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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S - 실패해도 내 삶이요 내 그림이다

ARTS - 실패해도 내 삶이요 내 그림이다

김광로 한·인도친선협회장은 LG전자를 인도 최고 인기 브랜드로 키웠다. 또 인도 최대 가전회사 비디오콘에 영입된 CEO 수출 1호다. 그런 그가 요즘 화실로 출근한다.
서울 서초동 김광로 회장의 공동 화실. 벽과 바닥에 그가 그린 그림이 빼곡하다.



김광로(67) 한·인도친선협회장의 그림은 소박하다. 유화처럼 두텁고 기름진 느낌이 나지 않아 마치 수채화 같다. 그는 “세련되게 그리지 않겠다”고 말했다. “앞으로 그림을 점점 단순하게 그릴 거예요. 똑같은 모티프라도 그리는 나도 자유롭게, 보는 사람도 해석하는 자유가 있는 그림을 그릴 겁니다.” 화가 김근태씨는 “김 회장은 시대 흐름에 구애 받지 않고 자유롭게 표현한다”며 “나름 질서와 범주가 매력”이라고 말했다.

김 회장은 6월 5~14일 서울 인사동 갤러리 고도에서 개인전을 연다. 한인도 수교 40주년 기념 행사의 일환이다. 4년 전부터 그림을 그려 인도에 있을 때는 교회에서 소규모 전시회도 열었다. 본격적으로 화실에 다니며 전문가 조언을 받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7월부터다. LG그룹 재직 34년 중 27년을 인도를 비롯해 미국·아랍에미레이트·파나마·독일·태국 6개국에서 보냈다.

1997년 LG전자 인도법인을 설립해 10년 후 인도 내 가전 시장점유율을 평균 30%대까지 끌어올리며 매출 1조5000억원을 기록했다. 그 사이 인도 전역에 46개 지사가 생겼다. LG에서 퇴임한 2008년 인도 최대 가전업체 비디오콘에서 그를 부회장으로 영입했다. 이후 인도의 신용평가회사 오니크라로 자리를 옮겼다. 지난해 1월 은퇴 후 귀국했다.

하루 일과를 묻자 그는 “아주 자유롭다”고 답했다. 아침에 2시간 정도 그림을 그리고 신문을 읽는다. 서울 지하철 교대역 근처 화실에 도착하면 보통 오전 10시 30분이다. 준비한 점심 도시락을 들고 그림 그리다 집에 오면 오후 4시. “매일 도시락과 그림 도구가 담긴 백팩을 매고 지하철로 지인들과 함께하는 공동 화실에 갑니다.

오늘은 컵라면을 싸왔어요. 샌드위치를 싸올 때도 있고요. 밥과 김만 있어도 훌륭한 한 끼가 됩니다. 사실 수 십 년 동안 운전기사가 있어 손수 운전할 일이 거의 없었어요. 이런 평범하고 소박한 생활에서 자유와 행복을 느낍니다.”

김광로 회장의 유화는 두텁고 기름진 느낌이 나지 않아 수채화 같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는 앞으로 “단순하고 자유롭게” 그리겠다고 말했다.


“ 못 그린 그림일수록 잘 그렸다더라”김 회장은 학창시절 그림을 잘 그린다는 칭찬 한번 들어본 적이 없다. 미술반 활동도 못 해봤다. 하지만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어떻게 보면 원초적 본능이었을지도 몰라요. 원시인들이 벽화를 그리는 것처럼요.” 생각만 하고 있던 김 회장은 LG 퇴직 무렵 ‘발동’이 걸렸다.

인도인 문구점 주인의 도움을 받아 수채화 재료를 샀다. 커다란 흰색 도화지를 보고 처음에는 겁이 더럭 났다. 이면지에 신문 삽화를 따라 그리며 혼자 연습했다. 그렇게 점점 자신감이 붙자 아크릴 물감으로 그림을 그렸다. 화실을 다니면서 유화를 시작했다.

김 회장의 화폭은 예전에 그렸던 그림인 경우가 많다. 보통 유화를 그리다 실패하거나 마음에 들지 않으면 긁어내든지 물감을 두껍게 덧씌운 후 그 위에 다시 그린다. 그는 인형극 그림을 인도의 일몰로 덧씌었다. 사람과 개를 그렸던 위에 책장을 빼곡히 넣었다. 산 위를 사람 얼굴로 채웠다. “실패한 흔적이 어렴풋이 남아 그림을 더 풍부하게 만들어요. 우리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실패와 쓰라린 경험을 전부 지워버릴 게 아니에요.”

그는 “어떤 제약 없이 내 마음대로 표현할 수 있어 미술이 좋다”고 말한다. 인도에서 피아노와 바이올린도 배웠다. 악기는 감정을 표현하기 전에 악보대로 연주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하지만 미술은 그저 붓 가는 대로 표현하면 그만이다.

그림 자체도 중요하지만 거기에 담긴 ‘생각’이 중요하다. 사물을 그대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담아 색다르고 재미있게 그려야 한다는 말이다. 경영자 시절 “정해진 길보다 전혀 새로운 길을 가라”던 그의 훈화대로다. “못 그릴수록 잘 그린다고 하더라고요(웃음). 예전 학교 다닐 때는 그냥 똑같이 그리는 걸 잘 그렸다고 했는데.”

그는 일주일에 보통 그림 2점을 완성한다. 인도에서 일하면서도 하루 2~3시간을 그렸다. 양이 질을 변화시킨다는 믿음 때문이다. “뭐든지 반복하면 질이 좋아져요. 물론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기도 하고요. 열심히 해서 전문 화가의 70~80% 수준까지 도달하는 게 목표입니다.”

화실 회원 9명 중에서 그는 유일한 남자다. “다양한 연령대 여성들과 만나서 배우는 게 많습니다. 그림에 대해서도 그렇고, 요즘 인기 있는 영화 얘기도 듣죠.” 이 공동 화실은 몇몇 뜻이 맞는 사람들이 비용을 나눠 운영한다. 은퇴하면서 ‘돈 버는 일은 하지 말자’고 마음먹었다. “38년 동안 돈을 벌었으니 이제 그만해야죠. 돈 욕심은 끝이 없습니다. 지금부터 조금이라도 남을 위해 살기로 했어요. 내 영혼의 자유를 위해서 말입니다. 재능 기부도 하고 좋은 일도 할 계획입니다.”

김 회장은 지난해 10월 화실 동료와 단체전을 했다. 수익금은 모두 유니세프인도에 기부했다. 이번 개인전 수익금 역시 최재형장학회·우송대 등에 전액 기부한다. 그는 가을학기부터 우송대에 출강한다. 강의료도 100% 기부할 계획이다.그는 피처폰을 쓴다. 3 전 만났을 때는 블랙베리를 썼다. “그때는 업무 때문에 스마트폰을 썼어요. 이제는 PC로 충분합니다. 아침 저녁으로 PC에서 e메일 확인하고 뉴스와 유튜브를 보면 돼요. 나는 슬로우 라이프(Slow Life)를 살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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