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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TRAVEL - 처녀의 품속에 감춰진 보물

culture TRAVEL - 처녀의 품속에 감춰진 보물

스위스 융프라우에는 높은 봉우리 외에도 알려지지 않은 매력이 많다
휘르스트에서 1시간 정도 걸어가면 나타나는 바흐알프호수의 모습.



한국인에게 알프스의 인기 봉우리 중 하나인 융프라우의 상징은 컵라면이다. 해발 3454m에 위치한 세계 최정상 기차역 융프라우요흐 역에서 판매하는 한국산 컵라면이 별미로 알려진 덕분이다. 한국 여행상품에서 융프라우 관광 일정은 대개 기차로 융프라우요흐 역에 올라 전망대를 구경하고 컵라면을 먹은 뒤 내려오면서 마무리된다.

융프라우요흐는 독일어로 ‘처녀의 어깨’를 뜻한다. 처녀의 어깨처럼 매끄러운 곡선을 그리는 융프라우 산세에서 비롯된 말이다. 정상에서 어깨만 보고 내려와 여정을 마무리하기엔 융프라우의 매력이 너무나도 아쉽다. 이 처녀의 매력은 단지 어깨뿐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해발 1000~2000m 사이에 흩어져 있는 아름다운 산골 마을들, 산 곳곳에 흐르는 개울과 쏟아지는 폭포 등 융프라우가 품 안에 안고 있는 보물이야말로 이 지역의 진가를 보여준다.



대자연 속 알프스 걷기융프라우 일대에서 최신 트렌드로 떠오르는 즐길 거리는 하이킹이다. 제주 올레길을 시작으로 한국에서 걷기 여행이 인기를 끌면서 알프스를 배경으로 하이킹을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유럽에서는 오래 전부터 융프라우가 하이킹 여행지로 각광을 받아왔다.

산 곳곳에 거미줄처럼 뻗어 있는 융프라우 철도를 활용하면 원하는 곳까지 쉽게 이동할 수 있다.
가장 큰 인기 요인은 그 일대에 거미줄처럼 깔린 융프라우 철도다. 기차를 타고 이동하다가 자신이 원하는 구간에서 내려 하이킹을 즐긴 뒤 다시 기차를 탈 수 있다. 40분 안팎의 가벼운 구간부터 6시간 이상 종주하는 구간까지 약 80개의 하이킹 구간이 마련돼 있어 취향에 따라 선택이 가능하다.

인기 하이킹 구간 중 하나는 아이거글렛쳐(해발 2320m)역과 클라이네샤이덱(해발 2061m)를 잇는 ‘아이거 워크’다. 편도 1시간 정도로 부담 없는 거리일 뿐 아니라 클라이네 샤이덱에서 융프라우요흐역 사이에 위치해 산 정상 관광을 마치고 내려오는 여행객들이 걷기에 좋다. 이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산악인들의 동경 대상인 동시에 난공불락으로 악명높은 아이거 북벽이 눈앞 가득 펼쳐진다.

휘르스트(해발 2168m)와 바흐알프호수(해발 2265m)를 오가는 왕복 하이킹 구간도 인기다. 2시간이면 왕복이 가능하고 산세도 험하지 않아 애완동물이나 어린아이를 동반한 여행객도 많다. 주변 봉우리들을 거울처럼 비추는 바흐알프호수의 장엄한 풍경은 절로 입이 벌어지게 만든다.

휘르스트까지는 케이블카를 통해 올라갈 수 있고, 하이킹을 마친 뒤 하산길에는 몸에 줄을 매단 채 800m 거리를 미끄러져 하강하는 ‘휘르스트 플라이어’와 페달 없이 산세를 따라 달리는 자전거 ‘트로티 바이크’ 등 다양한 액티비티를 즐기며 내려올 수 있다.

1 툰호의 호반 도시 중 하나인 툰은 투명한 에메랄드빛 아레강을 중심으로 펼쳐진 물의 도시다. 2 알레치 빙하는 유럽 최대 규모일 뿐 아니라 수많은 유럽인에게 젖줄을 제공해온 생명의 근원이기도 하다. 3 좀처럼 도전을 허용하지 않는 아이거 북벽은 지금까지 수많은 산악인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알프스는 물을 따라 흐른다융프라우요흐역 전망대에서 볼 수 있는 알레치 빙하는 길이 약 23km, 두께 약 1km로 유럽에서 가장 큰 빙하다. 규모 자체도 압도적이지만, 이 빙하가 특별한 까닭은 그뿐만이 아니다. 알레치 빙하는 아레강, 라인강 등 서유럽을 가로지르는 물줄기의 시원이기도 하다.

알레치 빙하가 녹아서 생긴 물은 마치 알프스의 혈관처럼 능선 곳곳을 따라 산자락에 위치한 마을 인터라켄으로 흐른다. 개울이 모여 계곡을 이루고, 산세를 따라 흘러내린 계곡물은 독일과 네덜란드를 거쳐 북해로 빠져나간다. 이 물은 아무런 정수 시설이 없음에도 멀리서 바닥까지 들여다 보일 정도로 청정 그 자체다. 이렇게 보면 알레치 빙하는 단지 두껍고 큰 빙하일 뿐 아니라 고래로 수많은 유럽 인구에 젖줄을 제공한 생명의 근원인 셈이다.

빙하에서 형성된 수많은 물줄기 덕분에 이 지역 어디에서나 물을 쉽게 볼 수 있다. 개울, 웅덩이, 호수, 폭포 등 형태도 다양하다. 해발 796m에 위치한 작은 마을 라우터브룬넨 부근에만 크고 작은 폭포가 72개나 있을 정도다. 가장 장대하기로 유명한 트뤼멜바흐 폭포는 초당 2만ℓ에 해당하는 물을 쏟아낸다. 인터라켄 양쪽으로는 브린츠호와 툰호라는 커다란 호수들이 형성돼 있어 배를 타고 호반 마을들을 유람해보는 것도 좋다.



밤거리를 비추는 만년설“융프라우 관광에 한 가지 약점이 있다면 바로 밤문화다.” 수십 년 동안 매년 수 차례 융프라우를 오간 동신항운 송진 이사의 말이다. 저녁 6~7시가 지나면 대부분 상점들이 문을 닫기 때문이다. 시내 중심지라도 저녁 10시가 넘으면 쥐 죽은 듯 정적이 흐른다.

하지만 융프라우의 밤에는 다른 관광지에 없는 매력이 있다. 이곳 밤 거리에는 화려한 네온사인도, 시끌벅적한 취객들도 없다. 지나다니는 사람이라곤 이따금 보이는 관광객이나 현지인이 전부다. 쉴 새 없이 딸랑거리는 소들의 방울소리만이 한밤의 적막을 깨뜨린다. 길에서 우연히 만난 한 현지인 노파는 “저놈의 방울 소리 때문에 잠을 잘 수가 없다”고 불평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사람 사는 곳인지라 새벽까지 운영하는 술집이 없진 않다. 고요한 밤, 술집 야외 테이블에 앉아 어둠에 잠긴 알프스를 바라보며 들이켜는 생맥주는 그 어느 곳에서도 맛보기 힘든 별미다. 멀리 보이는 알프스 만년설은 달빛을 받아 푸르스름한 기운을 뿜어내며 신비로운 자태를 뽐낸다. 흥청거리는 밤문화가 없으면 어떤가? 애초에 휘황찬란한 밤을 즐기고 싶은 이라면 한국을 떠나 융프라우까지 먼 걸음을 하지도 않았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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