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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강렬한 절제미···실루엣의 미학

Photo - 강렬한 절제미···실루엣의 미학

피사체 윤곽만으로 이미지 구성 … 카메라는 수동으로 설정해야



실루엣은 사람이나 사물의 ‘윤곽’을 뜻합니다. 새로 산 옷이 몸에 잘 어울리거나 몸매가 날씬한 여성을 말할 때 ‘실루엣이 좋다’고 말합니다. 외양을 나타내는 선과 면이 아름답다는 뜻입니다. 실루엣은 사진 용어이기도 합니다. 역광 사진으로 피사체의 윤곽이 검게 나타나는 것을 말합니다. 강한 빛이 뒤에서 들어오면 앞 쪽은 어둡기 때문에 피사체가 까맣게 보입니다. 이를 실루엣 사진이라 부릅니다.

사람 이름에서 따 온 실루엣의 어원은 18세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프랑스는 7년 전쟁 이후 전비(戰費)를 감당하지 못해 심각한 재정적자에 허덕였습니다. 이때 ‘실루엣((Etienne de Silhouette, 1709~1767)’이 재무장관으로 임명됐습니다. 그는 명석하고 유능한 인재였습니다. 어려운 시기에 프랑스의 살림살이를 책임지는 자리에 앉게 됐습니다. 긴축 정책을 펴며 국민에게 극단적인 절약을 강조했습니다. 부채를 갚기 위해 대대적인 증세 정책을 폈습니다.

하지만 추락하는 프랑스 경제는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됐습니다. 프랑스 정부는 공수표를 남발하는 상황까지 이르게 됐고, 결국 그는 8개월 후 재무장관에서 물러나게 됩니다. 불경기는 패션에도 반영됐습니다. 주머니가 없이 몸에 착 달라붙는 패션이 유행했습니다.

‘어차피 돈도 없는데 주머니가 무슨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지요. 사람들은 이 패션을 ‘실루엣 패션’이라고 불렀습니다. 실루엣 장관에 대한 비아냥을 담은 것입니다. 파리 시민들은 그를 조롱하고 경멸했습니다. 값싸고 보잘것 없는 것에 실루엣이라는 이름을 갖다 붙이곤 했습니다.

그림자를 오려내서 만든 초상화<사진2> 도 실루엣으로 불렸습니다. 루이 14세 시대에 처음 등장한 실루엣 초상화는 얼굴에 대한 상세한 묘사가 생략된 채 오로지 검은색 그림자 윤곽으로만 그려졌습니다.

‘돈도 없는데 뭘 다 그리나. 윤곽만 있으면 된다’며 실루엣 장관의 정책을 비꼰 것입니다.

실루엣을 조롱하는 온갖 패러디가 난무했겠지요. 당시의 시대상이 짐작됩니다.

프랑스 혁명 전후 사회의 중심 세력이 된 중산층은 자신의 초상화를 갖고 싶어했습니다. 초상화는 부와 명예의 상징으로 귀족들의 전유물이었습니다. 시민혁명을 성공시킨 중산층이지만 경제적인 여유가 생기면서 귀족들의 고급 취향을 따라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초상화 제작이 유행병처럼 번졌습니다. 3류 화가들은 보다 빠르고, 값싸게 초상화를 그리는 방법을 고민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실루엣 초상화입니다. 예술성보다 경제성을 중시한 것입니다.

실루엣 초상화는 ‘질-루이 크레티앙(Gilles-Louis Chretien)’에 의해 자동전사식 초상화 기법 <사진3> 으로 발전했습니다. 나무로 된 의자와 캔버스를 고정시킨 틀에 인물을 앉혀놓고 촛불을 켭니다. 화가는 인물의 그림자를 따라 정교하게 옆모습을 그렸습니다.

이렇게 완성된 초상화는 판화로 제작돼 한번에 여러 장을 찍어냈습니다. 18세기에 옆 모습으로 제작된 초상화는 대부분 이 방식을 따른 것입니다. 자동전사식 초상화 기법은 ‘카메라 옵스큐라(바늘구멍 상자)’와 함께 카메라의 발명을 앞당기는 계기가 됩니다.

실루엣 사진은 빛의 성격을 잘 이해하고, 잘 다뤄야 하는 테크닉이 필요합니다. 3차원의 현실 세계가 강한 명암의 평면으로 바뀌면서 미적인 반전이 일어납니다. 좋은 실루엣 사진은 절제미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가려진 만큼 더 상상하게 하고, 더 많은 이야기를 녹여냅니다.

실루엣 사진을 글 쓰는 것과 비교하면 은유법 정도 될까요. 인물이나 사물의 상세한 묘사를 생략한 채 피사체의 윤곽만으로 이미지를 구성하게 됩니다. 배경에 강한 빛이 있고 주가 되는 피사체는 검게 나타납니다. 밝음과 어둠의 대비로 강렬한 메시지를 담습니다. 미학적으로는 선과 면의 구성이 중요합니다. 명암의 대비가 미학의 핵심입니다. 자칫 단순해 보일 수 있기 때문에 피사체를 리듬감 있게 표현하는 것이 좋습니다. 움직임이 있는 것이 좋고, 명암의 비례와 조화를 고려해야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사진1> 은 아프리카의 축구 열기를 담은 사진가 박종근의 작품입니다. 붉은 노을을 배경으로 해변에서 축구를 즐기는 흑인 특유의 유연한 몸놀림을 미적으로 표현했습니다. 아프리카는 자연 재해와 빈곤의 악순환에 시달립니다.

공동체의 전통적인 가치조차 서구 문명의 유입으로 해체되고 독재자의 정치 논리에 희생되는 상황입니다. 암울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한 방에 팔자 고치는 것’은 축구나 육상 선수가 되는 길입니다.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타고난 체력과 유연성은 훌륭한 자산이기도 합니다. 사진은 해변에서 해가 질 때까지 축구를 즐기는 어린아이들을 담은 것입니다. 절망 속에서 희망의 메시지를 보게 됩니다.

실루엣 사진은 역광으로 비치는 피사체를 찍는 것입니다. 배경이 밝기 때문에 빛을 등진 피사체는 어둡게 보이기 마련입니다.

피사체와 배경의 노출 차이를 이용하는 것이 실루엣 사진의 핵심입니다. 실루엣 사진 빛은 태양 빛은 물론 불·조명·반사광 등을 이용해서 찍기도 합니다.

실루엣 사진을 찍을 때는 카메라를 수동으로 설정해야 합니다. 노출과 초점의 포인트가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즉 조리개 값(f)은 배경의 밝은 빛에 맞추고 촛점은 피사체에 맞춰야 합니다. 자동으로 했을 경우 초점을 맞추는 피사체의 노출값이 적용되기 때문에 배경이 하얗게 타 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때 ‘싸구려’의 대명사인 실루엣은 이처럼 아름다운 사진 예술로 거듭나게 됩니다. 시대를 잘못 만나 온갖 불명예를 뒤집어 써야 했던 인물의 이름입니다. 그의 이름은 세상을 떠난 뒤에야 예술적인 빛 그림을 일컫는 말로 다시 탄생하게 됩니다. 실루엣이 ‘명예 회복’을 하는 역사의 아이러니를 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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