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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젊은 女사원들 다 어디로 갔나?

그 많던 젊은 女사원들 다 어디로 갔나?

임신·출산·육아에 따른 경력 단절로 매년 50만명 퇴출. 재취업 어렵고 직장 복귀해도 보직·승진 불이익 유리천장(Glass Ceiling)은 여성의 고위직 진출을 막는 보이지 않는 장벽을 말한다. 사회 곳곳의 여초(女超) 현상에도 대다수 직장 여성은 유리천장을 깨기는 커녕, 그 근처에 갈 엄두를 내지 못한다. 이른바 ‘마미 트랩(Mommy trap : 엄마의 덫)’에 걸려 직장 5~10년 차에 탈락하는 여성이 많다. 결혼·출산·육아로 경력이 단절되는 여성만 한 해 50만명. 직장 내 승진 경쟁에서 미끄러지는 여성은 헤아릴 수도 없다. 그 결과 기업 임원은 대부분 남성으로 채워진다. 출산이 축복이 아니라 덫이 되는 실태를 취재했다. 마미트랩을 극복하고 ‘별’을 단 여성 임원들도 만나봤다.
한 대기업 계열사 임원회의 모습. 여성이 한 명도 보이지 않는다.



주부 이희진(37)씨는 한때 촉망 받는 홍보맨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글로벌 홍보대행사의 한국지사에 입사해 신입 시절 두각을 나타냈고, 상사들의 총애를 받았다. 직장 3년차 때 한 남자와 사랑에 빠져 혼전 임신을 했다. 결혼을 서둘렀다. 회사에는 임신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배가 불러오자 회사를 그만뒀다. 첫 아이를 낳고 3년간 전업 주부로 살던 그는 일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경력 사원을 뽑는 홍보회사 여러 곳에 입사 원서를 냈지만 그를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그러다 둘째를 임신했고, 그것으로 직장 복귀를 포기했다. 그는 “첫 아이를 낳을 때만 해도 몇 년 후 다시 일할 수 있다는 기대가 있었다”며 “이제는 애들을 키우느라 엄두도 내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이씨처럼 결혼·출산·육아로 직장 경력이 단절된 여성은 지난해 현재 약 200만명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2년 기혼여성(15~54세) 986만 명 중 미취업 여성은 408만명. 이 중 절반 가량이 ‘마미 트랩(Mommy trap, 엄마의 덫)’에 걸려 직장을 나온 이들이다. 경력이 단절되는 이유는 결혼(46.9%), 육아(24.9%), 임신과 출산(24.2%), 자녀 교육(4%) 순이었다. 여성정책연구원에 따르면 매년 약 50만명이 경력 단절로 직장을 떠난다.

출산 후 직장을 계속 다녀도 많은 여성은 마미트랩에 걸려 승진에 불이익을 당하거나 중도 탈락한다. 마미트랩은 ‘마미트랙(Mommy track·엄마의 길)’을 비튼 말이다. 마미트랙은 1989년 미국 경영컨설턴트인 펠리스 슈바르츠가 처음 쓴 용어다. 슈바르츠는 “아이가 있는 직장 여성은 육아를 위해 출·퇴근 시간 등 근무형태를 조정해 분리된 트랙을 밟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마미트랙은 여성을 돕기보다 승진을 가로막거나 승진 가능한 자격 연한이 늘어나는 ‘덫’으로 작용했다. 슈바르츠는 나중에 마미트랙에 대한 주장을 철회했다.

임신·출산·육아로 인한 여성 경력 단절은 일정 부분 불가피하다. 선진국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한국은 그 정도가 심각하다. 우리나라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은 2012년 말 현재 48.5%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은 64%다. OECD 회원국 중 여성 경제활동참가율이 우리나라보다 낮은 나라는 이탈리아·멕시코·터키뿐이다.

가장 심각한 것은 30~39세 여성이다. 기획재정부와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25~29세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은 71%로 OECD 평균과 같다. 하지만 30~34세가 되면 55%로 뚝 떨어진다. 이런 급락세는 35~39세(56%)까지 이어지다가 40세 이후에야 60%대로 회복된다.

활발히 직장생활을 할 연령대의 여성 고용률이 급락했다가 다시 오르는 이른바 ‘M커브’ 현상은 후진국에서 주로 나타난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여성 정규직 근로자 수는 25~29세 82만명, 30~34세 63만명이었다. 이에 비해 OECD 회원국 30~39세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은 전후 연령대와 비슷하게 유지되면서 전 세대에 걸쳐 역 유(U)자 형을 나타낸다.

우리나라 정규직 기혼여성의 출산율을 주제로 논문을 쓴 김상대 경상대 경제학과 교수는 “2011년 기준 전체 여성 취업자의 35%(135만명)는 출산 가능성이 큰 20대 후반과 30대 초반”이라며 “이 세대에서 출산·육아 문제로 경력이 단절되는 여성이 많다”고 말했다.



여성 차·부장급 중간관리직 두텁게 해야마미트랩에 걸려 경력이 끊기면 재취업이 어렵고 설령 취업을 해도 질 낮은 일자리로 이동할 가능성이 크다. 여성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육아 때문에 직장을 그만둔 여성은 다른 이유로 그만둔 경우보다 재취업률이 36%포인트 떨어진다. 또한 경제활동을 중단한 여성이 재취업하면 이전 직장보다 임금을 22% 덜 받는다. 5년 이상 일을 하지 않다가 재취업하면 40% 가까이 임금이 하락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OECD도 지난해 말 비슷한 보고서를 냈다. OECD에 따르면 한 자녀 이상을 둔 한국 여성 근로자와 남성 근로자의 소득격차는 47%다. OECD 회원국 평균(22%)의 두 배를 웃돈다. OECD는 “이런 임금 차이는 출산·육아로 인한 경력 단절이 가장 큰 이유”라고 밝혔다‘엄마의 덫’은 다른 말로 하면 ‘자녀의 덫’이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영유아기(1~7세) 자녀가 있으면, 없을 때보다 재취업률이 11% 떨어진다. 또한 미혼에 비해 기혼자가 재취업이 더 어렵다. 회사를 그만두지 않고 육아휴직을 하는 경우도 기간이 길면 길수록 직장에 복귀하기 힘들다. 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육아휴직을 3개월 사용한 여성의 고용시장 복귀율은 70%지만, 10개월을 사용하면 복귀율이 54%로 낮아진다.

직장을 계속 다니더라도 마미트랩은 ‘승진의 덫’으로 작용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경력 단절 여성이 전 직장에서 근무한 기간은 1년 미만이 15.5%, 1~3년 미만이 41.7%, 3~5년 미만은 21.8%다. 경력이 끊기는 여성 10명 중 8명이 대리도 달기 전에 중도 하차한다는 얘기다. 이는 여성 임원 부족 현상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컨설팅 회사인 에이온리서치가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1년 국내 기업에 다니는 사원급 100명 중 42명은 여성이다. 하지만 대리급으로가면 32%, 과장급으로 올라가면 28%로 준다. 중간관리자인 차·부장급은 8%에 불과하다. 출산과 육아가 본격화되는 30대 후반에 많은 여성이 승진 대열에게 대거 탈락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차·부장까지 오른 여성은 임원이 될 가능성이 커진다. 에이온휴잇 관계자는 “국내 기업의 여성 이사 비율은 22%, 상무는 11%, 전무는 8%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사장·부사장 비율은 3%다.

다른 조사에서도 기업 규모와 상관없이 양상은 비슷하다. 온라인 취업포털 사람인이 지난해 말 중견·중소기업 289곳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여성 직급별 비율은 사원급 28%, 대리급 16%, 과장급 10%, 부장급 5%로 나타났다. 기업 경영성과 평가 사이트인 CEO스코어는 최근 “국내 10대 그룹 소속 상장사 93곳의 여성 임원 비율은 1.5%”라고 발표했다.

CEO스코어 관계자는 “10대 그룹 상장사의 여성 직원 비율이 20.4%인 점을 감안하면 국내 대기업의 유리천장이 여전히 두껍다”고 말했다. 물론 여성들이 유리천장(고위직 한계)에 도달하지 못하는 것은 마미트랩 외에도 여러 요인이 있다. 일반적으로 지적되는 것이 남성 중심의 기업문화와 비즈니스 관행, 남성 위주 네트워크 운영과 여성 참여 제한, 여성에 대한 부정적 선입견 등이다.

이와 관련 최근 정치권에서는 ‘여성 임원 할당제’ 얘기가 나온다. 공공기관이나 기업이 여성 임원을 일정 비율 이상 채우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차·부장급 여성 중간관리층이 엷은 상황에서 실효성이 적다는 지적이 많다. 정부가 2006년 도입한 적극적 고용개선조치인 ‘AA(Affirmative Action)’ 제도만 봐도 알 수 있다.

AA제도는 공기업과 500인 이상 고용 민간기업이 매년 직종·직급별 남녀 근로자 현황과 시행 계획을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제출해 실적이 우수한 기업에 세제 감면 등 인센티브를 주는 제도다. 2011년 말 기준으로 적용대상 기업은 1547개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11년 현재 AA적용 대상 민간 기업의 여성 임원 비율은 6.4%, 과장급 이상은 10.4%다. 이에 대해 여성정책연구원 출신인 민현주 새누리당 의원은 “여성의 관리직 진출이 늘고 있지만 아직까지 여성 관리직 규모는 선진국에 비해 매우 낮은 수준”이라며 “여성 중급 관리직을 확대하기 위한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마미 트랩 극복하면 출산율도 높아져변정현 한국고용정보원 책임연구원은 “여성들이 중간 경력 단계에서 끊어지지 않고 상위 단계로 이어갈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제도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마미트랩을 해소하면 출산율을 높일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김상대 경상대 경제학과 교수는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임신과 출산을 할 수 있는 능력이 가장 큰 30대 여성 집단에게 정부와 고용주의 정책적 지원이 집중돼야 한다”고 말했다.

좋은 예가 프랑스·스웨덴·노르웨이·핀란드·덴마크다. 그는 “이들 나라에서는 취업한 여성이 임신·출산·양육을 개인적으로 염려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국가나 지역사회, 고용주가 지원하고 배려해 저출산과 마미 트랩을 탈피한 국가로 평가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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