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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규제만 하는 ‘꼴통’ 아니다”

“나는 규제만 하는 ‘꼴통’ 아니다”

단말기 보조금 안 주면 통신료 인하 가능 종편 재승인 못 받는 곳 나올 수도



“이동통신사들이 출시된 지 20개월 지난 구형 폰의 가격을 내리면 단말기 보조금 문제 안 생깁니다. 왜 가격은 100만원대로 해 놓고 70만~80만원씩 보조금을 줍니까? 누구는 100만원에 사고 누구는 20만원에 사는 게 형평에 맞아요? 이제 국내에서는 신제품이 나와도 바꿀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이통사들이 조급증에 경쟁적으로 가격을 내려 팔려는 겁니다.”

이경재(72) 방송통신위원장은 “보조금의 투명한 공시 등을 골자로 하는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이 정기국회에 계류 중인데 통과 저지 로비가 극심하다더라”고 말했다.

“우리 국민 가운데 스마트폰 살 사람은 대부분 샀습니다. 시장이 포화상태에 접어들었어요. 무엇보다 보조금 재원을 그렇게 활용하면 단말기 값만 내려가는 게 아니라 통신료도 싸집니다. 궁극적으로 이용자로서의 소비자들을 보호하는 효과가 있죠.” 10월 22일 경기도 과천 정부과천청사 집무실에서 이 위원장과 만났다.

대통령이 얼마 전 방송산업이 창조경제의 핵심이라고 했습니다. 단적으로 ‘K드라마’가 창조경제의 일익을 담당할 수 있다고 봅니까?

“이란 국민의 대장금 시청률이 80%대입니다. 가수 하던 저의 막내딸(삐삐밴드 보컬 출신인 이윤정)이 결혼해 낳은 아이가 1년 3개월 됐는데 이 아이가 울거나 짜증을 부리면 엄마가 스마트폰을 켜서 앞에 놔 줘요. 그러면 곧바로 잠잠해 지죠. 프랑스에서 50%의 시청률을 올렸다는 우리나라 애니메이션 뽀로로에 아이가 집중해서인데, 옆에서 보면 무슨 마술 같아요.

K드라마·K팝 같은 한류 콘텐트는 그 자체로 부가가치가 엄청날뿐더러 우리나라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공신입니다. 일례로 삼성전자 휴대폰 단말기가 제값을 받는 데도 일조합니다. 창조경제에도 일익을 담당한다고 할 수 있죠.”

그 과정에서 정부의 역할 공간은 뭔가요?

“최근 들어 한류가 좀 주춤했는데 과감한 투자를 못한 게 한 요인입니다. 공영방송의 재정을 안정시키려면 KBS 수신료를 올려야합니다. 수신료 인상은 질 저하와 방송 내용이 광고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것을 막아 공영방송을 정상화하는 효과가 있어요. 공영방송이 수신료가 아니라 상업광고를 재원으로 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게 저의 철학입니다. 수신료를 올리면 광고시장 전반의 숨통을 틔우는 효과도 있어요.

수신료를 2000원 올려 KBS가 광고를 하지 않게 되면 2000억원 정도의 광고비가 신문과 다른 방송 매체로 옮겨가지 않을까, 저는 이렇게 봅니다. 일부에서 종합편성(종편) 채널을 살리려 하는 거 아니냐 소리도 하는데 신문·모바일로도 간다고 보면 종편으론 늘어나는 광고의 2% 정도 간다고 보면 되겠죠. 방송광고에 대한 복잡하고 불합리한 규제를 풀어 광고 시장도 활성화해 보려 합니다.”

정부의 시장 규제에 반대하는 시장주의자 같은 인상을 받습니다. 그러나 규제를 풀어서 생기는 부작용, 규제 완화로 치러야 할 사적 비용도 있는데요?

“제가 1980년대 동아일보에서 해직되고 나서 2년 간 한국방송광고공사 기획부장을 했습니다. 광고에 대한 규제를 풀면 매체에 따라 이해 득실이 있고 광고 자체를 싫어하는 시청자들도 있다는 걸 제가 잘 압니다.”

정부가 방송 융합을 통해 창조경제를 실현하자고 하는데, 가능성은?

“우리나라는 세계 최초로 IPTV를 개발하고도 제도 미비, 부처간 영역 다툼으로 다른 나라에 뒤처진 뼈저린 경험이 있습니다. 유럽의 정보기술(IT) 산업이 미국에 뒤지고 일본의 휴대폰 업계가 해외시장 진출에 실패한 건 사전 규제가 심하고 시장에서의 자유 경쟁을 제한했기 때문이에요. 방송통신 융합 기술 및 산업의 발전에 장애가 되지 않도록 규제를 최소화해야 합니다. 당장 UHDTV(초고화질 TV)의 세계 시장 주도권을 우리가 쥘 수 있도록 미래창조과학부(이하 미래부)와 연구반을 꾸려 착실히 준비하겠습니다.”

UHDTV에 대해 과거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는데.

“미래부가 케이블TV부터 시작해 UHDTV 시험방송을 하겠다고 계획을 발표했는데 지상파 이야기가 빠졌더라고요. 방송 단말기를 팔려면 방송이 되어야 합니다. 제가 광고공사에 다닐 때 컬러 TV 방송이 시작됐는데 그때 컬러TV도 막 생산이 시작됐어요. 말하자면 이웃집에 갔다가 컬러TV로 방송을 보고 우리도 사야겠네 하고 사는 겁니다.

컬러TV를 아무리 잘 만들어도 컬러 방송을 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샀겠습니까? 그런데 일본 TV제조업체들이 진출을 벼르는 미국에 동향을 살피러 갔더니 UHDTV 방송을 하지 않겠다는 거예요. 심지어 3D 방송도 내년에 종결하겠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미국 출장에 동행한 기자들에게 신중하게 생각해야겠다고 한 겁니다. 귀국해 대통령에게는 기술 선도로 방향을 잡고 기술 개발을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고 보고했습니다.

더욱이 굉장히 중요한 디지털 문제를 다루는 만큼 범국민적 추진체를 만들어야 한다고 건의했어요. 콘텐트 공급자 측 즉 케이블은 물론 지상파 방송과 제조업체도 참여하겠지만 너무 기술 중심으로 미시적으로 접근하면 실패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요컨대 생계가 입체적으로 함께 움직여야 합니다.”

융합의 시대 지나친 규제가 창조경제의 발목을 잡지 않도록 하겠다고 했는데 취임 후 규제완화 성과로 무엇을 꼽습니까?

“같은 서비스에 대해서는 같은 규제를 적용해야 합니다. 이 원칙에 따라 방송법과 IPTV법의 규제 수준을 맞추기 위한 연구반을 들었습니다. 영어 FM방송이 중국어·일본어 등 다양한 외국어 방송을 할 수 있도록 허용했고, 출력 기준 등 지상파 DMB 방송국 허가요건 완화를 추진 중이죠.”

알뜰폰 사업자의 발목을 잡는 이통사에 대한 제재는 어떻게 돼 가나요? 알뜰폰 활성화야말로 방통위 차원에서 해 볼 만한 가계 지원 내지 경제 살리기 아닌가요?

“알뜰폰 활성화는 미래부에서 추진하는 이동통신 요금 인하 방안 중 하나입니다. 최근 알뜰폰이 우체국·대형마트 등으로 유통채널을 확대하고 있는데 이를 지원하기 위한 시장 감시를 철저히 하려고 합니다.”

지상파 재송신 댓가를 산정하는 혁명적 방안을 내놓겠다고 했는데요.

“방송사 나름이라 사실 일률적으로 규제하기는 어렵습니다. 기본적으로는 시장에 맡기는 게 좋다고 봅니다. 제가 규제만 하는 ‘꼴통’ 아닙니다. 미국이 이렇게 자유시장 경제의 원칙을 따르는데 미국처럼 하기는 어려운 게 우리는 SO(종합유선방송사업자)가 지역마다 독점이거든요. 어쨌거나 블랙아웃(지상파 방송 중단)이 되면 시청자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직권 조정을 해야겠죠.”

이 위원장은 동아일보 해직 기자 출신이다. 공보수석·공보처 차관을 역임했고 4선 의원을 지냈다. 그는 10월 8일 연세대 언론대학원 세미나에서 종편 재승인 기준이 강화돼 탈락자가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 위원으로 있을 당시엔 관련 토론회에 참석해 광고시장 규모, 성장성 등 전체 미디어 시장을 고려하면 종편은 2개 정도가 적당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종편 재승인 기준은 뭔가요? 어떤 문제를 야기했거나 무엇이 부족했을때 탈락할 가능성이 있습니까? 예를 들어 부실하고 자극적인 시사토론으로 시간을 때우는 식의 방송을 했다면 탈락 사유가 될 수 있나요?

“공정성에 대한 배점도 있습니다. 공정성에 문제가 있는 방송을 했을 때 감점을 하는 거죠. 그러나 그게 결정적이냐 아니냐는 별개의 문제예요. 종편은 출범 당시 2개 정도가 적정선이었던 건 맞습니다. 그보다 많으면 지나친 경쟁으로 자립하기 힘들 거로 봤고 그 예측이 사실 들어맞았어요. 9개 영역 평가점수 총점이 650점에 미달하거나 특정 평가점수가 배점의 50%가 안 되면 재승인을 거부할 수 있어요. 원론적으로 탈락 가능성이 있습니다. 조건부 재승인을 할 경우엔 기한을 명시할 거예요. 아무튼 강력하게 나갈 겁니다.”

그는 1984년 동아일보에서 해직된 지 4년 만에 신동아 편집위원으로 언론계에 복귀했다. 여전히 언론 탄압이 극심했던 전두환 정부 시절이었다. 신문은 김영삼 당시 신민당 총재의 단식 투쟁을 모 재야 인사의 식사 문제라는 식으로 1~2단 기사로 다뤘다. 이듬해 2·12총선에서 돌연 신민당 돌풍이 불었다.

그는 원고지 300매 분량으로 그 배경에 김영삼·김대중이라는 두 거목이 있다고 신동아에 썼다. 무려 20만 부가 팔려나갔다. 봇물 터지듯 월간지 전성 시대가 열렸다. 언론의 자유가 없었기에 억압돼 있던 민주화에 대한 국민들의 열망이 방아쇠를 당기자 폭발한 셈이다.

“왕창 떠뜨리니까 중정(국가정보원의 전신인 중앙정보부)도 잡아갈 생각을 못하고 ‘어’ 하다 당했죠. 신문들도 양김을 인터뷰하면서 과감하게 쓰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언론 자유의 물꼬를 터 6·29 선언이 나오는 데 일조를 했다고 자부합니다.”

이명박 정부의 방송통신 정책을 어떻게 평가합니까?

“세계적인 방송·통신 융합 추세에 맞춰 방송통신위원회를 출범시킨 건 시의적절했습니다. 다만 정권 초 방송사 사장 임명 과정에서 낙하산 시비가 일어 방송의 공공성 훼손에 대한 우려가 제기된 건 아쉽게 생각해요. 돌이켜보면 역대 정권이 공영방송 사장을 곧바로 대부분 교체했습니다. 그러나 일찍이 1974년 동아일보 백지광고 사태 때 그랬듯이 집권 측이 억지로 하려 들면 되레 역풍을 맞습니다.

그래서 제가 방송의 날 대통령 앞에서 ‘방송은 장악할 수도 없고 장악해서도 안 된다, 박근혜 정부 하에서 방송장악이란 없다’고 건배사를 했습니다. 다만 언론도 남의 자유를 훼손하거나 자유민주주의를 무너뜨릴 자유는 없다고 덧붙였죠. 결과적으로 방송 장악한다는 이야기는 안 나오잖아요? 과거에 허가 내 준 종편 때문에 시달리기는 하지만.”

신문·잡지가 살 길은 뭡니까?

“꾸준히 진실을 말하는 거라고 봅니다. 원칙론이지만 장기적으로 그게 살 길이라는 생각입니다. 물론 기능 면에서 젊은이들의 수요에 맞추고 사람들이 선호하는 건강 등의 기사도 다뤄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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