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사연으로 마음의 벽 허문다
꽃 사연으로 마음의 벽 허문다
지난해 3월 말 KT파워텔 사내 소식지에 한 편의 글이 실렸다. 개나리나 진달래보다 먼저 피어 봄을 알리는 봄까치꽃·냉이꽃의 이야기였다. 꽃 사진과 함께 힘찬 한 해를 만들어 나가자는 메시지도 담았다.
한 주가 지나자 서울 영등포구 오목수변공원에서 피는 봄 꽃의 이야기가 등장했다. 1분기 성과에 감사하고 수고했다는 메시지가 꽃과 함께 담겼다. 글은 꼬박 1년이 지나도록 계속됐다. 총 52주 동안 350여장의 야생화와 풀 사진이 사연과 함께 사내 소식지를 채웠다.
“1년 동안 한 주도 안 쉬고 꽃 이야기를 쓰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지난 흔적을 더듬는 글의 주인공 이상홍(58) KT파워텔 사장의 얼굴에는 만감이 교차했다. 지난해 3월 KT파워텔 사장으로 부임한 그는 직원들과 더 가깝게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했다.
평소 관심이 많던 야생화를 소재로 글을 쓰면 직원들과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 같았다. 3개월쯤 지났을 무렵 꽃이 1년 단위로 피고 지는 만큼 52주 동안 글을 써봐야겠다고 결심했다. “막상 결심을 했는데 지키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금요일 오후부터 아이디어를 생각하기 시작해 글을 완성하면 일요일 밤이 됐죠”.
무전통신사업자 KT파워텔은 KT의 자회사로 1985년 출범했다. 청와대·국가정보원·국립의료원·해양경찰청 등에서 이 회사가 만든 무전단말기를 쓴다. 무전 기능이 필요한 화물차·택시·택배사업자도 주요 고객이다. 사업의 특성상 사무실 분위기가 무거울 때가 많다. 대부분 공공기관이나 기업을 상대로 하는 기업간 거래(B2B) 영업이다. 이 사장이 부임할 당시 매출과 영업이익은 수년째 답보 상태였다. 신규 가입자 유치도 감소세에 접어든 시점이라 회사에는 위기감이 가득했다.
이 사장은 분위기를 일신하고 직원들과 소통하는 방법으로 사내 소식지에 글을 싣기 시작했다. 효과는 생각보다 좋았다. 많은 직원이 이 사장의 글에 화답하는 e메일을 보내 왔다. 직원들이 직접 야생화의 사진을 찍어 이름을 물어보고 자신이 아는 꽃과 풀을 이 사장에게 소개했다.
연재를 끝낼 무렵 한 직원은 ‘어머니가 사장님 글의 애독자라며 연재를 계속할 수 없느냐’는 e메일을 보내기도 했다. 1년 동안 이어진 이 사장의 꽃 이야기는 4월에 끝이 났다. 하지만 직원들과 소통한 추억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글을 버리기 아까웠다. 마침 주변에서 책으로 만들어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이 들어왔다. 7월 그간의 이야기를 묶은 책을 출간했다. 제목은 『꽃의 향기, 소통의 향기』다.
그가 야생화에 관심을 가진 건 4년 전이다. KT 연구개발(R&D) 연구원으로 28년을 근무했다. 연구소가 있는 서울 우면동의 양재천 근처를 산책하다 많은 야생화를 접했다.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어 인터넷으로 꽃의 이름과 사연을 찾아봤다. 나중에는 서적을 구입해 찾아보고 전문가들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이 사장의 임기는 내년 2월까지다. 아직 연임 여부는 결정되지 않았다. 임기와 상관 없이 무전기 기능 탑재 스마트폰, 선박시장 공약 등 진행 중인 사업을 이어갈 예정이다. ‘임기에 맞춰 일을 중단하거나, 장기 계획 추진을 멈추면 안된다’는 게 이 사장의 생각이다. 꽃이 1년을 주기로 피고 지며 끝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연속적인 생을 살고 있다. 이 사장의 경영철학과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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