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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 공룡 롯데·신세계 가세

유통 공룡 롯데·신세계 가세

불황에 신성장 동력 기대 … 출점 제한 없어 골목상권 침해 논란도



드러그스토어(Drugstore)는 우리말로 직역하면 약방이다. 약제사를 두고 약을 조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약국(Pharmacy)과 다르다. 더 나아가 간단한 약과 더불어 생활용품·음료·화장품·잡지·담배·문구류도 파는 잡화점이다. 미국·일본에서 널리 퍼진 새로운 유통점이다. 국내에선 CJ가 1999년 ‘CJ올리브영’이란 브랜드로 첫 선을 보였다.

CJ가 개척한 이 시장의 규모는 지난해 4000억원 정도로 추산된다. 2008년 전보다 4배 수준으로 커졌다. 요즘은 직장 여성 사이에서 인기다. 서울 여의도에서 증권회사에 다니는 최선영(32)씨는 “회사 근처에 드러그스토어가 있어 동료들과 점심 때 자주 들른다”며 “미스트(피부 보습제)와 비타민 음료를 구입할 수 있어 편리하다”고 말했다.



롯데 5월 중 서울 홍대입구역에 열어시장이 커지면서 대기업도 속속 뛰어들었다. 2010년까지 드러그스토어 시장에 진출한 대기업은 CJ(CJ올리브영)·GS(GS왓슨스)·코오롱(W스토어)·농심(판도라) 정도였다. 여기에 지난해 이마트(분스)가 뛰어들었다. 롯데도 5월 중 매장을 연다.

몇 년 째 이어진 불황에 고전한 유통업계가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주목했다. 일각에선 대기업이 대형 마트나 기업형 슈퍼마켓(SSM) 규제를 피해 드러그스토어에 눈을 돌린 것이란 지적도 있다. 대형 마트나 SSM·편의점과 달리 드러그스토어 출점 제한은 없다.

롯데의 드러그스토어 진출 계획은 지난해 소문으로 돌았다가 올 들어 구체화됐다. 롯데는 5월경 서울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근처에 드러그스토어 1호점을 열 예정이다. 올해 100개가 넘는 매장을 오픈할 목표다. 롯데가 홍익대 부근에 첫 매장을 여는 이유는 주변에 CJ올리브영·GS왓슨스 같은 경쟁점이 있어 분위기를 살피기가 좋아서다.

미리 사업 방향을 가늠하는 일명 ‘안테나숍’개념이다. 주로 겨냥한 20~30대 유동인구가 많고 유행에 민감한 장소라 안정적 수익을 내면서 사업 확장 방안을 모색하기도 쉽다. 신세계는 지난해 이마트를 통해 이 시장에 진출했다. 이마트 분스는 지난해 4월 신세계백화점 경기도 의정부점에 1호점을 연후 사업을 확장했다.

두 회사는 수 년 간 사업성이 검증된 드러그스토어가 돈이 된다고 본다. 불황 속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을 계획이다. 백화점과 대형마트 매출이 줄어 성장세가 예전 같이 않아서다. 드러그스토어 시장은 2008년 1000억원대 규모에서 지난해 4000억원대로 커졌다. 연 평균 30%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건강·미용에 관심이 많은 젊은 여성 소비자가 늘었고 일반의약품·의약외품의 소매점 판매 규제도 완화돼 탄력이 붙었다. 드러그스토어 취급 품목이 생필품·약품·화장품으로 경기 침체 영향을 덜 받는 것도 호재였다.

유통업계 라이벌인 롯데와 신세계가 가세하자 드러그스토어 시장을 선점한 기존 기업들은 긴장한 모습이다. 전국에 유통망을 확보한 두 회사는 드러그스토어 사업 확장에도 그만큼 유리해서다. 특히 재계 순위 5위로 자금력과 유통 경험이 풍부한 롯데의 진출 계획이 알려지자 긴장감이 고조됐다.

CJ올리브영 본사의 한 직원은 “롯데가 진출해 시장 판도에 변화가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롯데의 드러그스토어 1호점 위치는 CJ올리브영 매장과 직선거리로 100m 이내로 알려졌다. CJ올리브영은 1999년 국내에서 처음 드러그스토어 시장에 진출해 1위에 올랐다. 지난해까지 260여개의 매장을 열었다. 현재 시장점유율은 74%다. GS왓슨스는 점유율 22%로 2위다.

후발 주자인 코오롱과 농심의 고민은 깊다. 2004년 이 시장에 뛰어든 코오롱은 전국에 120여개 매장이 있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다. 2008년 130억원이던 매출은 2011년 93억원으로 줄었다. 시장점유율은 2011년 3%대로 떨어졌다. 농심은 2010년 진출 후 서울 홍대입구 외에도 부산과 경남에 매장을 열었지만 롯데·신세계와 맞서긴엔 힘에 부친다.

익명을 요구한 한 관계자는 “드러그스토어가 블루오션으로 여겨진 때는 사업 확장에 어려움이 적었지만 대기업의 진출이 잇따르면서 우리처럼 자금력이 떨어지는 기업은 살아남기 어려운 구조가 됐다”며 “카페베네가 드러그스토어 시장에서 고전하다 철수한 게 대표적 사례”라고 설명했다.

카페베네는 지난해 8월 서울 강남역에 디셈버24 1호점을 내면서 드러그스토어 시장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5개월여 만인 올해 1월 전격 철수했다. 애초 서울 압구정동과 영등포에도 매장을 내고 가맹사업을 벌일 예정이었다. 카페베네 측은 “기존 브랜드인 카페베네와 블랙스미스의 경쟁력 강화에 집중하고자 내린 결정”이라고 밝혔지만 대기업의 견제와 높은 진입장벽을 극복하지 못했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CJ올리브영에 자금력에서 밀리는 코오롱W스토어는 최근 일부 매장을 CJ올리브영에 내줬다. 서울 안암동의 W스토어 성신여대점은 지난해 10월부터 CJ올리브영으로 바뀌었다. 코오롱은 이 매장을 경쟁사인 CJ올리브영에게 10억원에 매각했다. 어느 새 레드오션으로 변한 드러그스토어 시장에서 풍부한 자금 없이는 살아남기 어렵다는 걸 보여준 사례다.

대체로 박리다매인 드러그스토어 사업은 매장 수가 많아야 그만큼 이익을 기대할 수 있다. 또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 매장을 여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서울 핵심 상권인 강남과 홍대입구에 드러그스토어가 밀집했다. 이런 ‘탁월한 입지’를 차지하려면 비싼 임대료를 내야 한다. 그러려면 자금력이 필수다.



자금력·유통망 확보가 승부 좌우전문가들은 롯데와 신세계가 사업 확장에 나서면 기존 업체도 일정 부분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본다. 안나영 한국기업평가 책임연구원은 “드러그스토어 사업에선 유통망 구축이 가장 중요한 요소”라며 “전국적인 유통기반을 갖춘 CJ와 GS는 타격이 상대적으로 적겠지만 영남 상권이 기반인 농심 메가마트의 판도라 같은 회사는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롯데나 신세계도 호락호락한 사업은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업계는 드러그스토어 시장에서 하나의 기업이 매장 수 200개를 넘거나 이에 근접해야 손익분기점을 넘을 수 있는 것으로 본다. 현재 이 기준을 충족하는 곳은 CJ올리브영뿐이다. 이 회사도 첫 진출 이후 200호점을 넘기까지 14년이 걸렸다. 새로 시장에 뛰어든 기업일수록 당분간 적자 영업을 감수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대기업의 골목상권 침해 논란이 첨예한 상황에서 드러그스토어 사업이 새 규제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대형마트나 SSM·편의점과 달리 드러그스토어는 아직 출점에 제한이 없다. 롯데·신세계가 이 시장에 공을 들이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란 분석도 나온다. 그러나 이들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골목상권 논란에 또 한번 휘말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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