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 - 격동의 역사와 영성 불가해한 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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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정 러시아의 표트르 대제는 1703년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건설할 때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을 모델로 삼았다. 그래선지 미국 뉴욕보다 100년쯤 뒤에 세워졌지만 1000년은 된 도시처럼 느껴진다. 어떤 건물들은 고대 로마의 폐허와 독일 왕궁을 합쳐놓은 듯한 모습이다. 건물 벽은 두께가 보통 1m 안팎이나 돼 지하에 있는 카페나 레스토랑에 들어가면 휴대전화 신호가 안 잡힌다.
축축한 벽에서는 강 냄새가 난다. 이 도시는 습지대에 세워졌기 때문이다. 그리바예도바 운하 변에 있는 스파스 나크라비 성당은 푸른색과 황금색의 장식적인 케이크처럼 생겼다. 농노제를 폐지한 개혁가 알렉산데르 2세가 이곳에서 무정부주의자들에게 암살당했다.
2006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갔을 때는 도착하기가 무섭게 여름궁전으로 걸어가 폰탕카강 건너편의 나지막한 궁전들을 바라봤다.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그 궁전 중 한 곳에서는 독일군의 레닌그라드 포위전(1941년 9월~1944년 1월) 당시 인육을 먹거나 유통시킨 사람들이 교수형에 처해졌다.
내가 살던 건물 옆 마당에서 만난 한 할머니는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무척 좋아했지만 그곳에 올 수 없었던 멋진 독일 장교 이야기를 들려줬다. 전쟁 당시 그 장교가 소속된 부대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외곽의 언덕에 주둔하며 이 도시에 폭격을 퍼부었다. 하지만 쉬는 시간이면 성당의 첨탑들을 바라보며 감탄했다.
성 이삭 성당의 황금색 첨탑, 트리니티 성당의 감청색 돔, 또 다른 교회의 진홍색 첨탑, 카잔 성당의 짙은 초록색 구리 첨탑, 그리고 스몰렌스크 성당의 연하늘색 첨탑. 스몰렌스크 성당의 첨탑은 해가 진 뒤에도 빛나는 돔 밑의 새하얀 돌을 빼곤 어스름한 하늘과 거의 분간이 가지 않는다.
나중에 그 독일군 장교는 전쟁포로가 돼 한 트랙터 공장에서 일했고, 내 이웃의 할머니는 그곳에서 그를 알게 됐다. 그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와보지도 못한 채 본국으로 송환된 뒤 할머니와 편지를 주고받았다. 그리고 20년 뒤 어느 추운 겨울날 마침내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방문했다. 하지만 기쁨에 넘친 나머지 할머니 집 현관 앞에서 심장마비를 일으켜 세상을 떠났다.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네프스키가에 있는 카잔 성당으로 걸어갔다. 이 성당은 오랫동안 그을음에 덮인 채 어둠침침한 모습으로 그곳을 지켜왔다. 신학도였던 스탈린은 제정 러시아 황제들의 즉위식이 거행된 이 성당을 무신론 박물관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요즘은 카잔의 성모마리아 성화에 입을 맞추려는 사람들이 성당 앞에 줄을 선다. 그들은 성화에 입을 맞추며 병의 치유를 기원한다. 도스토예프스키와 라스푸틴, 알렉산데르 3세와 니콜라스 2세도 이 성화에 입을 맞췄다. 렘브란트의 그림처럼 어두운 밤 오렌지 색 촛불이 밝혀지고 여성성가대가 성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네프스키가에서 몇 블록 떨어진 곳에 있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아파트(그는 이곳에 세들어 살았다)를 찾았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이곳에서 딸에게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그 근처에는 리녹이라고 불리는 실내 재래시장이 있다. 천장의 간유리를 통해 비치는 누런 빛이 체리와 캐비어·꿀·토마토·오이·치즈와 껍질 벗긴 토끼고기 등의 색깔에 반사돼 생생한 느낌으로 되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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