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irement - 2차 베이비부머 ‘은퇴 난민’ 전락 불 보듯
Retirement - 2차 베이비부머 ‘은퇴 난민’ 전락 불 보듯
부자 나라 일본에는 역설적이게도 궁핍한 국민이 많다. 연령별로는 좀 다르다. 자란 환경과 처한 상황이 달라서다. 압권은 40대다. 쓸 곳은 많은데 번 건 적은 세대다. 이들은 운도 나쁜 편이다. 일본 40대의 성장사와 미래 인생은 가시밭길에 가깝다.
우선 고도성장이 끝나는 전환기에 태어난 사람이 많다. 현역 때 장기 침체를 맞았고, 앞으로도 돈 벌기 만만찮다. 경쟁자는 많다. 부모 세대가 베이비부머라 2차 베이비부머도 많을 수밖에 없다. 그나마 자랄 땐 성장의 혜택을 받아 부모 세대보다 풍족하게 지내 ‘헝그리 정신’이 부족하다.
40대는 1960년대 출생자가 압도적으로 많다. 조만간 1970년대 출생이 바통을 이을 전망이다. 2차 베이비부머에는 40대가 속속 합류했다. 1971~74년생이다. 이들은 1차 베이비부머 800만 1947~49년생(단카이 세대)의 자녀 그룹이다. 그래서 2차 베이비부머이자 ‘단카이 주니어’로 불린다. 해마다 200만명 가량 출생해 800만에 육박한다. 정점인 1973년생은 209만명에 이른다. 여기에 1973~80년 출생자(1450만명)까지 아우르면 규모는 더 방대해진다.
‘단카이 주니어 하류화 백서’라는 부제의 『난민세대』를 쓴 미우라 아츠시는 2차 베이비부머의 부모 연령을 더 세분화해 1970~75년까지 출생자를 2차 인구 보너스로 규정했다. 한국의 2차 베이비부머는 좀 다르다. 1968~74년의 600만명이 해당된다. 역시 40대지만 전후 1차 베이비부머인 1955~63년생(700만명)의 자녀 세대는 아니다. 굳이따지면 동생·조카뻘이다.
은퇴로 따지면 일본 40대의 미래는 우울하다. 고도성장의 막차에 올라타 일정 부분 덕을 본 50대는 그나마 나은 편이다. 50대의 사회 진출 당시 4인 가족의 가장 외벌이가 평균 모델이었다면 전환기에 취업한 40대에겐 2~3인 가족의 부부 맞벌이가 보편적이다. 50대와 달리 40대는 사회에 정상 진입하는 게 쉽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벌어놓은 게 별로 없다.
대도시 교외서 태어나 ‘고향의식’ 없어40대에게 은퇴 이후는 불안 그 자체다. 가장 왕성한 활동 시기인 40대를 맞았지만 금전·체력과 인간관계 모두 경기 침체와 정비례하며 악화 일로다. 노후 준비는 사실상 무방비 상태다. 당장의 호구지책이 미래 준비보다 급하다. 그래서 2차 베이비부머인 40대는 미래 ‘은퇴 난민’이 될 가능성이 크다.
40대의 예고된 가시밭길은 한·일 모두의 고민이다. 경제 구조가 저성장 체제로 전환해 정부 대책도 변변찮다. 낀 세대라 주목받지 못한다. 표심으로 위협하는 노인 세대와 눈물로 호소하는 청년 세대에 밀려 어정쩡한 상태로 전락했다. 사회보장의 사각지대에 있는 것이다. 정부 재원은 노인·아동의 약자 그룹이나 편부모·장애인 같은 취약 계층에 쓰기에도 빠듯하다. 이런 가운데 2차 베이비부머는 부모 봉양과 자녀 양육의 부담도 져야 한다.
이들은 어떤 인생 궤적을 밟아왔을까. 왜 40대 이후 비참한 중·장년을 그려나갈 공산이 클까. 일본의 2차 베이비부머는 절반이 교외 출생자다. 부모가 교육·취업을 위해 대도시로 몰려들며 교외에 정착할 때 집중적으로 태어났다. 처음부터 교외 신흥 주택지를 비롯한 대도시권에서 자라 부모 세대와 달리 이른바 마음의 고향이란 정서가 드물다.
고향의 정서를 잃은 현대사회의 첫 세대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이들은 전통 가치관이나 생활양식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가족은 공동 소비체라고 여기며 폐쇄적인 사생활 주의에 익숙하다. 생활 스타일도 부친 전업, 모친 가사의 공통점이 있다. 자아를 찾는데 미숙하기 쉬운 양육 환경이었다. 이에 비해 내 방을 처음 가졌고, 입맛은 인스턴트에 익숙하다. 맘 붙일 관계 설정이 어려워 프로 축구·야구에 열광했다.
학창 시절 땐 수험전쟁을 치렀다. 한정된 학교에 들어가자니 콩나물 시루는 예사였고 입시경쟁은 뜨거웠다. 학업에 방해물도 많았다. 방에 틀어박혀 컴퓨터 게임에 빠진 사람이 적지 않았다. 학생운동·반전운동을 하고 포크음악을 즐기며 히피족에 심취해 그들 나름의 문화를 한껏 즐긴 부모 세대와 다르다. 부모 세대는 자녀에게 많은 걸 쏟으며 학업 부담을 가중시켰다. 2차 베이비부머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사설학원을 순례했다.
90년대 초반 대학 시절 장기 불황 맞아어렵게 대학에 들어간 다음에도 인생이 순탄치 않았다. 취업빙하기가 그들을 기다렸다. 이들의 대학 입학과 동시에 버블 붕괴가 시작됐다. 1990년대부터다. 취업문은 닫혔고 대졸 실업자가 쌓였다. 졸업과 더불어 정규직 취업 관문이 보장된 이들의 부모·선배 세대와 다르다.
이 와중에 여대생은 더욱 늘었다. 여성까지 취업 경쟁에 가세했다. 장기 불황은 이들에게 불운의 세대란 멍에를 안겼다. 노력해도 이루기 어려운 시대상을 한탄할 수밖에 없었다. 새롭게 등장한 건 ‘프리터’나 파견근로자였다. ‘잃어버린 20년’을 거치며 2차 베이비부머는 비정규직으로 내몰렸다.
일자리가 불안정하니 정상 생활이 쉽지 않다. 돈이 드니 연애하길 꺼리고 그러다 보니 결혼도 줄었다. 결혼을 안 하거나 미루니 출산율도 떨어졌다. 실제 2차 베이비부머의 30~34세 시점(2005년) 미혼율은 남자 48%, 여자 33%로 과거보다 모두 증가했다. 부모 세대의 2~3배 수준이다. 특히 고학력 여성의 결혼이 어려워졌다. 눈은 높은데 이를 만족시킬 짝을 찾지 못해서다. 가난하고 불안한 ‘초식 계열’의 동년배 남성은 성에 차지 않는다.
결혼 격차도 커졌다. 연봉이 2배면 결혼은 10년이 빨라진다는 말까지 유행했다. 독신이 양산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렇게 시간이 흘러 그들은 이제 40대에 접어들었다. 그리고 그들 앞엔 ‘난민’이란 타이틀이 붙었다. 안정된 삶은 녹록하지 않은 과제가 됐다. 역동적 성장사의 주인공인 부모세대가 ‘이민 세대’라면 불황·격차·폐색의 40대는 ‘난민 세대’라고 부를 수 있다.
노후 난민이 불가피한 40대의 앞날은 어떨까. 소비 지출을 보자. 40대의 소비 지출은 많은 편이다. 교육비가 대표적이다. 일본의 교육열은 한국 못잖다. 이르면 유치원부터 대학 입시에 뛰어든다. 학원 비용은 천문학적이다. 교육비 못지 않게 돈이 많이 드는 게 부모간병이다. 전반적 수명 연장은 간병 증가로 이어진다. 가족 붕괴도 다반사다. 정부도 시설 간병에서 가정 간병으로 정책 방향을 바꿔 개인의 부담이 커졌다.
2차 베이비부머의 노후 자금도 부족하다. 부모 세대는 연금소득으로 노후를 보낼 수 있다. 40대는 다르다. 지금과 달리 65세 때 연금을 받기 어려울 전망이다. 예고된 결과다. 평균수명의 연장 추세를 감안할 때 연금 수급 개시 연령이 더 높아지는 건 시간 문제다.
연금과 고용을 분리할 수 없어 정년 연장도 거론되겠지만 늦게 받는건 대세다. 금액까지 줄어들 게 뻔하다. 연금생활은 부모 세대에서 끝날 가능성이 크다. 2차 베이비부머가 믿을 만한 건 퇴직금이다. 상당수 일본 기업이 퇴직급여를 적립해 노후를 대비하도록 했다. 다만 기업의 경영환경이 더 나빠지면 이 또한 장담할 수 없다. 증세도 2차 베이비부머의 발목을 잡는다. 일본 정부는 2015년부터 소비세를 기존 5%에서 10%로 올린다. 10%는 타협 결과다. 복지 수요가 급증해 20~30%로 올려도 부족할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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