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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원급은 돼야 대학 학자금 받는데…

임원급은 돼야 대학 학자금 받는데…

혼인·출산 늦어지고 조기 퇴직은 늘어 … 더 많은 근로자 혜택 받도록 고민해야



올해로 A기업 입사 20년차인 강모(46) 부장은 불안하다. 회사 실적이 악화되자 동기 여럿이 벌써 희망퇴직 대상자가 됐다. 자신도 좀 있으면 옷을 벗어야 할 것 같은데 아직 어린 자녀를 생각하면 막막하다. 그는 “늦게 얻은 아들 둘이 나란히 중학생인데 대학 졸업 때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회사에서 자녀의 대학 등록금을 지원해주지만(자녀가) 대학에 들어가기 전에 퇴직하면 소용이 없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자녀가 둘일 경우 연간 1000만원의 대학 학자금을 지원한다.

강 부장의 회사처럼 웬만한 대기업은 대부분 직원 자녀의 학자금을 지원하는 복리후생 제도가 있다. 그러나 결혼·출산은 늦어지고 퇴직은 당겨지는 추세라 이런 제도가 그림의 떡인 사람이 늘고 있다.



재직 중 자녀 대학 못 보내기 일쑤임원이 되느냐 아니냐 기로에 있는 부장급일수록 이런 고민은 크다. B기업 입사 18년차인 신모(45) 부장은 “일찍 결혼해서 아이를 대학에 보낸 친구가 인생의 진짜 승자 같다”며 “자녀 교육의 고민을 덜고 제2의 인생을 설계하는 친구가 가장 부럽다”고 토로했다. 그의 늦둥이 딸은 이제 초등학교 5학년이다. 같은 회사 이모(39) 차장은 “자녀가 대학을 마칠 때까지만이라도 살아남자는 게 우리 같은 샐러리맨의 소박한 소망”이라고 덧붙였다.

이들은 대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국내외 경제상황이 나빠지면서 체감 정년이 낮아진 것에 불안감을 느낀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직장인이 가장 오래 근무한 직장의 평균 근속기간은 19년 7개월이었다. 2006년(20년 9개월)보다 1년 2개월이 줄었다.

공무원이나 공기업을 제외한 우리나라 직장인의 평균 은퇴 연령은 만 53세로 추정된다. 취업포털 잡코리아 조사 결과 직장인 601명이 느끼는 평균 정년 퇴직 체감 연령은 이보다 낮은 48.8세였다. 고용노동부는 국내 대기업의 평균 정년을 57.3세로 집계하지만(2010년 기준) 실제 정년까지 다니는 사람은 많지 않다.

20~30대의 고민도 만만찮다. C기업 입사 2년차인 최모(29) 사원은 “목돈을 모으기 전까지 결혼을 늦추기로 여자 친구와 이야기했는데 계산해보니 서른셋은 돼야 할 것 같다”며 “자녀의 대학 등록금 혜택은 꿈도 꾸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들 세대는 불황에 취업과 결혼 시기가 이전보다 늦어져 자녀 학자금 지원 혜택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통계청의 2011년 혼인·이혼 통계에 따르면 평균 초혼 연령은 남성이 31.9세, 여성이 29.1세였다. 30년 전보다 남성은 5.5세, 여성은 6.1세가 높아졌다.

여성의 첫 아이 출산 연령도 늦어져 2010년 최초로 30세를 넘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20~29세 고용률은 2007년 60%에서 지난해 58.1%로 하락했다.

취업과 결혼·출산은 늦어지고 퇴직 시점은 당겨졌다. 자녀 교육 문제가 중·장년층뿐만 아니라 청년층 사이에서도 잠재적 고민거리로 떠오른 이유다. “아이가 없어 당장엔 먼 이야기 같지만 15년, 20년 후에는 지금 옆에 계신 부장님과 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거라고 생각하니 막막합니다. 중소기업 다니는 친구들은 배부른 고민이라 하지만 고용 불안은 똑같거든요.” 최씨의 말이다.

10대 그룹을 비롯한 주요 대기업과 금융권에선 사내 복리후생 제도로 대학 입학금과 등록금 등 자녀 학자금을 많게는 전부 지원한다. 그러나 퇴직하면 대부분 받지 못한다. 이들 회사 중 상당수는 ‘오래 버티기 힘든 곳’으로 유명하다. 은행·증권사·카드사같은 금융권은 불황 여파로 지난해에 3400여명의 인원을 감축해 40대 퇴사자가 속출했다. 이름 난 대기업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않다. 이들 중 적잖은 수가 자녀 학자금 지원 혜택을 받지 못한 채 회사를 떠났다.

이런 점에서 신세계그룹의 사례가 눈길을 끈다. 신세계는 2011년부터 업계 최초로 퇴직 임직원 자녀에게도 중·고교와 대학 학자금을 지원하는 제도를 시행 중이다. 그룹내 전체 계열사의 근속년수 기준을 채운 퇴직 임직원이 대상이다. 이들은 퇴직 시점부터 10년 후까지 자녀 학자금을 받을 수 있다. 기존에 있던 임직원 자녀 학자금 지원 제도의 적용 범위를 퇴직자까지 확대한 것이다.

퇴직했더라도 자녀가 대학생이면 연간 1000만원까지 입학금과 등록금을 지원 받는다. 자녀 수엔 제한이 없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고령화 사회에 퇴직 후 자녀 학자금 문제를 걱정하는 임직원이 많을 것”이라며 “내부 고객인 임직원이 만족하는 회사여야 외부 고객도 만족시킬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제도 도입 후 2011년에 95명이, 지난해엔 110명이 자녀 학자금을 지원받았다.

신세계 임직원들은 이 제도 도입 후 심리적 안정감을 갖게 됐다고 말한다. 마장원 신세계 대리는 “나처럼 연차가 낮은 직원도 사기가 많이 올랐다”며 “지원금 규모는 2011년 2억원대, 지난해 3억원대로 직원 복지에 투자한다는 개념”이라고 말했다. 신세계는 이 제도를 임직원의 애사심과 업무 효율을 높이려는 취지로 시행 중이다.



신세계 퇴직자 자녀 등록금 지원 눈길신세계그룹의 사례를 달리 보는 시각도 있다. 황기돈 한국고용정보원 선임연구위원은 “좋은 취지이지만 행여 임직원의 명예퇴직 시기를 앞당기는 수단이 되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근로자들이 자녀 학자금 문제에 걱정이 많다는 것을 잘 아는 기업들이(학자금을) 지원해주면서 상대적으로 ‘회사를 나가겠다’는 결정을 수월하게 내리게 만드는 유인책으로 삼아선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명예퇴직을 진행한 일부 회사는 대상자 자녀의 학자금을 위로 차원에서 몇 년 간 지원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사회상황 변화에 맞춰 근로환경도 바꿔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박찬임 한국노동연구원 박사는 “자녀 학자금을 지원받는 대상은 소수”라며 “아직까지 대기업 정규직 중에서도 근속년수 기준을 충족한 경우에 한정되는 등 조건이 까다롭다”고 말했다.

그는 “한정된 재원을 가진 기업이 비정규직을 비롯한 더 많은 근로자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제도를 다듬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기돈 연구위원은 “자녀 학자금 지원이 어려운 기업이 대부분인 현실에선 반값 등록금 등 다양한 해법 논의가 보완돼야 한다”며 “기업뿐 아니라 사회적 차원에서 풀어야 할 문제”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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