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N CASE - “우리는 가족이 필요하거든요”
KOREAN CASE - “우리는 가족이 필요하거든요”
최근 우리나라에선 ‘엄마 가산점제’를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새누리당 신의진 의원이 발의해 4월 16일 국회 심의에 들어간 법안을 말한다. 여성이 임신·출산·육아를 이유로 퇴직한 뒤 재취업하는 경우 각 과목별 득점에 2% 가산점을 부여한다는 내용이다. 출산으로 인한 여성의 경력단절을 해소함으로써 여성인력 활용도를 높이고 저출산 현상을 막아보겠다는 취지다.
그 법안이 알려지면서 곳곳에서 찬반양론이 일었다. 같은 당 한기호 의원이 나서서 “인기영합을 목적으로 한 법안”이라고 비판한 한편 한 여론조사에서는 국민 61.3%가 “저출산 대책과 여성인력 활용안으로 찬성한다”고 응답하며 엄마 가산점제 지지 의사를 밝혔다.
젊은 세대의 출산기피 경향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지만 출산과 육아를 이유로 취업시 가산점을 부여하는 경우는 전례가 없다. 그만큼 출산기피 현상이 한국에서 더욱 심각하다는 의미다. 2012년 11월 유엔인구기금이 발표한 ‘2012 세계인구현황보고서’는 한국 출산율을 1.4로 집계했다. 전체 평균 출산율은 2.5, 선진국은 평균 1.7이었다.
189개 조사 대상국가 중에서 출산율이 한국보다 낮은 곳은 포르투갈, 오스트리아, 몰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등 4개국 뿐이었다. 통계청의 조사에서는 2012년 한국 출산율이 그보다 낮은 1.3으로 나타났다. 출산율 1.3은 초저출산 국가를 나누는 기준선이다. 출산율이 1.3 이하로 45년 간 유지되면 전체 인구가 절반 이하로 줄어들기 때문이다. 한국은 저출산 국가와 초저출산 국가의 경계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의 저출산 현상이 심각한 이유가 단지 낮은 출산율만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큰 문제는 탈가족주의와 저출산이 동시 진행되는 선진국과 달리 한국은 높은 혼인율에도 불구하고 낮은 출산율을 보인다는 사실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2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09년 한국의 1000명 당 혼인율은 7.13으로 34개 회원국 중 3위였지만, 출산율은 최하위인 1.23였다. 고령화국가로 이름 높은 일본조차 혼인율이 5.71로 한국보다 낮은 가운데 출산율은 1.39명으로 나타났다.
미국 혼인율은 2000년 8.2에서 매년 꾸준히 감소해 2011년 6.8까지 떨어진 데 비해 통계청이 조사한 한국 혼인율은 2002년 6.3에서 2007년 7.0까지 상승했다가 2012년 6.5에 머물렀다. 2008년 경제위기 이후 혼인 건수가 크게 줄었음에도 여전히 10년 전보다 높은 수치다. 한국보건사회연구소의 ‘2012년 전국 결혼 및 출산동향 조사’에서 미혼남성의 결혼의향은 79.3%, 미혼여성의 경우 72.4%로 절반을 훌쩍 넘는 수가 결혼을 희망한다고 나타났다.
최근 급증하는 1인가구를 근거로 한국이 탈가족주의 사회에 접어든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한국의 1인가구는 1990년 9%에서 2010년 23.9%로 크게 늘었다. 통계청은 ‘2010~2035년 장래가구추계’ 보고서에서 2035년까지 1인가구가 34.3%로 가장 많은 가구수를 차지하리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 보면 한국의 1인가구는 결혼과 출산으로 가족을 꾸리기보다 혼자 살기를 스스로 택하는 타 선진국 1인가구와 다르다.
통계청은 ‘한국의 사회동향 2012’ 보고서에서 “도시 지역에서는 미혼 1인가구의 비율이 높게 나타나고, 농촌에서는 65세 이상 노인 1인가구의 비율이 높다”고 분석했다. 1인가구를 연령별로 분류하면 20대에 가장 많고 30대부터 감소하다가 70대 이상이 되면 크게 증가하는 그래프가 형성된다. 연령별 1인가구 비율은 20대 58%, 30대 23%, 40대 14%, 50대 16%, 60대 22%, 70대 이상은 40%다.
이같은 추세로 봤을 때 한국의 1인가구는 젊은 세대의 결혼 연기와 인구 고령화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생기는 현상이지 1인가구를 향한 자발적인 선호라고 하기는 어렵다. 1인가구의 낮은 소득도 이를 뒷받침한다. 통계청의 ‘2012년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나타난 1인가구의 빈곤율(전체 중위소득 50% 이하 가구비율)은 50.1%로 4인 이상 가구(8.4%)보다 압도적으로 높다. 특히 노인 1인가구 빈곤율은 OECD국가 평균(30.7%)의 2배 이상인 76.6%에 달한다.
LG경제연구원이 발표한 ‘2011년 소비자 라이프스타일’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1인가구는 혼자 생활한 기간이 3~5년 미만에 집중된 반면 일본은 10년 이상 생활한 사람이 절반 이상이다. 이 중 결혼의향이 있다고 답한 비율은 한국이 65%, 일본이 47%였는데, “이는 일본이 한국보다 자발적으로 결혼을 거부하는 비중이 높기 때문”이라고 보고서는 분석했다.
미국의 1인가구도 마찬가지다. 1인가구 연령별 분포에서부터 한국과 다르다. 센서스가 조사한 2010년 미국 1인가구는 자녀독립과 배우자 사망이 일어나기 시작하는 55~64세(28%), 65세 이상(44%)을 제외하면 각 연령대별로 20% 안팎의 고른 분포를 보인다. 20대에 일시적으로 대규모 1인가구층을 형성했다가 30대 이후 대부분 가정을 이루는 한국인들과는 다른 양상이다.
300명 이상의 독신자를 인터뷰하며 1인가구를 연구한 에릭 클라이넨버그 뉴욕대 사회학과 교수는 저서 ‘고잉 솔로: 싱글턴이 온다’에서 “독신자들은 혼자 살기가 성공의 표지이며 개성의 발현이라는 쪽으로 시각을 바꾸고 있다”며 자유와 개성을 중시하는 현대인들이 1인가구를 선호한다고 썼다. “혼자 살기는 자유, 자기관리, 자아인식 등 현대사회에서 칭송받는 가치들을 수반한다.” 1인가구가 늘어나는 이유가 미국인들의 자발적인 선택에 있다는 분석이다.
이 책에서 클라이넨버그 교수가 꼽은 1인가구 형성 요인은 여성 지위 향상, 통신기술 발달, 대도시 형성, 수명연장 등 사회의 전체적인 발전이었다. 독일 또한 1인가구가 증가(전체의 20%)하는 대표적인 선진국 중 하나인데, 독일 일간지 슈피겔은 1인가구가 갈수록 증가하는 이유로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를 꼽으며 독일 독신자들은 “지방이나 소도시 대신 대도시에 살고 결혼보다 미혼을 선호하며 독립심이 강하다”고 분석했다.
한국 청장년층은 다르다. 혼자 살기가 개성의 발현이라고 생각하지도, 결혼보다 미혼을 선호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가정을 꾸리길 원할 뿐 아니라 출산도 희망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소의 출산동향 조사에 따르면 자녀의 필요성을 묻는 질문에 20~44세 기혼여성의 82.2%가 긍정적으로(‘꼭 있어야 한다’ 및 ‘있는 편이 낫다’) 응답했다.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자녀 수는 평균 2.18명으로 2005년 2.30명과 대동소이했다. 같은 연령 미혼남녀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미혼남성 83.8%, 미혼여성 78.8%가 자녀의 필요성에 대해 긍정적으로 답했다. 또 이들은 “자녀가 부부간의 관계를 더 굳건하게 해준다”(미혼남성 89.2%, 미혼여성 88.4%)고 생각하며, 대다수가 “부모가 되는 것은 가치있는 일”(미혼남성 91.9%, 미혼여성 90.5%)이라는 의견을 보였다.
이런 응답에서 선진국의 무자녀·1인가구 시대를 열어젖힌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를 발견하기란 어렵다. 한국은 유교의 색채가 짙게 남아 있는 보수적인 국가다. 자녀가 필요한 이유를 묻는 설문에 미혼남성의 10.1%, 미혼여성의 4.8%가 “대를 잇기 위해”라고 응답할 정도다.
“제사를 지내기 위해서”라고 응답한 미혼남녀도 각각 2.3%, 1.1%나 됐다. 독신남녀들이 자유롭게 동거와 이별을 반복하는 해외 국가들과 달리 한국에서 미혼남녀가 동거나 출산을 하면 뭇 사람들의 비난을 받기 십상이다. 어쩌다가 임신이라도 될라치면 혹시라도 흉이 될까 남들 모르게 서둘러 결혼식을 치르는 경우가 다반사다.
결혼과 출산을 싫어하는 것도 아니고 가족 중심 라이프스타일에도 변화가 없는데 한국의 출산율은 왜 낮을까? 여성 경제활동 참여 증가, 실업률 상승 등 원인은 다양하지만 한국에서 가장 심각한 요인은 양육비용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소의 위 조사에서 미혼남녀들은 출산율 감소 이유를 묻는 설문에 “자녀 양육비와 교육비용 상승”을 1순위로 꼽았다.
이 항목에 “매우 그렇다”고 답한 비율이 2위 “경기불황과 실업률 증가”보다 남성은 17.3%포인트, 여성은 22.6%포인트나 높았다. 기혼여성들도 66%가 양육비를 출산율 감소의 가장 큰 원인으로 꼽았다. 권영선 노무라증권 애널리스트는 “한국의 낮은 출산율은 교육을 강조하는 문화적 특성과 깊은 연관이 있다”고 분석했다.
한국은 교육열이 높기로 유명하다. 대학 진학율이 80%에 육박하고, 청년층의 고등학교 이수율도 98%에 달해 전 세계 상위권에 속한다. 그만큼 교육비 지출도 막대하다. 교육과학기술부가 발표한 ‘2012년 OECD 교육지표 조사결과’에 따르면 한국 공교육비민간부담률은 3.1%로 OECD 평균인 0.9%를 크게 상회하며 회원국 중 최고였다.
2009년 상반기 기준 국내 가계소비에서 교육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7.4%였는데 이는 미국(2.6%), 일본(2.2%), 독일(0.8%)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은 수치다. 국회도서관의 2012년 ‘우리나라 교육비 부담현황’ 보고서에서는 자녀 한 명을 대학 졸업까지 양육하는 데 총 2억7500만원이 소요되며 이 중 절반에 가까운 액수가 교육비인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자녀가 대학 졸업 시까지 발생하는 거의 모든 비용을 부모가 책임진다는 데 있다. 결혼정보회사 가연이 전국 성인남녀 3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대상자의 62%가 “대학 졸업 때까지 지원하겠다”고 응답했으며, 대학 졸업 후에도 지원하겠다고 답한 비율도 19%였다. 자녀의 독립이 늦어지고 양육기간이 길어지는 한편 만혼 추세가 강해지면서 부모의 연령이 출산에 중요한 고려요소가 된다.
자녀를 갖지 않을 생각인 문지연(29, 미혼) 씨는 “취직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당분간은 일에 전념하고 싶다”고 말했다. 문 씨는 “앞으로 수 년 내에 결혼해서 애를 낳는다고 해도 자녀가 대학에 갈 나이면 나는 은퇴를 준비할 시기가 된다”며 늦은 나이에도 경제력을 가지고 자녀를 돌봐야 한다는 사실이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은퇴 전에 자녀를 독립시키려면 늦어도 30대 초반에는 낳아야 한다.” 갈수록 늦어지는 초혼연령을 고려하면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지속적인 저출산 문제는 한국의 지속가능성을 심각하게 위협한다. 저출산고령화 위원회는 생산가능인구가 2016년을 기점으로 감소하기 시작해 2026년에는 노인인구가 전체 인구 비중의 20%를 넘는 초고령사회에 도달한다고 전망했다. 저출산 현상이 계속돼 2045년까지 출산율 1.4에 그칠 경우 2030년부터 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하고 2060년에는 총인구 4400만명, 생산가능인구는 절반에 불과한 2200만명에 그친다.
안정적인 인구규모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2045년까지 출산율 1.8 수준을 회복해야 하는데, 이 경우 2060년에도 5000만명 이상의 인구수를 확보할 수 있다. 저출산고령화위원회 관계자는 “출산율을 0.5 높이는 데에 덴마크는 27년, 스웨덴은 11년이 걸렸다”며 “30년후 합계출산율 0.5명 상승은 충분히 달성가능한 목표”라고 말했다. “’세계에서 가장 늙은 나라’가 될 것인지, 아니면 ‘젊고 활기찬 국가’가 될 것인지는 향후 10년 내에 판가름난다고 본다. 빠른정책대응이 필요한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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