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경제민주화도 북핵에 잠시 묻히다

경제민주화도 북핵에 잠시 묻히다

경기 회복보다 시급한 화두로 떠올라 … 박근혜 정부 대북 정책 어떻게 변할지 관심



박근혜 정부의 최우선 과제가 경제 문제라는 데는 이견이 없었다.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도 고용·복지·경제민주화가 핵심 화두였다. 선거 열풍에 묻혀 잠시 잊혀지긴 했지만 세계 경기 침체의 파고가 새 정부의 집권 첫해 한국을 덮칠 것이란 우려도 있었다. 그렇지만 모두가 북한의 핵 실험이란 사건이 벌어진 2월 12일 이전의 얘기다. 국제사회의 온갖 만류에도 북한이 3차 핵 실험을 강행해 모든 게 달라졌다. 북핵은 단숨에 현실적 위협으로 성큼 다가왔다



국제신용평가사는 한국 신용등급 유지북핵 실험의 충격파는 우리 경제의 기반은 뒤흔들지는 못했다. 국가신용등급에 타격을 가할지 모른다는 우려에도 무디스와 피치는 “군사 충돌이나 갑작스러운 북한의 붕괴 같은 위험은 여전히 작다는 판단을 유지한다”고 강조했다. 현재의 ‘AA-’ 등급에 변화가 없을 것이란 얘기다. 그만큼 우리 경제가 튼실해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안심하긴 이르다. 핵무기의 검은 그림자는 머지않아 한국 경제의 기반을 위협할 수도 있다. 북한은 이번 핵 실험이 미국을 겨냥한 것이란 점을 강조한다. 그러면서도 한국에 대한 위협의 고삐도 늦추지 않았다. 핵 실험 직전인 1월 25일 대남 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명의로 “미국 주도의 유엔 대북 제재에 남조선이 참여한다면 물리적 대응을 하겠다”고 사전 위협을 했다.

123개 우리 기업이 5만 여명의 북한 근로자를 고용해 가동하고 있는 개성공단의 철폐도 거론하면서 “누구든 건드리기만 하면 개성공업지구를 다시 군사지역으로 되돌리겠다”고 위협했다.

김정은이 핵 실험이란 초강수를 둔 건 핵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결합한 위협카드로 미국과 국제사회의 대북 압박에 맞대응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장거리 미사일 개발을 위한 ‘은하 3호’ 로켓 발사에 성공한지 꼭 두 달 만에 핵 실험을 한데서 이를 엿볼 수 있다. 1, 2차까지는 실험적으로한 것이지만 3차는 핵무기로서의 가치가 생기는 것이란 평가다. 경량화·소형화에 이어 실전배치로 갈 것이란 점을 현물로 보여주려는 것이다.

정부 당국과 전문가들은 핵 개발에 필수적인 요소를 3가지로 꼽는다. 기술, 자본, 국가적 의지다. 북한의 경우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내려온 핵 개발 의지가 결정적이었다는 지적이다. 1994년 7월 김일성 사망 직후 200만 명 이상이 아사했다는 추정이 나올 정도의 경제난 속에서도 핵에 대한 최고지도자의 집착은 꺾이지 않았다. 이른바 ‘유훈(遺訓)’으로 불리는, 3대에 걸친 핵 보유야망의 세습이다.

북한이 핵 개발 프로그램에 첫 발을 디딘 건 1953년 3월 옛 소련과 원자력 이용 협정을 체결하면서다. 월북한 남한 출신 과학자와 옛 소련 유학파 연구자들이 초기 멤버다. 1962년엔 평북 영변에 원자력연구소를 설치했다. 오늘날 핵 연구의 메카로 영변이 자리하게 된 시발점이다.

서울대 교수로 있다가 1946년 5월 월북한 도상록 김일성종합대학 교수는 ‘핵 개발의 아버지’로 불린다. 도상록은 원자력 이론서 30여 권을 집필하고 핵 가속 장치를 개발해 김일성대학에 설치하는 등 기술 토대를 마련했다. 김정일은 그를 끔찍이 챙겼다. 1983년에는 ‘인민과학자’ 칭호까지 줬다. 김일성도 여러 차례 김일성대학을 찾아가 도상록을 격려했다.

북한은 1965년 소련에서 IRT-2000이란 연구용 원자로를 도입해 핵 연구 기반을 닦았다. 1979년에는 자체 기술로 영변에 5MW 원자로 건설에 착수했고, 이듬해 흑연감속로 방식의 원자로를 가동했다. 1983년부터 10년 동안에는 70여 차례의 핵 고폭실험을 실시한 것으로 한·미 정보당국은 파악한다.



탄두 소형화·경량화 여부 주목북한 핵이 국제사회의 이슈로 등장한 건 1989년 프랑스 상업위성이 영변 핵 시설을 촬영해 공개하면서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1992년 5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임시사찰을 실시했다. 그런데 북측이 신고한 플루토늄 추출량에 중대한 불일치가 생겼다. IAEA는 특별사찰의 필요성을 제기했고, 북한은 이에 반발해 1993년 3월 핵확산 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했다. 이후 북한은 미국을 상대로 협상과 파기를 반복하며 지루한 핵 도박을 펼쳐왔다.

이번 3차 핵 실험으로 북한은 핵무기 보유국으로 성큼 다가섰다. 지난해 12월 은하 3호 로켓 발사 성공에 이은 핵 실험으로 김정은은 핵과 미사일을 배합한 확실한 위협 카드를 거머쥐었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핵 실험 직후 “이전과 달리 폭발력이 크면서도 소형화·경량화된 원자탄을 사용해 높은 수준에서 진행했다”고 밝혔다.

국가정보원을 비롯한 우리 당국은 이런 주장이 과장된 것이란 평가를 내놓는다. 원세훈 국정원장은 2월 13일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소형화·경량화는 아직 노력하는 수준이지 일정한 단계에 이르지는 못했다”고 설명했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에 핵을 실어 멀리 보내려면 탄두를 1t 미만의 줄여야하는데 해결하지 못했다는 분석이다.

핵 보유국으로 인정받으려면 핵 기술과 함께 장거리 탄도미사일 능력을 갖춰야 하고 여기에 탑재할 탄두를 소형화·경량화 해야한다. 또 궤도 재진입체(Reentry Vehicle) 기술이 필수적이다. 나로호나 북한 은하 3호 같은 로켓은 위성을 궤도에 올리고 소멸되지만, 장거리 탄도미사일은 대기권 밖을 비행하다 타격 목표를 향해 다시 지상으로 내려와야 한다.

고도 1000km 높이에서 대기권 재진입 때 섭씨 300~400도의 엄청난 열이 발생한다. 고열에서 탄두를 보호하려면 카본 계열 첨단 신소재가 필요한데, 이는 국제 규제대상 품목이다. 북한이 아직 이 기술을 확보하지 못했을 것이란 게 우리 정보 당국의 판단이다.

일각에서는 핵 보유국으로 성큼 다가간 북한에 대응해 우리도 핵 개발을 서둘러야한다는 주장을 내놓는다. 원자력을 발전소 운용이나 연구 수준의 평화적 목적에만 한정하고 있는 족쇄를 풀어버려야 한다는 뜻이다. 한국은 1956년 미국과 맺은 한·미 원자력협정에서 원자력을 비군사적이고 민간 용도로만 이용하겠다는 약속했다.

물론 기술적 차원에서만 살펴보면 핵무기를 만드는 게 불가능하지는 않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오랜 원자력 연구를 통해 핵폭탄 제조와 직·간접적으로 연관성이 있는 지식을 축적했다는 것이다. 문제는 핵 연료를 만들기 위한 우라늄 농축이나 플루토늄 재처리 시설을 갖춰야 한다는 점이다.

북한은 우라늄 농축에 이용되는 초고속 원심분리기를 국제사회의 제재와 감시망을 뚫고 비밀리에 갖췄다. 하지만 우리는 국제적으로 통제물품인 원심분리기 부품을 구하는 게 쉽지 않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은 레이저를 이용해 내부 물질을 분리하는 방식으로 우라늄 0.2g을 농축하는 실험을 했다. 그렇지만 노무현 정부 때인 2004년 이 같은 사실이 알려져 IAEA에 해명하는 곤욕을 치렀다.

플루토늄 재처리 기술은 어느 정도 확보했다는 게 정부 당국자의 귀띔이다. 사용 후 핵연료를 발전용 연료로 다시 쓰는 파이로 프로세싱 기술을 연구 중이기 때문이다. 핵무기 제조용은 아니지만 핵 연료로 사용할 수 있는 기술적 수준은 갖췄다는 말이다. 하지만 국제사회의 룰을 어기고 핵을 개발하는 건 불가능하다.

전봉근 국립외교원 교수는 “우리처럼 대외 의존도가 높은 나라는 핵보유의 길로 접어 들려다가는 국제적 제재로 북한처럼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삼성과 현대가 어떻게 해외시장에서 정상적인 기업활동을 할 수 있겠느냐는 얘기다.

핵 실험을 강행한 북한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추가 제재 등 국제적 고립을 맞게됐다. 중국의 비협조적 태도로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는 지적도 있지만 대북 압박의 강도는 높아질 수밖에 없다. 2006년 10월 첫 핵 실험으로 미사일 관련 품목 수출통제와 금융자산 동결 등을 담은 유엔 안보리 결의 1718호가 나온 것을 시작으로 겹겹이 싸인 제재의 굴레를 쓰게 된 것이다.

1월 안보리의 2087호 제재로 장거리 로켓발사를 주도한 조선우주공간기술위원회 등 기관 6 곳과 백창호 위성통제센터장 등 개인 4명이 제재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이로써 안보리 제재를 받는 북한 기관·단체는 17곳, 개인은 9명이 됐다. 미국이 자체적으로 제재하는 북한 기업도 34곳, 개인은 12명이다.

국제사회의 비난 속에 핵 실험을 강행한 북한은 핵 보유국 지위를 공인 받기는 어렵다. NPT 체제가 출범한 1970년 이전에 핵을 보유한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 5개국(P5)은 핵 클럽의 정식 멤버다. 이후 핵실험을 성공한 인도·파키스탄·이스라엘은 사실상의 핵 보유국으로 불린다.

집요한 노력 끝에 북한도 국제규범 밖의 핵 보유국 진입을 눈앞에 두게 됐다. 1993년 1차 북핵 위기를 촉발한지 꼭 20년 만에 북핵의 공포가 한반도를 휘감았다. 북한의 핵공격이 현실화한다면 그 피해는 가공할 수준이라는 게 우리 정부의 분석이다. 국방부는 일본 히로시마에 떨어진 20KT 수준의 핵무기를 가정해 피해상황을 파악한 자료를 제시했다.

낙하 지점의 지형이나 기상에 영향을 받지만 통상 반경 2.5km 이내의 사람은 50%가 사망하고 4km 안에 있는 건물은 대부분 파괴된다. 방사선에 의해 폭파지점 1.2km 내에 있는 사람은 모두 사망한다. 히로시마 원폭의 경우 전체 인구의 60.6%인 20만명이 숨졌고, 건물 92%가 피해를 입었다. 하지만 서울의 인구밀도를 고려하면 피해는 크게 늘어날 것이란 예상이다. 미 국방부는 1.5KT의 핵폭탄이 서울에 떨어지면 62만명이 사망한다는 모의실험 결과를 갖고 있다.



박근혜, 북한체제 붕괴 경고 메시지김정은은 이번 핵 실험으로 박근혜 정부에도 메시지를 보냈다. 정권 교체기에 핵 도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고물가·고금리에 지갑 닫혔다...2003년 이후 최저

2'1000억 줄다리기' 올해도...'훈민정음 상주본' 행방불명

3세계로 뻗어나가는 K-빵집... 허진수 사장 “글로벌 사업 가속”

4'흑백요리사 열풍' 나폴리맛피아 vs 이모카세 재격돌

5이자수익으로 퇴직금 잔치?...은행권, 5년간 희망퇴직자에 6.5조 줬다

6MBK "공개매수가 추가 인상 없어...기업가치 훼손 안돼"

7 尹 "자유통일 한반도 실현 시 국제사회 평화 획기적 진전"

8 MBK "공개매수가 추가 인상 없어...기업가치 훼손 안돼"

9백종원 덕분에 20억 대박?...특별한 꿈꾸고 1등 당첨됐다

실시간 뉴스

1고물가·고금리에 지갑 닫혔다...2003년 이후 최저

2'1000억 줄다리기' 올해도...'훈민정음 상주본' 행방불명

3세계로 뻗어나가는 K-빵집... 허진수 사장 “글로벌 사업 가속”

4'흑백요리사 열풍' 나폴리맛피아 vs 이모카세 재격돌

5이자수익으로 퇴직금 잔치?...은행권, 5년간 희망퇴직자에 6.5조 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