십 스토어를 오픈했다. 아시아 롱샴 매장 중 가장 큰 규모다. 3층으로 이뤄진 이곳에서는 가방뿐 아니라 옷, 신발 등 롱샴의 모든 컬렉션을 판매한다. 정식 오픈을 하루 앞둔 16일 매장 3층에서 장 카세그랑(47) 롱샴 글로벌 CEO를 만났다. 심플하면서도 어두운 색 정장에 보라색 스웨이드 구두로 포인트를 준 것이 인상적이었다.
캔톤 로드에 플래그십 스토어를 연 것은 아시아 시장을 적극 공략하겠다는 의미인가.
“홍콩은 국제적인 도시고, 캔톤은 유명한 쇼핑거리다. 한국, 중국, 동남아시아 등 아시아 각지에서 관광객이 몰려온다. 아시아는 롱샴에게 중요한 시장이기 때문에 꾸준히 매장을 늘려갈 생각이다.”
지난해 롱샴 전체 매출에서 아시아가 차지하는 비중은 22%, 전년 대비 매출 성장률은 23%였다. 카세그랑 CEO는 “다른 지역보다 성장 속도가 빠른 것에 주목한다”며 “아시아 지역의 매출 성장률이 30%까지 상승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롱샴은 아시아뿐 아니라 유럽과 북미 지역에서도 각각 30%, 26%의 성장세를 보였다.
경제 위기 속에서도 성장할 수 있는 요인이 뭐라고 생각하나.
“품질이 무기다. 요즘 소비자들은 제품을 살 때 퀄리티를 무척 중요하게 생각한다. 경제가 어려울수록 소비하기 전에 제품의 가치를 한 번 더 생각하기 때문에 롱샴에게 위기는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 롱샴은 고품질, 합리적인 가격대의 명품을 추구한다.”
좋은 품질은 어디서 나오나.
“우선 장인들의 숙련된 기술과 노하우가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가방 하나를 만들려면 수십가지 공정을 거치는데 한 단계 공정이
끝날 때마다 문제가 없는지 꼼꼼하게 점검하는 것도 비법이다. 제작 매뉴얼을 강조해 고객 만족도를 높인다.”
롱샴은 제작 노하우를 직원들에게 가르치기 위해 회사 안에 미니 스쿨을 운영한다. 경험이 없는 직원은 2~3개월 동안 기본 훈련을 받고 정기적으로 열리는 워크숍에서 실력을 쌓은 뒤 테스트에 통과해야 한다. 고품질을 바탕으로 프랑스 대표 브랜드로 자리 잡은 롱샴은 글로벌 시장 확대에 주력하고 있다.
글로벌 토털 패션 브랜드로 안착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
“제품 개발, 판매, 마케팅 등 여러 분야에 고루 신경 쓰고 있다. 고객들에게 ‘신선함’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 고유한 역사를 지키면서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가죽을 씌운 담뱃대에서 출발해 소형 가죽제품, 가방, 레디 투 웨어(기성복), 슈즈 라인으로 영역을 넓혀 왔다. 제레미 스캇, 마리 카트란주 같은 개성 있는 아티스트와 콜라보레이션을 하고 대형 플래그십 스토어를 여는 것도 변화를 주려는 노력의 일부다.”
롱샴은 1948년 카세그랑 CEO의 할아버지 장 카세그랑이 설립했다. 카세그랑은 2차 세계대전 직후 파리 대로변에 있는 ‘오술탄’이라는 담뱃가게를 상속받았다. 그는 연합군에게 담뱃대를 팔아 크게 성공하자 파리의 장인들을 모아 담뱃대에 가죽을 입혔다.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디자인의 담뱃대는 큰 인기를 끌었다. 이 담뱃대를 상품화하기 위해 세운 회사가 지금의 롱샴이다. 72년 카세그랑의 뒤를 이어 그의 아들인 필립 카세그랑이 회사를 맡았다. 필립은 현재 롱샴의 총괄회장이다. 카세그랑의 어머니 미셸 카세그랑은 유럽 지역 총괄 부티크 디렉터, 여동생 소피 델라폰테인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가족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필립 카세그랑 회장도 변화가 필요하다는데 동의하나.
“물론이다(그는 Sure, Sure, Sure이라고 답했다). 롱샴은 오랫동안 변화와 혁신을 추구해왔다. 큰 일을 결정할 때 가족들과 의논할 수 있다는 것이 ‘가족기업’의 장점이다.”여동생인 델라폰테인 디렉터 역시 ‘디자인하는데 가족경영이 걸림돌이 되지 않느
냐’는 물음에 “무척 자유롭게 일하고 있다”며 “오히려 실패에 대한 부담이 작아 여러 시도를 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가족기업의 단점은 뭐라고 생각하나.
“단점은 떠오르지 않는다. 어릴 때 회사가 성장하는 것을 보며 자랐다. 세계시장에 진출하는 것을 보면서 자부심을 느낀다. 롱샴을 한 단어로 정의하면 ‘프렌치(French)’라고 말할 수 있다. 프랑스 하면 떠오르는 시크함과 우아함을 세계 여성들에게 전하고 싶다. 앞으로 뉴욕, 런던, 두바이, 상파울로에 단독 부티크를 열 계획이다.”
카세그랑 CEO가 롱샴에 입사한 것은 1989년. 이전에는 경영자문회사에서 일하며 경영 감각을 익혔다. 카세그랑 CEO는 “가업을 잇는 것 외에 다른 길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며 “롱샴이 전 세계 고객이 가장 사랑하는 브랜드가 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그는 가업을 이어받아 직원 2000명, 연 매출 3억9000만 유로(5600여 억원)의 회사로 키웠다. 현재 롱샴은 101여 개국에 236개 단독 부티크와 2000여 개의 복합 매장을 두고 있다.
아버지나 할아버지에게 물려받은 경영철학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법을 배웠다. 아버지는 끊임없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생각하라고 가르쳤다.”
경영을 하면서 실패해 본 적이 있나.
“회사가 흔들릴 만큼 큰 실패는 겪어보지 못했다. 하지만 많은 제품 중에서 한 시즌밖에 못 가는 제품이 나올 때 어려움을 느낀다. 이런 제품은 진열대에서 내릴 수밖에 없지만 ‘실패작’에서 많은 것을 배운다. 품질을 보완해 신제품을 선보이면서 고객의 반응을 살피고 다양성을 추구한다.”
앞으로도 가족경영을 유지할 생각인가.
“그렇게 되길 바란다. 상황이 된다면 가족 기업으로 끌고 가고 싶다.”
한국에도 플래그십 매장 낼 것롱샴은 한국에서 ‘폴딩백’으로 인기를 끌었다. 폴딩백은 나일론 소재의 가방을 접으면 손지갑처럼 작아져 붙은 별명으로 정식 명칭은 르 플리아주(Le Pliage)다. 1993년 르플리아주를 출시하면서 롱샴은 전환점을 맞았다. 이 제품은 세계적으로 2200만 개가 팔리며 베스트셀러가 됐다. 롱샴 제품의 뛰어난 기능성은 10세 여학생부터 70세 할머니까지 모든 여성 고객을 아우르는 비결이다. 올해 가죽 소재로 만든 ‘르 플리아주 퀴르(Le pliage Cuir)’가 새롭게 출시됐다. 카세그랑 CEO는 한국 시장에 높은 관심을 나타냈다. “한국은 전세계에서 매출 5위를 차지합니다. 5000만 명 인구에서 그렇게 높은 매출을 올린다는 점이 놀랍습니다.”
한국 시장과 관련한 계획이 있나.
“지금은 백화점 중심으로 영업하고 있다. 3~4년 안에 플래그십 스토어를 열 계획이다. 좋은 장소를 찾는데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 내년 상반기에 한국을 방문하려고 한다.” 카세그랑 CEO는 “한국은 중산층 계급이 발달해 명품 회사들이 관심을 가질 만하다”며 “생동감 있고 역동적인 모습이 좋은 느낌을 준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소비자들은 제품을 보는 안목이 높다”고 덧붙였다.
한국에서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가 나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무척 어려운 질문이다. 가치를 만드는 일은 하루아침에 되지 않는다. 날마다 새로움과 혁신을 추구하는 노력과 서두르지 않고 기다릴 수 있는 인내심이 있다면 가능하지 않겠나.”
캔톤 로드 플래그십 스토어 오픈 현장10월17일 오후 4시 홍콩 침사추이 캔톤 로드. 롱샴 플래그십 스토어 오프닝 행사로 거리가 북적였다. 배우 유가령과 롱샴의 중국 홍보대사인 고원원, 광고 모델인 코코 로샤가 참석해 현지 취재진이 몰려들었다. 오프닝 행사에는 필립 카세그랑 회장도 자리했다. 이날 저녁에는 침사추이 하버 시티 Pier No.3에서 이브닝 파티가 열렸다. 롱샴은 이번 행사를 위해 한국, 중국, 대만, 태국,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뿐 아니라 프랑스, 영국, 미국 언론을 초청했다.
롱샴은 올해 새로운 캠페인 컨셉트 ‘Creative Movement’를 선보였다. 이 컨셉트는 기수가 말을 타고 달리는 로고와 같은 맥락으로 60여 년 동안 진보한 롱샴을 나타낸다. 관계자들이 머무는 호텔 카드키와 룸 TV, 조간신문에 롱샴의 로고와 이미지, 광고를 싣는 등 브랜드 홍보에 신경을 썼다. 매장 앞 거리 전광판에서는 하루 종일 롱샴 광고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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