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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tures CHILDREN OF CONFLICT - 참혹했던 내전의 아물지 않는 상흔

Features CHILDREN OF CONFLICT - 참혹했던 내전의 아물지 않는 상흔

아프리카 라이베리아 전쟁에 참여했던 수많은 여자아이들이 이제 성인이 됐지만 과거사 청산과 화해의 길은 아직 까마득해
25만 명 이상이 희생된 내전이 끝난 지 거의 10년이 지났지만 라이베리아의 과거사 청산은 아직도 갈 길이 너무도 멀다.



메리 골이 운영하는 해변의 작은 술집. 메리는 흰색 플라스틱 의자에서 곤히 잠들었다. 주변 모래 땅엔 담배꽁초가 군데군데 박혀있고 크래커의 은빛 속포장지가 아침 햇살을 받아 반짝인다. 양철 골판과 육각형 구멍이 난 철조망으로 지은 엉성한 술집이다. 쌀을 담았던 플라스틱 봉지를 꿰매어 일부를 가렸다. 해변을 거슬러 올라가면 카누들이 잠을 자듯 뒤집어져 있다.

메리의 술집(‘마 메리’로 불린다)은 해안에 좌초돼 서서히 무너져가는 낡은 배처럼 보인다. 아침 햇살이 강해지면서 술집의 윤곽이 뚜렷이 드러난다. 이제 잠을 깬 메리가 기지개를 켜며 느릿 느릿 의자에서 일어섰다. 헐거운 흰색 탱크톱 사이로 넓은 어깨와 두꺼운 팔이 드러났다. 짧은 머리는 작은 가닥으로 땋았고, 허리엔 푸른 별로 장식된 노란 천을 둘렀다.

상반신을 드러낸 젊은 청년이 들어와 ‘가나가나’ 한 잔을 주문했다. ‘아프리카 위스키’로 알려진 쓴 사탕수수 술이다. 그는 한마디 말도 없이 그 잔을 들이킨 뒤 케이프 몬트세라도 쪽으로 걸어갔다. 1822년 최초의 미국 흑인 이민자들이 배에서 내린 곳이다. 그들이 나중에 라이베리아 공화국으로 독립한 정착촌의 선봉들이었다. 수도 먼로비아는 제임스 먼로 미국 대통령의 이름을 땄다.

라이베리아의 과거가 그대로 남아 있는 이 황량한 땅은 ‘포토 코너(Poto Corner)’로 불린다. 현지 라이베리아식 영어로 ‘쓸모 없는 사람들을 위한 곳’이라는 뜻이다. 먼로비아에서 가장 거대한 빈민가 웨스트 포인트 안에 있다. 이주민, 어부, 마약 중독자, 거리의 아이들이 가득한 곳이다. 메리처럼 1990년대 대부분 동안 이 나라를 황폐하게 만든 복잡한 내전에 참여했던 라이베리아인들도 거기에 많이 산다.

찰스 테일러가 이끄는 반군 라이베리아 애국전선과 독재자 새뮤얼 도가 이끄는 정부군 간의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었다. 결국 테일러가 정부군을 무너뜨리고 1997년 새뮤얼 도를 처형한 후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대통령이 됐다. 그러나 2년 뒤 라이베리아는 다시 내전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 전쟁이 또 4년 동안 이어졌다.

메리는 13세에 테일러를 지지하는 정부군 민병대에 합류했다. 그녀의 몸에 난 상흔은 근접전투를 경험한 소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기니 국경 부근인 라이베리아 동북부의 치열한 전투에서 총알이 그녀의 오른쪽 무릎을 스쳐갔다. 어깨 사이에 잡힌 움푹한 주름은 척추를 가까스로 비켜간 총알 때문에 생겼다. 스스로 만든 전쟁의 상흔도 있다. 자신의 행위를 일깨우는 거친 토템식 문신이다. 문어발 문신이 그녀의 등 아래쪽으로 뻗쳐 있다. 또 다른 문어 촉수는 오른쪽 무릎을 뒤덮고 있다. 문어는 “사악한 동물”이라고 메리가 말했다. “나도 사악했다.”

메리는 3년 동안 내전에 참여했다. 어린이와 10대들이 가해자이자 피해자였던 잔혹행위로 널리 알려진 전쟁이었다. 메리는 소대장으로 소년과 소녀, 여성과 남성 약 30명을 지휘했다. 그후 여성 포병대 지휘관으로 활약하다가 포로로 잡혀 반군 측에 서서 싸워야했다. 전쟁이 끝났을 때 그녀 나이 16세였다.

2003년 8월 포괄적 평화협정으로 내전이 종식되자 메리는 무기를 반납했지만 평화는 오지 않았다. 그녀 세대의 대다수처럼 메리는 내면에서 계속 맹렬히 지속되는 전투를 잠재울 수 없었다.

라이베리아와 국경을 맞댄 이웃나라 시에라리온도 참혹한 내전을 겪었다. 1991년 테일러가 지원한 시에라리온 반군이 정부를 전복하려고 전쟁을 일으켰다. 그 내전은 2002년 끝났다. 2012년 5월 국제 형사사법기구인 시에라리온 특별법정(SCSL)은 전쟁범죄로 기소된 찰스 테일러에게 징역 50년 형을 선고했다. 살인, 성폭행, 성노예, 소년병사용 등의 죄목이었다. 오는 9월 SCSL은 테일러의 항소에 최종 판결을 내릴 예정이다.

그러나 라이베리아에선 별도의 전범재판이 이뤄지지 않았다. 2006년 엘렌 존슨 설리프는 국제사회의 찬사 속에서 아프리카 최초의 여성 대통령으로 선출됐지만 내전 초기에 테일러를 지지했고 그녀의 정부는 의미있는 치유과정을 기대한 사람들에게 실망을 안겼다.

2009년 라이베리아 진실화해위원회(TRC) 보고서는 존슨 설리프를 포함해 테일러를 지지했던 인사들에게 공직을 30년 동안 금지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설리프는 초기에 테일러에게 “속았다”고 국민에게 사과했지만 퇴진은 거부했다. 그해 가을 라이베리아의 화해과정은 더 큰 장애물을 만났다.

독립적인 화해 이니셔티브를 이끌던 노벨 평화상 수상자 레이마그보위가 설리프의 족벌주의를 비판하며 부패 같은 현실적인 사회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고 맹렬히 비난한 뒤 사퇴했다. 그보위는 사퇴 이유로 “국가적 치유와 화해로 가는 길에서 정부와 우리의 견해차가 너무 크다”고 말했다.

지난 6월 라이베리아 정부는 화해 18개년 계획을 새로 발표했다. 그러나 2009년 TRC 보고서의 권고 사항 중 지금까지 실행에 옮겨진 것은 단 한 건 뿐이다. 25만 명 이상이 희생된 내전이 끝난 지 거의 10년이 지났지만 라이베리아의 과거사 청산은 아직도 갈길이 너무도 멀다.

먼로비아 외곽의 농장에서 그보위를 만났다. 그녀는 그곳에서 불우 청소년을 위한 캠프를 운영하고 있다. 그보위는 라이베리아가 전진하려면 국민이 과거의 부당성만이 아니라 현재 당면한 문제에도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의 사회정의 문제를 다루지 않는다면 1990년에 일어난 일의 화해를 거론할 수조차 없다. 먼로비아를 돌아보면 주민들이 아주 분노한 상태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전쟁 문제를 처리하기 전에 서민을 분노케 하는 이런 문제들을 먼저 해결해야 한다. 최소한 동시에 이 문제들을 다뤄야 한다.”

그 도전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라이베리아인 다수가 소년병 출신이라는 사실이다. 어린이 3만8000명 이상이 전투원, 짐꾼, 탄약운반원, 조리사, 성노예 등으로 내전에 참여했다고 추정된다. 그들이 보고 행한 일, 그리고 그들이 당한 일은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러나 미래는 아직 열려 있다. 실제로 지금이 아주 중요한 시점이다. 라이베리아의 소년병 세대가 이제 성년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이 과거사를 인식하는 방식이 국가의 미래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메리는 자신의 이야기를 여러 주에 걸쳐 단편적으로 나에게 들려줬다. 그러나 그 단편들을 모아 보면 전체적으로 어려움을 극복한 이야기가 된다. 그녀는 투사가 됐다가 무기를 버렸고 이제는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그러나 그녀가 실제로 보여주는 행동은 그와는 사뭇 다르다. 소년병 출신들이 대개 그렇듯이 메리도 과거와 미래 사이에 갇혀 갈등한다. 투사였던 내전 당시의 정체성을 버릴 수가 없거나 아니면 버릴 생각이 없는 듯하다. 그런 측면이 자신에게 목적의식을 고취해주기 때문이다. 메리는 남자친구와 두 자녀가 있지만 결혼은 하지 않았다. 전쟁에서 독립독행을 배웠기 때문이다. “집안에서 내가 남자”라고 메리가 말했다. “난 실제 전투에 참가했기 때문에 남자다.”



메리는 몇 년 전 무기를 반납했지만 여전히 자신의 영역을 치열하게 지키는 지휘관의 기질을 보인다. 마약을 하는 노숙자들이 술집 근처에 어슬렁거린다. 메리는 그중에서도 행동이 불량한 고객들을 완력으로 따끔하게 혼을 내준다.

어느 날 아침 키 큰 중년의 남자가 눈이 충혈된 채 술집으로 들어왔다. 고통 때문에 얼굴을 문지르며 ‘가나가나’ 한 잔을 외상으로 달라고 주문했다. 이전에 다녀간 술꾼이었다. “이 냄새 나는 녀석, 어서 꺼져!”라고 메리가 턱을 치켜들며 위압적으로 소리쳤다. 그 남자는 완력으로 쫓겨나기 전에 스스로 술집을 나갔다. “아주 사납게 말해야 한다. 그들은 싸움을 좋아하고 곧잘 무기를 사용한다. 아주 조심해야 한다.”

메리는 열 살짜리 여자아이와 함께 술집을 꾸려간다. 메리는 그 아이를 ‘지배인’이라고 부른다. 검고 귀엽고 넓은 얼굴을 가진 작은 그 여자아이는 술집에서 밤낮 없이 일하며 손님들에게 지지분한 술잔에 술을 따라 내준다. 메리의 한 살짜리 딸 ‘디자이어(Desire, ‘갈망’이라는 뜻이다)’를 돌보고 집안일도 거의 다 한다.

메리는 내전이 끝날 무렵 빈 집에 버려진 아기였던 그 여자아이를 입양했다. 그녀는 그 아이를 딸이라고 부르며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어느 날 밤 술집에 전등을 켜려고 헝클어진 전선을 만지다가 위스키 한 병을 깨뜨리자 메리는 그 아이를 때려 눕히고는 배를 걷어찼다. 그동안 손님들은 아무 말 없이 술만 계속 마셨다. “저 계집애는 자기가 모든 걸다 안다고 생각해”라고 메리가 소리쳤다.

나중에 왜 그렇게 폭력을 썼느냐고 묻자 메리는 전선을 잘못 만지다가 감전될까 걱정이 돼서 그 아이가 정신을 차리도록 혼 내주려 했을 뿐이라고 항변했다. 그러나 메리에게 폭력은 분명히 본능적이었다. 한번은 시장에 갔다가 한 남자를 공격했다. 자신을 거지라고 불렀다는 이유였다. 메리는 그를 해변으로 끌고가 본때를 보여주겠다고 말하며 모터바이크 헬밋으로 그의 머리를 계속 때렸다.

구경꾼들이 싸움을 말리자 메리는 경찰을 불러 지폐를 뇌물로 집어주며 그 남자를 체포하도록 했다. “그는 싸울 줄도 모르는 남자”라고 메리는 나중에 말했다. 왜 싸움을 시작했느냐고 묻자 메리는 전쟁에서 자신이 부대를 지휘했기 때문에 자신이 그보다 윗사람이라고 말했다. “전쟁 때 그런 남자는 그냥 숨어 지냈다.”

내전이 끝난 뒤 라이베리아 정부와 서방 구호기관들은 소년병 출신의 사회 재진입을 돕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그러나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없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특히 소년병 출신 여성들은 라이베리아 사회에서 건드릴 수 없는 무법자로 간주된다. 남자 부대장 다수는 전쟁이 끝난 뒤 정부에서 일자리를 얻었지만 여성 전투원들은 대부분 그 과정에서 제외됐다. 전쟁에 참여했던 여성 다수는 외면당하고 빈민가에서 살며, 때로는 푼돈에 몸을 팔아 근근이 살아간다.

핀란드 투르쿠대에서 소녀 전투원 출신의 사회 재통합 문제를 연구하는 레나 코킬라이넨은 조사 대상자의 거의 절반이 매춘을 하며 그들 대부분이 먼로비아의 빈민가에서 산다고 말했다. “그들 중 일부는 너무도 가난하고 천대 받아 자신은 인간도 아니라고 생각할 정도다.”

인류학자 이르마 스페크트에 따르면 소녀로 내전에 참여했던 여성들이 결혼해서 가정을 갖고 사회에 재통합되기가 더 어려운 것은 그들이 여자답지 않고 더럽혀졌으며 타락했다고 간주되기 때문이다. “덤불 속에서 남자아이들과 함께 싸운 여자아이들은 여자로 간주되지 않는다. 그들은 여성성의 선을 넘었다. 사회가 여성에게 요구하는 기준에서 벗어났다는 뜻이다. 대개 그들은 신부감으로 간주되지 않으며 일자리를 얻기도 매우 어렵다. 그 결과 그들은 빈민가에서 살며 과거를 숨긴다.”

메리는 자신의 잔인한 행동을 자랑하다가도 곧 그 끔찍함에 스스로 고통스러워했다. 죄의식이 완전히 형성되지는 않았다. 단지 부분적으로 드러날 뿐이다.

테일러의 민병대가 첫 내전을 일으켰을 때 메리는 두 살이었다. 그녀는 일곱 자녀 중 셋째다. 먼로비아 외곽 화이트 플레인스의 시골 마을에서 태어난 메리는 ‘전쟁의 자식’이었다. 총격전이 벌어지면 신속히 땅에 바짝 엎드려야 하며 주변의 숲속에서 폭력이 잠잠해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을 어려서부터 체험으로 터득했다.

어머니 패트리셔는 생선구이를 팔고 작은 비디오 가게를 운영하며 살림을 꾸렸다. 그러다가 메리의 아버지 아모스와 헤어졌다. 패트리셔는 “여자 문제 때문”이라고 말했다. 아홉 살난 메리는 어머니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새로 결혼한 아버지와 살게 됐다.

메리는 계모에게 학대를 받았다고 말했다. 계모는 학교에 있는 그녀를 불러내 거리에서 닭을 팔도록 강요했다. 집안일도 거의 다 했다. 등교 전에 물을 걸러 놓고 숯 다리미로 옷을 다렸다. 말을 듣지 않으면 아버지와 계모는 그녀의 팔을 묶고 눈에 고춧가루를 문지른 뒤 뙤약볕 아래서 고통 당하도록 벌을 주었다.

“메리는 태어날 때부터 아주 나쁜 아이였다”고 그녀의 아버지 아모스가 나에게 말했다. 그런 딸을 둔 게 부끄러워 버릇을 단단히 고쳐주려고 했다는 해명이었다. 메리는 이제 해변의 술집을 그만두고 괜찮을 옷을 지어 입고 자신과 함께 교회가 가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메리는 아버지에 관해 묻자 “쓸모 없는 사람”이며 “진실성이 없다”고 잘라말했다. 그녀의 동생도 같은 이야기를 했다. 사실상 고아가 된 메리는 할머니집에 가서 살았다. 그러나 혼자 사는 데 익숙해졌고 가끔씩 몸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던 메리에게 할머니는 너무도 엄격했다.

메리는 13세 때 임신했다. 아이 아버지는 동네에서 농구를 잘하는 잘 생긴 남자였지만 25세로 가정을 책임질 처지가 아니었다. 메리는 태어난 아기에게 ‘커리지(Courage, 용기)’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주님 안에서 용기를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커리지가 태어난 지 2주 지났을 때 메리의 어머니가 그 아기를 데려갔다. 메리는 개의치 않았다고 말했다. 아기를 키우기엔 자신이 너무 어리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또 그녀에겐 다른 계획이 있었다.

2000년 메리의 어머니는 아이들과 함께 가나로 피난 가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메리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그녀는 모두가 떠날때까지 숨어 있었다. 바로 몇 주 전에 낳은 아기를 빼앗긴 그녀는 가족에게서 벗어나고 싶었다. “숲으로 가서 전사가 되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전사들이 갖는 힘과 그 힘을 그들이 어떻게 남용하는지 두 눈으로 목격했다. 그들은 남자들을 때리고 여자들을 괴롭혔다. 그녀도 그런 힘을 원했다. 아무도 자신을 건드릴 수 없는 존재가 되고 싶었다.

메리는 어렸을 때 먼로비아 시내 훈련소 밖에서 군복을 입은 키 크고 강인한 여성을 봤다. 그녀의 강인함과 지배력, 엄격함이 메리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메리는 정부군의 군인이 되거나 미 해병이 돼 멋진 유니폼을 입고 행진하는 모습을 상상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오후 메리는 현지 부대장 래리 멀비를 찾아갔다. 노란 탱크톱에 짧은 검은색 스커트를 입은 작은 소녀가 정부군이 되고 싶다고 하자 멀비는 대환영했다. 일주일 뒤 메리는 할머니에게 작별인사도 하지 않고 녹색 픽업 트럭 뒤에 올라타고 떠났다. 메리는 나마의 캠프 잭슨으로 가서 기초 훈련을 받았다. 화기 다루는 법도 배웠다. 그러나 규율을 따르는 게 문제였다. 멀비는 메리를 ‘불만투성이’라고 불렀다. 늘 무례하고 명령을 따르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첫 전투에서 메리는 티나 걸이라는 여성의 지휘를 받았다. 두 사람은 나중에 친구가 됐다. 처음엔 총성과 로켓추진 수류탄 폭발음 때문에 몸이 떨렸다. 하지만 티나 걸이 싸우는 모습을 보자 두려움이 가셨다. “티나 걸은 아주 용감했다”고 메리가 말했다. “난 그녀처럼 되고 싶었다.” (전쟁이 끝난 뒤 티나 걸은 옛 전우들이 잠든 먼로비아 시내의 공동묘지에서 약물과다 복용으로 사망했다.)

메리는 성격 형성에 가장 중요한 10대 시절 3년 동안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잔혹한 전쟁을 경험했다. 라이베리아와 시에라리온 내전이 정신건강에 미친 영향을 조사한 연구에 따르면 “의도적인 사지 절단, 희생자의 피부에 반군의 이니셜 새기기, 뱃속에 든 아기의 성별을 두고 내기를 하려고 임신부의 배를 가른 일, 어린 여자아이를 인간제물로 바치는 일” 등이 그 당시의 잔혹행위에 포함됐다.

“인육과 내장(자신의 부모와 아이 포함)을 잘라내 요리해 먹도록 강요당했다는 사람도 많다. 수많은 어린이와 10대들이 부모와 형제가 고문당하고 성폭행당하고 잔혹하게 살해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가족들(어린이 포함)도 서로 성폭행하고 살해하도록 강요당했다. 이런 잔혹행위가 진행되는 동안 피해자들은 감정을 드러낼 수 없었다. 심지어 억지로 웃어야 했다. 일부의 경우 그 자리에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은 영구히 장님이 되는 가혹한 형벌을 받았다.”

내전 동안 여성을 대상으로 한 폭행이 너무도 만연했다. 일부 조사에 따르면 라이베리아 여성과 소녀 중 60~90%가 성폭행당했다. 시에라리온의 소년병에 관해 연구한 하버드 공중보건 대학원의 테레사 베탄코트 부교수에 따르면 소녀 전투원들은 대개 성폭행의 피해자이기도 하지만 남자 병사들과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을 해치고 살해했다. 그러나 베탄코트는 소녀 병사들의 심리적인 타격이 훨씬 크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소년 병사들보다 우울증과 불안증을 앓는 비율이 훨씬 높았다.

그러나 그 여자아이들의 경험에는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소녀 전투원 출신의 사회 재통합 프로그램을 이끄는 로사나 샤크는 “전쟁이 끝난 후 어린이 병사라고 하면 모두가 남자아이들만 생각했다”고 말했다.

메리는 포로들의 귀와 손가락을 자른 일을 돌이켰다. 그녀와 부하들은 포로의 가죽을 벗기기도 했다. 그러나 메리를 잠 못 이루게 하는 건 그런 잔혹행위가 아니다. 정탐을 하다가 붙잡힌 한 여성을 집단 성폭행하라고 부하들에게 내린 명령이 자꾸 생각나서 메리는 밤잠을 잘 못이룬다.

메리는 그런 일이 사람의 가죽을 벗기는 것보다 더 괴로운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녀는 그 여성과 자신을 동일시했다. 그 포로의 무력함이 메리 자신의 무력함을 일깨웠던 듯하다.

2003년 어느 날 메리의 부대는 반군 단체인 ‘화해와 민주주의를 위한 라이베리아 연합’(LURD)의 대대적인 공격을 받았다. 퇴각하려 했지만 복병을 만났다. 퇴로를 뚫으려다가 여자 전투원 세 명이 사살됐다. 메리는 두 남자 전투원과 함께 항복했다. 그들은 며칠 동안 구타당하고 치욕을 당한 뒤 감금됐다. 결국 그들은 반군에 가담하도록 강요 받았다.

메리는 몇 달 동안이나 반군으로 전투를 치렀다. 그녀는 그런 전력을 개의치 않는다. 정치적 명분이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반군이 먼로비아에 진격했을 때 그녀는 자신도 반군의 일원으로서 매우 기뻤다고 돌이켰다. “마음껏 약탈하고 즐겼다.” 그러나 전쟁의 막바지에 먼로비아를 장악하려는 마지막 전투가 진행되는 동안 메리는 반군 대열에서 이탈해 웨스트포인트의 집으로 갔다. 무장해제 기간에 메리는 AK47 소총과 로켓추진 수류탄 발사기를 자진 반납했다. 그후 전쟁 전의 생활로 돌아갔다. 거리의 삶, 마약, 매춘이었다.

샤크는 전쟁이 끝난 후 몇 달 뒤인 2003년 말 기독교 구호단체 요원으로 메리를 만났다. 메리는 정상적인 삶을 촉구하는 샤크에게 이렇게 말했다. “헛소리 하지 마라. 당신은 하루 종일 다니며 사람들에게 거짓말만 한다.” 그러나 얼마 후 샤크는 메리와 다른 여자아이 8명을 설득해 기독교 선교단에서 9개월 동안 생활하도록 했다. 그곳에서 그들은 상담을 받으면서 빵을 굽고 홀치기 염색을 하는 법을 배웠다.

메리는 거기서 마리화나를 끊었다. 요즘은 매춘도 하지 않는다. “새로운 인생을 개척했다”고 메리는 말했다. 샤크는 메리가 웨스트 포인트를 떠날 수만 있다면 그런 바람직한 개선이 지속되리라 믿는다. 샤크는 메리를 믿는다는 뜻에서 그녀에게 ‘브라이트 퓨처(Bright Future)’라는 별명을 지어줬다.

그러나 지금 메리 자신은 미래에 확신이 별로 없다. 그녀에겐 술집이 더 중요하다. 매월 약 45달러를 벌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정도는 그곳에선 큰 돈이다. 또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 사는 게 안전하다고 느낀다. “그들과 함께 있으면 아무도 날 건드리지 못한다. 그래서 이곳을 떠나고 싶지 않다.”

메리는 샤크를 좋아하지만 구호단체나 정부가 자신처럼 내전에 참여했던 여성에게 해준 게 별로 없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여성으로서 위험을 무릅쓰고 숲 속에서 몇년 동안 싸웠지만 그들은 우리에게 아무 것도 해주지 않는다.”

메리의 딸 커리지는 이제 초등학교를 졸업한다. 올해 13세로 메리가 그녀를 낳고, 가족을 떠나 전사가 되려고 숲 속으로 들어갔을 때의 나이와 같다. 어머니 패트리셔가 2008년 가나에서 귀국하면서 메리는 커리지를 다시 만났다. 그러나 패트리셔는 커리지가 웨스트 포인트에서 메리와 함께 살도록 허용하지 않을 생각이다. “아이가 자라는데 좋은 환경이 아니다”고 패트리셔가 말했다. “거기에 있는 막내 디자이어도 데려가고 싶다. 그곳은 군인 출신이 너무 많다. 그래서 커리지는 내가 데려갔다. 메리에게 다시 데려다 줄 수 없다.”

라이베리아에선 졸업식이 아주 큰 행사다. 내전 중에 학교가 자주 폐쇄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졸업식을 술과 음식, 춤으로 성대하게 치르는 관습이 생겼다. 메리는 커리지의 졸업식 파티를 위해 몇 달 동안 돈을 모았다. “커리지가 나를 자랑스러워하면 좋겠다”고 메리가 말했다. “난 내 아버지처럼 되고 싶지 않다.”

졸업식 날 저녁 커리지는 단발 머리에 핑크색과 청색 줄무늬 홀터 톱, 짧은 데님 스커트, 반짝이는 검은 구두를 신고 즐겁게 뛰어놀았다. 아이들은 춤을 추고 어른들은 플라스틱 의자에 기대 잡담을 하며 술을 즐겼다. 메리는 파티 비용을 댔지만 그곳엔 가지 않았다. 그녀는 해변의 자기 술집에서 독자적인 파티를 즐겼다. 거친 친구들이 우악스럽게 굴며 담배를 피우고 욕설을 해대는 꼴을 딸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땅거미가 내리자 메리는 주변을 둘러봤다. 음식은 다 없어졌고 술도 거의 비웠다. 외로운 형광등 하나가 주변을 밝혔다. 술집의 그림자가 선명하게 드러났다. 메리는 식탁 위의 빈 병들을 보고는 욕설을 하기 시작했다. 딸의 졸업식인데 남은 맥주 한 병으로 혼자 축하를 해야 하는 신세를 한탄했다. 메리는 머리를 뒤로 젖히며 맥주 한 모금을 길게 들이켰다. 포토 코너에 짙은 어둠이 내리는데도 음악은 계속 됐다.

- 필자 클레어 맥두걸은 라이베리아 먼로비아에서 활동하는 언론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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