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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Report - 한국 신용등급 떨어뜨릴 ‘뇌관’

Special Report - 한국 신용등급 떨어뜨릴 ‘뇌관’

방만 경영 공공기관 부채 570조원 … 공기업 개혁 성공할 지 미지수



“파티는 끝났다.”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는 12월 11일 보기 드문 강한 어조로 공기업 개혁을 예고했다.

늦은 감이 있지만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고 정부가 판단한 듯하다. 앞서 국제신용평가회사 무디스는 ‘공기업 부채가 한국경제의 뇌관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지난해 말 기준 중앙정부 산하 295개 전체 공공기관의 부채는 493조원이다. 지방 공공기관을 합하면 566조원에 이른다. 지난해 국가채무(446조원)보다 120조원이나 많다.

특히 기획재정부가 부채 과다 공공기관으로 지정한 12개 공기업(한국가스공사·한국석유공사·한국전력공사·대한석탄공사·한국광물자원공사·한국도로공사·한국수자원공사·한국철도공사·한국토지주택공사·한국철도시설공단·예금보험공사·한국장학재단)의 부채가 412조원으로 대부분을 차지한다.

138조원의 빚을 짊어진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순자산 대비 부채비율이 466%에 달한다. 한국전력은 이자를 내야 하는 금융부채가 54조원인데, 지난해 3조원의 적자를 냈을 정도로 경영상태가 좋지 않다. 금융부채는 채권을 발행하거나 외부에서 차입한 자금으로 이자를 부담해야 하는 빚이다. 12개 공기업의 금융부채는 305조원으로 2008년보다 136조원 증가했다.

기관 특성상 부채의 성격이 다른 예금보험공사와 한국장학재단을 빼더라도 10개 공기업은 영업이익(4조3000억원)으로 이자(7조3000억원)도 갚지 못하는 실정이다. 지방 공공기관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전국 388개 지방 공기업 부채 규모는 2006년 35조7000억원에서 지난해 72조5000억원으로 치솟았다. 지방 공기업의 당기순손실도 1년 사이 1조4650억원 늘었다. 이 영향으로 지난해 지방자치단체와 지방 공기업의 부채는 사상 최초로 100조원을 넘어섰다.



국책사업에 동원돼 빚 급증공기업이 과도하게 많은 빚을 지고 부실에 빠진 이유는 정부가 추진하는 과도한 국책사업에 동원된 탓이 크다. 감사원에 따르면 2007~2011년 공기업에서 증가한 115조원의 금융부채 가운데 30% 가량은 정부의 국책사업 수행에 따른 것이다. LH는 신도시 개발, 국민임대주택 건설, 세종시·혁신도시 개발, 보금자리주택 건설로 2000년대 중반부터 부채가 빠르게 늘었다.

한국수자원공사도 2008년 이후 4대강 살리기, 경인아라뱃길 사업 수행에 따른 부채 증가액이 9조2000억원이다. 에너지 관련 공기업도 이 시기 정부가 추진한 해외 자원개발에 나서면서 빚이 급증했다. 박진 한국조세재정연구원 공공기관연구센터 소장은 “정부의 재정으로 추진할 대규모 국책사업을 떠맡으면서 공기업이 대신 부채를 짊어진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들 공기업의 방만 경영도 지적된다. 공기업 경영진이 이런저런 핑계로 자구책 마련에 소극적이라는 것이다. 도덕적 해이 문제도 다시 도마에 올랐다. 금융형 공공기관장의 지난해 평균 연봉은 3억2200만원이다. 성과급 상한선은 200%다. 한국거래소는 회사 창립일과 근로자의 날에 각각 70만원을 지급한다.

강원랜드는 직원이 정년 퇴직하면 그 자녀를 채용한다. 현오석 부총리가 “부채를 못 줄이면 공공기관장 임기도 보장할 수 없다”고 경고하는 등 부실 공공기관에 대해 강도 높게 ‘군기’를 잡고 있는 정부도 이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경영상 실책도 있다. 최종찬 건전재정포럼 공동대표는 “지방의 도시개발 관련 공공기관의 경우에는 수익성을 제대로 검토하지 않은 사업으로 부실을 자초했다”고 말했다. 최근 인천도시공사는 아시안게임 개최를 위한 공사를 비롯해 검단 신도시 건설사업, 송도 국제업무지구 조성사업 등으로 대규모 자금을 조달했다.

사업 수익성은 떨어지는데 차입자금은 급격한 속도로 불어나면서 채권으로 돌려 막아 이자비용을 지불하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인천도시공사의 올해 3분기 기준 부채는 7조8692억원이다. 내년 만기에 막아야 할 빚만 2조원을 웃돈다. 강원도시개발공사는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알펜시아리조트를 조성하면서 자금 조달과정에서 과도한 채무가 생겼다.

결국 정부는 12월 11일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을 발표했다. 공공기관의 누적된 부채를 줄이고 고질적인 방만 경영을 개선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2017년까지 공공기관 부채비율을 현행 220%에서 200% 수준으로 낮출 것을 주문했다. 방만 경영이 두드러진 20개 중점관리대상은 따로 관리할 방침이다.

구분회계 제도도 도입한다. 어떤 사업에서 부채가 많이 발생하는지 파악하기 위해서다. 박정수 이화여대 행정학과 교수는 “사업별 구분회계를 도입한 것은 향후 부실사업 정리를 위한 초석이 될 수 있다”며 “파악되는 부실 사업 정리를 정부가 밀고 나갈 수 있을 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정부 대책의 실효성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도 만만치 않다. 구분회계를 통해 부채유발 사업을 밝힐 수 있게 되더라도, 이 사업들을 정리하는 데는 정치적 부담이 크기 때문에 과연 정부가 끝까지 추진할 지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또 구분회계를 제외하고는 이번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의 초점이 지나치게 공기업의 ‘자구책’에 초점을 맞춘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된다.

부채의 주요 원인인 국책사업을 떠맡은 상태에서는 방만 경영을 이유로 공기업을 쥐어짜도 부채가 해결될 수 없다는 지적이다. 낙하산 인사 근절 대책이 빠진 것을 두고도 뒷말이 많다. 전문가들은 공공기관의 부채가 복합적인 원인으로 발생한 만큼 공기업에만 책임을 떠넘기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말한다.



‘신용등급 버블’ 우려도공기업 적자 원인 중 하나인 공공요금 인상 우려도 해소해야 한다. 공기업이 가지고 있는 주요 수익원의 가격은 대체로 원가에 못 미친다. 전기·가스·수도·교통 등 공공요금의 원가보상률은 80% 내외다. 요금은 올리지 못한 채 그만큼 밑지고 판다는 얘기다.

박진 소장은 “공기업에는 원가 절감의 동기가 없어 원가를 부풀리는 경우도 있다”며 “공기업 스스로 원가 절감을 위한 자구책을 마련하고 정부가 이를 검증하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그렇게 산출된 공공요금에 대해서는 사용자인 국민의 이해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최종찬 공동대표는 “사업별 재무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 시장의 압력을 받도록 하는 대신 경영 성과에 따른 평가·보상으로 경영 효율화를 유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기업 부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경우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을 피하기 어렵다. 무디스는 한국의 신용등급 상승에 과도한 공기업 부채가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톰 번 무디스 부사장은 “한국에서 제일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도전 과제는 정부 예산보다도 많은 비금융 공기업의 부채 급증”이라고 말했다. 박진 소장은 “대부분의 공기업은 정부 덕에 최고 신용등급을 받고 있지만 부실이 지속되고 신용등급이 낮아지면 국가 신용등급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공사채 시장의 과도한 ‘등급 버블’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높다. 정부의 지원 가능성이 크다고는 하지만 실제 채무불이행이 발생할 경우 투자금이 장기간 묶이거나 그 과정에서 일부 손실이 발생할 위험도 배제할 수 없다. 투자금이 유용하게 쓰이지 못하고 시장성 없는 사업에 대규모로 유입된 만큼 장기적인 국가·경제적 손실도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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