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새 쫓아가다 가랑이 찢어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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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일자리 창출의 모델로 주목 받는다. 시간제 일자리를 늘려 단기간에 용률을 확 끌어올린 네덜란드 ‘폴더 모델(Polder model)’을 벤치마킹 하겠다는 게 정부 복안이다. 근혜정부의 고용률 70% 목표에 매달리는 공무원들은 요즘 네덜란드 공부에 한창이다. 모델이 한국에서도 통할까. ‘기적’ ‘신화’로 불리는 네덜란드 일자리 정책의 이면과 리나라 시간제 일자리의 실태를 알아본다.
영국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83년 전 쓴 글에서 “100년 후에는 대부분의 사람이 일주일에 15시간씩 일하면서 가를 누리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예언은 빗나갈 가능성이 크지만 이에 가장 근접한 나라가 있다. 네덜란드다.
네덜란드의 노동 시간은 2010년 기준 주당 33시간. 연간으로 따지면 1381시간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보다330시간 짧다. 우리나라보다는 무려 800여 시간 덜 일한다. 하지만 평균 임금은 4만5600달러로 한국보다 1만2000달러 정도 많다. 고용률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케인즈의 빗나간 예언정부가 이런 네덜란드를 본보기로 삼았다. 파트타임(시간제) 일자리를 늘려 단기간에 고용률을 높인 네덜란드 모델을 벤치마킹 하겠다는 것이다. 목표는 5년 내 고용률 70% 달성이다. 네덜란드는 노무현·이명박 정부 때도 일자리 정책 모델로 거론된 적이 있다. 왜 네덜란드인가. 네덜란드의 기적 또는 신화를 설명하는 이야기는 대략 이렇다.
‘1980년 초 네덜란드의 고용률은 50% 밑으로 추락할 위기에 처했다. 1982년 실업률은 11.6%, 1984년엔 14%로 치솟았다. 노동시장에서 퇴출당해 실업 통계에 잡히지 않은 사람까지 포함하면 실질 실업률은 27%에 달했다. 외신들은 ‘네덜란드 병’이라는 조어를 만들어 조롱했다.
이후 네덜란드 정부와 재계·노동계는 경제 체질을 바꾸기 위해 손을 잡는다. 근로자는 임금 인상 요구를 하지 않고, 기업은 해고를 쉽게 하는 대신 근로시간을 단축해 일자리를 나누는 대타협을 이룬 것이다. 그 유명한 ‘바세나르 협약’이다. 이른바 ‘폴더 모델(Polde Model)’로도 불리는 네덜란드의 사회적 대타협은 단기간에 성과를 냈다. 폴더는 네덜란드의 간척지를 말한다.
1990년대 중반 네덜란드는 세계에서 가장 주목 받는 나라가 됐다. 1997년 실업률은 6%대로 떨어졌다. 1990년대 연 평균 경제성장률은 2.6%로 유럽연합(EU) 평균치를 웃돌았다. 그 중심에 시간제 일자리가 있다. 지금도 네덜란드 폴더 모델은 많은 나라의 벤치마킹 대상이다.’
솔깃한 내용이다. 하지만 많은 허점과 생략이 있다. 『잡 메이킹 이코노믹스』의 저자인 신봉호 서울시립대 경제학부 교수는 “1990년대 네덜란드에서 창출된 일자리의 90%가 파트타임”이라며 “정규직 남성 노동 시간을 단축하고 여성 파트타임 근로자를 늘린 것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또한 “기존 실업자가 새로 취업한 비중은 크지 않고 정규직을 쪼개서 시간제 일자리를 여러 개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네덜란드 모델이 과대 포장 됐다는 지적은 오래 전부터 있었다. 2002년 미국 하버드대 유럽연구소에서 열린 ‘네덜란드형 노사관계의 신화와 수수께끼’라는 세미나에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대우베 베커 교수는 “네덜란드형 노사 관계는 한마디로 외국에 잘못 알려진 신화에 불과하며 이는 다른 나라의 모델이 결코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베커 교수의 설명을 요약하면 이렇다.
‘바세나르 협약을 체결한 지 10년이 지난 1990년대 중반까지 네덜란드의 실업률은 예전보다 낮아졌지만 6%대로 여전히 높았다. 경제성장률도 2~3%로 다른 유럽국가에 비해 그리 높다고 볼 수 없다. 투자·수출 지표도 실망스러운 수준이었다. 바세나르 협약에 따른 임금 상승 억제가 경제성장에 별 영향을 못 미쳤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1990년대 중반 이후 경제성장률이 상승하고 실업률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네덜란드의 기적이라는 말이 외신에 등장했다. 하지만 네덜란드 고용 증가의 대부분은 파트타임과 임시직 일자리로 이룬 것이다. 이들 파트타임 노동자 임금은 풀타임 정규직 노동자에 비해 25% 정도 낮았다. 정부가 재정적자를 우려해 최저 임금을 오래 동결시킨 때문이다.
다시 말해 1990년대 중반의 고성장은 경기 부양 효과이지 바세나르 협약 영향은 아니라는 얘기다. 실제로 2001년 네덜란드 경제 성장률은 1.3%로 떨어졌고, 이듬해에는 0.3%로까지 급락했다.
경기 침체는 2005년까지 지속되다가 2006년(3.0%) 회복되는 듯 했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다시 추락했다. 2009년에는 역대 최저치인 마이너스 3.5%를 기록했다. 최근 상황도 안좋다. 네덜란드 정부 경제정책분석국(CPB)은 올해 경제성장률이 전년 대비 1%포인트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해 경제성장률도 마이너스 1%였다. 올해 실업률 예상치는 7%다.
지난해 중순 네덜란드 중앙은행이 발표한 ‘2013~2014년 경기전망 보고서’ 내용도 비관적이다. 보고서는 내년까지 가구지출 감소세가 계속되고 가구 가처분소득은 올해 말까지 추가로 4%로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전망이 맞는다면, 네덜란드는 2001년부터 13년 연속 가계 실질소득이 전년 대비 늘지 않는다는 얘기가 된다.
경기침체로 실업자는 느는데 기업이 임금을 동결하거나 물가상승률에 미치지 못할 만큼 소폭 인상한 때문이다. 중앙은행은 ‘정부가 일자리를 창출하고 단기간 성장을 촉진할 주택시장 및 연금 관련 정책을 신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우리 정부가 네덜란드를 지속적인 일자리 창출 모델로 삼아도 되는지 의문이 들게 한다.
시간제 일자리 확대로 네덜란드의 노동생산성이 세계 최고 수준으로 높아졌다는 일부 언론의 보도도 정확하지 않다. OECD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3분기 노동생산성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0.4% 하락했다. OECD 회원국 중 한국보다 하락률이 높은 나라는 두 곳뿐이었다. 그 중 하나가 네덜란드(마이너스 0.8%)다. 국내 언론에 인용된 적이 없는 다른 OECD 보고서도 네덜란드 모델에 회의를 갖게 한다.
OECD가 2월에 작성한 ‘네덜란드 고용시장-미래를 위한 준비(The Dutch Labour Market-Preparing For The Future)’라는 보고서는 ‘네덜란드의 지나친 시간제 일자리 모델이 생산성을 떨어뜨리는 부작용을 만들었다’고 진단한다. 보고서는 네덜란드가 다른 OECD 국가보다 생산성이 떨어진 이유에 대해 ‘숙련도가 낮은(lower skilled) 인력을 많이 고용한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1990~2010년 시간당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보면 네덜란드는 연 평균 1.2%로 스페인·덴마크 등과 함께 하위권에 머물렀다.
같은 기간 2.4%로 선두권인 포르투갈·핀란드의 절반 수준이다. 미국·일본(1.8~2.0%)보다 낮다. 20년 동안 노동생산성이 경쟁국보다 떨어졌다는 의미다. 신봉호 교수는 “폴더모델은 위기극복 모델”이라며 “호황기나 글로벌 경쟁체제에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2000년 초반의 실제 실업률은 20%한때 2%대로 내려간 네덜란드 실업률이 ‘착시’라는 주장도 있다. 네덜란드에는 우리나라 실업급여와 유사한 ‘노동 장애 보험법(WAO)’이라는 제도가 있다.
노동능력이 없거나 정신적 스트레스로 인해 취업이 불가능할 때 지급된다. 한때 최장 5년까지 지급됐다가 2010년에 38개월로 단축됐다. 수당은 최저임금의 70%를 준다.
이 수당만 받아도 생활이 가능하다 보니 2000~2005년 WAO 혜택을 받은 사실상 숨은 실업자는 연간 100만명에 이르렀다. 이들을 실업자에 포함하면 당시 실업률은 20%에 이른다. 당시 네덜란드 인구는 약 1650만명, 근로가능 인구는 750만명이었다.
네덜란드의 경제·산업·정치 구조는 물론 노사 관계도 우리나라와 판이하다. 이 나라는 노사가 단체협약을 맺을 때 개별 기업과 노조가 나서지 않는다. 전국 단위 노조·기업을 대표하는 단체가 단체협약을 맺는다. 기업은 1937년 제정된 단체협약법에 따라 협약 내용을 준수해야 한다. 각 기업 노조 역시 단체협약을 따르고 협약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노동쟁의를 벌이는 일은 거의 없다. 바세나르 협약이 나올 수 있는 배경이다.
다양성과 다문화를 존중하는 전통도 무시할 수 없다. 의원내각제인 네덜란드는 다양한 이념 스펙트럼을 가진 정당이 존재한다. 좀처럼 권력이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다. 지난해 9월 치른 네덜란드 총선에서 중도우파인 자유민주당은 전체 150석 가운데 41석을 차지했다. 좌파 정당인 노동당은 39석을 확보했다.
극우 성향의 자유당은 15석, 극좌파로 분류되는 사회당은 14석을 차지했다. 이밖에 기독민주당은 13석, 친기업 성향의 D66은 3석을 차지했다. 이런 다양한 이념 스펙트럼을 지닌 정당들은 정책 차이는 있지만 연립내각을 꾸리면서 바세나르 협약의 기본 정신을 이어간다.
일과 가정에 대한 생각도 한국과 많이 다르다. 네덜란드는 일보다 가정이 먼저라는 문화가 지배적이다. 네덜란드에서 파트타임 일자리가 도입된 것은 정규직 풀타임 자리가 모자라서가 아니라, 근로자 스스로 노동시간 단축을 원한 때문이다. 바네사르 협약의 핵심은 ‘임금 억제를 통한 일자리 늘리기’다. 협약 주요 내용은 이렇다. ‘노동조합은 임금 억제에 협력하고 기업은 고용확보에 노력하고 노동 시간을 단축한다.
정부는 재정 지출를 억제하면서 감세 정책을 편다.’ 폴더 모델을 전 세계에 전파한 책 『네덜란드의 기적』에 따르면, 1983~1995년 네덜란드의 단위노동비용(임금을 노동생산성으로 나눈 값)은 늘지 않았다. 때문에 기업은 이윤을 늘릴 수 있었고, 고용을 확대할 수 있었다. 물가상승률에 맞춰 임금을 자동으로 올리는 제도가 폐지됐고 최저임금은 동결됐다. 정부는 감세와 사회보장제도 확대로 지원했다.
우리나라 노·사·정이 이 같은 합의를 끌어낼 수 있을까. 정부는 5월 30일 노·사·정이 시간제 일자리 확대에 합의했다고 발표했지만, 이 자리에 국내 최대 노조연맹체인 민주노총은 참여하지 않았다. 또한 노조 조직률이 10%에 머무는 우리나라는 근로자 전체를 대변할 조직도 없고, 특히 비정규직·자영업자를 대표하는 조직도 미약하다. 노사를 대표하는 단체의 교섭을 통해 일자리를 창출하는 네덜란드 모델을 도입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또한 네덜란드에는 풀타임 정규직과 파트타이머 간 차별이 거의 없다. 네덜란드는 정부는 1993년 ‘새로운 길’ 정책, 1996년 ‘유연성과 안정성법’을 통해 풀타임과 파트타임 근로자 사이에 차별을 금지하는 법률을 제정했다. 또한 시간제 근로자는 언제든지 근로 시간을 조정할 수 있고 풀타임으로 전환을 요구할 수 있다. 연장 근로도 철저하게 규제한다. 세계 최장 노동시간에, 비정규직 비중이 크고 정규직과의 임금 차이가 큰 우리나라에서 ‘반듯한’ 시간제 일자리가 늘려면 대기업·정규직 노동자의 양보가 필수적인데, 현재로서는 요원해 보인다.
네덜란드가 일자리를 나눠 고용률을 높일 수 있었던 근간에 두터운 사회안전망이 있다는 사실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2006년 우리나라 고용노동부 공무원들이 네덜란드 노동시장 개혁사례를 연구하기 위해 출장을 간 적이 있다. 그들이 다녀와 장관에게 보고한 출장 보고서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노동시장 유연성이 고용 불안으로 이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실업 급여 등 사회안전망 강화가 필수적이다. 우리의 경우 OECD 국가에 비해 전반적인 사회안전망이 미흡하다. 특히 비정규직에 대한 지원 강화가 필요하다.’
『네덜란드의 기적』을 쓴 옐러 피서르 교수는 5년 전 한국을 방문해 이런 말을 했다. “네덜란드의 기적이 다른 국가들이 따라야하는 모범 사례는 아니다. 나라마다 역사와 환경이 다르니까 똑같이 모방할 수는 없다. 다만 공동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노력과 이를 위한 적절한 제도적 장치를 갖추는 게 중요하다. 또 중요한 결정을 할 때 사회적 파트너들이 일정하게 참여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래야 경제 제도가 개선되고 혁신이 가능할 것이다.”
네덜란드 병(Dutch disease) 네덜란드는 1960년대 북해 해저에서 대량의 천연가스가 나와 호황을 누렸지만 오히려 이것이 경제체질을 악화시켰다. 천연가스 수출로 엄청난 외화가 들어오자 정부는 재정 지출을 늘리고 사회복지를 확대했다. 하지만 천연자원에 의존하면서 제조업 등 산업 경쟁력이 약화돼 천연가스 수출 붐이 끝난 후 네덜란드 경제는 불황의 늪에 빠졌다. 네덜란드 병은 ‘자원의 저주’로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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