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의 달인들③ - 매화가 꽃만 피우나 건강도 피우지
건강의 달인들③ - 매화가 꽃만 피우나 건강도 피우지
홍쌍리 식품명인의 매실은 육류로 산성화된 산성 체질 개선 효과 뛰어나…관련 제품 해외에서도 인기
3월 22일 홍쌍리 청매실농원을 찾았다. 광양국제매화문화축제를 하루 앞둔 광양 일대엔 매화를 즐기려는 상춘객으로 붐볐다.
눈부신 매화군락은 한눈에 들어오지 않을 만큼 산등성을 굽이굽이 넘어 눈부시게 펼쳐진다.
밤나무가 지천인 악산을 매화골로 바꾼 사람이 바로 홍 명인이다. 1965년 23세 처녀가 산골로 시집와 반세기 가까운 세월을 묻은 곳이다. 돌산을 꽃동산으로 만들었으니 상전벽해가 따로 없다.
인적 드문 산골, 그의 대화 상대는 자연이었다. 시집 온 이듬해였을까. 양지 바른쪽에 물동이를 내려놓고 쉬고 있었다.
웬지 모를 눈물이 흘렀다. 그때 막 꽃을 터뜨린 매화 몇송이가 속삭이듯 말을 걸어왔다. “엄마 울지마. 나랑 같이 살아.” 그는 다짐했다.
“그래, 외로운 산골을 매화 천국으로 만들면 자연히 사람들이 몰려올 거야”라고. 그해 6월 여름, 매화와의 또 다른 운명 같은 만남이 찾아온다.
“시어머니와 콩밭을 매는데, 콩밭 고랑이 눈물 고랑이라. 너무 힘들어 쉬고 있는데 밭고랑으로 매실 몇 개가 눈에 들어오는 기라.” 대충 흙만 털어내고 씹어 먹었다. 속이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변변한 소화제 하나 없던 시절 무릎을 쳤다. 매실 효능을 몸소 겪은 첫 번째 체험이었다.
매실에는 수많은 효능이 있다. 그중 하나가 위장 운동을 돕는다. 신맛이 소화액을 촉진시키고 위산을 조절한다. 매실을 장복하면 위장 뿐 아니라 설사와 변비 등 대장질환을 다스린다. 매화나무를 본격적으로 심기 시작했다.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당시 매실은 땅에 굴러다녀도 거들떠보지 않던 시절이었다.
젊은 며느리와 시아버지의 ‘전쟁’이 시작됐다. 그도 그럴 것이 유일한 생계 수단인 밤나무를 베고 매화나무를 심었으니 시아버지고 김오천 옹 눈에 불을 당긴 것은 당연했다. “꽃이 밥 먹여주나!” 몽둥이만 안 들었지 시아버지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다. “아버님 바짓가랑이 붙들고, 안하겠다고 싹싹 빌다가도 돌아서면 매화나무를 심었지요.”
그렇게 살얼음 같던 시집살이 11년째, 그날을 잊지 못한다. “부산 대선소주에서 홍실주를 만든다고 우리 매실을 사갔어요. 137만원이란 돈을 처음 만졌지요.” 시아버지와의 게임은 이렇게 며느리의 완승으로 끝난다. 김 옹이 “이제부터는 네가 해보라”며 며느리에게 ‘곳간 열쇠’를 맡겼다.
매화나무와 더불어 산 48년. 홍 명인의 등은 굽고, 손은 쇠스랑처럼 투박하다. 굽은 등은 매실을 따다 나무에서 수없이 떨어진 탓(압박골절로 추정)이고, 마디 굵은 거친 손은 지금도 호미를 놓지 않은 근면의 상징이다.
매실은 16만5290㎡(약 5만 평) 백운산 산자락을 흐드러지게 수놓고, 6월께면 100여t의 청매실을 쏟아낸다. 작년 매출은 43억원. 규모면에서 기업에 견줄 바 아니지만 단일 농가 소득으로 보면 엄청나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가치는 어떤가. 이곳은 광양 일대 매화마을의 발원지다. 마을주민은 매실의 식용·약용 가치가 조명 받자 빈터마다 매화나무를 심었다. 농가의 주요 소득원이 됐다. 1997년엔 광양매화축제가 시작됐다. 매년 100만~150만 명이 다녀간다. 관광 효과는 인근 하동과 구례 일대로 이어진다.
매실은 수출 품목이기도 하다. 홍쌍리 청매실농원에서만 미국·캐나다·호주 등지에 매년 50만~60만 달러의 매실 가공품을 판다. 2008년엔 100만 달러 수출탑도 받았다. 홍쌍리청매실 농원의 상징은 2000여 개 항아리가 즐비한 장독대다. 매실 된장·고추장·장아찌 등 갖가지 장류가 무르익는다. 그가 만든 매실 상품은 원액·장아찌·매실환·매실 차 등 30여 종. 모두 손수 연구하고 맛을 보며 개발했다.
“2등을 하면 국가의 미래가 없지요. 누군가에게 배우면 2등 밖에 더하겠어요.” 최고의 독창성은 최고의 경쟁력이라는 것이 홍명인의 경영철학이다. 그중에서도 홍 명인이 ‘약’이라고까지 강조하며 내세우는 것이 매실 농축액이다. 매실 35㎏에서 씨를 발라내고 간 뒤 72시간을 고면 고작 300g이 나온단다.
그가 “매실이 뱃속을 청소해 준다”고 표현하듯 매실에는 다양한 효능이 있다. 우선 살균과 항균작용. 장염 비브리오균에 대한 항균 효과가 탁월해 식중독을 예방한다. 매실 농축액은 대장균과 이질균의 증식을 막는다. 위·소장·대장 운동을 활발하게 돕는다는 사실은 과학적으로 입증됐다.
매실 농축액엔 풍부한 유기산이 있다. 신진대사를 촉진하고 피로를 풀어준다. 특히 구연산과 사과산은 칼슘 흡수를 도와주므로 빈혈 여성이나 골다공증이 시작되는 갱년기 여성에게 추천한다. 매실은 대표적인 알칼리 식품이다. 육류로 산성화된 현대인의 체질 개선에 과일과는 비교할 수 없는 효능을 자랑한다.
매실 건강 효과는 홍 명인의 몸이 증명한다. 29세에 큰 병을 앓아 대수술을 받았다. 이후 “(현대인은) 암이 문제가 아니라 염증이 문제”라고 생각했다. 이를 매실로 다스릴 수 있다고 그녀는 믿는다. 30세가 지났을 때는 류마티스가 찾아왔다. 목발을 짚고 병원을 다니며 약을 먹었지만 통증 완화는 그때 뿐이었다. 약을 끊으면 통증은 되살아났고, 위는 약으로 엉망이 됐다.
그를 살린 것도 매실이었다. 쑥뜸을 뜨며 매실 농축액을 먹었다. 2년 7개월 만에 모든 병이 사라져 ‘툭툭 털고’ 일어났다. 홍 명인은 2년에 한 번꼴로 건강검진을 받는다. 의사가 “(이 연세에) 이렇게 속이 깨끗한 사람은 없다”고 할 정도로 건강하다.
“요즘도 매일 얄궂은 가방 하나 메고 산에 올라갑니더.” 가방에는 메모지·카메라·전지가위가 들어있다. 가위로 매화가지 다듬어주면 나무가 말을 건넨단다. “엄마, 나 이쁘나”하면서. 그러면 그녀는 “꽃이 이쁘면 콧노래 불러주고, 꽃반지·꽃팔찌·꽃왕관만들어주며 산다”고 했다.
꽃동산엔 매화 뿐 아니라 야생화 군락지, 그리고 구절초·맥문동 등 각종 약초가 조성돼 있다. 그녀는 하루 종일 ‘아기’들과 나눈 얘기를 메모하고 사진 찍고 집으로 돌아와 동화 같은 글을 쓴다. 홍 명인은 『밥상이 약상이라 했제』의 저자다.
돈엔 욕심을 부리지 않는 것이 좋다고 했다. “내가 돈을 벌라카면 벌써 많이 벌었다. 내는 아직 상품 가격도 모른다. 돈을 알면 욕심이 생기고 엄한 짓 한다. 직원 월급 주고 밥 먹고 살면 된다. 매실 따면서 산에서 수없이 굴러 허리가 굽었지만, 걸을 수 있는 것만도 감사하며 삽니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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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2일 홍쌍리 청매실농원을 찾았다. 광양국제매화문화축제를 하루 앞둔 광양 일대엔 매화를 즐기려는 상춘객으로 붐볐다.
눈부신 매화군락은 한눈에 들어오지 않을 만큼 산등성을 굽이굽이 넘어 눈부시게 펼쳐진다.
밤나무가 지천인 악산을 매화골로 바꾼 사람이 바로 홍 명인이다. 1965년 23세 처녀가 산골로 시집와 반세기 가까운 세월을 묻은 곳이다. 돌산을 꽃동산으로 만들었으니 상전벽해가 따로 없다.
인적 드문 산골, 그의 대화 상대는 자연이었다. 시집 온 이듬해였을까. 양지 바른쪽에 물동이를 내려놓고 쉬고 있었다.
웬지 모를 눈물이 흘렀다. 그때 막 꽃을 터뜨린 매화 몇송이가 속삭이듯 말을 걸어왔다. “엄마 울지마. 나랑 같이 살아.” 그는 다짐했다.
“그래, 외로운 산골을 매화 천국으로 만들면 자연히 사람들이 몰려올 거야”라고. 그해 6월 여름, 매화와의 또 다른 운명 같은 만남이 찾아온다.
“시어머니와 콩밭을 매는데, 콩밭 고랑이 눈물 고랑이라. 너무 힘들어 쉬고 있는데 밭고랑으로 매실 몇 개가 눈에 들어오는 기라.” 대충 흙만 털어내고 씹어 먹었다. 속이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변변한 소화제 하나 없던 시절 무릎을 쳤다. 매실 효능을 몸소 겪은 첫 번째 체험이었다.
매실에는 수많은 효능이 있다. 그중 하나가 위장 운동을 돕는다. 신맛이 소화액을 촉진시키고 위산을 조절한다. 매실을 장복하면 위장 뿐 아니라 설사와 변비 등 대장질환을 다스린다. 매화나무를 본격적으로 심기 시작했다.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당시 매실은 땅에 굴러다녀도 거들떠보지 않던 시절이었다.
젊은 며느리와 시아버지의 ‘전쟁’이 시작됐다. 그도 그럴 것이 유일한 생계 수단인 밤나무를 베고 매화나무를 심었으니 시아버지고 김오천 옹 눈에 불을 당긴 것은 당연했다. “꽃이 밥 먹여주나!” 몽둥이만 안 들었지 시아버지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다. “아버님 바짓가랑이 붙들고, 안하겠다고 싹싹 빌다가도 돌아서면 매화나무를 심었지요.”
그렇게 살얼음 같던 시집살이 11년째, 그날을 잊지 못한다. “부산 대선소주에서 홍실주를 만든다고 우리 매실을 사갔어요. 137만원이란 돈을 처음 만졌지요.” 시아버지와의 게임은 이렇게 며느리의 완승으로 끝난다. 김 옹이 “이제부터는 네가 해보라”며 며느리에게 ‘곳간 열쇠’를 맡겼다.
매화나무와 더불어 산 48년. 홍 명인의 등은 굽고, 손은 쇠스랑처럼 투박하다. 굽은 등은 매실을 따다 나무에서 수없이 떨어진 탓(압박골절로 추정)이고, 마디 굵은 거친 손은 지금도 호미를 놓지 않은 근면의 상징이다.
매실은 16만5290㎡(약 5만 평) 백운산 산자락을 흐드러지게 수놓고, 6월께면 100여t의 청매실을 쏟아낸다. 작년 매출은 43억원. 규모면에서 기업에 견줄 바 아니지만 단일 농가 소득으로 보면 엄청나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가치는 어떤가. 이곳은 광양 일대 매화마을의 발원지다. 마을주민은 매실의 식용·약용 가치가 조명 받자 빈터마다 매화나무를 심었다. 농가의 주요 소득원이 됐다. 1997년엔 광양매화축제가 시작됐다. 매년 100만~150만 명이 다녀간다. 관광 효과는 인근 하동과 구례 일대로 이어진다.
매실은 수출 품목이기도 하다. 홍쌍리 청매실농원에서만 미국·캐나다·호주 등지에 매년 50만~60만 달러의 매실 가공품을 판다. 2008년엔 100만 달러 수출탑도 받았다. 홍쌍리청매실 농원의 상징은 2000여 개 항아리가 즐비한 장독대다. 매실 된장·고추장·장아찌 등 갖가지 장류가 무르익는다. 그가 만든 매실 상품은 원액·장아찌·매실환·매실 차 등 30여 종. 모두 손수 연구하고 맛을 보며 개발했다.
“2등을 하면 국가의 미래가 없지요. 누군가에게 배우면 2등 밖에 더하겠어요.” 최고의 독창성은 최고의 경쟁력이라는 것이 홍명인의 경영철학이다. 그중에서도 홍 명인이 ‘약’이라고까지 강조하며 내세우는 것이 매실 농축액이다. 매실 35㎏에서 씨를 발라내고 간 뒤 72시간을 고면 고작 300g이 나온단다.
그가 “매실이 뱃속을 청소해 준다”고 표현하듯 매실에는 다양한 효능이 있다. 우선 살균과 항균작용. 장염 비브리오균에 대한 항균 효과가 탁월해 식중독을 예방한다. 매실 농축액은 대장균과 이질균의 증식을 막는다. 위·소장·대장 운동을 활발하게 돕는다는 사실은 과학적으로 입증됐다.
매실 농축액엔 풍부한 유기산이 있다. 신진대사를 촉진하고 피로를 풀어준다. 특히 구연산과 사과산은 칼슘 흡수를 도와주므로 빈혈 여성이나 골다공증이 시작되는 갱년기 여성에게 추천한다. 매실은 대표적인 알칼리 식품이다. 육류로 산성화된 현대인의 체질 개선에 과일과는 비교할 수 없는 효능을 자랑한다.
매실 건강 효과는 홍 명인의 몸이 증명한다. 29세에 큰 병을 앓아 대수술을 받았다. 이후 “(현대인은) 암이 문제가 아니라 염증이 문제”라고 생각했다. 이를 매실로 다스릴 수 있다고 그녀는 믿는다. 30세가 지났을 때는 류마티스가 찾아왔다. 목발을 짚고 병원을 다니며 약을 먹었지만 통증 완화는 그때 뿐이었다. 약을 끊으면 통증은 되살아났고, 위는 약으로 엉망이 됐다.
그를 살린 것도 매실이었다. 쑥뜸을 뜨며 매실 농축액을 먹었다. 2년 7개월 만에 모든 병이 사라져 ‘툭툭 털고’ 일어났다. 홍 명인은 2년에 한 번꼴로 건강검진을 받는다. 의사가 “(이 연세에) 이렇게 속이 깨끗한 사람은 없다”고 할 정도로 건강하다.
“요즘도 매일 얄궂은 가방 하나 메고 산에 올라갑니더.” 가방에는 메모지·카메라·전지가위가 들어있다. 가위로 매화가지 다듬어주면 나무가 말을 건넨단다. “엄마, 나 이쁘나”하면서. 그러면 그녀는 “꽃이 이쁘면 콧노래 불러주고, 꽃반지·꽃팔찌·꽃왕관만들어주며 산다”고 했다.
꽃동산엔 매화 뿐 아니라 야생화 군락지, 그리고 구절초·맥문동 등 각종 약초가 조성돼 있다. 그녀는 하루 종일 ‘아기’들과 나눈 얘기를 메모하고 사진 찍고 집으로 돌아와 동화 같은 글을 쓴다. 홍 명인은 『밥상이 약상이라 했제』의 저자다.
돈엔 욕심을 부리지 않는 것이 좋다고 했다. “내가 돈을 벌라카면 벌써 많이 벌었다. 내는 아직 상품 가격도 모른다. 돈을 알면 욕심이 생기고 엄한 짓 한다. 직원 월급 주고 밥 먹고 살면 된다. 매실 따면서 산에서 수없이 굴러 허리가 굽었지만, 걸을 수 있는 것만도 감사하며 삽니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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