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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try - 위대한 시인의 뮤즈

poetry - 위대한 시인의 뮤즈

푸시킨 아내 나탈리아는 생전에 심한 비난 받았지만 최근에 명예 회복 시작돼

나탈리아 푸시키나는 제정 러시아의 궁중에서 최고의 미녀로 이름을 날렸다(왼쪽). 시인 푸시킨은 아내 나탈리아를 흠모하는 당테스와의 결투로 목숨을 잃었다.


코르셋으로 꽉 조인 가는 허리, 바닥에 끌려 스르륵거리는 겹 스커트. 나탈리아 푸시키나는 우아한 자태로 방에 들어섰다. 사촌이 맞이하리라 생각했지만 오랫동안 자신을 흠모하던 남자가 나타났다. 프랑스 이민 귀족 조르주 당테스였다. 그 역시 그녀의 시아주버니였다. 당테스는 나탈리아 발앞에 무릎을 꿇고 함께 떠나자고 애원했다. 그렇지 않으면 자살하겠다고 떼를 썼다. 다행히 그 순간 친척 딸아이가 방으로 뛰어들어왔다. 가까스로 나탈리아는 당혹스러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나탈리아 푸시키나(처녀 시절의 성 곤차로바로 더 잘 알려졌다)는 러시아 궁중에서 최고 미녀로 꼽혔다. 리세움 학생들부터 그녀에게 홀딱 빠진 러시아 황제까지 주변 모든 남자들이 그녀 때문에 가슴이 찢어졌다. 남편인 위대한 시인 알렉산드르 푸시킨은 그녀를 “나의 마돈나”라고 불렀다.

나탈리아와 당테스의 승강이는 결국 비극적인 결과를 불렀다. 같은 해인 1837년 겨울 당테스는 나탈리아의 남편 푸시킨에게 결투를 신청했다. 그 결투에서 푸시킨은 큰 부상을 입고 이틀 뒤 상트페테르부르크 모이카 강둑에 있는 아파트에서 37세라는 젊은 나이로 숨을 거뒀다.

두 사람이 함께 한 8년 동안 나탈리아는 시인 푸시킨의 아내이자 네 자녀의 어머니였을 뿐 아니라 그의 살아있는 뮤즈(muse, 시적 영감을 주는 대상)였다. 푸시킨은 공책 여백에 그녀의 모습을 수십 개나 스케치했다. 발레 리본에 우아하게 휘감긴 발레리나의 발. 기다란 목과 섬세한 얼굴 윤곽, 곱슬머리의 당당한 옆모습.

푸시킨은 나탈리아를 113번째 연인이라고 농담했다(그녀를 만나기 전에 상당한 바람둥이였다). 그가 그녀에게 쓴 숱한 사랑의 편지에서 맺음말은 “당신의 날개 끝에 키스하며”였다. 푸시킨은 빚과 질투, 궁중 음모에 시달렸지만 적어도 한가지는 확신했다. “당신이 없었다면…”이라고 그는 나탈리아에게 쓴 편지에 적었다. “평생 불행했을 거요.”

푸시킨은 아름다운 아내를 보호하려고 발버둥쳤다. “아무런 죄 없이 고통당하는 불쌍한 내 아내! 사람들이 그녀를 고문할 거야!” 부상한 푸시킨은 친구들에게 나탈리아를 사악한 험담으로부터 보호해 달라고 고통 속에서 그렇게 부탁했다. 푸시킨이 죽은 뒤 그 두려움은 현실로 나타났다. 나탈리아는 친구들 덕분에 정신이상이 되진 않았지만 심한 인신공격에 시달렸다.

수십 년 동안 비판자들은 그녀가 요염하고 오만한 태도로 푸시킨의 애를 태웠다고 비난했다. 그녀가 푸시킨을 한번도 사랑하지 않았다는 주장도 나왔다.

문학계는 나탈리아에게 아주 적대적이었다. 푸시킨을 연구하던 학자들은 그녀가 얼굴 하나로 출세하려고 했으며, 당테스에게 먼저 추파를 던졌다고 비난했다. 러시아의 유명한 20세기 여류시인으로 푸시킨의 열성팬인 안나 아흐마토바와 마리나 츠베타예바는 나탈리아가 푸시킨의 삶에서 “빈 공간”이었고, 오로지 궁중 무도회와 파티만을 위해 산 “인형”이었으며, 지루한 가정생활을 견디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말년에 스탈린주의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아흐마토바는 나탈리아를 푸시킨 정적들의 “첩자”이자 “공범”이라고 부르며 푸시킨 사후 그의 시작품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았다고 비난했다. 더 최근에는 현대 소설가이자 시인인 드미트리 비코프도 푸시킨이 나탈리아가 아니라 그 이전에 만난 더 훌륭한 여인 중 한명을 뮤즈로 택하지 않아 안타깝다는 아흐마토바의 유감에 동조했다.

두 세기가 지나서야 일부 학자들이 나탈리아의 명예 회복에 나섰다. 푸시킨 전문가 라리사 체르카시나는 나탈리아 탄생 200주년을 맞아 새로운 전기 ‘나탈리아 곤차로바(Natalya Goncharova)’를 펴냈다. 푸시킨 일생에 관해 그녀가 쓴 11번째 책으로 지난 가을 러시아에서 출간됐다.

체르카시나는 “푸시킨을 숭배하면서 그의 마돈나를 비난하는 것은 도저히 양립되지 않는 두 가지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그녀는 개인 편지와 문서(체르카시나가 국립 도서관과 박물관서 찾아낸 몇 가지 중요한 자료도 포함된다)를 바탕으로 나탈리아를 옹호했다.

푸시킨이 모스크바 무도회에서 16세 소녀로 만나 생의 마지막 날까지 열렬히 사랑한 나탈리아는 더 많은 관심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그녀는 주장했다. 나탈리아는 어렸지만 예리한 지성을 가졌고, 단순한 팜파탈(femme fatale)보다 훨씬 더 복잡한 성격이었다고 체르카시나는 지적했다.

체르카시나가 발견한 자료 중에는 나탈리아의 자필 문서도 있다. 메모, 서정시, 러시아 시의 역사와 이론에 관해 프랑스어로 쓴 두툼한 교과서. 체르카시나는 나탈리아가 남편 푸시킨에게 보낸 짧은 시도 발견했다. 천진난만하고 부드러운 시다. 푸시킨의 답장이 없었다면 나탈리아가 시를 더 많이 썼을지 모른다. 푸시킨은 나탈리아에게 시를 그만 보내라고 했다. “난 내 시만해도 신물이 나거든요”라고 그는 말했다. 푸시킨이 아내에게 가혹했던 적은 그뿐이 아니었다.

나탈리아가 보관했던 편지 60여 통 중 하나에서 푸시킨은 상트페테르부르크 궁중무도회의 여왕이던 나탈리아에게 “나의 천사, 당신은 참 바보군요”라고 했다. 다른 여성이면 그런 불쾌한 편지에 화를 냈겠지만 나탈리아는 그 편지도 “순수하고 순결하고 진실한 마음으로” 보관했다고 체르카시나는 책에서 주장했다.

체르카시나는 나탈리아를 가혹하게 비난한 비판자들의 주장을 일축했다. 츠베타예바와 아흐마토바를 두고 19세기 러시아 궁중의 다른 여성들처럼 푸시킨의 열정적인 아내 사랑을 질투했을 뿐이라고 그녀는 말했다. 그 두 여류시인(미모가 떨어진 게 확실하다)은 나탈리아를 싫어했다. “그들 자신이 천재 푸시킨 곁에 살면서 그의 시에 영감을 주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체르카시나는 주장했다.

나탈리아의 이미지가 실제로 좋아지기 시작한다는 조짐도 있다. 푸시킨 팬들은 그녀의 생일(9월 8일)을 ‘나탈리아의 날’로 정하고 축하하기 시작했다. 올해는 탄생 200주년을 맞아 나탈리아가 말년에 살았던 로파스니아-자차트예브스코예 궁에서 화려한 무도회가 열렸다(그녀는 푸시킨이 죽었을 때 24세였고 푸시킨이 2년만 애도하라고 했지만 7년을 혼자 살았다). 그 무도회는 푸시킨과 나탈리아가 사랑했던 시절의 러시아 궁중 분위기를 되살렸다. 유럽 전역의 귀족들이 황제의 무도회장에 모여 춤추던 시절을 말한다.

파티 의상도 19세기 초 풍속을 따랐다(여성은 가볍고 속이 비치며 어깨를 드러내는 드레스, 남성은 장교 유니폼). 귀족의 관습도 많이 보였다. 시시덕거림도 장려됐다. 사중주단이 카드리유(프랑스의 전통 춤곡)를 연주했다. 우아한 흰 드레스와 금 고리로 빛나는 검은 머리를 장식한 나탈리아를 푸시킨이 처음 본 그 당시 모스크바의 트베르스코이 거리에 크리스마스 장식 사이로 흘렀던 바로 그 음악이다. 이번 파티에서 러시아 지식인들은 당당하게 무도장의 나무바닥을 미끄러지듯 춤췄다.

요즘 젊은 러시아 작가들도 나탈리아의 명예 회복에 동참한다. 베스트셀러 소설가 자크하르 프릴레핀은 체르카시나의 책이 시의적절하다고 말했다. 러시아 젊은 여성들도 ‘똑똑하고 아름다운’ 나탈리아, 천박해 보이지 않고 패션과 로맨스에 사로 잡혔던 나탈리아에 매료된다. 러시아의 탈 소련 엘리트들은 역사에 관심이 많다. 러시아에서는 역사책 독자가 지난 몇 년 동안 거의 두 배로 늘었다. 따라서 체르카시나의 책처럼 역사적 인물의 재조명이 더 활발해질 전망이다.

요즘 러시아의 유명한 미인들은 나탈리아에게서 동지 의식을 느낀다. 패션계의 스타인미로슬라바 두마는 “요즘 우리도 나탈리아시대보다 결코 덜하지 않은 음모와 함정에 시달린다”고 말했다. 그녀는 스스로 ‘새로운 여황제(New Tsarinas)’로 부르는 사교계 명사 그룹에 속한다.

어떤 면에서는 그들이 현대판 나탈리아다. 세계 최고의 패션쇼에 참석하고, 멋진 옷을 입고 뽐내며, 부유하고 유명한 남편과 아버지에게 기대지 않고 독자적으로 여행을 즐긴다. 나탈리아 시대와 자신들 시대에서 다른 점이 단 한가지 있다고 두마는 말했다. “순진함과 겸손함은 구시대 유물이다. 요즘 최고 미인들은 괜찮고 쓸모 있다 싶은 남자는 그냥 낚아챈다(Today’s top beauties just grab men they find usef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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