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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銀 ‘신탁 후 임대’ 신청자 0건

우리銀 ‘신탁 후 임대’ 신청자 0건

이자 상환·연장 효과에 그쳐…대선 후보들도 저마다 공약 내걸어



‘소득의 60% 이상을 대출 원리금 상환에 써야 하는 잠재적 하우스푸어가 57만 가구이고, 이들의 빚은 150조원에 달한다. 부동산이나 금융자산을 모두 팔아도 대출금을 갚지 못하는 고위험 하우스푸어는 10만여 가구로 이들의 빚은 47조5000억원으로 추산된다.’

금융위원회와 금융연구원이 10월 30일 ‘가계부채 미시구조 분석과 해법’에 대한 세미나를 열고 발표한 내용이다. 정부가 하우스푸어 규모를 공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하우스푸어란 빚을 내 집을 산 뒤 원리금 상환에 어려움을 겪는 계층을 말한다. 이날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하우스푸어를 방치하면 경매주택이 급증해 주택 가격이 폭락할 수 있다”며 “금융권도 책임을 느끼고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이틀 후인 11월 1일 우리은행은 하우스푸어 대책으로 ‘트러스트앤드리스백(Trust and Lease Back, 신탁 후 임대)’ 제도를 내놨다. 이 제도는 집주인이 소유권은 유지하지만 집을 관리·처분할 수 있는 권한을 은행에 넘기고 3~5년 신탁기간 동안 그 집에 살면서 고금리 대출이자(연 18%) 대신 월세(연 4.15%)를 내는 제도다. 단, 제도 신청 후 6개월 이상 연체하거나 만기에 대출금을 갚지 못하면 은행이 집을 팔아서 대출금을 회수할 수 있다.

대상자는 9억원 이하 1주택을 가진 실거주자로 주택담보대출 원리금을 3개월 이상 연체한 사람이다. 우리은행 주택금융부 손정태 팀장은 “은행은 대출금과 연체금의 일부를 회수할 수 있고 고객도 주택이 가압류되거나 신용불량자로 떨어지는 상황을 피할 수 있어 서로에게 윈윈”이라고 말했다.

이 제도는 뱅크오브아메리카(B OA)의 ‘세일앤드리스백(sale&lease back·매각 후 임대)’ 프로그램을 벤치마킹 했다. 매각 후 임대는 100만달러(10억8500만원) 이하의 주택을 60일 이상 연체자를 대상으로 주택을 은행에 팔고 그 집을 최대 3년까지 은행에 월세를 주고 사는 방식이다. BOA가 3월에 제도를 시행 한 이후 2500가구가 이 프로그램을 이용했다. 우리금융지주 경영연구소 이광옥 연구원은 “이 제도를 도입하려 했지만 은행법상 일반 부동산 매각을 할 수 없어 신탁 후 임대 방식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연체관리 개념에 불과우리은행은 이 제도로 500여 가구가 수혜를 입을 것으로 예상했다. 뚜껑을 열고 나니 달랐다. 제도 시행 20일이 지났지만 4월 20일 현재까지 신청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이광옥 연구원은 “아무래도 집을 내놓는 게 우리나라 정서상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은 것 같다”며 “고객이 선택하고 결정하기까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서의 문제일 뿐일까. 신탁 후 임대는 애초 적용 대상 고객군 분류가 잘못된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은행이 1차 대상으로 삼은 500여 가구의 대출 현황을 전수 조사한 결과 우리은행이 내세운 조건을 충족하는 가구는 10% 미만으로 알려졌다. 대상 가구 대부분이 복수의 금융회사에서 대출을 받은 다중채무자였다.

이 제도는 신탁 형태로 소유권을 은행이 가져가는 것이 핵심이다. 다른 금융회사에서 대출이 있으면 우리은행이 다른 금융회사 동의 없이는 소유권을 가져갈 수 없다. 손정태 팀장은 “하우스푸어의 대상범위를 넓히기 위한 작업을 하고 있다”며 “1가구 2주택자에 대해서도 제도 적용 방안을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앞서 신한은행이 10월 내놓은 하우스푸어 대책인 ‘주택힐링 프로그램’ 역시 큰 인기를 끌지 못하고 있다. 이 제도는 현재 주택담보대출 이자나 원금을 연체 중인 사람 등을 대상으로 1년 동안 연 2% 이자만 납부하고, 나머지 이자는 1년 뒤 한번에 갚도록 하는 것이다.

이 기간 안에 집을 팔아 대출금을 상환해야 한다. 신한은행은 이번 제도로 9000여명(7085억원)이 프로그램을 이용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11월 20일 현재 신청자는 93명에 그쳤다. 이 제도 역시 대출금을 갚기 위해서는 1년 뒤에 집을 팔아서 상환해야 하기 때문에 고객 입장에서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두 제도 모두 하우스푸어를 살리는 효과가 크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금융연구원 서병호 연구원은 “현재 빚을 잠시 늦춰주는 정도에 불과해 큰 도움이 되긴 어려워 보인다”며 “집값이 오르지 않으면 채무자가 빚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도 없다”고 말했다. 예컨대 국민은행의 프리워크아웃(3개월 미만 연체자 대상 채무조정) 상품도 연체금리를 연 17~18% 금리를 14.5%로 낮춰주고 10년간 분할 상환토록 했다. 성실 상환자의 경우 3개월마다 0.2%포인트씩 이자를 낮춰주지만 이자나 원금 감면은 없다.

신한은행 상품 역시 금리를 일정 기간 깎아주고 나머지 금리를 나중에 다시 돌려받는다는 점에서 다를 게 없다. 또 하우스푸어에 대한 기준자체도 모호하다. 금융감독원 양형근 은행감독국장은 “지금까지 하우스푸어의 정의를 내린 적이 없다”며 “현재 금융감독원에서는 소득에서 연간 상환해야 하는 부채비율인 총부채상환비율(DTI)이 40%를 넘는 사람을 하우스 푸어로 보지만 민간 연구원들의 기준은 다를 수 있다”고 말했다.

금융위원회는 최근 국민·신한·우리·하나 등 10개 은행 주택담보대출 고객을 대상으로 하우스푸어 대책에 대한 선호도를 파악하는 설문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매입 후 임대’ 또는 ‘신탁 후 임대’ 방안의 대상이 된다면 참여할 의향이 있는지 묻는 항목도 포함했다.

실효성 논란이 일자 하우스푸어 대책을 고민하던 다른 은행들도 망설이는 모습이다. KB국민은행 여신 담당 관계자는 “국민은행의 가계대출 규모는 다른 은행에 비해 규모가 크기 때문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며 “앞으로 상황을 시켜보면서 대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은행도 도입을 위해 검토 중이다.



제2의 프리워크아웃 제도 필요하우스푸어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이자 감면 등 채무자가 부담을 줄일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금융감독원은 주택담보대출에도 프리워크아웃(사전채무조정 제도)을 적용하고 은행과 제2금융권이 공동으로 ‘깡통주택’의 경매처분을 3개월간 유예하는 경매유예 제도를 도입하기로 했지만 여전히 회의적이다.

반면 신용회복위원회의 개인 프리워크아웃 프로그램의 경우 이자 면제에다 원금을 최대 50%까지 감면해주기 때문에 채무자 부담을 줄이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서병호 연구원은 “경기 침체가 지속되면 하우스푸어 문제가 가계부채의 가장 큰 뇌관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기업대상의 프리워크아웃 제도를 시행하듯 하우스푸어 대상자에게 이자 감면 등을 통해 신용경색을 완화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선 후보들도 하우스푸어 대책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는 자기 집의 일부 지분을 매각해 그 대금으로 은행 대출금 일부를 갚는 방식인 ‘보유주택 지분매각제도’를 공약으로 내놨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는 주택담보대출 구조를 ‘변동금리-일시상환’에서 ‘고정금리-장기분할상환’으로 바꾸는 방안을 내놨다. 안철수 무소속 후보는 주택담보대출 기간을 최장 20년으로 연장하고 일명 ‘깡통주택’은 1순위 은행과 고객간의 ‘매각 후 임대’ 또는 ‘신탁 후 임대’ 등 다양한 방식으로 채무 재조정을 유도한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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