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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별 분업으로 고령화 재앙 피하자

나이별 분업으로 고령화 재앙 피하자

『은퇴 없는 나라』에서 ‘25-50-75 체제’ 제시 … 청년은 제조·기술서비스, 고령자는 서비스업 특화



김태유(62) 서울대 기술경영경제정책대학원 교수는 “7년간 연구실에서 살다시피 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천착한 주제는 ‘국가 발전과 국민 행복’이었다. 특히 고령화 문제에 골몰했다. 난제였고 학자는 자괴감에 빠졌다. 어느 날 뇌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다. ‘삼각 돛 원리’였다. 삼각 돛을 단 배는 역풍의 힘을 이용해 역풍을 거슬러 간다. 양력(揚力)을 이용하는 것이다. ‘그래, 고령화 문제는 고령자의 힘을 이용해 해결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새로운 이론이 탄생했다.

『은퇴가 없는 나라 : 국가 경제를 이모작하라』는 근간이 그 소산이다. 김 교수는 “수명 100세 시대라면 적어도 75세 까지는 일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선 연령별로 분업을 하는 이모작 경제 체제가 해답”이라고 말했다. 4월 4일 서울대 서울 관악캠퍼스에서 김태유 교수를 만났다.

왜 고령화 문제를 다루게 됐나.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빨리 늙어가는 나라다. 선진국은 고령화 사회(고령자 비율 7%)에서 초고령 사회(고령화 비율 20%)까지 가는데 80~150년이 걸렸다. 일본은 36년 걸렸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2000년 고령화 사회에 진입해 불과 26년 만인 2026년 초고령 사회로 접어들 전망이다. 인구 고령화는 경제 고령화를 초래한다. 한국은 선진국 대열에 진입하지 못하고 아시아 변방 국가로 쇠락할 수 있다.”

그동안 많은 고령화 대책이 나왔지만 효과가 적다.

“고령 사회에 대한 이해 부족과 출산율 증가라는 목표에 집착해서 실효를 거둘 수 없었다.”

‘고령자 문제는 고령자의 힘으로 해결한다’는 것이 무슨 뜻인가.

“말 그대로 고령화라는 사회·경제적 변화를 경제성장의 동력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일할 의욕이 있고 능력이 있고 의지가 있는 고령 인력을 활용하는 것이다. 생산적 고령화 정책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연령별 분업체계를 제안했는데, 생소한 개념이다.

“일반적으로 신체적 능력은 30대 초반에 정점을 찍은 후 급격히 쇠퇴한다. 이에 비해 정신적 능력은 상대적으로 천천히 감소한다. 정신적 능력 중에서도 수리력·분석력과 개념적 혁신력 등은 30대 중반에 정점에 도달하지만, 언어·판단·소통 능력과 경험적 혁신력은 50~60대에도 크게 감퇴하지 않는다. 또한 업종별로 연령 증가에 따라 생산성이 저하되는 패턴이 다르다. 여기에 주목한 것이다.”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청·장년층이 더 높은 생산성을 발휘하는 직종과 고령자들이 청·장년 못지 않게 생산성을 내는 직종으로 구분할 수 있다. 개인 차원에서 일생의 이모작, 국가 차원에서는 이모작 경제 체제가 가능하다는 것을 뜻한다. 연령별 분업은 청년층은 제조업이나 기술서비스 같은 가치 창출 활동에, 고령층은 사업지원·공공·단순 생활 서비스업 같은 가치이전 활동을 주로 맡는 연령별 분업이 이뤄지도록 하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젊은 층은 생산 분야로, 고령층은 지원 분야로 보내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삼성전자 임원들은 젊어서 상당수가 엔지니어 파트에서 일했다. 그러다 임원이 되면서 경영을 한다. 차범근·히딩크 감독도 젊은 시절엔 몸으로 뛰는 선수였고 나이가 들어 감독을 한다. 이러한 성공 사례들을 전 국민을 대상으로 제도화·시스템화하는 것이다.

20대에 취업해 50대에 은퇴하는 ‘25-55 체제’를 25세에서 50세까지는 일모작 인생을 살고, 50세에서 75세까지는 이모작 인생을 사는 ‘25-50-75 체제’로 바꿀 수 있다. 당장 관련 정책을 준비해 시작한다면 5년 내에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본다. 물론 모든 청년층을 제조·기술서비스업으로 흡수할 수 없겠지만, 50% 정도는 가치창출 분야로 옮길 수 있다.”

고용 증가 효과가 있을까.

“일반 서비스업에 종사하고 있거나 향후 취업하려는 청년 근로자를 제조업으로 취업시키면 가치 창출의 기반이 되는 재화의 절대 생산량 자체가 늘어 난다. 제조업은 다른 부분의 고용을 창출하는 효과가 무척 크다. 제조업 생산 증가에 힘입어 서비스업 일자리가 늘어나면 고령자들에게 추가로 경제 활동의 기회가 생긴다. 결과적으로 제조업 발전은 서비스업을 확장시키고 새로운 고용을 대거 창출해 초고령 시대가 되더라도 총생산과 총소비가 동반성장 하는 선순환을 지속할 수 있다.”

젊은층의 이공계·생산직 기피 현상이 심한데 어떻게 이들을 제조업이나 기술서비스업으로 유인할 수 있나.

“핵심은 교육과 직업훈련이다. 이모작 경제에 맞는 평생 교육 체계를 근본적으로 한다. 청년들이 가치 창출 활동 분야에 취업할 수 있도록 다양한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이학·공학·산업 디자인 등 분야에 단기 무상 직업 훈련과 장기 교육을 위한 관련 학과를 육성해야 한다.

고학력 청년층은 전기전자·화학·철강·방송통신·생명과학·나노 분야 등으로 취업을 유도해야 한다. 저학력 청년층을 위해선 마이스터고·산업대·기술대·특성화대학 등 교육시설을 확충하고, 제조업과 지식 서비스 산업의 현장 실무 인력으로 취업을 유인해야 한다.”

고령자들은 어떻게 이모작 경제로 편입할 수 있나.

“일모작 직장에서 전문적 경력을 쌓은 고학력 중·장년층을 위해 대학이나 대학원을 기업과 연계된 성인 재교육 기관으로 확대 개편해야 한다. 특히 40대부터 이모작 역량을 체계적으로 개발할 수 있도록 주말 경영대학원이나 실용 외국어대학원, 전직·창업 교육 등 다양한 교육 코스를 개발해야 할 것이다.

특히 이모작 고학력 집단을 대상으로 한 재취업 정책은 이들의 역량과 경험, 노하우 등을 사회적으로 활용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저학력 고령자를 위해선 단순 생활 서비스 업종을 중심으로 취업이 확대되도록 해야 한다. 도소매·운수·숙박·사회 복지·시설 관리 등에 재취업할 수 있는 이모작 적응 교육 훈련과 창업 교육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이런 시스템이 국가적으로 시행된다면 어떤 효과를 기대할 수 있나.

“적절한 교육과 인센티브를 통해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청·장년층 일부를 제조업으로 이동하게 만들고, 제조업 이동으로 비워진 서비스업 일자리와 제조업의 고용창출 효과로 새로 생긴 서비스 일자리를 고령층이 채우게 되는 경우를 가정해 시뮬레이션을 해봤다. 연령별 분업과 이모작 체계가 제대로 이뤄질 경우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는 2030년 2조4560억 달러를 달성해 세계 6위권 진입이 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1인당 GDP 기준으로도 현재 20위 수준에서 2030년에는 4위, 2050년에는 세계 2위의 부유한 선진국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예측된다. 또한 국가 차원에서 고령자 부양 부담을 획기적으로 감소하고, 동시에 취약 계층에 대한 1인당 복지 비용을 크게 증대시킬 수 있다. 한국은 미래 재원과 복지 재원 부족이라는 이중고에 처해 있다. 그렇다고 미래의 행복인 성장, 현재의 행복인 복지는 둘 다 포기할 수 없다. 연령별 분업과 이모작 경제 체제는 성장과 복지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는 현실적 대안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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