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봐, 국채 값 너무 오르지 않았어?
이봐, 국채 값 너무 오르지 않았어?
1998년·2003년 국채 투매사태 재현 되나 … 국채 수익률 0.5%가 변곡점
일본 국채시장은 아베노믹스의 아킬레스건이다. “차원이 다른 금융정책을 내놨다”고 자찬한 구로다조차 국채시장 안정이 핵심이라고 말했을 정도다. 지난해 말 기준 일본의 국채발행 잔액은 960조엔으로 일본 국내총생산(GDP)의 두 배를 넘었다.
3월 말 현재 일본의 외환보유액은 1조2500억 달러로 엔으로 환산하면 123조엔 규모다. 이론상 국내외 투자자들이 보유 국채의 13%만 팔아도 외환보유액을 넘는 돈이 국채시장에서 이탈한다. 구로다가 매년 50조엔 규모의 국채 매입이 골자인 금융완화책을 내놨지만, 투자자들이 투매에 나서면 구로다도 어쩔수 없는 상황이 된다.
무엇보다 국채시장 붕괴는 일본 재정의 붕괴다. 정부는 국채를 팔아 치우는 투자자를 붙잡기 위해 더 높은 이자를 지급해야 한다. 이는 가뜩이나 빚에 허덕이는 일본 재정을 구렁텅이로 몰아넣을 것이다.
국채 평균 수익률이 1% 오르면 일본 정부가 추가로 부담해야 하는 이자만 10조엔에 달한다. 참고로 일본 정부의 한해 예산은 90조엔 안팎이다.
과거 일본 국채시장에는 두 차례 큰 쇼크가 있었다. 1998년 말과 2003년 6월이었다. 최근 불안한 국채시장 분위기 때문에 이 때를 떠올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우선 1998년의 상황을 보자. 아시아 금융위기로 안전자산이던 일본 국채에 막대한 자금이 밀려들어 국채 수익률이 큰 폭으로 떨어졌다. 국채가격이 급등세를 타면서 국채시장이 과열됐다.
‘대장성 자금운용부 쇼크’라 불리는 1998년 말의 국채 쇼크는 대장성의 경기부양용 추가경정예산이 도화선이 됐다. 그 해 11월 대장성은 제3차 추경예산을 편성했다. 필요 재원 중 10조엔을 국채 발행으로 조달한다고 밝혔다. 이미 오를 대로 오른 국채 가격은 정부가 추경을 위해 국채를 더 발행한다고 하자(시장에 물량을 더 푼다고 하자) 동요하기 시작했다.
결정타는 12월 대장성의 발표였다. 대장성은 자금운용부가 국채 안정용 매입 자금으로 활용하던 여유 기금을 경기부양 자금으로 전용한다는 방침을 내놨다. 운용부가 국채 매입용으로 굴리던 자금은 매달 1000억엔 정도에 불과했다. 전체 국채시장 규모와 비교하면 그렇게 크지 않았다.
그럼에도 국채 수급 안전핀이라는 상징물이 실종되자 시장은 패닉에 가까운 반응을 보였다. 11월 중순까지 0.8%대에 머물던 10년물 수익률은 다음해 2월 초 2.4%대로 올랐다. 석 달 새 금리가 3배로 치솟은 것이다. 국채 가격 급락에 시장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VaR(Value at Risk) 쇼크’라 이름 붙여진 2003년 쇼크 때의 국채시장 흐름도 유사했다. 쇼크가 발생하기 직전인 6월 초 국채 가격은 이미 부풀대로 부풀어 있었다. 2003년은 일본은행(BOJ) 총재가 교체되던 해다. 올 초 구로다 취임에 앞서 일본은행 통화정
책에 대한 시장의 기대가 한껏 고조됐듯이 당시도 비슷했다. 일본은행의 국채 매입으로 국채시장 수급이 크게 안정될 것이라는 기대에 그 해 6월 초 10년물 국채 수익률은 사상 최저치(국채 가격 사상 최고가)인 0.4%대를 기록했다.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이던 국채시장은 갑자기 주저앉기 시작했다. 발단은 단순했다. 6월 중 실시된 20년물 국채 입찰 결과가 시장의 예상에 다소 못 미쳤다는 게 시작이었다. 일본은행의 힘만 믿던 시장은 잊고 지내던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맞아. 국채 가격이 너무 많이 올랐어. 이건 누가 봐도 과열이야. 그렇지 않아?”
예상에 조금 못 미친 국채 낙찰결과는 하나 둘 차익실현을 불러오고 급기야 거센 ‘매도 급류’를 형성했다. 그 과정에서 금융회사의 위기관리 시스템인 VaR은 매도가 매도를 불러오는 투매의 악순환을 낳았다. VaR에 따라 손실이 예측되는 국채를 너도나도 팔다 보니 투매가 투매를 부르는 눈덩이 효과를 낳은 것이다. 그 결과 0.4%이던 10년물 국채 수익률은 불과 3주 만에 1.4%로 치솟았다. 일본 국채시장에 숱한 ‘사상자’를 낳은 공포의 6월로 기억된다.
돈 풀기에 골병 드는 日 국채시장일본의 10년물 국채 수익률이 0.5%에 가까워지거나 이를 뚫고 내려가는 시점은 늘 위험했다. 1998년 말이, 2003년 6월이 그러했다. 역사적으로 10년물 수익률 0.5%는 국채시장 과열, 버블 붕괴의 경계선으로 작용했다. 올 4월 일본국채 10년물의 수익률은 0.4%~0.5%를 맴돈다. 과열에 대한 부담, 차익 실현에 대한 욕구가 잠재돼 있다는 점에서 1998년과 2003년과 같은 쇼크 조건을 갖춘 셈이다.
1998년의 경험은 미묘한 정책 변화가 과열 국면에선 엄청난 폭발성을 지닐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구로다나 아베 신조 총리의 말 실수 하나, 사소한 정책판단 오류가 1998년과 유사한 쇼크를 불러올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다음으로 2003년 6월의 경험은 ‘과열 국면에서 국채의 가격 형성이 시장의 기대에 조금이라도 어긋나는 순간 투매의 불씨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물론 적지 않은 전문가들은 과거 두 차례 쇼크 때와 지금은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말한다. 지금은 국채시장의 마지막 보루인 일본은행이, 구로다가 있다고 강조한다. 무기한으로, 그것도 필요할 때 매입 양을 계속 늘려 국채 매물을 받아낼 일본은행이 존재하는데 무슨 쇼크가 오겠냐는 거다.
그러나 비관론자들은 역사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고 말한다. 우선 국채시장의 잦은 변동성은 금융회사의 투매로 이어질 위험을 안고 있다. 요즘처럼 국채 변동성이 커진 상황에선 금융회사들도 위험관리시스템인 VaR 모델에 따라 국채 보유를 줄일 수밖에 없다. 국제통화기금(IMF)도 2011년 보고서에서 일본 국채시장의 잦은 변동성은 ‘2003년 VaR쇼크’를 재연시킬 것이라 경고했다.
근본적인 문제는 아베 신조 총리와 구로다의 혁명적 실험이 유권자의 지지를 계속 얻을 수 있느냐 하는 거다. 일자리와 임금이 늘어나는 선순환 구조가 아닌 비용 상승에 따른 물가상승만 심화한다면 유권자들이 순순히 이를 감내할 것인가다. 나아가 대외적으로는 아베와 구로다의 돈 풀기를 중국이나 주변국이 언제까지 용인할 것이냐는 문제도 남는다.
구로다 실험의 성공 여부를 논하기엔 아직 이르다. 다만 낙관론자나 비관론자나 의견 일치를 보는 대목은 “이번 실험이 실패하면 일본은 정말 힘들어진다”는 것이다. 1998년과 2003년에 비해 정부 부채는 더 늘었고 가계 저축률은 예전만 못하기 때문이다.
- 국제경제 분석 전문 매체 Global Monitor 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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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BOJ) 총재가 4월 4일 내놓은 ‘질적·양적 금융완화 정책’은 예상을 뛰어넘는 파격적 조치였다. 일본 증시는 급등하고 엔화 가치는 급락하며 구로다 총재의 절세신공에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환호성이 가득한 도쿄 금융시장 한 켠에선 불안한 마음을 억누르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바로 일본 국채시장 트레이더들이다.
일본 국채시장은 아베노믹스의 아킬레스건이다. “차원이 다른 금융정책을 내놨다”고 자찬한 구로다조차 국채시장 안정이 핵심이라고 말했을 정도다. 지난해 말 기준 일본의 국채발행 잔액은 960조엔으로 일본 국내총생산(GDP)의 두 배를 넘었다.
3월 말 현재 일본의 외환보유액은 1조2500억 달러로 엔으로 환산하면 123조엔 규모다. 이론상 국내외 투자자들이 보유 국채의 13%만 팔아도 외환보유액을 넘는 돈이 국채시장에서 이탈한다. 구로다가 매년 50조엔 규모의 국채 매입이 골자인 금융완화책을 내놨지만, 투자자들이 투매에 나서면 구로다도 어쩔수 없는 상황이 된다.
무엇보다 국채시장 붕괴는 일본 재정의 붕괴다. 정부는 국채를 팔아 치우는 투자자를 붙잡기 위해 더 높은 이자를 지급해야 한다. 이는 가뜩이나 빚에 허덕이는 일본 재정을 구렁텅이로 몰아넣을 것이다.
국채 평균 수익률이 1% 오르면 일본 정부가 추가로 부담해야 하는 이자만 10조엔에 달한다. 참고로 일본 정부의 한해 예산은 90조엔 안팎이다.
과거 일본 국채시장에는 두 차례 큰 쇼크가 있었다. 1998년 말과 2003년 6월이었다. 최근 불안한 국채시장 분위기 때문에 이 때를 떠올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우선 1998년의 상황을 보자. 아시아 금융위기로 안전자산이던 일본 국채에 막대한 자금이 밀려들어 국채 수익률이 큰 폭으로 떨어졌다. 국채가격이 급등세를 타면서 국채시장이 과열됐다.
‘대장성 자금운용부 쇼크’라 불리는 1998년 말의 국채 쇼크는 대장성의 경기부양용 추가경정예산이 도화선이 됐다. 그 해 11월 대장성은 제3차 추경예산을 편성했다. 필요 재원 중 10조엔을 국채 발행으로 조달한다고 밝혔다. 이미 오를 대로 오른 국채 가격은 정부가 추경을 위해 국채를 더 발행한다고 하자(시장에 물량을 더 푼다고 하자) 동요하기 시작했다.
결정타는 12월 대장성의 발표였다. 대장성은 자금운용부가 국채 안정용 매입 자금으로 활용하던 여유 기금을 경기부양 자금으로 전용한다는 방침을 내놨다. 운용부가 국채 매입용으로 굴리던 자금은 매달 1000억엔 정도에 불과했다. 전체 국채시장 규모와 비교하면 그렇게 크지 않았다.
그럼에도 국채 수급 안전핀이라는 상징물이 실종되자 시장은 패닉에 가까운 반응을 보였다. 11월 중순까지 0.8%대에 머물던 10년물 수익률은 다음해 2월 초 2.4%대로 올랐다. 석 달 새 금리가 3배로 치솟은 것이다. 국채 가격 급락에 시장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VaR(Value at Risk) 쇼크’라 이름 붙여진 2003년 쇼크 때의 국채시장 흐름도 유사했다. 쇼크가 발생하기 직전인 6월 초 국채 가격은 이미 부풀대로 부풀어 있었다. 2003년은 일본은행(BOJ) 총재가 교체되던 해다. 올 초 구로다 취임에 앞서 일본은행 통화정
책에 대한 시장의 기대가 한껏 고조됐듯이 당시도 비슷했다. 일본은행의 국채 매입으로 국채시장 수급이 크게 안정될 것이라는 기대에 그 해 6월 초 10년물 국채 수익률은 사상 최저치(국채 가격 사상 최고가)인 0.4%대를 기록했다.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이던 국채시장은 갑자기 주저앉기 시작했다. 발단은 단순했다. 6월 중 실시된 20년물 국채 입찰 결과가 시장의 예상에 다소 못 미쳤다는 게 시작이었다. 일본은행의 힘만 믿던 시장은 잊고 지내던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맞아. 국채 가격이 너무 많이 올랐어. 이건 누가 봐도 과열이야. 그렇지 않아?”
예상에 조금 못 미친 국채 낙찰결과는 하나 둘 차익실현을 불러오고 급기야 거센 ‘매도 급류’를 형성했다. 그 과정에서 금융회사의 위기관리 시스템인 VaR은 매도가 매도를 불러오는 투매의 악순환을 낳았다. VaR에 따라 손실이 예측되는 국채를 너도나도 팔다 보니 투매가 투매를 부르는 눈덩이 효과를 낳은 것이다. 그 결과 0.4%이던 10년물 국채 수익률은 불과 3주 만에 1.4%로 치솟았다. 일본 국채시장에 숱한 ‘사상자’를 낳은 공포의 6월로 기억된다.
돈 풀기에 골병 드는 日 국채시장일본의 10년물 국채 수익률이 0.5%에 가까워지거나 이를 뚫고 내려가는 시점은 늘 위험했다. 1998년 말이, 2003년 6월이 그러했다. 역사적으로 10년물 수익률 0.5%는 국채시장 과열, 버블 붕괴의 경계선으로 작용했다. 올 4월 일본국채 10년물의 수익률은 0.4%~0.5%를 맴돈다. 과열에 대한 부담, 차익 실현에 대한 욕구가 잠재돼 있다는 점에서 1998년과 2003년과 같은 쇼크 조건을 갖춘 셈이다.
1998년의 경험은 미묘한 정책 변화가 과열 국면에선 엄청난 폭발성을 지닐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구로다나 아베 신조 총리의 말 실수 하나, 사소한 정책판단 오류가 1998년과 유사한 쇼크를 불러올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다음으로 2003년 6월의 경험은 ‘과열 국면에서 국채의 가격 형성이 시장의 기대에 조금이라도 어긋나는 순간 투매의 불씨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물론 적지 않은 전문가들은 과거 두 차례 쇼크 때와 지금은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말한다. 지금은 국채시장의 마지막 보루인 일본은행이, 구로다가 있다고 강조한다. 무기한으로, 그것도 필요할 때 매입 양을 계속 늘려 국채 매물을 받아낼 일본은행이 존재하는데 무슨 쇼크가 오겠냐는 거다.
그러나 비관론자들은 역사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고 말한다. 우선 국채시장의 잦은 변동성은 금융회사의 투매로 이어질 위험을 안고 있다. 요즘처럼 국채 변동성이 커진 상황에선 금융회사들도 위험관리시스템인 VaR 모델에 따라 국채 보유를 줄일 수밖에 없다. 국제통화기금(IMF)도 2011년 보고서에서 일본 국채시장의 잦은 변동성은 ‘2003년 VaR쇼크’를 재연시킬 것이라 경고했다.
근본적인 문제는 아베 신조 총리와 구로다의 혁명적 실험이 유권자의 지지를 계속 얻을 수 있느냐 하는 거다. 일자리와 임금이 늘어나는 선순환 구조가 아닌 비용 상승에 따른 물가상승만 심화한다면 유권자들이 순순히 이를 감내할 것인가다. 나아가 대외적으로는 아베와 구로다의 돈 풀기를 중국이나 주변국이 언제까지 용인할 것이냐는 문제도 남는다.
구로다 실험의 성공 여부를 논하기엔 아직 이르다. 다만 낙관론자나 비관론자나 의견 일치를 보는 대목은 “이번 실험이 실패하면 일본은 정말 힘들어진다”는 것이다. 1998년과 2003년에 비해 정부 부채는 더 늘었고 가계 저축률은 예전만 못하기 때문이다.
- 국제경제 분석 전문 매체 Global Monitor 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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