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의 정신을 간지럽히다
독자의 정신을 간지럽히다
애덤 필립스가 환자와 상담을 하고 많은 저술작업을 하는 런던 노팅힐게이트 아파트에 책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 3층 창문밖으로 섹시 란제리 상점의 전면 진열장이 보인다. ‘스트립(Strip, 옷을 벗다)’이라는 브랜드다.
명령인가? 초대인가? 아니면 위협인가? 어느 쪽이든 묘하게 어울리는 맛이 있다. 필립스를 방문하거나 그의 책을 읽으면 곧 인간의 실상이 가장 고혹적인 방식으로 알몸을 드러낸다(find the human condition laid bare in the most seductive way). 들어갈 때 만반의 준비를 해도 필시 나올 때는 벌거벗은 듯하면서 몹시 흥겨운 기분이 된다.
58세의 그 남자가 내 맞은편 창문 옆의 작은 나무 의자에 앉아 있다. 젊은 시절 때때로 가수 밥 딜런과 묘하게 닮은 면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그가 밥 딜런보다 더 곱게 늙어간다고 해야겠다. 필립스는 문학적 정신과의사(literary shrink)라는 타이틀을 거부한다.
그가 일하고 생활하는 영국에서 그의 위상은 광팬들이 따르는 컬트와 베일에 싸인 신비 사이 어딘가에 위치한다. 뛰어난 문장력을 가진 이 정신요법 의사는 (프로이트처럼) 작가로서의 재능을 한껏 발휘하며 정신분석의 미묘한 미스터리 속으로 우리를 끌어들인다.
그는 본능적으로 신중하다. 내 질문에 답할 때 고개를 돌린 채 거의 시선을 마주치지 않는다. 아마 (그를 잘 몰랐다면) 어색하게 따로 움직이는 그의 오른쪽 눈 때문에(by the awkwardness of his wandering right eye) 내가 당혹스러워할지 모른다는 사실을 의식하는 듯하다. 어릴 때 생긴 습성이다.
대학원생처럼 짙은 색 코듀로이 바지, 캐주얼화, 그리고 따뜻한 갈색 셔츠 차림이다. 어떤 분위기에선 ‘반지의 제왕’ 속 중간계(Middle Earth) 주민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또한 그를 교수, 시인, 심지어 현인으로 착각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필립스는 20년 동안 인간의 무의식적 욕망을 탐구해 왔다. 1993년 ‘키스, 간지럼 태우기 그리고 지루함에 관해(On Kissing, Tickling and Being Bored)’라는 수필집으로 처음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 그 뒤로 하루는 글을 쓰고 나머지 사흘은 환자를 보는 일과를 계속해 왔다. ‘유혹에 관해(On Flirtation)’ ‘일부일처제(Monogamy)’ ‘멀쩡함과 광기에 대한 보고되지 않은 이야기(Going Sane)’ 등 20편의 책을 출판하면서 투명인간처럼 모습을 감추면서도 조심스럽게 이름을 알렸다.
미국에서 2월에 출간되는 그의 신저 ‘기회의 상실(Missing Out)’에는 ‘살아보지 않은 삶의 예찬(In Praise of the Unlived Life)’이라는 부제가 붙었다. 표면상의 주제는 좌절감이다(이뤄지지 않은 소망, 가보지 않은 길, 희생된 욕망).
하지만 그것은 그가 가진 첫 번째 우려에 불과하다. 책장 속에서 정말 무슨 일이 전개되는지를 알아내려면 필립스 자신의 이력을 살펴보는 방법도 괜찮다. 그에 따르면 그는 자신의 운을 포착하거나 중요한 순간을 놓치지 않는 데 지나칠 정도로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인 듯하다.
필립스는 1954년 불분명한 폴란드 혈통이 섞인(of ambiguous Polish extraction) 영국계 유대인 2세로 태어났다. “우리 조상이 옴스크 출신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집안에 전해졌다”고 그가 말했다. 옴스크는 역사의 흐름에 따라 때로는 폴란드였다가 때로는 러시아에 속했던 도시다. 친가 쪽 핑커스-레비 조부모가 웨일즈에 도착한 뒤 필립스라는 웨일즈 이름을 얻었다. 항구 도시 스완지에 정착했다가 나중에 카디프로 이주했다.
이들 조부모는 “전형적인 유대인 이주자였다”고 그는 말한다. “적당히 유대교를 준수하며 가난하지만 중하층이었다. 친할아버지는 재단사이자 외판원이었다.” 필립스의 아버지는 아들 셋 중 장남으로 “특출한 아이”였다.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기 전 현지 그래머스쿨(grammar school, 우등생들이 다니던 중등학교)을 나와 장학생으로 옥스퍼드 대학에 진학했다. 당시에는 대단한 업적이었다.
이들 필립스 부자는 2대에 걸쳐 모두 빠르고 즐겁게 영국 생활에 적응했다. 할아버지는 제1차 세계대전 때 영국군으로 참전해 무공 십자훈장(a Military Cross)을 받았다. 아버지는 제2차 세계대전 때 북아프리카의 전차부대에서 근무하며 역시 훈장을 받았다. 필립스에 따르면 아버지는 그 경험을 “대단히 즐겼다”고 한다. ”전에는 만나보지 못했던 상류계급 영국인들과 처음으로 어울릴 수 있었다.”
필립스 가문은 다른 건 몰라도 분명 영국 예찬론자(Anglophiles)였다. 그의 가족은 나라에 대한 충성심이 강했고, 동화되기 위해 열성을 다했으며, 자녀가 영국인이 되기를 바랐다. 필립스는 화목한 대가족의 감동적인 그림을 그린다. 휴일을 함께 보내고, 불가피한 긴장을 겪고, 외부에서 유입된 이주자에서 카디프 사회의 존경받는 일원으로 전환하는 과정을 무난히 헤쳐 나갔다.
어린시절의 정신적 상처도 없었다. “아무도 미치지 않았다”고 그가 말했다. “중병에 걸린 사람도, 이혼한 사람도 없었다.” 그는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멋쩍게 털어놓았다. 사립 중등학교 클리프턴 칼리지(Clifton College)에 진학했다. 거기서 영어를 배우면서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눈이 번쩍 뜨이는 경험(a conversion experience)”을 했다. “영문학이 내 사춘기의 유일한 취미가 됐다.”
손에 잡히는 대로 문학 책을 읽었다. D H 로렌스, 형이상학파 시인들, 존 던, 알렉산더 포프, 조셉 콘라드, 윌리엄 블레이크, 낭만주의 작품 등, “우리 모두가 자랄 때 읽었던 주요 작품들”이었다. 아마 십대의 반항은 없었던 듯하다. 필립스는 집을 떠나 있기를 좋아했으며 클리프턴 칼리지에서의 기숙사 생활에 “대단히 만족했다.” 그렇다면 정신분석에 빠진 계기는 무엇이었나? 그는 학교에서 ‘기회의 상실’은커녕 천직을 체험했다.
“클리프턴 칼리지에서 생활하던 16세 아니면 17세 때였다”고 그가 돌이켰다. “칼융의 자서전 ‘기억·꿈·사상(Memories, Dreams and Reflections)’을 구입했다. 책을 읽으면서 이것이 바로 내가 원하는 삶이라고 생각했다.” 결정적인 계기는 옥스퍼드에 다닐 동안 D W 위니컷의 ‘놀이와 현실(Playing and Reality)’을 처음 읽었을 때였다. “공감하는 부분이 많았다. 그때 그것이 바로 내가 원하는 길임을 알았다.”
그리고 그것이 그의 진로가 됐다. 필립스는 아동심리 연구원에 들어가 마수드 칸 아래서 아동 정신요법 의사 교육을 받았다. 기본적으로 프로이트 이론 교육과정이었다. “칸은 내게 아주 잘 대해줬다”고 그가 돌이켰다. “무척 배려하고 상당히 동정적이었다. 정말 그와 대화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는 정신분석이 재미있을 뿐 아니라 대단히 흥미로울 수 있음을 내게 가르쳐줬다.”
왜 아동인가? “어떤 점에 끌렸나?” 잠시 생각에 잠긴다. “사실 잘 모르겠다. 아이들을 좋아한다. 아이들부터 시작하면 재미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를테면 근본부터 시작한다고 할까. 그쪽이 더 재미있겠다고 생각했다.” 이번에도 역시 재미다. “또한 위니컷에 여전히 푹 빠져 있었다.”
왜 글을 쓰는가? 의식적으로 작가가 되려는 꿈은 없었다고 한다. “독서가(책 읽기를 좋아했다) 겸 아동 정신요법사가 되고 싶었다.” 타이밍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 R D렝이 지배하던 1960~70년대의 막바지에 정신분석을 시작했다. 정신분석이 권위를 인정받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불가피하게 역풍이 불면서 렝의 명성이 추락했다. 1980년 대 중반엔 정신분석서가 학술적이고 난해해졌다. 그에 따라 공백이 생겼다.
이 갈림길에서 운명이 프랭크 커모드의 몸을 빌려 끼어들었다. 현대 거장들을 소개하는 영향력 있는 포켓북 시리즈 폰타나마던 매스터스(Fontana Modern Masters)의 편집자였다. 저명한 영문학자인 커모드는 필립스에게 위니컷에 관한 포켓북의 저술을 의뢰했다. 책은 성공적이었다.
에세이 청탁이 잇따랐다. 필립스는 프랑스의 심리분석 저널(the Nouvelle Revue de Psychoanalyse)에 ‘간지럼 태우기(On Tickling)’에 관한 글을 썼다. 점차 글쓰기에 매료됐다. 필립스는 “일단 글쓰기를 시작하자 멈출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키스, 간지럼 태우기 그리고 지루함에 관해(On Kissing, Tickling and Being Bored)’는 큰 호평을 받았다. 필립스의 반어적인 초연함과 도발적인 역설이 인기를 끌었다(There was an appetite for Phillips’s ironic detachment and provocative paradoxes). 그는 실용적인 영국인들 사이에서 정신분석의 미스터리를 탁월하고 읽기 쉽고 매혹적인 산문으로 탈바꿈시킬 수 있는 마법사로 받아들여졌다.
환자들은 어떻게 생각하나? 잠시 침묵이 흐른다. “내 환자들에 관해서는 쓰지 않는다. 비밀 누설은 없다. 그래도….” 또 다시 망설임. “정신분석은 속성상 사적인 문제”라고 필립스가 시인한다. 그가 공적인 활동을 할 때 환자들이 보기에는 뭔가 불가피하게 새나갔다(has inevitably been compromised).
이 까다로운 주제에 대한 명백한 답변은 지금은 적어도 모두가 정신분석의의 글쓰기에 따르는 조건을 이해한다는 점이다. 필립스는 때때로 대중을 위한 책을 펴낼 것이다. 하지만 그가 자기 인생의 이 같은 측면을 신중하게 감독한다는 느낌이 든다.
초창기 때 잠깐 통제력을 잃어 상황이 뒤엉켜 버렸다(things went a bit haywire). 1996년 ‘일부일처제’라는 작은 페이퍼백 풍자서를 출간했다. 필립스의 표현에 따르면 “대단히 상반된 평가(very ambivalent publicity)”를 받았다. 그는 항상 글을 빨리 썼다.
몇 단락짜리 짧은 신문기사에 살을 붙여 배우자에 대한 변치 않는 애정과 정절에 관한 120단락짜리 책을 만들어냈다. ‘일부일처제’가 GQ 잡지 표지에 실렸다. 비판적인 평론이 많았다. 자신이 경멸하던 미디어형 정신과의사(a media shrink)가 될 위험에 처했다.
‘일부일처제’는 “내가 원치 않는 영역으로 나를 밀어 넣었다”고 그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 뒤로는 자신의 저술활동을 철저히 통제했다. 그는 항상 윌리엄 해즐릿, 찰스 램, 랠프 왈도 에머슨 등의 수필가들을 좋아했다. 요즘엔 그 장르의 저술활동에 몰두한다.
‘다윈의 벌레들(Darwin’s Worms)’ ‘어린이집의 괴물(The Beast in the Nursery)’ ‘후디니의 상자(Houdini’s Box)’ ‘부작용(Side Effects)’ 등 그의 최근작 중 다수가 수필집이다. 그는 “나는 장문의 인문서보다 에세이를 선호한다”면서 장편과 단편 소설에 비유했다. 크리스토퍼 이셔우드와 E M 포스터의 영향이 컸다고 털어놓았다.
필립스의 작품을 읽다 보면 때때로 답답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기회의 상실’ 같은 책을 한 장 한 장 정독하며 음미한 뒤에도 책의 메시지가 아리송해 요약하기가 쉽지 않을지 모른다는 점을 그에게 지적했다. 마치 정신분석학 상담의 모호성을 그대로 반영하고 싶어하는 듯하다. 필립스는 이 같은 지적에 당황하지 않는다.
“내 책을 읽는 게 즐거운 경험이 되기를 원한다”고 그가 말했다. “하지만 누군가 ‘필립스의 생각은 X, Y 그리고 Z’라고 단정짓는 건 원치 않는다. 내 책을 읽고 각자 나름대로 생각하면 된다(you can have your own thoughts).” 자신의 말이 거창하게 들린다는 점을 약간 의식했는지 이렇게 덧붙인다. “나는 개념보다 문장에 더 관심이 많다. 나는 이론을 좋아하지 않는다.”
‘기회의 상실’은 필립스의 장점을 유감없이 드러낸다. 무엇보다 경구 문장들이 빛을 발한다. “반성하지 않는 삶이라도 분명 살 가치가 있다. 하지만 살아보지 않은 삶은 반성할 가치가 있나(The unexamined life is surely worth living, but is the unlived life worth examining)?” 그리고 이론을 경멸하는 척한다. 사실, 이 책은 상당히 논쟁적이며 좌절감이란 개념을 ‘좋은 것’으로 재활용하려 애쓴다.
‘기회의 상실’이 곧 출간되고 나면 다음 프로젝트가 그를 기다린다. 예일대에서 발행하는 ‘유대인 위인전(Great Jewish Lives)’ 시리즈의 하나인 프로이트 전기다. 이 정신분석 창시자의 인생에 관한 필립스의 전기는 짧고 “소설의 경계를 넘나든다(verging on the novelistic).” 하지만 때가 됐다고 그는 믿는다. “프로이트는 지금은 과거 시대의 영웅에 불과하다”고 그가 말했다. “사람들은 옛날처럼 그에게 열광하지 않는다. 나는 다른 종류의 스토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
그밖에는 평소와 다름없는 일과를 계속한다(he will carry on as before). 환자를 보고 시간 날 때마다 글을 쓴다. 첫 결혼에서 얻은 18세짜리 딸 하나, 그리고 현재의 파트너 사이에서 생긴 여섯살짜리 아들과 아홉살짜리 딸이 있다. 런던 칼리지 오브 패션 전시학과의 주디스 클라크 교수가 현 파트너다. 그는 말한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냥 하루하루 살아간다. 한번에 한 걸음씩.”세월은 그렇게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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