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 없어 보이면 성공 못한다 적당히 ‘뻥’ 있는 사람 좋아
CEO - 없어 보이면 성공 못한다 적당히 ‘뻥’ 있는 사람 좋아
조서환 대표와 서울 역삼동 본사에 전시된 세라젬 헬스&뷰티 제품들. |
1978년 스물두 살의 육군 소위가 훈련 중 일어난 수류탄 사고로 오른손을 잃었다. 그 후 30년 넘는 동안 그는 남들보다 강한 왼팔과 집념, 의지력으로 경쟁이 치열한 마케팅 업계에서 성공신화를 썼다. 애경산업·유니레버·다이알코리아·한국로슈·KTF(2009년 KT로 통합)의 마케팅 담당 임원을 거치며 ‘하나로 샴푸’ ‘2080치약’ ‘Drama’ ‘Na’ ‘Show’ 등을 히트시킨 ‘실전 마케팅의 달인’조서환 세라젬 헬스&뷰티 대표가 주인공이다.
KTF에서 법인사업 담당 부사장까지 지낸 그가 2010년 회사를 떠난 후 안정된 자리를 마다하고 신생 화장품 업체의 초대 CEO로 간 것은 72개국에 판매망을 갖춘 모기업 세라젬 그룹의 글로벌 성장 잠재력에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다. 2월 15일 서울 역삼동 세라젬 본사에서 조 대표를 만났다. 그는 “삼성·LG를 빼면 우리나라에서 전세계에 가장 널리 퍼져있는 기업이 세라젬이다. 언젠가 대한민국 글로벌 인재를 다 데려오겠다”는 세라젬그룹 이환성 회장의 호언장담에 웬지 모르게 끌렸다고 했다.
“‘처음엔 뻥이 심하구나’라고 생각했어요(웃음). 하지만 저는 적당히 ‘뻥’이 있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어떻게 보면 그게 곧 긍정과 희망의 정신이니까요. 긍정적인 사람은 결국 성공하게 되어있습니다.”
1998년 설립한 글로벌 건강기업 세라젬의 새로운 성장 동력인 화장품 사업을 이끄는 그가 지난 3년간 온 힘을 기울인 시장은 중국. 1년 중 8개월 이상을 중국 현지법인이 있는 칭다오(靑島)에서 보낸다. 중국 법인을 설립한지 2년이 갓 넘었지만 지난 1년간 현지 매출이 50% 이상 늘어나는 등 순조로운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중국에서는 ‘메이디커(美締可)’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간판 브랜드 ‘뷰티끄’(Beautique)와 ‘23가지 천연 기능성 성분으로 23일안에 23세의 피부로 되돌려준다’는 스토리텔링으로 인기를 모은 18종의 ‘필란(Feellan) 23’을 비롯해 총 8개 브랜드, 109개 제품이 중국 16개 성(省) 1000여 개 매장에 입점해 있다.
중국사업 절망서 용기 심어준 아내
시작부터 모든 일이 순조로웠던 것은 아니다. “KTF 시절 세라젬 자문위원장 자격으로 중국 시장을 둘러본 적이 있는데 화장을 하고 다니는 여자들이 많지 않아서 놀랐어요. 흔히 미개척 시장을 이야기할 때 예로 드는 아프리카 신발시장처럼 큰 시장이 있다고 봤죠. 하지만 시장이 있는 것과 생소한 화장품을 구입하게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습니다.”
이전까지 충분한 자금력을 보유한 엘리트 기업에서 정확한 시장 분석과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이름을 날리던 그에게 화장품 업계에서 무명이나 다름없는 신생 브랜드를 널리 알리는 것은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인구가 많고 경제성장 속도가 빠르다는 이유만으로 덤비는 사람이 많습니다. 저도 그랬던 거 같아요. 처음 1년은 죽는 줄 알았습니다. ‘잘못 왔다. 내 인생에도 실패가 오겠구나’하는 불안감이 엄습했습니다. 하지만 자존심이 상해서 돌아가지도 못하겠더라고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경쟁은 날로 치열해졌고 조금 인기가 있다 싶으면 금새 짝퉁이 나와 피해를 보기 일쑤였다. 기독교 신자인 그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현지 한인교회 새벽기도에 나가 울며 기도했다. 얼마 후 한국으로 돌아갈 결심을 하고 아내에게 어렵사리 이야기를 꺼냈다.
“기회를 준 회장님께 죄송한 마음이 컸지만 오히려 빨리 말씀 드리는 게 도리라고 생각했어요. 처음엔 가만히 듣기만하던 아내가 ‘당신 여기 와서 맨땅에 헤딩한다고 했는데 내가 보기엔 아직 이마에 기스도 나지 않은 것 같다’고 한마디 쏘더군요. 그 말이 제게는 마치 ‘하나님 말씀’처럼 들렸습니다. 누가 맨땅에 헤딩시킨 것도 아니고 머리를 쥐어박은 것도 아닌데 고생이라고 생각하는 제 마음이 저를 고생시킨다는 것을 느낀 거죠.”
마음을 고쳐먹은 조 대표는 판매원들을 상대로 회사와 그에 대한 신뢰를 쌓는 일부터 시작했다. 지역마다 대표를 뽑아 교육시키고 과거 ‘아침마당’ 등 한국 방송에 출연한 동영상과 신문기사 등을 보여줘 은근히 자신이 스타라는 점을 부각했다. 한편으론 높은 마진을 보장해 사기를 높였다. “KTF시절에는 하루에 1000억원을 제 뜻대로 결재하기도 했지만 여기서는 광고 예산이 충분치 않기 때문에 대표인 제가 광고판이 돼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브랜드 인지도가 낮은 만큼 베이징·상하이 등 대도시보다는 강서성·안휘성·산둥성 등 ‘2급 지역’을 전략으로 삼고 판매 역량을 쏟아 부었다. 시세이도·에스티로더·로 레알 등 해외 유명 화장품 메이커들이 총력을 기울이는 대도시에서는 성공 확률이 낮다고 판단한 것이다.
고품격 제주 한방화장품으로 승부수
여러 브랜드 제품을 모아놓고 판매하는 화장품 코너에 비용을 지원해 ‘메이디커’ 간판으로 바꾸도록 했고 성과를 낸 직원을 사무실로 따로 불러 봉투를 주며 격려도 했다. 어느 정도 성과가 나자 고품격 프리미엄 제품 개발에 나섰다. 2급 지역이라고 하지만 구매력을 가진 부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우선 중국인들이 환상을 갖고 있는 제주도를 브랜드에 이용하기로 했다(지난해 중국 인민일보 자매지인 ‘환구시보’는 하와이·몰디브와 함께 제주도를 중국인이 가장 선호하는 해외 섬 관광지로 선정했다). “제주 한방화장품을 만들기로 하고 중국과의 연결고리를 찾던 중 불로초를 구해오라는 진시황의 명을 받고 제주도를 찾은 서복(徐福)이 캐갔다는 ‘시로미’(한라산 1700m 이상 고산지대에 자라는 상록관목의 완두 크기만한 식용 과실)를 떠올렸어요.”
아이디어가 떠오른 이상 거칠 것이 없었다. 물을 포함한 모든 원료를 제주에서 공수하기로 했다. 제주도청이 제주도산 재료로 만들었음을 인정하는 ‘only Jeju’라는 문구를 넣는 허가도 받았다. 한방 원료를 9시간 동안 쪄서 냄새도 뺐다. 고품격 제품인 만큼 ‘아무에게나 팔지 말고 부자들에게만 팔라고 판매원들을 교육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한방화장품 ‘시로美’다.
중국에서 브랜드 이미지 제고를 위해 한국에서의 마케팅은 최소화했다. 대신 서울 워커힐호텔 면세점에 관련 제품을 입점시켜 한국을 방문한 중국인 판매원들과 관광객에게 고급 이미지를 심었다. 배우 장나라와 중국에서 인기가 높았던 영화 ‘과속스캔들’ 여주인공 박보영 등 한류스타를 이용한 광고로 재미를 봤다.
“너도나도 중국에 눈독을 들이면 시장은 커지겠지만 어중이떠중이 다 들어와 문란해 질 수 있어요. 그래서 초기에 힘들어도 세련되고 고급스런 마케팅을 해야 승산이 있습니다. 관련한 법과 제도도 잘 알아야겠죠. 예전처럼 뇌물이나 ‘ 시(關係, 인간관계)’에 의존하면 낭패 보기 십상입니다.”
“세계적인 화장품 그룹 회장이 되는 게 꿈”이라는 조 대표의 다음 목표는 72개국에 퍼져있는 세라젬 의료용 제품 판매망을 이용해 전세계에서 장사를 하는 것이다. “전세계 세라젬 의료기 매장에 연간 수백만명이 다녀가는데 그냥 가지 않고 화장품이라도 사가도록 해야죠.”
올해 안에 우선적으로 20개국에 진출할 생각이다. 그는 “북미와 서유럽 선진국을 제외한 나머지 나라들이 공략 대상”이라고 밝혔다. “마케팅에서 중요한 것은 ‘어떻게 말하느냐’와 ‘누가 말하느냐’ 두 가지입니다. 불쌍하고 비굴하게 보이면 한두 번은 동정심에 사줄지 몰라도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자신감과 확신을 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2007년 출간 당시 별다른 광고 한번 하지 않았지만 입 소문만으로 베스트셀러가 된 자전 에세이 『모티베이터(Motivator)』의 저자인 조 대표는 중국에서의 경험과 KTF 시절 못다한 이야기를 엮은 가칭 『모티베이터2』(가제)를 집필 중이다. “영원히 마케팅의 전설로 남고 싶습니다. 기회가 허락되는 대로 후배들을 양성하는 일도 계속할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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