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a - 사람·아이디어·타이밍 맞아야 대박
Media - 사람·아이디어·타이밍 맞아야 대박
“요즘 아무도 모르는 3가지가 있다. 박근혜의 창조경제, 안철수의 새 정치, 김정은의 심중이다.” 4월 11일 방송된 JTBC 토크쇼 ‘썰전’에서 정치평론가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이 세간의 유행어를 이렇게 인용했다. 이날 지상파 채널에서 보기 드문 정치 풍자가 펼쳐졌다. 썰전은 미디어 비평 프로그램이다. 1부에서 대중문화를, 2부에서 정치와 사회 문제를 비평한다. 방송인 김구라·박지윤, 강용석 변호사 등이 진행자로 나섰다.
썰전이 방송되는 목요일 밤 11시 대는 KBS ‘해피투게더 시즌3’, MBC ‘황금어장-무릎팍도사’ 등 막강 프로그램이 포진해 있다. 두 프로는 각각 유재석·강호동이 메인 진행자다. 이 각축전에 과감히 도전장을 낸 썰전은 1%대 시청률로 시작해 5월 2일 2.5%의 자체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같은 날 무릎팍도사의 시청률은 3.8%였다. 시사와 예능을 결합한 점이 폭넓은 시청자를 끌어들였다. 정치인도 자주 본다고 한다. 혹시 내 얘기가 나오지 않을까 걱정 반, 기대 반이다. 썰전을 기획한 여운혁(44) CP(책임 프로듀서)를 최근 서울 순화동 JTBC 사옥에서 만났다.
썰전의 반응이 좋다. 인기 비결은 무엇인가.
“누가 무엇을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다. 썰전은 강한 캐릭터들이 나와서 시청자의 가려운 곳을 긁어준다. MBC에서 ‘명랑 히어로’를 기획한 게 도움이 됐다. 역시 시사와 예능을 결합한 프로였는데 출연자들이 어느 순간 침묵하기 시작하면서 힘을 잃고 결국 폐지됐다. 요즘은 그때보다 독설에 훨씬 관대하다. 사람·아이디어·타이밍이 다 맞아야 프로그램이 빛을 볼 수 있다.”
방송 전부터 출연자 명단이 화제를 모았다.
“김구라에 강용석이 힘을 더했다. 사람마다 매력이 있다. 유재석·강호동도 웃겨서 인기가 많다기보다 특유의 카리스마 때문에 그 매력에 빠진다. 김구라는 타고난 이야기꾼이다. MBC ‘황금어장-라디오스타’에서 능력을 인정받았다. 마이너리그에서 얻은 경험 덕분인지 법적으로 문제될 말은 알아서 거른다. 대중은 이중적이다. 노골적인 척 하는 걸 좋아하지만 실제 노골적인 것에는 거부감을 느낀다. 김구라는 불법인 포르노와 합법인 성인물 사이에서 교묘히 선을 지킨다.”
강용석은 어떻게 섭외했나.
“김구라가 추천했다. 처음에 반대했는데 만나 보니 재미난 사람이었다. 방송에서도 먹힐 것 같아 좋다고 했다. 평소 미디어에 노출된 모습을 다 믿지 않고 날 것 그대로 판단하려고 한다. 신입 후배들에게도 출신 대학이나 고향을 묻지 않는다. 이미지가 만들어지면 편견이 생기니까. 편견을 깨는 건 방송 연출자로서 계속 노력해야 할 부분이다.”
여 CP는 MBC에서 ‘무한도전’ ‘황금어장’ 등을 기획했다. 무한도전은 국내 예능계에 리얼 버라이어티 열풍을 일으켰다. 방송 이후 KBS ‘1박 2일’, SBS ‘패밀리가 떴다’ ‘런닝맨’ 같은 프로가 연이어 인기몰이를 했다. 출연자의 어두운 이력까지 낱낱이 파헤치는 무릎팍도사는 1990년대 KBS ‘자니윤 쇼’, SBS ‘이홍렬 쇼’ 이후 침체된 1인 게스트 토크쇼의 부활을 이끌었다고 평가 받았다.
무한도전·무릎팍도사의 아이디어는 어디서 나왔나.
“대중이 원하는 걸 했을 뿐이다. 무한도전은 경제적으로 낙오한 사람들에게 위안거리를 줘야 한다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애초 컨셉트가 비주류·B급·2류들의 무모한 도전 아닌가. 지금은 일류가 됐지만 ‘2류 정신’은 잃지 않았다. 무릎팍도사는 출연자나 제작자가 원하는 형식적인 질문이 아니라 시청자가 궁금해하는 질문을 던져보고 싶어 기획했다.”
라디오스타의 김구라, 무한도전의 유재석, 무릎팍도사의 강호동을 모두 키운 셈 아닌가.
“연출자가 스타를 키웠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다만 먼저 알아본 건 맞다. 원석을 다이아몬드로 만든 것이 아니라 다이아몬드를 발견하고 세상에 알린 거다.”
히트 예능 프로그램 뒤엔 여운혁이 있다는데.
“연출자가 유명하면 언론이나 대중에 알릴 때 좀 더 쉬운 면은 있다. 하지만 연출자 능력은 크게 차이가 없다. 가령 스마트폰에서 삼성이나 LG의 기술적 차이가 엄청 크진 않을 거다. 그런데 더 많이 알려진 브랜드가 주목받는다. 나 역시 언론에 자주 등장하다 보니 그런 것 같다. 그래서 더 긴장한다.”
원래 예능 PD가 되고 싶었나.
“그렇진 않다. 대학입학 학력고사 점수가 전공을 결정하던 세대다.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했으니까 이왕이면 방송국에 입사하고 싶었다. 방송국에서 뭘 할까 고민하다 예능이 오래 갈 것 같아서…(웃음).”
그는 20년 동안 일한 MBC를 2011년 떠나 JTBC로 이적했다. ‘썰전’을 포함해 ‘남자의 그 물건’ ‘김국진의 현장박치기’ 신‘ 의 한 수’ ‘히든싱어’ ‘닥터의 승부’ 6개 프로를 맡고 있다.
JTBC로 옮길 때 부담이 컸을 것 같다.
“당연히 부담스러웠다. 아티스트가 아닌 월급쟁이 아닌가. 중간관리직으로서 받는 스트레스가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 직장인이라면 다 비슷하지 않나.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가는 게 인생이다. 겁이 없는 편이다. 새로운 기획을 할 때 ‘이거 안 되면 어떡하지’라고 생각해 본적이 없다. 야구에서 10번 중에 3번 잘 치면 잘 치는 타자다. 10년 동안 3할 대 치면 대단한 거다. 나머지 7번 실패가 두렵다고 타석에 서지 않을 건가.”
연출자로서 생각하는 리더의 역할은 뭔가.
“다들 자발적으로 열심히 하면 그게 제일 좋은 리더십 아닌가. 나는 그냥 가만히 있는다. 주도면밀하게 계획을 세우거나 계산하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주어진 상황에서 후배들이 옳은 판단을 할 수 있을까 그 생각만한다. 둘이 있을 때 말을 제일 잘한다. 1대1 커뮤니케이션에 강하지만 리더십이 뛰어난 것 같진 않다(웃음).”
MBC ‘이문세의 오아시스’ ‘일밤-생태보고서 대망’은 아쉬움이 남는 프로이다. 두 프로는 각각 7·4회 만에 막을 내렸다. JTBC ‘신동엽 김병만의 개구쟁이’ 역시 6개월을 못 채우고 조기종영 됐다.
실패에 대처하는 방법이 있나.
“평상심을 지키는 것? 상처받을 것 같아 댓글은 잘 안본다. ‘여유 있게 살자’가 삶의 철학이다. 시청률이 높게 나오지 않아도 열심히 한 프로는 배울 게 있다. 가령 이문세의 오아시스가 있었기에 무릎팍도사를 기획할 수 있었다.”
그는 시청률 지상주의자가 아니라고 하면서도 피드백은 시청률밖에 없는 것 같다며 종합편성채널(종편)의 미래를 말했다. “잘 될 거예요. 지상파 시청률이 1년 만에 절반으로 떨어졌어요. 체감 시청률 격차가 10~15배에서 2~3배로 확 줄었습니다. 최근 지상파 오후 11시대 프로 시청률이 1.5~2%씩 하락한 데는 분명 종편의 영향이 있습니다. 이 추세라면 2~3년 후 비슷하게 경쟁할 수 있어요. 특히 밤 시간대는 해볼 만합니다. 지상파 프로와 굳이 차별화하기보다 새롭고 재미있게 만들면 된다고 생각해요.”
예능 PD로서 사람들에게 무엇을 주고 싶나.
“TV는 돈 많고, 학벌 좋고, 권력 있는 사람보다 가난하고 현실에서 낙오된 사람들이 많이 본다. 이들이 차 한잔 하고 떡볶이 먹으며 수다 떨 때 느끼는 여유를 주고 싶다. 예능은 많은 의미를 담으려 하면 안 된다. 예능프로를 보면서 잠깐 쉬어갈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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