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련 무용론 잠재울 대수술 불가피
전경련 무용론 잠재울 대수술 불가피
1961년 8월 16일 고(故)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가 12명의 기업인과 모여 한국경제인협회를 출범시켰다. 5·16 쿠데타의 서슬이 퍼렇던 시절 경제인이 모여 만든 첫 민간 기업단체다. 그 후 7년 뒤인 1968년 3월 한국경제인협회는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로 이름을 바꿔 달았다. 재계의 본‘ 산’이자 ‘맏형’으로 불리는 전경련은 이렇게 탄생했다.
올해로 창립 52주년. 전경련의 위상은 창립 초기와 비견할 수 없을 정도로 높다. 대한상공회의소·한국무역협회가 있지만 재계를 대표하는 단체는 늘 전경련이었다. 박근혜 정부 이전에 역대 대통령이 맨 처음 찾는 경제 단체도 전경련이었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달라졌다. 전경련의 위상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전경련을 향한 비판의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거세다. 과거엔 재계와 대립각을 세우는 시민단체나 노동계의 비판이 주를 이뤘다면 지금은 재계 내부에서도 비판이 쏟아진다. 전경련이 제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게 기업들의 불만이다. 일부에선 전경련 해체론까지 제기한다. 지난 10여년 간 회장 선출 과정이 원만치 못한 것 역시 이런 위상 저하와 무관치 않다.
재계 내부에서도 전경련 비판전경련은 국내 대기업의 연합체다. 대기업이 자발적으로 모여 만든 단체로 회원사가 내는 회비로 운영된다. 현재 전경련 회원은 507명이다. 이 중 4명은 역대 전경련 회장인 명예회원이며, 대한타이어공업협회 등 단체 회원이 63명이다. 순수한 기업회원은 440개사다.
연합체인 만큼 집단지도체제로 운영된다. 회장과 20여명의 부회장이 회장단을 구성해 주요 사안을 결정한다. 10만개 사가 넘는 회원사를 둔 대한상공회의소에 비해 회원사가 적은데도 전경련이 재계를 대표할 수 있는 힘은 바로 회장단에서 나온다.
전경련 회장단은 내로라하는 주요 그룹 총수로 구성된다. 역대 전경련 회장은 대부분 국내 기업사에 한 획을 그은 이들이다. 초대 회장은 이병철 삼성 창업주였고, 정주영 현대 창업주는 13대부터 17대 회장까지 네차례 연임했다. 구자경 LG 명예회장과 고(故) 최종현 SK 회장, 김우중 대우 회장도 전경련 수장을 지냈다.
현재 회장단 진용도 화려하다. 전경련 회장은 재계 7위인 GS그룹의 허창수 회장이다. 부회장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최태원 SK 회장, 구본무 LG 회장, 조양호 한진 회장, 김준기 동부 회장, 현재현 동양 회장, 이웅열 코오롱 회장, 김윤 삼양사 회장,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 등이다. 국내 20대 그룹 총수 상당수가 포진했다. 때문에 전경련 회장단이 내놓는 정부 정책에 대한 입장은 재계의 공식의견으로 받아들여진다.
2000년 이전까지 전경련의 ‘파워’는 상당했다. 때때로 정부에 과감히 ‘반기’를 들곤했다. 정주영 현대 창업주가 전경련 회장이던 때가 대표적이다. 1980년 권력을 잡은 신군부는 5공화국 초기 정주영 현대 창업주에게 전경련 회장 자리를 내놓으라고 압박했다. 정 창업주는 그러나 “나는 회원들이 뽑아준 회장이라 마음대로 그만둘 수 없다”고 버텼다.
김영삼 정부 시절에도 정부와 마찰이 잦았다. 당시 회장은 고(故) 최종현 SK회장이었다. 최 회장은 김영삼 정부 초기 재벌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팽배할 때 “정부는 규제를 다 풀어라. 기업에 맡겨라”는 발언으로 정부와 대립각을 세웠다. 최 회장의 발언에 정부는 SK그룹 세무조사 카드와 함께 청와대까지 나서 사과를 요구했다.
정치권력·정부와 불편한 관계는 전경련 창립 때부터 종종 불거졌다. 전경련의 전신(前身)인 한국경제인협회 설립 과정부터 정치 권력의 간섭을 받았다. 1961년 5·16 쿠데다 이후 정권을 잡은 군부는 기업인들을 부정 축재 혐의로 구속하려 했다. 일부는 실제 구속됐다.
이 과정에서 이병철 삼성 창업주가 박정희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을 만나 “기업인의 본분은 사업을 일으켜 일자리를 마련하고 세금을 내며 기업을 키워가는 것이니 기업인의 본분을 다할 수 있도록 기회를 달라”고 건의했다. 군부도 더 이상 기업인을 압박하기보다 재계를 대표하는 단체를 통해 중공업을 비롯한 기간산업 재건에 기업인들을 끌어들이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최고 권력과 재계, 양쪽의 이해관계가 딱 들어맞은 결과로 만들어진 게 전경련이었다. 재계 관계자는 “정치권력과 기업의 관계는 불가근 불가원(不可近 不可遠)이라지만, 재계를 대표하는 대기업이 모인 전경련은 권력과 불편한 관계를 유지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 했던가. 막강했던 전경련의 위상은 근래 급격히 추락했다. 김우중 대우 회장이 전경련 회장이던 1999년 이후 자주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이전까지 전경련의 중심 축이었던 4대 그룹(삼성·현대차·SK·LG) 회장들이 전경련 행사에 빠지기 시작한 것도 이 즈음이다.
LG가 가장 먼저 전경련에서 발을 뺐다. 정부가 1997년 외환위기 직후 대기업간의 사업 구조조정을 추진했던 이른바 ‘빅딜’로 반도체 사업을 타의에 의해 현대그룹에 넘기게 되자, 구본무 LG 회장은 전경련 행사에 발길을 끊었다. 이건희 회장과 정몽구 회장 역시 경영 현안이 산적해 있는 이유를 들면서 최근 2~3년간 전경련 행사에 한 두 차례 나갔다.
회장직 선출을 둘러싼 잡음도 많다. 정부와 대립각을 세워야 하는 전경련의 특성상 그룹 총수들이 맡기를 꺼리기 때문이다. 2004년 이후 4대 그룹 총수가 전경련 회장직을 맡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잘하면 본전이고 못하면 욕먹는 자리’로 인식되면서 전경련 회장 자리가 ‘폭탄 돌리기’로 전락했다는 비아냥이 나오는 배경이다. 재계 관계자는 “과거에도 전경련 회장을 선뜻 하겠다는 그룹 총수는 없었지만 4대 그룹 총수도 나서는 등 그래서 큰 문제는 없었는데 지금은 누구도 나서지 않는다”고 말했다.
실제 2007년 이후 전경련 회장 선출 과정은 늘 진통을 겪었다. 2007년 2월 강신호 회장이 연임 임기를 마치면서 새 회장을 뽑는 정기총회가 열렸을 때가 대표적이다. 재계에선 애초 강신호 회장이 3연임을 할 것이란 전망이 나왔으나 총회를 앞두고 조석래 회장이 신임 회장을 맡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그런데 정기총회 당일 이준용 대림산업 회장이 회의석상에서 ‘70세 불가론’을 얘기하면서 파행을 겪었다.
이준용 회장은 “70세 가까이 되면 전경련 회장직을 쳐다보지도 말아야 한다”고 쓴소리를 했다. 당시 72세였던 조석래 회장 선임을 반대하는 발언이란 해석이 많았다. 우여곡절 끝에 조석래 회장은 정기총회 한달 뒤인 2007년 3월에 바통을 이어받았다. 이런 모습을 지켜본 고(故) 김준성 이수화학 명예회장은 당시 “대기업들이 회장단 회의에 나오지 않는데 (전경련이) 이 이상 어떻게 더 잘하겠는가”라고 탄식했다.
회장 선출 때마다 적임자 찾기 진통2010년에도 한 차례 소동을 겪었다. 조석래 회장이 건강 상의 이유로 임기를 8개월 남겨둔 2010년 10월 사의를 표명하자 전경련은 이건희 삼성 회장을 추대하기 위해 바삐 움직였다. 이 과정에서 전경련 측은 삼성그룹에 상의도 않은 채 “이건희 회장이 회장직을 수락하기로 했다”는 말을 흘려 혼선을 빚었다. 결국 전경련 회장 자리는 2011년 2월 재계 7위인 GS그룹 허창수 회장이 맡는 것으로 정리됐다.
허 회장은 지난 2년간 무난하게 전경련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일각에선 허 회장이 정치권의 경제민주화와 기업규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4대 그룹도 “전경련이 기업 규제와 경제민주화에 좀 더 강력한 목소리를 내야한다”는 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2년 임기를 마친 허 회장은 연임을 원치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2월 5일 “조금 쉬고는 싶다”는 허 회장의 말이 진짜 속내를 드러낸 것이란 게 재계의 분석이다. 그러나 ‘대안이 없다’는 회원사의 권유로 허 회장은 2월 정기총회에서 연임을 수락했다.
허 회장의 임기는 2015년 2월까지다. 박근혜 정부가 왕성하게 일할 시기와 겹친다. 경제민주화 바람과 맞물려 새 정부가 각종 규제책을 꺼낼 게 뻔한 상황에서 전경련에 바라는 기업들의 기대치는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일단 허창수 2기 전경련은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기업’을 모토로 삼았다. 윤리경영·준법경영과 상생 노력을 하겠다는 기업경영헌장도 내놨다. 허창수 회장은 취임사에서 “고용과 부가가치 창출이라는 기업 본연의 역할은 물론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사회적 기대에도 적극 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우리 기업들이 50년간 앞만 보고 달려왔다면 이제 사회적 배려를 통해 희망의 메시지를 전파해야 할 때”라며 “국민들이 경제계의 현실 더 이해하고 신뢰 보내줄 수 있도록 진심 어린 소통에도 적극 나서겠다”고 했다.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 사회 기여 등 기업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고 국민들과의 소통을 강화해 신뢰받는 대기업 이미지를 회복하겠다는 얘기다.
허창수 회장 연임 날 기업 규제안 나와그러나 언제까지 전경련이 국민신뢰 회복을 핵심 기조로 삼을 지는 미지수다. 전경련이 경제민주화 바람에 지나치게 저자세로 대응하면서 기업 옥죄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1147회 로또 1등 ‘7, 11, 24, 26, 27, 37’…보너스 ‘32’
2러 루블, 달러 대비 가치 2년여 만에 최저…은행 제재 여파
3“또 올랐다고?”…주유소 기름값 6주 연속 상승
4 정부, 사도광산 추도식 불참키로…日대표 야스쿠니 참배이력 문제
5알렉스 웡 美안보부좌관 지명자, 알고 보니 ‘쿠팡 임원’이었다
61조4000억원짜리 에메랄드, ‘저주받은’ 꼬리표 떼고 23년 만에 고향으로
7“초저가 온라인 쇼핑 관리 태만”…中 정부에 쓴소리 뱉은 생수업체 회장
8美공화당 첫 성소수자 장관 탄생?…트럼프 2기 재무 베센트는 누구
9자본시장연구원 신임 원장에 김세완 이화여대 교수 내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