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ends - 미국에서도 틈새 쇼핑이 뜬다
trends - 미국에서도 틈새 쇼핑이 뜬다
대다수 미국인에게 쇼핑은 다른 문화와 접촉하는 기회다. 이케아(Ikea, 스웨덴 가구업체)는 스웨덴의 가치관을 소개한다. 평등주의적인(egalitarian) 스칸디나비아식 디자인은 물론 쇼핑객을 위한 탁아시설과 셀프 서비스로 운영되는 식당 등 이케아 특유의 문화를 전파한다.
중국은 펄 리버(Pearl River) 등 아웃렛 매장에서 자국의 문화를 과시한다. 뉴욕 브로드웨이에 있는 펄 리버 매장에는 중국에서 생산되고 중국 전통의 미학적 감각을 살린 실크 제품과 가정용품이 가득하다. 그 근처 첼시에 있는 이틀리(Eataly, 이탈리아 식품 백화점)는 파스타와 피자를 우주의 중심에 가져다 놓는다. 격납고를 연상시키는 대형 매장은 로마 피우미치노 공항만큼 북적거린다.
미국인에게 저렴한 스웨덴 가구나 중국의 젓가락, 이탈리아의 스파게티를 파는 일은 어렵지 않다. 그만큼 잘 알려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덜 알려진 문화권 상품들은 어떨까? 이를테면 칠레 특산물인 핑크 클램(조개의 일종)이나 피스코(포도주로 만든 브랜디), 연어 껍질 가죽을 씌운 안락의자 같을 것들 말이다.
훈제한 카초 데 카브라 고추를 갈아서 만든 향신료 메르켄은? 뉴욕에 있는 푸로 칠레(Puro Chile)와 푸로 와인(Puro Wine)의 CEO 마우리시오 방키에리는 미국인에게 이 특별한 칠레산 향신료와 최고급 꿀, 파타고니아산 연어를 맛보이고 싶어한다. 고향 마을에서 나는 은매화 열매와 찔레나무 열매로 만든 잼도 덤으로. 방키에리의 상점에서는 앞서 말한 상품들과 함께 수제 의류와 보석류 등 칠레에서 생산되는 고급 제품을 상당수 취급한다.
이케아는 문화 전파를 수익에 따르는 부차적인(incidental) 문제로 생각하는 반면 방키에리는 외교와 수익을 연계시켰다. 푸로 칠레는 칠레의 각종 개발 프로그램과 제휴해 대량 생산이나 수출이 여의치 않은 상품들을 미국 시장에 선보인다. 그는 2009년 뉴욕에 와인 상점(푸로 와인)과 선물·식품 상점(푸로 칠레)을 나란히 열었다. 칠레의 최고급 상품과 서비스를 뉴욕에 알리고 공급하는 게 목표였다. 웹사이트 puro-chile.com은 미국 전역이 공략 대상이다.
이른바 소매 외교(retail diplomacy)다. 방키에리는 “외국인을 이해하고 그 문화를 접하고자 할 때 그 나라의 음식을 맛보고 옷을 입어보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을까?” 라고 말했다. 사업가의 입장으로는 소비자들이 그런 체험을 소호에 있는 그의 상점에서 하게 된다면 더 좋겠지만 말이다. 방키에리는 미국 내에서 가장 다양한 종류의 칠레 와인을 취급한다. 그의 상점은 또 “칠레와 미국 간 사설 상업 연락사무소” 역할을 한다. 외교는 인간적 접촉에 좌우된다.
푸로 칠레는 지난 2년 동안 80회가 넘는 행사를 주최했다. 그런 행사가 있는 날 매장에 가면 칠레 외교관들이 미국 기자들과 함께 스파클링 로제 와인을 마시거나 칠레의 여성 사업가가 과일로 만든 약용화장품(cosmeceuticals)을 파는 모습을 보게 될지 모른다. 아니면 2010년 광산 사고로 매몰된 칠레 광부들을 구조하는 데 사용됐던 원통형 캡슐 모형도 볼 수 있다.
방키에리는 소매 외교를 펼치는 사업가가 자신뿐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의 상점이 있는 맨해튼 중심가엔 특정 국가 상품만 취급하는 상점들이 꽤 있다. 푸로 칠레에서 한 블록 떨어진 곳에 있는 데스파냐(Despaña)는 40년 전통의 도매 업체가 운영하는 스페인 음식 상점 겸 타파스(스페인식 전채요리) 바다. 핀초스(pintxos, 바스크어로 ‘스낵’을 뜻한다)를 그리워하는 스페인 사람들이 주로 찾지만 우연히 들린 미국인과 관광객도 토르티야(밀이나 옥수수 가루를 기름 없이 구운 얇은 전병)와 피멘토스(맛이 순한 작은 고추) 맛에 반하고 만다.
데스파냐도 푸로 칠레처럼 와인 시음회(같은 회사에서 운영하는 와인 상점이 바로 옆에 있다)와 자국 문화를 홍보하는 행사를 연다. 흔히 스페인 문화는 스페인어 단어 두 개로 대표된다고 말한다. 하몽(jamón, 자연발효 햄)과 리오하(rioja, 스페인 북부산 포도주)다.
데스파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피엘라벤(Fjällräven, 스웨덴어로 ‘북극여우’를 뜻한다) 역시 한 나라(스웨덴)의 문화를 홍보한다. 피엘라벤은 미국 전역에 흩어져 있는 매장을 통해 등산복과 등산 장비를 판매한다. 스웨덴 국기들로 장식된 모트스트리트의 본점에서는 창업주 오케 노르딘이 좋아하는 북극여우(멸종위기에 처했다)를 주제로 한 스웨덴산 제품들을 판매한다. 경제 경쟁력이 세계 3위인 스웨덴의 왕실 납품업체인 피엘라벤에서 취급하는 아웃도어 의류와 장비는 최고급품이다. 가격이 1000달러나 하는 다운 재킷과 멋진 도끼 등이 있다.
그리니치 빌리지에 있는 마이어스 오브 케스윅(Myers of Keswick)은 미국인들에게 영국 상품을 소개하고 미국에 거주하는 영국인의 향수를 달래주기 위해 설립됐다. 마이어스의 웹사이트에서는 자사 매장과 온라인 상점을 “맨해튼에 있는 영국의 요새”로 소개한다. 이 업체는 25년이 넘도록 미국 거주 영국인에게 영국의 돼지고기 제품을 공급해 왔다.
외교적으로 말하자면 돼지고기 파이와 소시지롤, 페어리 주방세제, 그리고 수 세대에 걸쳐 영국인의 치아 건강을 해쳐 온 사탕류는 쿨 브리타니아(Cool Britannia, 1997년 집권한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가 문화예술 산업을 중심으로 경제 부흥을 꾀했던 정책)의 영향을 받은 현재 영국 식문화와 썩 어울리진 않는다. 하지만 마이어스는 영국 식문화 전통뿐 아니라 오랜 우방으로서 영국과 미국의 특별한 관계를 지켜간다.
문화적 틈새 쇼핑은 이런 정치적 동맹보다 더 시급한 문제와 연계되는 경우가 있다. 2010년 메이시 백화점은 빈곤에 허덕이는 아이티의 수공예품 구매 운동(‘하트 오브 아이티’)을 펼쳤다. 뉴욕 유니언 스퀘어에서 열리는 크리스마스 야외시장을 세계의 축소판으로 본다면 어떤 상품에 돈을 쓸지 결정하기가 점점 더 복잡해진다. 각자의 정치적 개념에 맞게 쇼핑을 해야 할까? 경제가 취약한 나라에 달러를 유입시키는 게 옳을까? 제품 생산지와 관계 없이 우리가 연민을 느끼는 나라와 연관된 상품을 사야 할까?
에콰도르산 타구아 열매로 만든 선물은 크리스마스 시즌을 맞아 경제난에 허덕이는 이 나라를 돕고 싶은 충동을 불러일으킨다. ‘켈틱 리바이벌’이란 이름의 가판대나 벨기에 음식을 파는 ‘웨이펄스 & 딘지스’에서 쇼핑을 하면 유로화 강화에 보탬이 될까? 맨해튼 외곽의 이민자 거주지역에 가면 경제가 어려운 지역의 상품을 살 기회가 더 많다.
브루클린의 어틀랜틱 애비뉴에 있는 다마스쿠스 베이커리에서 크리스마스 때 쓸 과자와 사탕을 사면 시리아 민주화에 간접적으로 도움이 될까? 온라인에서도 소매 외교를 외치는 소리가 울려퍼진다. 그리스의 웹사이트 helpsavegreece.com은 미국인 쇼핑객에게 “그리스 상품을 사달라”고 간청한다. “우리의 조국 그리스가 경제위기로 고통받는 모습은 슬픔을 자아냅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그리스산 올리브유와 치즈, 맥주 같은 상품을 홍보하며 구매를 애원한다.
그렇게 애원하는 분위기는 아니지만 논란을 불러일으킬 만한 웹사이트는 북한 상품을 취급하는 madeinnorthkorea.com이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산화텅스텐 분말이나 작전용 무전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안성맞춤이다. 해외에 자국 상품을 파는 데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는 나라들이 있다.
예를 들면 뉴질랜드는 미국에 자국산 양고기를 효과적으로 홍보하는 데 성공했다. 환경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는 미국에서 뉴질랜드의 청정 환경은 고급 식료품의 매력적인 생산지로 떠올랐다. 비록 미국까지의 ‘푸드마일(농산물 등 식료품이 생산지를 떠나 소비자 식탁에 오르기까지의 이동거리를 뜻한다)’은 상당하겠지만 말이다.
데스파냐와 푸로 칠레 같은 상점은 한 나라의 정체성에 초점을 맞춤으로서 주목 받고 있다. 이런 상점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비공식적 대사다. 국경을 넘는 데 여권은 필요없다. 신용카드 한장이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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