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irement - 장수시대 공생법 교‘ 육비 공동 부담’
Retirement - 장수시대 공생법 교‘ 육비 공동 부담’
한국 부모의 어깨는 천근만근이다. 금전 부담 탓이다. 천문학적인 양육비와 교육비 탓에 결혼과 출산마저 미루고 포기할 정도다. 최근엔 자녀 혼인비용, 신혼집 마련까지 부모 부담으로 전가됐다. 웬만한 부모는 감당하기 어렵다. 주머니 사정은 뻔한데 노후 준비에 쓰느냐 자녀에게 쓰느냐 딜레마에 빠지기 일쑤다.
이럴 때 대개의 부모는 자식을 위해 돈을 쓴다. 그러니 꽤 벌어놔도 노후자금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자녀 출가 후 남는 건 대개 ‘빈손’뿐이다. 빈곤 노인이 양산되는 한 요인이다. 자녀를 위한 비용 지출은 유독 한국이 심하다. 대학 졸업, 사회 진출, 출가 후 독립 때까지 부모의 지원을 당연하게 여긴다. 다른 선진국에선 이런 행태를 이해하기 어렵다.
일본만 해도 고교 졸업으로 부모의 역할이 끝난다. 그러니 자녀 1인당 비용은 한국이 가장 많다. 대학 졸업까지 양육비는 1명당 국내총생산(GDP)의 9배에 달한다. 미국의 5배다. 특이하게도 자녀의 결혼 자금을 부모가 부담하는 걸 부모(14%)보다 자녀(21%)가 더 당연하게 여긴다(한국보건사회연구원). 수명 100세 시대, 암울한 부모의 현실이다.
돈을 모으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자녀 교육, 내 집 마련, 노후 대비다. 이 3대 자금 용처는 하나같이 목돈이란 점에서 부담이 크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적극적으로 자산을 운용할 수밖에 없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대부분 일본 가계는 이들 3대 목돈 압박에 허리가 휜다. 더구나 날이 갈수록 비빌 언덕조차 사라지는 추세다. 종신고용과 연공서열이 엄격하게 적용되던 예전엔 기업이 알아서 3대 목돈 압력을 해결해줬다. 사택을 제공하고 교육자금을 지원했다. 정년이 되면 엄청난 퇴직금을 안겨줬다.
고교 졸업으로 부모 역할 끝나이젠 기업이 간접적인 사회보장을 책임져온 기업복지가 무너졌다. ‘경기 침체→실적 하락→고용 잉여→인원 정리(급여 감소)→실업 증가’의 악순환 탓에 일본식 고용 관행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대신 예전엔 상상도 못한 해고 공포가 부각 중이다. 3대 자금 용처의 해결 주체는 기업에서 개인으로 이전됐다. 그 와중에 자산운용 환경은 더 열악해졌다. 모으고 싶어도 월급이 줄고, 불리고 싶어도 현실은 제로금리다. 평균 수명 83세(2010년)의 ‘장수대국’이 한편에선 ‘노인 지옥’으로 묘사된다.
그나마 일본의 노후 대비는 한국보다 상황이 낫다. 무엇보다 부자 노인이 많다. 일본적 고용관행과 고도성장의 과실을 집중적으로 맛본 덕이다. 단카이(團塊) 이후 세대가 선두 주자다. 실제 일본 가계 금융자산 중 60%를 65세 이상이 보유하고 있다(2012년). 고령자 개별 세대 평균 자산도 5679만엔이다(2004년). 금융자산(2179만엔)과 실물자산(3709만엔)의 합계다. 은퇴 후에도 수입이 있다. 상당수가 각종 연금 형태로 생활비를 벌충한다.
표준적인 노인 가구인 부부·무직 세대의 월 평균 연금수입은 21만엔대다. 지출은 월 25만엔대다. 수입보다 지출이 많아 적자지만 보유자산을 감안하면 큰 걱정 없다. 소비자물가, 공적연금액, 금리 변화가 없다고 가정하면 보유자산만 헐어도 생활비 적자를 30~40년 이상 감당할 수 있다.
65세 기준 평균 여명이 남성 19세, 여성 24세라니 노후자금 염려는 사실상 없다. 그나마 금융자산만 계산했다. 주택·토지 등 거액의 실물자산은 빠졌다. 평균치에 함몰된 감춰진 빈곤 노인이 많지만 ‘일본 노인=부자’ 등식에 이견은 없다.
한국에선 골칫거리인 자녀 교육비도 생각보다 부담스럽지 않다. 물론 높은 교육열을 감안할 때 지출 수준은 녹록하지 않다. 저출산으로 학생 인구가 줄었지만 진학률 상승 등으로 교육비 부담은 여전하다. 불황으로 소득이 줄자 다른 소비항목을 줄여 교육비로 벌충하는 경향도 강하다.
여유로운 가정이 선택한다는 사립대만 해도 신입생 4명 중 1명이 교육비를 빌린다(2006년 노무라자본시장연구소). 『아동빈곤백서(2009)』에 따르면 자녀 1인당 평균 교육비는 최저(공립 위주) 977만엔에서 최대(사립 의대) 4327만엔에 달한다. 가계 지출 중 교육비 비율은 2008년 평균 33%다.
그러니 교육비 대출을 활용하는 가정이 적잖다. 금융회사도 교육 관련 대출상품을 운영하고 있다. 대출 대상은 수입 능력이 있는 학부모로 부모가 자녀를 위해 빌리는 게 전제다. 학생 본인이 융자 주체인 미국과 다르다. 학생 본인을 위한 장학금(일본학생지원기구)도 있지만 실제론 대출 상품이다. 교육비 대출 상품은 과거 10년에 걸쳐 10배 이상 이용률이 늘었다.
그럼에도 일본 가계의 교육비 압박이 상대적으로 작다고 보는 주요 근거는 다양한 경감 수단 때문이다. 대표적인 게 일찍부터 조성된 자녀의 독립 의식이다. 일본의 경우 20대 초반부터 독립 생활이 보편적이다. 경제적 무능력으로 부모에 얹혀사는 일본판 캥거루족 ‘패러사이트 싱글’이 없진 않지만 일부에 불과하다. 대부분 대학 입학 혹은 사회 진출과 함께 독립하는 게 일반적이다.
때문에 대학생을 비롯해 일본의 20대에게 아르바이트는 상식이다. 학생 전업인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학업과 부업을 병행한다. 교육비와 생활비를 스스로 번다. 대학가를 필두로 번화가·역세권에 아르바이트 정보만 취급하는 전문 잡지가 수두룩하다.
『타운워크』라 불리는 무료 정보지는 인기 절정이다. 조건별 검색이 쉽고 정보량이 방대하다. 시급은 대부분 1000엔 안팎이다. 시간 선택은 다양한데 일주일 중 하루만, 그것도 서너 시간 일하는 일자리부터 힘들어도 월 30만엔 이상 버는 아르바이트까지 다양하다.
대학생 절반 이상이 저축자녀의 자립 정신은 대학생 평균 수입을 보면 단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교육회사인 베네세교육연구개발센터의 대학생 실태조사(2008년)에 따르면 63.7%가 아르바이트 중이다. 주당 평균 2.9일 일하며 근무 시간은 14.3시간이다. 한달 평균 수입은 8만4000엔인데 자택 거주자(6만5000엔)가 자취 생활자(11만3000엔)의 절반 정도다. 또 다른 조사결과도 비슷하다. 이요긴지역경제연구센터의 실태조사(2010년)를 보면 대학생 월 평균 수입은 9만1000엔 정도다.
자취생활자(11만1000엔)가 자택 거주자(6만8000엔)보다 많은데 그만큼 경제적 독립 의지·압박이 크기 때문이다. 자택 통학자의 주요 수입은 아르바이트(5만엔), 장학금(1만2000엔), 부모 용돈(4000엔) 등이다. 용돈을 받는 경우는 4명 중 1명뿐이다.
독립생활이면 아르바이트, 부모 용돈을 각각 3만6000엔 받으며 장학금(3만4000엔)이 일부를 차지한다. 이들의 평균적인 저축 의지도 높다. 매월 저축 여부를 보면 자택 거주자 63.7%, 자취 생활자 43.9%로 절반 이상의 대학생이 저축 중으로 집계됐다.
결국 일본 부모는 자녀 교육비에 대한 부담에서 한국보다 빨리 벗어난다는 얘기다. 설사 학비·용돈을 비롯해 대학까지 원조한다 해도 금액 압박은 상대적으로 적다. 자녀 스스로 경제활동으로 일정 부분 벌충하려는 환경이 일찍부터 조성되서다.
부모와 자녀의 공동 대응인 셈이다. 최근엔 취직활동을 의식해 아르바이트에 적극적인 20대도 늘어났다. 어떤 이유든 자녀의 이른 독립은 부모의 부담을 덜어준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교육 자금의 공동 부담은 한국 가계가 배울 만한 포인트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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