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e diagnosis - 유전자 진단의 윤리학
gene diagnosis - 유전자 진단의 윤리학
캐런 크레이머는 가슴을 보여주려고 셔츠를 들어올린 적이 너무도 많아 이젠 몇 번이나 그랬는지조차 잊어버렸다. 열두어 번? 수
십 번? 아니면 백 번쯤?
그날도 그녀는 BRCA 유전자 돌연변이를 가진 여성들과 만나고 있었다. 그중 일부는 예방적 유방절제술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겁에 질려 있었다. 크레이머는 2009년 자신도 그 수술을 받았기 때문에 그 두려움을 잘 알고 있었다. “두 여성이 너무도 무서워했다”고 크레이머가 말했다. “그래서 셔츠를 벗어 그들에게 가슴을 보여주었다.”
지난 5월 앤절리나 졸리가 유방암 위험이 있는 유전자 때문에 양측 유방절제술을 받았다고 밝힌 후 FORCE에는 조언을 구하려는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수 프리드먼 FORCE 사무국장은 “상담전화가 서너 배 늘었다”고 말했다. 그로써 유방암이 새로운 관심을 받게 됐지만 졸리의 이야기에서 핵심은 유전자 검사다.
사실 유전자 문제는 우리 사회에 훨씬 널리 영향을 미친다. 물론 그녀의 유명했던 풍만한 가슴 때문에 유전자 검사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많은 사람을 떨게 만든다는 사실이 뒷전으로 밀릴지 모른다. 그러나 크레이머가 병원 화장실에서 위로하려고 했던 그 겁에 질린 여성들처럼 심한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이 많다.
유전자 과학의 발전으로 이제는 암부터 알츠하이머, 당뇨까지 수많은 질병에 걸릴 위험을 우리가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알게 됐다. 정확히는 모른다고 해도 적어도 유전자 검사를 선택할 수 있는 여건은 갖춰졌다.
겉으로는 좋은 현상으로 보인다. 실제로도 여러 면에서 좋은 소식이다. 그러나 ‘아는 것이 힘’이긴 하지만 유전자 검사는 실제적으로, 또 심리적으로 아주 좋지 않은 결과도 수반한다. 의학이 아직 다룰 준비가 되지 않은 문제들이다.
물론 의학도 그에 적응하려고 몸부림친다. 현재 미국에는 유전상담 석사과정이 30개가 넘는다. 매년 그 전부가 인원이 꽉 찬다. 전화와 인터넷 상담 서비스도 많이 생겨났다. 유전상담 서비스 업체와 계약하는 건강보험회사도 늘어간다.
그러나 미국의 의학 시스템은 여전히 현실 따라잡기에 급급하다. 미 국립보건원(NIH) 인간유전체연구소의 로렌스 브로디는 “누구든 유전자 검사를 받을 수는 있지만 검사 결과를 해석하고 정확히 전달할 능력을 갖춘 사람은 아직 소수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가능한 유전자 검사는 지난 20년 동안 몇 백 가지에서 거의 3000가지로 크게 늘었다. 레베카 나지 미 국립유전연구기관(NSGC) 대표는 15년 전 이 분야에 처음 발을 들여놓았을 때만해도 BRCA 검사 결과를 얻으려면 1년은 족히 걸렸다고 말했다. 지금은 1~2주면 결과가 나온다.
브로디는 검사 비용이 낮아지면서 의학이 “수많은 검사를 동시에 실시하는 다중 테스팅”으로 옮겨가고 있다고 말했다. 한 사람의 전체 엑솜 분석에 약 1000달러면 충분한 시점에 도달했다는 설명이다. 엑솜(exome)이란 전체 유전체 중 단백질 합성에 직접 관여하는 의미 있는 염기서열(exon)의 집합체를 말한다.
“과거엔 누군가의 전체 유전체 분석을 하는 게 아주 기이한 일로 간주됐다. 작은 나라 여럿의 GDP를 합친 것과 같은 비용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MRI를 찍는 데 드는 비용 정도면 충분하다. 그래서 그런 검사가 유용할 수 있는 상황이 됐다.”
그러나 예를 들어 어느 환자는 전립선에 의문을 갖고 엑솜 분석을 의뢰했다가 혈전부터 신장병까지 모든 질병의 위험이 높다는 것을 보여주는 보고서를 받아들게 될지 모른다. 그런 데이터를 ‘부수적 발견(incidental findings)’이라고 한다. 나지는 현재 유전자 검사 분야에서 급속히 번지는 윤리 논쟁의 핵심이 바로 그것이라고 말했다.
“발견된 여러 가지 위험 중 어떤 것을 알려주고 어떤 것을 알려주지 말아야 하나? 환자에게 그 선택권을 줘야 하나?” 그런 논란에서 자주 인용되는 사례가 있다. 발달장애의 원인을 찾으려고 아이의 엑솜을 분석했는데 그 아이에게서 BRCA1 유전자 돌연변이가 발견되면 어떻게 해야 할까? 검사기관이 그 정보를 제공하지 말아야 할까? 소아과의사는 어떻게 해야 하나?
나지는 “유전자 검사의 기본 개념은 환자에게 자율권을 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알고 싶은 것과 알고 싶지 않은 것을 선택할 권리를 말한다. 그러나 지난 3월 미국 의료유전학·유전체학회(ACMG)는 특정 불량 유전자의 경우 의사는 발견된 위험을 환자에게 알려야 할 도의적 의무가 있다고 선언했다. 이런 ‘경고 의무’와 환자 개인의 자율권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일만해도 무척 어렵다.
게다가 상황을 더 복잡하게 만드는 다른 요인도 있다. 가족의 다른 구성원에게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는 질병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나? 법원도 이미 이 논쟁에 휘말렸다. 또 앞으로 나타날 수 있지만 아직 올바로 이해되지 못하는 유전자 돌연변이는 어떻게 해야 하나? “사람들이 받아들일 준비가 된 것보다 문제가 훨씬 더 많다”고 브로디가 말했다. “검사 결과도 예상보다 더 불확실할수 있다.” 의사도 환자도 마찬가지다. “의사가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른다’고 쉽게 말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다.”
이런 딜레마 때문에 대다수 의사는 매우 혼란스러워 한다. 지난 2월 NSGC의 유전상담 저널에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대학병원 두 곳에서 설문조사에 응한 내과 전문의 220명 중 73.7%는 자신이 가진 유전학 지식이 “아주 또는 다소 미흡하다”고 말했다.
유전자 검사의 가이드라인에 관해서도 그렇게 응답한 비율이 87.1%였다. 대다수는 더 많은 훈련과 교육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언제 검사를 지시해야 하는지(79%), 환자에 \게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82%), 결과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77.3%), 어떻게 비밀을 유지해야 하는지(80.6%) 등이 교육이 시급한 문제로 꼽혔다.
그런 정보 과부하에 시달리는 사람이 비단의사만이 아니다. 의사를 제쳐두고 소비자가 직접 여러 유전자 지표에 관한 분석을 의뢰하는 방식이 앞으로 보편화되면 소비자도 마찬가지로 헤매게 될 것이다. 자칫하면 잘못 해석할 여지도 많다. 전문가들은 기본 수리감각의 결여가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한다. 예를 들어 보통 사람이 특정 질병에 걸릴 확률이 0.25%라면 그 질병에 걸릴 위험이 50% 더 높다는 결과는 크게 우려할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친자 확인이나 범죄 수사의 DNA 분석에서 사람들이 기대하듯이 유전자 검사에서도 확실한 가부 답변이 나온다는 잘못된 인식도 문제다. 존스홉킨스 병원에서 유방암·난소암 고위험 환자들의 예방 서비스 프로그램을 이끄는 칼라 비스바나단은 환자 개인 또는 가족 전체의 BRCA 유전자 돌연변이 검사에서 음성으로 나왔다고 해서 유전자 풀에서 별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뜻은 결코 아니라고 설명했다.
역으로 결과가 양성으로 나왔다고 해서 그 환자나 가족이 해당 질병에 반드시 걸린다는 의미도 아니다. 비스바나단은 “유전자 검사 결과는 그림맞추기의 한 조각일 뿐”이라고 말했다. “실제 질병에 걸리는 것과 질병에 걸릴 위험이 있다는 것이 완전히 별개의 개념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은 잘 모른다.”
사회복지사인 케이티 베리는 이런 의학적 풍토에서 제기되는 갖가지 고민과 골치 아픈 문제를 직접 목격한다. 베리는 뉴욕 컬럼비아 장로교 병원을 통해 헌팅턴병에 걸릴 위험이 높은 사람들에게 상담 서비스를 제공한다. 헌팅턴병은 유전되는 퇴행성 신경질환이다. 주로 중년에 신체, 인식, 정신의 퇴행이 복합적으로 나타난다. 헌팅턴병 유전자를 가진 사람은 일생의 어느 순간 그 병에 걸릴 가능성이 크다. 치료책이 없고, 유방암과 달리 예방적 조치를 취할 수도 없다. 발병을 늦추기 위해 전반적인 건강 상태를 최고로 유지하는 방법 뿐이다.
베리는 아직 그런 증상을 보이지 않는 사람들만 상담한다. 일부는 이미 유전자 검사를 한 사람들이다. 나머지는 헌팅턴병 가족력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검사를 받아야 할지, 또 언제 받아야 할지 고민하는 사람들이다. ‘언제’라는 타이밍은 여러 유전자 표지와 관련된 문제다. 나이에 따라 위험이 높아지는 정도와 의학적 개입 가능성 같은 요인들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비스바나단은 “특정 질병에 걸릴 위험은 세월이 흐르면서 변한다”고 말했다. “움직이는 표적과 같다.”
예를 들어 난소암의 경우 많은 젊은 여성은 난소적출술을 미루거나 아예 하지 않을 때 따르는 위험과 자녀를 갖고 싶은 욕구 중 어느 것이 중요한지 잘 따져봐야 한다. 자녀를 가질 생각이 없는 사람들의 경우도 고려해야 할 호르몬적, 성적 영향은 나이에 따라 다르다.
헌팅턴병은 예방적 조치가 없기 때문에 언제 검사를 받느냐는 문제는 결혼이나 자녀 갖기에 관한 임박한 결정에 의해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 베리에게 상담을 받는 환자 대다수는 30대와 40대 초반이다. “10대와 20대 초반에는 이런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고 베리는 설명했다.
“성년의 초기에는 발병 위험을 부정하려는 생각이 강하다.” 그러나 짝을 짓고 정착하기 시작하면 자신에게 그런 유전자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데 따르는 위험이 더 커진다. 헌팅턴병 유전자를 가진 사람은 자녀에게 그 유전자를 물려줄 확률이 50%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다모 클레스의 칼이 머리 위에 위태롭게 매달려 있다는 사실을 잘 안다”고 베리는 말했다.
그러나 검사하기 전에는 자신이 그 유전자 총알을 용케 피했을지 모른다는 희망에 매달린다. “그들은 ‘난 그 병에 안 걸릴 수 있어. 지금처럼 계속 삶을 즐길 수 있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검사 결과를 알고 나면 현실이 완전히 달라진다.”
자신의 유전체에 언젠가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 들어 있다는 소식은 몹시 고통스러운 심리적 장애들을 만들어낸다. 그 소식을 가족에게 전하는 일이 그 과정에서 특히 어려운 부분이다. 가족의 가슴을 아프게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가족 중 한 명이 특정유전자 변이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그의 형제, 자매, 자녀, 부모는 갑자기 자신들의 유전자에 관해 불안한 의문을 갖게 된다.
많은 사람이 외면하고 싶어하는 의문이다. 그런 사실을 공유하는데 도움을 주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병원이 늘어나고 있다. 비스바나단의 병원은 환자들에게 가족을 동반하고 와서 상담을 받도록 배려한다. “그 부담의 일부를 우리가 떠안으려고 한다”고 그녀는 말했다. 조지타운대, 펜실베이니아대의 병원은 가족에게 그 소식을 전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편지 기본양식을 제공한다.
자신의 등 뒤에 숨어 있는 유전자 유령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장기적인 어려움도 있다. 그런 불안이 주체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고 베리는 말했다. “사람들은 종종 그런 끔찍한 시간을 보내며 받는 고통을 이야기한다. 만성질환이나 치명적일 수 있는 병에 직면한 사람들은 실제로 그렇게 느낀다. 수일, 수주, 수개월, 수년 동안 자신의 몸에 과도하게 신경을 쓰며 불안에 시달린다.” 몸에서 조금이라도 씰룩거림과 찌릿함, 따끔함이 나타나면 드디어 올 게 왔다고 생각한다. 베리는 “그런 사람들은 아무런 증상이 없는 데도 자신이 그 병에 걸렸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그런 문제를 다루려면 의학계는 의대 교과과정을 바꾸고 평생교육에 투자해야 한다. 나지는 “개업한 의사들을 찾아가 환자들에게 언제 유전상담을 권해야 하는지 교육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또 비스바나단은 일반 대중이 자신의 건강을 더 잘 관리하기 위해 유전학 기초를 이해할 필요성을 갈수록 더 많이 느낀다는 점을 지적했다.
“건강의 유전적 측면이 교육과정에 포함돼야 한다. 어린 나이에 그런 교육을 하면 도움이 된다.” 실제로 그런 교육이 언제 어디서 이뤄져야 하는지 이미 논의가 되고 있다. 나지는 “지난해 보스턴의 학술대회에 참석했는데 사람들은 초등학생에게 그런 교육을 하는 문제를 이야기했다”고 말했다.
서로 비슷한 불안을 가진 사람들을 연결시켜주는 기관도 더 많아져야 한다. 베리는 두려움, 의학적 특이성, 해당 질병에 관한 용어를 이해하는 사람들과 어울려 서로 도움을 주고 받으면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난다고 말했다. “자기 혼자만 그런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기만 해도 상당한 도움이 된다.” 정기적으로 만나 심정을 토로하는 기회를 가져도 큰 위안이 된다.
“모든 걱정을 모아 두었다가 한두 시간 안에 쏟아낼 수 있기 때문에 환자들은 그런 상조단체를 좋아한다. 그러면 그 달의 나머지 날에는 그런 생각을 많이 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불안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고 베리가 덧붙였다. “불안은 언제나 존재하며 늘 신경쓰이게 만든다.”
아는 것, 즉 지식이 힘이지만 미리 자신의 미래를 아는 데는 그런 부담이 따른다. 앞으로 갈수록 더 많은 사람이 짊어져야 할 부담이다. 이제 의학계도 우리의 그런 부담을 덜어줄 방법을 찾고 있다. “그런 게 의학계로서는 약간 생소한 패러다임”이라고 브로디가 말했다. “그래서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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