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옛 친구처럼 편안한 휴양촌 촌장

옛 친구처럼 편안한 휴양촌 촌장

충북 제천, 경남 통영, 네팔에 휴양형 콘도미니엄 … 제주·피지 진출 계획
통영리조트 그네에 앉은 이종용 사장(왼쪽)과 그의 부인 박정념 회장.



“남자는 가을을 탄다고 하잖아요. 정말이지 간절하게 소주 한 잔 생각나는 금요일 저녁이 있지요. 회사 일로 고민거리가 생기거나 아무런 이유 없이 옛 친구가 보고 싶을 때입니다. 그럴 때 아내와 함께 떠나서 조용히, 그리고 운치 있게 주말을 보낼 수 있는 곳이 바로 ES리조트입니다.”

이종용(71) ES리조트 사장의 설명은 이렇게 직설적이었다. 중년 남성의 외로움을 달래줄 수 있는 ‘옛 친구’ 같은 휴식 공간이 바로 이 사장이 ‘열아홉 가을’을 바친 ES리조트라는 자부심에서다.

그의 말대로 등 뒤로는 해발 1016m의 늠름한 금수산이 버티고, 가슴으론 ‘내륙의 바다’로 불리는 충주호를 품은 곳이 ES능강리조트다. 1995년 충북 제천시 수산면 능강계곡에 처음 문을 연국내 최초의 유럽식 휴양형 콘도미니엄이다. 그는 “도시에서 일하는 40대 이상의 인텔리들을 위한 휴양촌”이라고 소개했다.



1976년에 땅 사서 19년 꾸준히 투자이 사장은 1942년 경북 칠곡에서 태어났다. 경북대 사회학과를 졸업한 뒤 섬유업체를 경영했다. 그는 1976년 제천시 수산면 능강계곡에 콘도 부지 46만여㎡를 매입했다. 수몰지역의 한 주민이 마을 뒷산을 판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다. 서울과 고향 중간쯤 되는 곳에 넉넉한 별장형 콘도 부지를 사들인 것이다.

이 사장은 “당시는 제조업이 황금기였지만 앞으로는 서비스업, 특히 휴양 사업이 뜰 것이라는 확신에서 이 같은 모험을 했다”고 회고했다. “황무지나 다름없는 땅을 3.3㎡당 30원씩 주고 샀지요. 주위에선 바가지를 쓴 거라고 비웃었지만 전혀 망설임이 없었어요. 정말 푸근해 보이는 땅이었거든요.”

결론부터 말하면 이 사장의 무모한 베팅은 요즘 유행하는 말로 ‘신의 한 수’가 됐다. 1980년대 중반 충주댐이 생기고 이 일대에 거대한 호수(충주호)가 생기면서 하루아침에 금싸라기 땅으로 변했다. 지금은 시가 수천 억원을 호가한다. 콘도 사업을 제대로 해보겠다고 결심한 이 사장은 “이때부터 엉뚱한 짓을 ‘쎄게’ 벌였다”고 말했다.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이 전문가들과 ‘휴양 유학’을 떠난 것. 주변에서 소개 받은 관광학자, 평소 알고 지내던 화가 등을 초청해 유럽과 미국·아시아 등 유명 여행지로 벤치마킹을 다녔다. 여기서 ‘좋은 리조트는 사람과 함께 쉬어야 한다’는 결론을 얻었다.

“이때부터 틈날 때마다 능강계곡을 찾아 하나씩, 하나씩 휴양촌을 만들어 나갔습니다. 절대 자연을 훼손하지 않았어요. 소나무가 생긴 대로 집을 만들었어요. 어떤 객실에서 천정으로 소나무가 가지를 뻗어나가고 있는 것은 이런 철학에서입니다. 닭·오리·사슴이 뛰어다니게 했어요. 리조트를 콘크리트 건조물 대신 자연의 일부로 만든 겁니다.”

자연의 풍요로움이 흐르고(Environment Sound), 삶에 활력을 준다는(Energy Source) 뜻에서 ‘ES’라고 이름 지었다. 운영은 철저히 회원 중심이다. 이곳에선 회원이 아니면 손님을 받지 않는다. 전두환 전 대통령 측에서 투숙을 요청했다가 거절당한 건 유명한 일화다.

이 사장은 “회원제로 운영된다고 하면 회원이 우선이어야 한다는 단순한 원칙을 지킨 것뿐”이라고 말했다. 다만 예외가 있다. 우리 사회에 미담을 준 ‘보통사람’을 선정해 매해 상금과 함께 능강리조트 숙박권을 준다. 이 사장이 포함된 ‘맑은바람회’ 모임을 통해서다. 이 사장은 “큰 나무가 버티려면 실뿌리가 영양과 수분을 공급해야 하듯 우리 사회에도 고마운 분들이 많다”며 “그런 분들에게 대한 예의”라고 말했다.

ES는 제천 말고도 경남 통영, 네팔 데우랠리에서 리조트를 운영 중이다. 통영리조트는 한려수도 국립공원 개발을 구상 중이던 김혁규 당시 경남지사가 이 사장에게 자문을 요청해 만들어졌다. 정식 개장한 것은 2009년이다.

이곳의 106개 객실 중엔 ‘똑같이 생긴 방’이 하나도 없다. 특히 직선으로 이뤄진 디자인이 전혀 없다. 건물 기둥도 비스듬하고 객실 내부의 천정도 둥글게 처리했다. 객실에선 일출과 일몰도 함께 즐길 수 있다. 지붕은 섬과 조화를 이루기 위해 물결무늬를 만들고 있다. 모두 이 사장이 감독한 것이다.

“(리조트에서 가까운) 달아공원에서 맞는 일몰은 한 폭의 수묵화가 따로 없을 만큼 아름답지요. 여기서 바라본 섬과 바다는 모두 곡선입니다. 직선은 사람이 만든 것입니다. 자연엔 본래 직선이 없지요. 휴식을 위해 온 손님들에게 곡선의 아름다움을 선물하고 싶었습니다.”

통영리조트는 국립공원에 조성한 만큼 비회원도 이용 가능하다. 하지만 운영방식은 능강이나 통영이나 비슷하다. ES는 ‘자연속 휴양촌’이라는 콘셉트에 따라 영업장을 관리한다. 그래서 이용객들은 약간의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객실에는 벽시계가 없고 무선 인터넷이 연결되지 않는다. 일부 객실에는 아예 브라운관 TV가 놓여 있다.

자연 속에서 여유를 즐기려면 시간에 구애 받지않아야 하고, 인터넷도 따로 필요하지 않다는 게 이 사장의 지론이다. 야외에서 고기를 굽고, 수영장을 이용하는 것은 여기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밤늦게까지 고성방가를 했다가는 퇴실 조치될 각오를 해야 한다. 이 사장은 “유흥이 아니라 휴식이라는 ES만의 운영 철학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회사는 올해는 창사 이래 최대인 운영 매출 100억원을 기대한다. 2009년(46억원)에 비해 2배 이상으로 성장했다. 철저히 회원 중심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내장객은 한해 27만~30만 명으로 제자리걸음이지만 실적은 서서히 상승세를 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사장의 관심사는 다른 곳에 있다. “매출이 오르고 내리고는 크게 개의치 않습니다. 저는 휴양촌을 보듬는 ‘촌장(村長)’으로 역할에 충실하고 싶습니다. 회원들과 막걸리 한 사발 마시고, 옛날 영화 보면서 즐거움을 찾지요.”



철저한 회원 중심 경영 신뢰 얻어이 사장은 3년 전 갑작스런 대장암 진단을 받았다. 다행히 수술이 성공해 지금은 건강을 되찾았지만 회사로선 위기를 맞았던 것. 이때 큰 힘이 됐던 것이 그의 아내인 박정념(65) 회장이다. ES리조트에서는 이런저런 파티가 자주 있는데, 특히 매년 초에는 떡국을 돌리며 자선행사를 한다. 2010년 설날 신년회에서 이 사장은 700여명의 손님을 모아놓고 “제 아내를 회장으로 모시겠소”라는 선언을 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깜짝 인사’였다.

“(껄껄 웃으면서) 사장보다 직위가 높으니까 당연히 황당했겠지요. 하지만 나름 이유가 있어요. 회사를 키우다 보니 여자의 손길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아내에게 ‘디테일을 챙겨 달라’는 중책을 맡긴 셈입니다. 그런데 아내가 회장 직함을 받고 회사에 나온 지 얼마 뒤에 건강이 악화됐어요. 아내가 저와 회사를 잘 챙겨준 덕분에 모두 건강합니다.”

이 사장의 다음 꿈은 바다를 건너고 있다. ES는 제주와 남태평양 피지 등으로 사업을 확장할 예정이다. 네팔의 해발 8200m 고지에 세운 별장형 리조트에 이어 해외 사업을 본격화하는 것이다. 현재 피지에 50만㎡(약 15만 평) 부지를 확보했다. 이 사장은 “큰 도전을 해야 사는 맛이 난다”며 “더 멋진 휴양촌을 지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지난해 국립대병원 10곳, 적자 규모 5600억원 달해

2제주서 잡힌 ‘전설의 심해어’ 돗돔... 크기가 무려 183cm

3못 말리는 한국인의 홍삼 사랑...홍삼원 '1000억 메가 브랜드' 됐다

4상위 1% 부자 되는 법은…“30대엔 몸, 40대엔 머리, 50대엔 ‘이것’ 써라”

5쿠팡이츠, 상생 요금제 도입…매출 하위 20% 수수료 7.8%p 인하

6"갤럭시 S25, 기다려라"...AI 기능 담은 '아이폰 SE4' 출시 임박, 가격은?

7‘농약 우롱차’ 현대백화점 “환불 등 필요한 모든 조치”

8작년 배당금 ‘킹’은 삼성 이재용…3465억원 받아

9유럽, 기후변화로 바람 멈추나…풍력 발전 위협

실시간 뉴스

1지난해 국립대병원 10곳, 적자 규모 5600억원 달해

2제주서 잡힌 ‘전설의 심해어’ 돗돔... 크기가 무려 183cm

3못 말리는 한국인의 홍삼 사랑...홍삼원 '1000억 메가 브랜드' 됐다

4상위 1% 부자 되는 법은…“30대엔 몸, 40대엔 머리, 50대엔 ‘이것’ 써라”

5쿠팡이츠, 상생 요금제 도입…매출 하위 20% 수수료 7.8%p 인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