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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 reporter at large - 포화 속에서 피어난 우정

NB reporter at large - 포화 속에서 피어난 우정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여성이 문자 메시지로 서로 위로하며 미래의 희망을 찾는다


이스라엘인 로니 케이다르(69)는 가자 지구 가까이 산다. 이스라엘과 가자 지구의 공방전이 치열해질 때면 하마스가 장악한 지역의 표적을 강타하는 이스라엘 미사일의 폭발음, 팔레스타인 측이 쏘는 로켓이 이스라엘로 향해 ‘쉭’하고 날아가는 소리가 생생하게 들린다.

2주 전 다시 전투가 벌어졌을 때 케이다르는 아예 침대를 부엌에 붙어 있는 공습 대피실로 옮겼다. 그래야 한밤중에 경보가 울려도 잠자리에서 일어날 필요가 없다. “남편은 고관절이 좋지 않아서 빨리 움직이지 못한다(He has a bad hip, so it’s hard for him to move quickly)”고 케이다르가 지난주 근 30년 동안 살아온 집에서 가진 뉴스위크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어른이 된 그녀의 딸과 아들은 어린 자녀의 안전을 위해 북쪽 지역으로 피신했다. 케이다르는 그들을 떠나보낸 뒤 가자 지구에 있는 팔레스타인 친구에게 문자를 보냈다(she texted a Palestinian friend in Gaza). 대다수 이스라엘인에게서 보기 힘든 일이다. 그녀의 팔레스타인 친구 미미 이브라힘(가명)은 전투 개시 이틀째 이스라엘 공습이 동네를 뒤흔드는 동안 대화를 시작했다.

“안녕, 로니?”라고 그녀는 문자를 입력했다. “당신과 가족이 무사하기를 빌어요(I hope you and your family are well and safe). 진짜 터무니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어요(What’s happening is really insane). 제발 조심하고 안전하기를(Please take care and stay safe)! 미미가.”

케이다르는 그런 따뜻한 마음에 감동하면서도 너무나도 얄궂은 상황에 가슴이 저렸다(Keidar felt the warmth of the gesture but also the sheer weirdness of the circumstances). 가자에서, 아니 어쩌면 이브라힘이 사는 곳에서 발사된 로켓이 케이다르가 사는 자그마한 농촌 마을 네티브 하아사라 곳곳에 빗발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걱정해줘서 고마워요(Thank you for your concern)”라고 케이다르가 문자로 답장을 보냈다. “이 일이 벌어진 이래 늘 당신을 생각했어요(I’m thinking of you since it all started). 당신과 가족의 무사를 빌어요. 우리 지도자들이 서로 대화했으면 좋겠어요(If only our leaders would talk). 조심해요(Take care).” 1분도 채 안 가 다시 이브라힘이 답신했다.

“지도자들은 우리에게 관심 없어요(Our leaders don’t care about us). 상황이 너무 좋지 않고 앞으로 더 심해질 듯해요(The situation is really bad and I expect it to get worse). 주변 모든 곳에서 공습 소리가 들려요(I hear bombing everywhere). 우린 아직 무사해요. 조심하세요.”

지난주 무함마드 무르시 이집트 대통령이 하마스와 이스라엘의 정전을 중재하자 두 친구는 어느 정도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그러나 정전이 얼마나 오래 갈지 아무도 모른다. 국경 지역에서 폭력 사건이 계속됐다. 케이다르와 이브라힘은 상황이 진정되기를 바라며 문자 메시지를 주고 받을 뿐이다.

두 친구가 사는 집은 5㎞도 떨어지지 않았다. 유럽이나 미국이라면 같은 우편번호를 사용할 정도의 거리다. 그런데도 이곳에선 그들의 관계가 너무도 특이하게 보인다. 이스라엘인이든 팔레스타인인이든 그들의 우정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은 그들의 순진함을 비웃거나 사악한 의도를 상상한다(either scoff at the two women’s naiveté or imagine sinister motives for the friendship).

가자 주민들은 수년 동안 이스라엘인들과 교류하지 못했다(Gazans have been cut off from Israelis for years). 그들은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이스라엘 출입이 불가능하다. 이스라엘인이 가자 지구를 방문하고 싶어도 (사실 그런 이야기만 해도 주변 사람들은 콧방귀를 뀐다) 국경에서 저지당한다. 한 쪽 검문소에서 이스라엘 관리들이 돌려보내거나 다른 쪽 검문소에서 하마스 경비원들이 받아주지 않는다.

그래서 이스라엘인들과 가자 주민들은 어느 때보다 서로 단절됐다. 진정한 이해와 통찰력 대신 편견과 오해로 가득하다(blinded by stereotypes and misperceptions at the expense of any genuine understanding or insight). 팔레스타인인의 이스라엘을 겨냥한 로켓포 공격이 (대개는 치명적이지 않지만) 이스라엘인들의 피를 얼마나 말리는지 인정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인이 공습으로 가자의 170만 주민을 공포에 몰아넣고 걸핏하면 민간인이 희생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경우도 거의 없다.

전투의 발단과 시점도 서로 달리 본다. 이스라엘인에게 최근 전투에 관해 물으면 대다수는 지난 몇 주, 아니 몇 달 동안 팔레스타인 측의 로켓 공격이 증가한 탓이라고 말한다. 가자 주민들의 이야기는 다르다. 그들은 11월 14일 이스라엘이 하마스 사령관 아흐메드 자바리를 암살함으로써 전쟁을 일으켰다고 말한다.

“양측의 상황 인식이 완전히 다르다(The two sides perceive these things very differently)”고 요시 알페르가 말했다. “공통된 이야기를 찾기 어렵다(It’s become hard to find a common narrative).” 알페르는 이스라엘인으로 2001년 이스라엘-아랍 대화를 위한 웹사이트를 만들었지만 올해 결국 폐쇄했다.

지난주의 전투 동안 뉴스위크는 양측 관계를 대다수와 달리 생각하고 행동하는 이단아들(outliers)을 물색했다. 양측 지도자들의 변함없는 적대감에도 상대측과 어떤식으로든 연락을 유지하는 이스라엘인과 가자 주민들을 말한다. 물론 상호 반감이 지배적이지만 몇 가지 예외는 있다(there are a few exceptions to the prevailing mutual animosity).

팔레스타인의 무장단체 하마스가 2007년 정권을 장악한 이래 이스라엘은 가자 지구를 부분 봉쇄했다. 그런데도 일부 팔레스타인 사업자들은 이스라엘의 옛 납품업자들과 관계를 유지한다. 이스라엘 의사들은 가자의 환자들을 계속 돌본다(물론 이스라엘이 출입을 허용하는 환자에 한한다). 그리고 일부 평화운동가들은 대화를 유지하려고 계속 노력한다.

“그들의 고통을 이해하고 그런 관점에서 이야기한다면 그들은 당신이 그들의 고통을 어루만진다고 느끼고 그들도 당신의 고통을 느낄 수 있다(If you understand their misery and talk from this vantage point, they will feel that you are touching their pain and they will feel your pain)”고 가자의 언론인 사미 아즈마리가 말했다. 그는 이스라엘의 신문에 기고하며 이스라엘인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가자 주민의 삶과 생각을 설명한다.

그러나 인도주의적 공통분모를 찾으려는 양측의 노력이 때로는 끔찍한 결과를 낳는다(the two sides’ efforts to find common ground in humanity have sometimes had terrible consequences). 한 가자 주민은 2010년 이스라엘 남부의 평화 모임에 참석하고 돌아가다가 하마스에 억류돼 이스라엘 부역자로 공개적인 낙인이 찍혔다(publicly branded a collaborator with Israel).

그 모임은 팔레스타인인들이 곧잘 로켓 공격의 표적으로 삼는 바로 그 이스라엘 지역의 주민들이 마련했다. 그는 신변의 위험을 느끼고 가자에서 밀수 땅굴을 통해 이집트로 피신한 뒤 돌아갈 엄두도 내지 못한다. 다른 사건에서 가자의 한 여성은 이스라엘의 병원에서 치료 받고 난 뒤 다시 이스라엘로 폭탄을 숨겨와 자살공격을 시도하려다 체포됐다.

이 이야기는 이스라엘 강경파가 팔레스타인인들을 더 엄격하게 통제해야 한다고 주장할 때 흔히 거론된다. 그럼에도 뉴스위크는 국경 너머 최소한의 연락을 유지하는 몇몇 사람들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런 열린 연락망 덕분에 그들은 서로를 더 잘 이해하고, 때로는 강한 공감대를 형성한다.

물론 수년 간의 평화정착 시도가 실패했기 때문에 그런 노력이 얼마나 가치를 갖는지는 미지수다(How much that’s worth is an open question, after years of failed peace efforts). 그러나 그 현상 자체가 놀랍다. 수년 만에 가장 치열했던 2주 간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공방전 직후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지난 한 주 동안에만 팔레스타인 160명 이상과 이스라엘인 5명이 희생됐다.


지난주 가자 지구에 치열한 공습이 진행되는 동안 이브라힘은 뉴스위크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만약 이쪽의 보통사람들과 저쪽의 보통사람들이 정치와 종교를 제쳐두고 인간적인 차원에서 서로 만나 이야기할 기회만 있다면 서로 잘 지내리라고 생각한다(If the ordinary people here and the ordinary people there have the chance to just meet and sit and talk on the human level, away from the politics, away from religion, I think they will get along). 그들은 자신과 자녀의 안전을 원한다. 우리도 우리 자신과 자녀의 안전을 원한다.”

이브라힘은 십대인 조카를 이스라엘 병원에 데려가던 중 케이다르를 처음 만났다. 그 조카는 병이 중해 수년간 치료를 받아야한다(이브라힘의 요청으로 우리는 그 조카의 이름과 구체적인 상황을 밝히지 않는다). 가자 지구에도 병원이 여러 곳 있지만 그곳 의사들은 치료가 어려운 환자를 대부분 이스라엘로 보내려고 한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환자를 한해 몇 천 명 정도 받는다.

케이다르는 팔레스타인 환자들을 국경에서 병원으로 안내하는 이스라엘 평화단체에서 자원봉사자로 활동한다. “그곳의 택시 기사들은 팔레스타인인이 이스라엘에 관해 잘 모른다는 점을 악용한다”고 케이다르가 말했다. “나는 환자들을 돕고 그쪽 사람들과 이야기할 기회를 갖고 싶어서 이 일을 한다(For me, the idea is to help them out but also to have a chance to talk to someone from the other side).” 1년 반 전 어느 날 이브라힘과 조카가 가자와 이스라엘 사이의 콘크리트 장벽과 초소를 통과해 나왔을 때 케이다르가 그들의 안내를 맡았다.

이브라힘은 이미 이스라엘을 여러 번 드나들었다. 국경 통과 절차가 두렵고 때로는 비인간적인 취급을 당하기도 하지만 잠시나마 숨막히는 가자 지구를 벗어날 기회를 갖는 것이 큰 기쁨이었다. 한번은 텔아비브 남쪽 지중해 연안의 옛 아랍 도시 자파에 갔다. 또 한번은 이스라엘인들이 샌프란시스코와 닮았다고 말하는 하이파를 방문했다.

유대인과 아랍인들이 함께 사는 도시다. 그러다가 늘 1일 체류 시간이 끝나는 오후 7시까지 국경으로 돌아가려고 서둘러야 했다. “몇 시간이나마 가자 지구를 벗어나는 것이 우리에겐 큰 의미가 있다(Just to get out of Gaza for a few hours means a lot to us)”고 이브라힘은 유창한 영어로 말했다(해외 유학을 하면서 영어를 배웠다).

그러나 이번 여행은 이브라힘에게 그 이상의 보상을 가져다 주었다. 그녀와 케이다르는 즉시 서로 마음이 통했다(She and Keidar hit it off instantly). 그들은 자동차로 이동하면서 정치와 여성의 권리를 서로 이야기했다. 40대 초반으로 독신인 이브라힘은 갈색 눈동자에 검은 아이라이너를 했고, 가자 지구에서는 머리스카프를 써야 한다는 사실에 분통을 터뜨렸다(하마스는 여성의 보수적인 복장을 한층 더 강조했다).

케이다르는 이브라힘 같은 가자 주민과 이야기할 기회를 매우 소중하게 생각한다. 런던 출신인 그녀는 1970년대 이스라엘로 건너가 시나이 반도의 정착촌에 살았다. 그러다가 1979년 이스라엘과 이집트 사이의 캠프 데이비드 협정(이스라엘측이 1967년 중동전쟁에서 점령한 시나이 반도를 이집트에 반환하고 가자 지구와 요르단 강 서안에서 팔레스타인들의 자치를 허용한다는 내용이 핵심이다)으로 그 정착촌이 철거됐다.

그런데도 그녀는 1980년대 이집트 카이로로 이주할 때까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정책에 의문을 갖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스라엘 정부는 캠프 데이비드 협정에 따른 국교 정상화의 일환으로 이집트와 농업 부문 협력을 위해 케이다르의 남편을 카이로에 파견했다.

케이다르는 5년 동안 아랍인들과 함께 살며 자녀를 아랍인 학교에 보냈다. “우리는 그곳에 사는 수많은 이집트인, 팔레스타인인들과 친하게 지냈다”고 케이다르가 말했다. 그녀는 딸의 친구였던 한 이집트 소녀를 특히 애정을 갖고 돌이켰다. 이집트 소녀의 어머니가 그들의 두 딸이 학교 밖에서 서로 만나도록 허용하기까지 3년이나 걸렸다(It took three years for the Egyptian mother to let the girls see each other outside of school).

그러나 일단 마음의 장벽이 무너지자 두 아이는 서로 떼어 놓을 수 없는 사이가 됐다(But once the wall came down, the two children became inseparable). “서로 직접 교류하면 편견을 떨치기가 쉽다(It’s hard to hold onto stereotypes when you’re engaging with people directly).” 이스라엘로 돌아간 뒤 케이다르는 아랍인들과 계속 연락할 방법을 찾았다. 그러다가 팔레스타인 환자를 이스라엘 병원으로 안내하는 평화운동 단체를 발견했다. 수년전 팔레스타인 측의 로켓 공격으로 아들을 잃은 이스라엘인이 설립한 단체였다.

케이다르는 팔레스타인인들과 함께 다니면서 가자 지구 내부의 삶을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다. 대다수 이스라엘인은 그곳 사람들의 생활이나 소식에 깜깜하다. 그녀가 병원에 데려다 준 한 남자는 이스라엘의 아슈켈론 마을을 지날 때 이스라엘 건국 전에 자신의 가족이 그곳에 살았다고 말했다. 이스라엘에서 방사선 치료가 필요한 한 팔레스타인 암환자는 그녀에게 치료로 불임이 될 경우에 대비해 정자를 냉동보관했다고 말했다. 나중에 케이다르는 임신을 원하는 그 부부를 여러 차례 병원에 데려다 주었다.

두 달 전 케이다르는 이브라힘의 전화를 받았다. 이스라엘에 와 있는데 가자 지구로 돌아가는 길에 만나 커피 한잔 하자는 전화였다. 이브라힘은 케이다르에게 줄 선물로 스카프를 샀다. 국경 부근의 트럭기사 휴게소에서 케이다르는 이브라힘을 반갑게 맞이했다. 이브라힘이 수년 동안 이스라엘에서 사귄 다른 여성 두 명도 합석했다.

그들은 한 시간 이상 수다를 떨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동안 이브라힘의 조카는 랩톱 컴퓨터로 혼자 놀았다. 이브라힘은 가자 주민들의 생활을 이야기했다. 특히 가족과 남성지배 사회의 전통적 관습에 갇힌 느낌(the feeling of being trapped by the traditional customs of her family and the male-dominated society)을 전하려 했다.

“내 나이를 생각하면 지금까지 행복하게 살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크다”고 그녀는 가자의 자택에서 뉴스위크에 말했다. “난 인생을 즐기지 못했다. 세월이 너무 빨리 흘렀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할지 답답하다. 이곳의 삶은 진정한 삶이 아니다(Life here is no life). 늘 숨이 막힌다(It’s suffocating me all the time).”

케이다르는 나중에 이브라힘에게 문자를 보냈다. “멋진 스카프 고마워요. 당신과 조카를 만나니 더 나은 미래의 희망이 생겼어요. 우리가 해야 할 일이 태산인데 불행하게도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일이 너무도 많아요(unfortunately there is so much that is not up to us). 우린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가자 지구에 있는 우리 친구들과 유대를 계속 강화할 생각이에요.” 이브라힘은 이렇게 답장을 보냈다.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I feel the same way). 오늘 만나서 너무 기뻤어요(Meeting you today made my day). 당신은 소중한 친구예요. 오랫동안 사귄 느낌이에요(I feel I know you for so long). 당신과 가족에게 신의 축복이 있기를(God bless you and your family)!”

지난주 상호 공방전이 치열해지자 이브라힘은 가자에서보다 이스라엘에 안전을 확인해야 할 친구가 더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녀는 이스라엘 쪽의 상황을 상상했다. 경보가 울리면 친구들은 대다수 이스라엘인 집에 마련돼 있는 대피실이나 안전한 방으로 피신하겠지… 이브라힘의 가족들도 이스라엘인들이 겪는 고통스러운 상황을 묻기 시작했다.

그들도 처음에는 이스라엘인과 만난다는 사실에 거부감을 가졌지만 이제 이해하게 됐다고 그녀가 말했다(Most of them were initially put off by her connection with Israelis, she says, but they came around). 케이다르의 남편도 처음에는 두 사람의 친한 관계에 의구심을 가졌다.

“이곳 사람들은 대체로 이해하지 못하지만 우리 가족은 이해한다”고 이브라힘이 말했다. “그들은 이스라엘인들을 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이 얼마나 인간적인지 내가 말해주기 때문이다(because I tell them about how human they are).” 하지만 그녀는 다른 팔레스타인인들에게는 이스라엘인들과의 우정을 비밀로 한다. 그들의 반응이 두렵기 때문이다.

몇몇 이웃사람은 그녀가 이스라엘에 자주 간다는 사실을 알고 그녀와 조카가 반역자가 됐다고 가시 돋친 농담을 한다(they make barbed jokes that she and her nephew have become traitors). 아무리 악의 없는 농담도 섬뜩할 수 있다(Even the most innocuous insinuation can be chilling).

지난주에도 가자 지구에서 이스라엘 부역자 혐의를 받은 6명이 즉결 처형됐다(six accused collaborators were summarily executed). 그런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에게 이브라힘은 이스라엘 정부와 군에는 여전히 반대하지만 그곳에서 몇몇 좋은 사람을 만났다고 설명하려고 애쓴다. “나는 하마스를 지지하지 않았고 무장단체에 로켓 공격을 요구하지도 않았다”고 그녀는 말했다. “이스라엘의 내 친구들도 마찬가지다. 그들도 정부 행동에 동의하지 않는다(they don’t agree with what their government is doing).”

지난주 치열한 공방전이 계속되는 동안 이브라힘은 자신이 아는 다른 이스라엘 가족을 생각했다. 수년 전 그녀는 3주 동안 조카와 함께 병원에 머물면서 그들을 만났다. 그 이스라엘 부부의 아들이 자신의 조카에게 수퍼영웅 인형을 쪽지와 함께 건넸다. “언젠가 평화가 정착되면 우리가 서로 찾아가서 만날 수 있을 거야.”

몇 년 뒤 이브라힘이 그 가족을 다시 만났을 때 그 아들의 어머니가 그녀를 한쪽으로 불렀다. 이스라엘의 의무 징집제(mandatory conscription)에도 불구하고 아들이 군에 갈 나이가 되면 군복무를 거부하겠다고 말했다는 이야기였다. 그 아들은 이브라힘과 그녀 가족을 다치게 하는 어떤 일도 원치 않았다.

정전 합의가 이뤄지기 며칠 전 이스라엘은 이브라힘이 대가족과 함께 사는 다층 가옥 가까운 곳의 정부 청사를 공습했다. 가자주민들은 경보 시스템도 대피실도 없다. 야간 공습 동안 가족들은 거실에 모여 담요를 뒤집어 쓰고 지냈다고 이브라힘이 말했다. “무슨 일이 생기면 우린 모두 한꺼번에 죽을 것이다(If something happens, we will all die together, at once).”

그러다가 어느 날 그녀가 침실에서 컴퓨터 앞에 앉아 있을 때 집 바로 곁에 미사일이 떨어졌다. 폭발 충격으로 집의 창이 깨지고 문짝이 떨어져 나갔다. 창의 유리조각 파편때문에 이브라힘은 머리 뒤가 약간 찢어졌다. 며칠 동안 상처 부위가 부풀어 올랐다고 그녀는 말했다.

공습이 끝난 뒤 이브라힘은 케이다르에게 문자를 보냈다. “이스라엘 전투기의 공습이 매우 심했어요. … 오늘 아침 우리 동네 부근에 미사일 다섯 발이 떨어졌어요. 우린 무사하지만 집이 좀 부서졌어요.” 케이다르도 팔레스타인 쪽에서 발사된 로켓탄이 그녀의 마을에 떨어져 심란했던 터에 그 소식을 듣고 고개를 떨구며 눈물을 흘렸다.

잠시 후 마음을 가라앉힌 뒤 나머지 메시지를 읽었다. 하지만 시름만 깊어질 따름이었다. “사정이 더 나빠지고 있어요, 로니(It’s getting worse, Roni). 제발 조심하고 무사하길 빌어요(Please take care and stay sa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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