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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제 불안에 경제난까지 첩첩산중

체제 불안에 경제난까지 첩첩산중

핵 개발-경제난 해결 동시 추진 … 개혁·개방에 체제 생존 달려



‘김정은 동지만이 안아오실 수 있는 통쾌한 승리’. 4월 11일자 북한 노동신문 사설은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 1위원장을 한껏 치켜세웠다. ‘신념과 의지의 제일 배짱가’라거나 ‘적대 세력도 경탄을 금치 못하는 명인 중의 명인’ 등의 찬양이 사설 곳곳에 드러났다. 이날은 김정은이 노동당 4차 대표자회의에서 당 제 1비서로 추대된 지 꼭 1년이 된 날이었다. 김정은 체제의 출범 한돌을 맞은 의미를 북한도 노동신문을 통해 각별하게 부각시킨 것이다.

북한은 ‘인공 지구위성(장거리 로켓)’ 광명성 3호 발사와 3차 핵 실험 성공을 그의 최고 치적으로 꼽았다. 김일성과 김정일 시신이 미이라 형태로 영구보관 된 금수산 태양궁전의 증개축도 열거됐다. 하지만 북한 관영 선전매체의 이런 주장과 현실은 상당한 거리가 있다.

김정은은 2011년 12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급작스런 사망으로 권력을 넘겨받은 지난해 4월 당대표자 대회에서 노동당 제1비서가 됐다. 김정일을 영원한 국방위원장으로 추대한 데 따라 ‘제 1비서’에 오른 것이다. 또 같은 달 최고인민회의 12기 5차 회의에서 국방위 제 1위원장이 됐고, 그 해 7월엔 공화국 원수에 추대됐다.

김정은은 김정일의 선군(先軍)노선을 따르는 이른바 ‘유훈(遺訓) 통치’를 했다. 김일성의 노선을 따른 김정일의 권력승계 과정을 본뜬 것이다. 지난해 4월 13일 장거리 로켓을 발사한 것도 그런 맥락이다. 김정은은 파격적 행보로 안팎의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했다. 지난해 7월에는 부인 이설주를 공개석상에 등장시키고 한동안 대동해 화제를 모았다. 또 미키마우스가 등장하는 모란봉악단 공연을 관람해 개혁·개방 기대와 관측도 낳았다.

이런 과시성 행보와 달리 김정은 집권 1년은 체제 불안정과 경제난으로 얼룩졌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정영태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지난 1년은 김정은 어른 만들기 과정이었다”고 평가했다.

2010년 9월 노동당 3차 대표자회의에서 ‘청년장군’에서 후계자로 등극하며 공개석상에 나타난 김정은은 아버지 김정일을 따라다니며 제왕학을 배웠다. 하지만 김정일의 급작스런 사망으로 최고지도자에 오르자 우선 어른 만들기 작업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부인 이설주의 등장도 그 일환이라는 게 정 연구위원의 진단이다. 부인을 대동해 ‘어린애가 아니다’는 점을 인식시키려 했다는 것이다.



노동당의 김정은 ‘어른 만들기’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3년 안팎의 후계수업을 받은 김정은은 불안정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김정일이 1974년 2월 노동당 5기 8차 전원회의에서 후계자로 내정돼 20년간 권력승계 준비를 한 것과 확연한 차이가 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집권 2년차가 됐는데도 북한 주민 상대의 우상화 작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되지 못했다. 미처 준비가 되지 않은 분위기란 얘기다. 무엇보다 해외 조기 유학에 병역을 제대로 마치지 않은 대목이 문제다. 김정은에 대한 기록영화 등에는 그의 경력과 관련해 곳곳에서 공백이 드러난다.

북한은 김정은이 김일성군사종합대학을 졸업했다고 선전하지만 하루 서너 시간만 잠자며 공부했다던 재학시절 사진은 한 장도 제시하지 못했다. 김정일이 후계자 시절 김일성종합대학 졸업 사실을 자랑스럽게 공표하며 졸업 논문과 재학 시절의 사진을 여러 장 공개한 것과 확연히 차이가 난다. 김정은이 할아버지 김일성의 후광을 빌리려 한데는 이런 속사정이 있을 수 있다.

집권 1년을 맞아 가장 큰 문제로 떠오른 건 대외적인 환경의 악화다. 핵·미사일 도발로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압박이 거세진 것이다. 지난해 12월 12일 장거리 로켓 발사 강행에 이어 두 달 만에 핵 실험까지 진행해 북한은 한국·미국은 물론 중국으로부터도 차가운 시선을 받는 처지다. 대북 제재에 반발하는 차원에서 이뤄진 김정은의 워싱턴과 서울을 겨냥한 핵 타격 위협은 상당한 후유증을 남길 것이란 전망이다.

그 파장은 그대로 경제에 미쳤다. 남북한 경협에서 마지막 산소호흡기 역할을 해온 개성공단의 잠정 폐쇄가 대표적이다. 남북 간 대규모 경협 프로젝트의 상징인 도로·철도 건설과 금강산 관광이 중단된 데 이어 마지막 남은 카드까지 던져 3대축이 모두 무너졌다. 5만3000명 북한 근로자와 20만~30만명으로 추산되는 그들의 부양 가족 생계에도 영향을 미칠 요인이다.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가동 재개의 계기를 찾지 못하면 체제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김정은은 자신의 권력체제를 공식 출범시킨 직후인 지난해 4월 15일 첫 공개 연설에서 “다시는 인민들이 허리띠를 조이지 않게 하고, 사회주의 부귀영화를 누리게 하겠다”고 장담했다. 이후 6·28 조치로 불리는 경제개혁 움직임을 가시화할 것이란 소문이 돌아 기대를 높였다. 하지만 시범 실시 움직임이 일부 감지됐을 뿐 흐지부지된 상태라는 게 정부 당국자들의 평가다.

최근 김정은의 잇단 도발 위협으로 조성된 긴장은 북한 주민들의 피로도만 높일 뿐 경제 문제에는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분석된다. 체제 출범 1년을 맞은 주민들의 불만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 젊은 지도자에 대한 기대가 절망으로 바뀌고 “김정은이 닮고 싶어하는 할아버지 김일성 시대에는 이렇게 힘들지 않았는데…” 하는 소리가 나올 수 있다.

이런 점을 의식한 때문인지 김정은은 4월 1일 최고인민회의(국회)에서 경제 관련 부분을 챙기는 듯한 인사를 했다. 가장 눈에 띄는 건 박봉주의 총리 컴백이다. 박봉주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각별한 신임을 바탕으로 2003년 9월 내각 총리에 올랐다. 이후 4년 동안 잘나갔다.

김정일이 노동당과 군부의 간부들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모든 문제는 박봉주와 상의하라”고 지시한 게 계기가 됐다. 김정일이 이런 식으로 최고의 힘을 실어준 건 박봉주와 군부 실세 김격식(현 인민무력부장)뿐이다. 김격식에 대해서는 “나와 김격식 동지는 격식없는 사이”라고 말한 게 우리 대북 첩보망에 포착됐다.

박봉주 기용이 눈길을 끄는 건 그가 개방파로 분류된다는 점에서다. 그는 2002년 10월 북한 경제시찰단으로 한국에 왔다. 김정일의 매제인 장성택(당시 노동당 조직지도부 제 1부부장)과 함께 온 그는 서울의 발전상을 속속들이 들여다보고 갔다. 그 해 7월에는 임금 현실화와 배급제·공급망 개선 등을 담은 ‘7·1 경제관리개선조치’ 추진에도 관여했다는 게 우리 당국의 평가다. 이 두 가지 행적 때문에 박봉주의 인사파일에는 ‘개방파 경제 관료’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개방파 경제 관료 박봉주 내세워김정은은 수산·화학공업·원유공업·국가자원개발 등 경제부처를 중심으로 10여명의 장관급 인사를 교체했다. 특히 지난해 10월 농업상에 임명된 황민을 반 년 만에 해임한 게 눈길을 끈다. 이번엔 농업상 자리를 부총리급 부서로 격상시켰다. 자신의 뜻대로 경제 문제, 특히 농업 부문이 해결되지 않자 대폭 교체 인사를 했다는 해석이다. 먹는 문제 해결에 더욱 매달리겠다는 뜻도 드러난다.

김정은은 최고인민회의 개최 하루 전 노동당 전원회의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그는 연설을 통해 “경제 문제와 핵 개발을 병진하는 노선을 채택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경제 문제에 대해 진단만 했지 처방이나 수술을 해본 적이 없는 김정은으로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는 후계자 시절인 2009년 11월 말 화폐개혁을 주도했다가 주민들의 반발로 실패했다. 당시 박남기 국가계획위원장을 희생양 삼아 총살하는 극약처방으로 위기를 모면했지만 김정은으로서는 트라우마가 남았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 당국자는 “군사 문제에 대한 리더십을 과시하려는 김정은이 유난히 경제 문제에 대해서는 소극적”이라며 경제문제에 대한 자신감 부족을 꼬집었다.



김정은 체제 안착 여부 안갯 속김정은 체제 1년을 맞아 주목 받는 것 중 하나가 김정은의 대남 인식이다. 그의 호전적 성향의 대남관이 최근의 극렬한 대남 도발 위협의 배경이란 게 대체적인 해석이다. 실제 김정은은 최고사령관 직책을 내세워 직접 도발 위협의 전면에 나서는 모습을 보였다. 3월 7일 연평도 도발 부대인 서해 최전방 섬 방어대를 찾아서는 “적진을 벌초해 버리라”거나 “수장시키라”는 등의 극언을 쏟아냈다. 지난해 2월에도 연평도 포격도발 부대인 북한군 4군단을 방문해 남한을 ‘적(敵)’으로 누차 적시하면서 “적들이 침범한다면 원수의 머리 위에 강력한 보복 타격을 안기라”고 지시했다.

이 같은 대남관은 지난해 1월 공개된 북한 동영상에서 김정은이 한 군가 악보를 보고 받은 뒤 “이 노래를 부르면서 남진(南進)의 길을 가자”고 강조했다는 점에서도 잘 드러난다. 탱크사단을 방문한 김정은이 직접 탱크에 올라 남한의 도시 지명을 새겨놓은 푯말을 가로질러 진격하는 장면이 북한 TV에 나온 적도 있다. 이런 언행 때문에 김정은이 대남도발을 실행에 옮길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미 2010년 천안함 폭침 도발과 연평도 포격 도발의 배후로 지목됐다. 최근 잇단 도발 위협을 두고서도 우려가 나온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권력 기반이 취약한 김정은이 대남 도발 위협과 위기감 고조를 통해 내부 결속을 다지려는 의도된 행동을 하는 것이란 진단도 내놓는다.

집권 2년차를 맞은 김정은 체제는 안착할 것인가, 아니면 와해의 길로 갈 것인가. 견해가 엇갈린다. 아직 김정은 체제를 진단할 정확한 정보가 부족한데다 최근의 도발적 행태에 대한 진단도 내리기 힘들다. 김정은의 3대 세습 안착을 관망하는 전문가들은 김일성 유일사상 체계와 1인 독재 체제라는 특성을 중시한다.

김일성은 1970년대 이후 유일지배 체제를 정착시켰고 부자 권력세습의 토대도 일찌감치 마련했다. 일제 식민 지배에서 벗어나자마자 민주주의 체제를 경험하지 못한 채 스탈린식 사회주의에 편입됐다. 봉건적 왕조 체제를 다진 것도 3대 세습 안착을 가능하게 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여기에 중국의 후견은 김정은의 권력 기반 구축에 가장 결정적 요인이 될 수 있다. 핵 실험 등으로 중국이 불편함으로 느끼는 건 사실이지만 김정은에 대한 중국 지도부의 전략적 판단과 지지는 여전하다는 관측이다.

김정은 체제의 미래를 비관하는 전문가들은 지도자로서 카리스마 부족 등을 안착 저해 요인으로 꼽는다. 김정은의 리더십에 대해 북한의 파워엘리트들이 어느 정도의 지지를 보낼지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심각한 경제난은 김정은이 쉽게 넘어서기 어려운 과제다.

김정은 체제의 미래와 관련해 가장 눈길을 끄는 인물은 김정은의 고모인 김경희 노동당 비서와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 부부다. 이 두 사람은 김정은 권력의 핵심 후견인이다. 권력 기반이 취약하고 리더십을 온전히 발휘하지 못하는 29세의 김정은이 상당 부분 의지할 수 밖에 없는 존재다.

김경희는 김정일가를 지탱하는 정신적 지주다. 김일성의 딸이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여동생이란 점에서 이른바 ‘백두 혈통’으로 분류된다. 김정은 신변에 문제가 생기면 김경희가 체제 유지의 마지막 보루가 될 가능성이 있다. 그의 건강에 관심이 쏠리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북한 생존은 도발위협 아닌 개혁·개방에 달려장성택의 위상과 능력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린다. 장성택을 만나 본 정부 당국자나 북한 전문가들은 그가 개혁·개방 성향을 가진 것으로 본다. 옛 소련 유학을 했고 빈번한 외유를 통해 서구 문물에 밝은 편이기 때문이다. 2002년 10월 경제시찰단으로 남한에 왔을 때 시가 100만원이 넘는 발렌타인 30년산 양주로 폭탄주를 만들어 마시는 등 자유분방한 모습을 보였다. 실세로서 면모도 드러냈다.

하지만 ‘영원한 권력 2인자’답게 자신의 한계를 누구보다 잘 알아 김정은 권력의 도전세력이나 대안이 되기는 어렵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일각에서는 그가 김정은 체제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장성택은 외자 유치나 평양시 건설사업 등을 총괄한다. 경제 문제로 김정은 체제에 대한 주민 불만이 폭발하면 ‘장성택 숙청’이란 극단적 카드로 수습에 나설 수 있다는 얘기다.

김정은 체제에 대한 관영 선전매체의 주장과 달리 북한은 밑으로 부터의 변화를 겪고 있다. 겉으로는 견고한 것처럼 보이지만 주민들이 자본주의식 문물과 사상에 물들고 있다는 것이다. 남한 음악·드라마를 즐기는 북‘ 한판 한류(韓流)’도 거세다. 여기에다 2만4000여명의 한국 정착 탈북자들이 북한 내 가족·친지들에게 중국에서 반입한 휴대전화를 이용해 서울 등 남한 소식을 전해준다.

탈북자들이 북한의 가족에게 보내는 달러는 남한 사회에 대한 북한 가족이나 주민들의 인식을 바꾸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주민들 간에 ‘양풍(洋風)’으로 불리는 서구 문물의 급속한 확산도 문제다. 2000년대 들어 평양 시내에 피자·파스타·와인 등 서구 음식을 파는 상점이 인기를 끌었다. 휴대전화 보급이 150만대에 이를 정도로 주민들 사이에 정보 흐름이 빨라지고 외부 정보와 접촉하는 기회가 늘었다.

권력엘리트들의 동요 가능성도 조심스레 점쳐진다. 노동당과 군부의 핵심 엘리트들이 김일성·김정일 시대처럼 ‘당신(수령)이 없으면 우리도 없다’는 식의 충성심과 공동운명체 의식을 유지할 수 있을지 관건이다. 북한 후계구도 구축 과정에서 치열한 권력투쟁이 벌어져 지난해 7월에는 이영호 총참모장이 전격 숙청됐다.

김정은은 2월 핵 실험 강행 이후 숨가쁜 도발 행적을 이어왔다. 서울과 워싱턴을 향해 극단적인 위협을 퍼부으며 한반도 긴장을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하지만 한·미와 국제사회의 냉담한 반응에 최근엔 초조한 모습을 드러내는 분위기다. 자신들의 뜻대로 한·미가 움직이지 않고 있다. 결국 북한 체제의 생존은 도발과 위협이 아닌 국제사회와 협력과 개혁·개방에 있다. 그렇지 않다면 김정은 체제는 생존을 위한 출구를 마련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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