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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하고 싶은가? 편지를 쓰라

通하고 싶은가? 편지를 쓰라

시공간 초월한 최고의 소통 도구…창구는 변해도 글이라는 본질은 그대로



“책 한 권이 한 사람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 그 속에 적힌 말 한마디가 인생을 바꿀 수 있다. 거창하게 운명과 인생을 말하지 않아도 좋다. 좋은 책에서 뽑은 좋은 말 한마디는 한 사람의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행복하게 해주는 마음의 비타민이 될 수 있다.”

‘고도원의 아침편지’로 유명한 작가 고도원씨의 ‘내가 아침편지를 쓰는 이유’다. 고씨는 “아침마다 배달되는 e메일이 아프고 괴로울때, 꿈과 희망이 필요할 때, 한 모금씩 마시는 것만으로 힘과 용기를 얻을 수 있는 청량한 옹달샘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그러다 보면 마음과 마음이 만나 작은 울림과 기적이 있을 거라고.

우체통은 설자리를 잃어가지만 편지의 힘은 여전히 세다. 많은 사람과 소통해야 하는 기업 CEO에게 편지는 탐나는 도구다. 조환익(63) 한국전력공사 사장은 7월 12일 장마와 무더위 속에서 고생하는 임직원들에게 격려 e메일을 띄웠다. 조 사장은 한전 부임전, 코트라 사장 시절에도 부정기적으로 직원들에게 수필식 편지를 보내곤 했다.

김태섭(49) 바른전자 회장은 3월 경영 수필집 『달리는 자전거는 넘어지지 않는다』 3권을 출간했다. 지난 1년 동안 매주 금요일 김 회장이 임직원들에게 보낸 편지와 답장을 엮은 책으로 2011년부터 1년에 한 권씩 냈다.

이석우(47) 카카오 대표는 연말이 되면 고마운 지인들에게 자필 연하장을 보냈다. 2011년 카카오로 자리를 옮기고부터 카카오톡 메시지로 연하장을 대신한다. 이 대표는 “단체 메시지는 금물”이라며 “연하장을 쓸 때처럼 한 명 한 명 정성스레 메시지를 써 보낸다”고 말했다.

김성회 CEO리더십연구소장은 “글은 미리 정리할 수 있어 말보다 체계적고, 감성을 담을 수 있어 일대 다의 소통에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김 소장은 “하지만 편지 글 내용과 리더의 행동이 다를 때 읽는 사람의 냉소를 불러일으킬 수 있어 자신이 쓴 글에 책임이 따른다”고 덧붙였다.

종이, 블로그, e메일, 스마트폰 메신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전달하는 창구는 다르지만 글이라는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생각을 알리고 공감을 얻는데 글만큼 좋은 것이 있을까. 하지만 무턱대고 아무 글이나 보냈다간 하지 않는 것만 못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한 중소기업 CEO는 “몇 년 전 직원들에게 e메일을 보내다 몇 달 만에 그만뒀다”고 말했다. 방법을 몰라서 ‘못하는’ 혹은 왜 좋은지 몰라서 ‘안 하는’ CEO들을 위해 내공이 쌓인 편지 쓰는 노하우를 공개한다. 읽는 사람이 먼저 기다리는 인기 ‘감성 메신저’들이다.



강신우(53)│한화자산운용 사장

강신우 사장이 생일 맞은 직원에게 선물하는 자필 편지가 담긴 책.
CEO 레터로 화학적 합병 앞당겼다



매월 첫 근무일 직원들에게 사내 메일로 ‘CEO 레터’를 보낸다. 생일을 맞은 직원에게는 책에 자필로 축하 메시지를 써 선물한다. 책은 그달 그달 직접 선정하고 메시지는 당일 아침 주인공을 떠올리며 적는다. 정보가 부족할 때는 해당 직원의 주변을 탐색해 정보를 얻기도 한다.



편지 쓰기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된 데는 강창희 전 미래에셋 부회장의 영향이 컸다. 2000~2002년에 굿모닝투신운용(현 이스트스프링자산운용)에서 대표이사와 직원으로 함께 일했는데 편지를 많이 쓰신 것이 인상 깊었다. 2011년 9월 한화투자신탁운용이 푸르덴셜자산운용을 합병하면서 직접 CEO 레터를 쓰게 됐다.

10월 1일 서로 다른 문화와 경험을 지닌 두 회사의 임직원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를 썼다. 처음부터 지속할 계획은 아니었다. 그 다음달에도 직원들에게 해주고 싶은 얘기가 있어 월별로 내다 보니 지금까지 이어졌다. 이질적인 두 집단이 단일문화를 만들었으면 했다. 함께 리딩 컴퍼니를 만들어보자는 목표도 공유하고 싶었다.



일상에서 얻은 아이디어와 이와 관련 있는 시의적절한 업계의 화두를 함께 전한다 . 책에서 읽은 구절이나 다른 사람에게 받은 글 가운데 좋았던 것을 인용한다. 시 또는 노래 가사를 넣으면 주제의 전달력이 높아진다. 매달 로운 소재로 글을 쓴다는 게 갈수록 어렵다. 4월 CEO 레터는 해바라기의 노래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의 한 소절로 시작했다.

최근 영화 ‘파파로티’에서 리메이크해 많은 사람에게 다시 사랑 받는 곡이다. 업황이 좋지 않은 요즘 직원들에게 위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썼다. 생일 선물용 책에 쓰는 문구는 주로 젊은 직원들에게는 꿈을 잘 키워나가는 방법을 알려주고, 시니어들에게는 일상에서 잊어버렸을 꿈을 간직하고 더 많은 꿈을 꾸라고 얘기한다.



잔소리로 들리지 않도록 읽는 사람에게 다가가려고 노력한다. 한 편 쓰는데 대략 3~4시간 걸린다. 주제를 선정하고 집중해야 하기 때문에 가급적 업무시간에는 쓰지 않는다. 모호한 표현에 따른 오해의 소지를 줄이기 위해 여러 번 읽어보며 고친다.



리더는 지시하는데 그쳐서는 안 된다. 가령 ‘리서치를 잘해라’고 하기보다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 리서치인지 경험에서 우러난 구체적 방향을 알려줘 직원이 성장할 수 있게 도와줘야 한다. CEO 레터는 직원들에게 구체적인 조언을 제공한다.



레터 내용이 본인의 고민과 비슷할 경우 답장을 보내는 직원들이 있다. 몇몇 책을 받은 직원들은 직접 고른 책을 내게 선물하기도 한다.





이상운(61)│효성그룹 부회장

편지 5개 국어로 번역해 현지인 직원과 소통



매월 초 효성그룹 전 직원에게 e메일을 보낸다. 2004년 9월에 시작해 지금까지 95회 발행됐다. 회사 인트라넷의 사보에도 실려 직원들이 댓글을 달면 하나 하나 읽어본다. 2008년 6월부터 영어·국어·중국어·베트남어·터키어 5개 국어로 번역해 현지 법인의 현지인 직원들이 볼 수 있게 했다. 현지에서 답 메일이 온 것 중 일부를 사보에 올려 공유하기도 한다. 매년 1월과 12월에는 각각 신년사와 창립기념사로 대체하고 있다.



기업에서 상의하달 방식의 소통이 익숙하지만 e메일을 쓰면 쌍방의 소통이 가능하다.



직원들의 열정·도전·혁신을 끌어낼 수 있는 다양한 이야기를 쓴다. 다른 선진 회사 사례나 고사성어에 얽힌 이야기를 소개해 잠재력을 이끌어내고자 한다. 한 달 동안 경영 지식·책·영화 등을 열심히 보며 정보를 얻는다.



직원들은 어려울 때 힘을 주는 글에 위안을 받는 것 같다. 솔직하고 담백한 어조로 글을 써 내려가는 것이 친근함을 준다.



보내는데 그치지 않고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직원들은 CEO의 생각을 직접 들을 수 있고, CEO는 직원들의 생각을 알 수 있어 좋다. 댓글 속 직원들의 아이디어는 경영에 반영한다. 모유 수유실도 CEO 레터로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자연스럽게 직원들의 소속감과 자부심이 높아지는 것도 편지의 큰 효과다.



답 없음.



김종훈(64)│한미글로벌 회장

10년째 홈페이지에 ‘CEO 단상’ 올려



개인 홈페이지에 매주 한 번 꼴로 ‘CEO 단상’을 쓴다. 홈페이지를 방문하는 모두에게 보내는 서한이다. 2004년 5월 27일에 시작해 올 7월 16일 485번째 글을 썼다. 지난해에는 고마운 분들에게 자필 감사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직원들의 생일에는 e메일로 축하 편지를 보낸다.



직원들과 소통하기 위한 방법을 찾던 중 몇몇 CEO들이 온라인 편지를 쓰는 걸 보고 시작했다.



회사와 관련된 이야기뿐 아니라 사회·경제·국제 전반에 걸쳐 다양한 주제를 다룬다. 평소 주제와 내용을 생각하고 주말에 글을 쓴다. 다른 온라인 뉴스레터와 신문·책, 목사님 설교, 옛 경험과 추억 등에서 영감을 받는다.



10년 동안 주기적으로 글을 쓴다는 것이 쉽지 않지만 구성원과의 소통은 CEO의 의무라고 생각하고 악착같이 쓴다.



구성원들과 철학·생각을 공유할 수 있고 방향을 제시해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



2010년 9월 16일에 회사 A 부장의 부인으로부터 편지 한 통을 받았다. A 부장은 1차 대장암 수술 후 6개월 만에 암이 재발해 항암치료를 받고 있었다. 암 투병을 하는 동안 전 직원이 자선바자회와 모금운동을 열어 격려금을 전달했다. 나 역시 A 부장을 만나 격려하고 어서 빨리 일어나기를 빌었다.

‘회장님, 안녕하세요?’로 시작하는 편지에는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감동했다는 내용과 발병 경위, 암 투병 일과 등이 자세히 적혀 있었다. 편지는 ‘두렵지만…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라는 말로 끝을 맺었다. 지금도 가슴이 저린 잊지 못할 서신이다.





정이만(61)│한화63씨티 상근고문

한 번 쓰면 임기 끝날 때까지



2003년 한컴, 2004년 한화63씨티, 2008년 프라자호텔 대표에 취임해 10년 동안 CEO를 했다. 한컴 대표로 오면서 ‘CEO 메일’을 쓰기 시작해 한 주도 빠지지 않고 총 520회 메일을 보냈다. 지난해 4월 현장에서 물러난 후부터 매주 블로그에 ‘덕수궁에서 쓰는 편지’를 올린다.



한컴 CEO를 맡았을 때 상황이 좋지 않았다. 난파 직전의 배에 오른 것 같았다. 회사가 경쟁력을 키우려면 대표와 직원이 하나가 돼야 한다. 결속된 힘을 가지려면 소통 채널이 필요하다. CEO의 생각이 몇 단계를 거치면 전달하는 과정에서 왜곡이 생길 수 있는데, CEO 메일을 보내면 회사의 비전과 추진과제, 중요한 이슈를 말단 직원까지 모두 공유할 수 있다.



한 주의 이슈를 제시하고 그에 따라 생각해야 할 점을 짚어본다. 베스트셀러에서 꼭 알아야 할 부분을 인용하기도 한다. 이렇게 하면 직원들이 특정 이슈에 대한 CEO의 생각을 알게 되고 모든 임직원이 한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다.



일주일 내내 구상하고 틈틈이 메모해 매주 월요일 아침 글을 써 보냈다. 필화(筆禍)를 일으킬 만큼 민감한 내용을 담으면 안 된다. 결정되지 않은 사항을 미리 알려서도 안 된다. 직원들 사기를 떨어뜨리는 내용을 담는 것도 좋지 않다. 한 번 시작하면 임기가 끝날 때까지 쓰겠다는 마음으로 해야 한다. 진부한 내용을 담으면 업무에 바쁜 직원들이 읽지 않는다. CEO가 계속 성장하고 회사가 바뀌어야 매주 새로운 내용의 CEO 레터를 쓸 수 있다.



CEO 메일은 사내 신문과 같다. 많은 직장인이 자신이 다니는 회사에서 무슨 일이 생기는지 잘 모른다. 직원들에게 회사 내 중요한 일을 자세히 알림으로써 공감대를 형성하고 각자 맡은 일에 몰두할 수 있다. 한마디로 열린 경영이 가능해진다.

회사에 어려운 일이 생기면 직원들에게 이해를 구할 수도 있다. 또 CEO 메일이 모이면 그 회사의 역사가 된다. 이제까지 쓴 메일을 책으로 엮어서 회사에 두었다. 신입사원들이 보면 회사의 생생한 역사를 한눈에 알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메일을 쓰기 위해 선진 회사의 사례나 참고 도서를 찾다 보면 안목이 느는 것을 느낀다.



어렵게 살던 어린 시절 얘기를 썼더니 많은 직원이 각자의 힘들었던 순간을 써서 답 메일을 보내왔다. 그걸 읽다 절로 눈물이 났다. 하루도 빼놓지 않고 내게 e메일을 보낸 직원도 있다. 고마움에 그 직원의 초상화를 그려 선물했다. 한 직원은 답 메일에 떡볶이가 먹고 싶다고 써 함께 떡볶이를 먹으러 가기도 했다.



양병무(58)│재능교육 대표

매주 토요일마다 직원 인터뷰하고 글 써



매주 월요일 오전 8시 회사 인트라넷에 ‘대표이사 행복 편지’를 올린다. 사장에 취임하고 3년 2개월 동안 거의 매주 편지를 썼다.



전국에 300여 개 사업장이 있다. 학습지 교사를 포함해 직원이 4000명을 넘는다. 이들과 소통하기가 쉽지 않다. 관리 직원, 교사 등 모든 직원이 아침 조회 때 볼 수 있게 인트라넷에 올리는 방법을 생각했다. 인터넷을 이용한 편지 쓰기는 시공간을 초월한다.



직원들 칭찬이 대부분이다. ‘어디의 누가 잘한다’는 얘기를 들으면 해당 직원을 불러 직접 만나거나 전화로 인터뷰해 그 내용을 편지에 쓴다. 업무 성과뿐 아니라 따뜻한 미담도 포함된다. 직급에 관계없이 하루 3~4명씩 통화하기도 한다. 직원들에게 먼저 ‘안녕하세요. 양병무 대표이사입니다.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으니 편한 시간에 전화주세요’라고 문자를 보내 전화가 오면 인터뷰를 한다. 보통 토요일에 통화하고 글을 쓴다. 매주 글을 써야 한다는 것이 부담되지만 주말에도 일하는 직원들을 생각하면 어느새 전화를 걸고 있다.



재능교육 직원 사례를 중심으로 쓴다. 직원들과 관계 없는 얘기는 책에서도 많이 볼 수 있으니 형식적인 글은 피한다.



직원들이 현장에서 칭찬 받고 대표이사에게 같은 일로 또 전화를 받으면 의욕이 두 배가 된다. 개인적으로는 일주일을 정리하는 의미가 있다. 재능교육에 오기 전 한국인간개발연구원 원장, 서울사이버대 부총장으로 일해 CEO라는 직업이 낯설었다. 주말마다 직원들과 소통해 현장을 빨리 알 수 있었다. 처음에는 얼마나 오래 가겠어 그랬을지 모르지만 1년을 넘기니 직원들이 진정성을 느끼는 듯하다. 지속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몸소 보여주는 것 같아 보람 있다.



몇 주 전 토요일 한 직원에게 전화 했더니 아들 돌 잔치를 준비하는 중이라고 했다. 부인을 바꿔달라고 해서 “남편이 열심히 일해 좋은 상을 받았다. 축하한다. 내조를 잘해준 덕분이다”라고 인사했다. 무척 기뻐하더라. 재능교육에 여성 직원이 많은데 통화하다 보면 30분을 훌쩍 넘기곤 한다. 남편 보기 미안해서 바꿔 달라고 해 “부인이 열심히 해줘서 고맙다”고 또 인사했다. 6월 초 인사를 했는데 인사라는 게 워낙 뒷말이 무성하지 않나. 행복 편지에서 인사의 배경을 설명해 직원들의 이해를 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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